진정한 친구란 누구인가?   

2024. 8.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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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수학 난제를 아십니까? 17세기 때 법학자이자 아마츄어 수학자인 피에르 페르마(Pierrede Fermat)가 자신이 읽던 책의 여백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3 이상의 자연수 n 에 대해서  a^n + b^n = c^n 을 만족하는 0 이 아닌 정수 a, b, c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명제에 대해 경이적인 증거를 발견했는데, 불행히도 이 책 여백은 그것을 다 적기에 너무 좁다.

그는 이 그 메모가 수백 년간 많은 수학자들을 엄청난 고민에 빠뜨릴 줄 몰랐을 겁니다. 한평생 이 문제에 골몰한 수학자들이 부지기수였고요, 너무 골몰한 나머지 자살을 하는 수학자도 여럿 있었다고 해요.

이 난제는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Andrew Wiles)에 의해 마침내 증명이 되는데요, 그는 1986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그는 논문 발표도 소홀히 하고 학회나 심포지엄에 나가지 않으면서 오로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7년째인 1993년 6월에 증명 완료를 선언하죠. 하지만 그의 증명에 조그만 오류가 발견되었고 20세기 최대의 수학적 사건이라고 칭송하던 언론은 그를 맹렬하게 비난했습니다. 와일즈는 세계적인 천재에서 수학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이자 동료 교수인 리처드 테일러와 공동작업을 하기로 했죠. 그리고 1년 여가 지난 1994년 9월 19일 월요일 아침, 마침내 그는 증명을 완료합니다. 와일즈는 1908년에 볼프 스켈이라는 사업가가 2007년 9월 13일을 기한으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자에게 수여하기로 약속한 10만 마르크(약 20억원)의 상금을 수여했습니다.

엔드루 와일즈의 업적은 분명 놀랍고 위대합니다. 하지만 동료의 도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가 연구 시작 6년차에 이르러 비로소 증명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던 계기는 동료인 닉 카츠 교수의 도움으로 '수론기하학'을 증명에 활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또한 증명에 오류가 발견되어 인생 최대의 위기에 빠졌을 때 동료인 리처드 테일러 교수와의 공동작업이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와일즈는 테일러로부터 격려와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 받으면서 언론와 주변 사람들의 비판을 견딜 수 있었고 기존 아이디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 테일러가 틀을 깨주지 않았다면 증명의 오류는 풀리기 어려웠을 겁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와 발명가들 대부분은 외로운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심리학자 키스 사이먼턴(Keith Simonton)이 2,026명의 과학자와 발명가들의 경력을 조사해 보니, 그들에게는 사심 없는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때로는 문제를 제기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고 해요. 만일 그들에게 친구라는 '틀 파괴자'와 '증폭제'가 없었다면 창조적인 발상과 노력이 현실화되기 힘들었을 겁니다.

우리는 종종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친구들로부터 위안 받죠.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친구들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의미있는 만남입니다. 하지만 '술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술친구들과의 행동과 대화는 판에 박혀 있고 너무 뻔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체로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좋은 친구 관계란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도전적인 목표를 함께 갖는 것"이라고 덧붙이죠. 진정한 친구는 껍질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려는 '나'의 프레임을 깨뜨려 주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에겐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습니까? 친구가 많다고 좋아할 일도, 친구가 적다고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나의 틀을 깨주는 친구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그와 함께 함으로써 나의 세계를 넓혀 성장할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의 친구라도 소중합니다. 여러분에겐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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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를 할 때마다 매번 진다고요?   

2024. 8.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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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하는 게임은 무엇일까요? 아마 게임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할 듯 싶은데요, 바로 '가위바위보' 게임입니다. 점심 내기를 할 때나 하기 싫은 일을 할 사람을 정할 때 혹은 몇 개 없는 물건을 가져갈 사람을 정할 때 가위바위보 게임만큼 간편하고 즉각적인 것은 없습니다. 몇 초만에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니까요.

가위바위보는 워낙 실생활 밀착형 게임이기에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의 명랑하고 안락한 삶에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상대방보다 늦게 낸다는 속임수 말고 여러분이 이기는 확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재미삼아 '세계 가위바위보 협회'라는 단체가 소개하는 검증된 방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상한 단체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꽤 근사한 홈페이지까지 버젓이 있는 믿을 만한 곳이에요(https://wrpsa.com/). 이들이 권하는 방법을 숙지하고 연습해 보세요. 적어도 손해 보는 경우는 줄어들 겁니다.

 



1. 상대방이 남자이고 초심자일 땐 '보'를 내라.
남자들은 게임에서 이기겠다는 자신의 의지와 힘을 자신도 모르게 표현하기 때문에 첫판에 '바위'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특히 가위바위보에 대해 '전문가'가 아닐 경우에 더 그렇다네요. 그래서 '보'를 내는 것이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

2. 상대방이 전문가일 땐 '가위'를 내라.
만일 상대방이 가위바위보를 잘하는 사람이고 그사람이 나를 초심자로 안다면, 위의 1번 전술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사람은 내가 '바위'를 낼 줄 알고 '보'를 낼 테니, 내쪽에서 그걸 반격하여 '가위'를 내면 상대방을 이기겠죠?

3. 상대방이 연속해서 무엇을 두 번 내는지 살펴라.
만일 상대방이 가위를 연속적으로 낸다면(그래서 나와 두번 비겼다면) 그는 세 번째 판에는 가위를 내지 않고 보나 바위를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 가능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여러분은 다음 판에서는 '보'를 내는 것이 유리합니다.

상대방이...
가위를 연속 두 번 냈을 때 --> '보'를 내라
보를 연속 두 번 냈을 때 --> '바위'를 내라
바위를 연속 두 번 냈을 때 --> '가위'를 내라

자, 아시겠죠?

4. 무엇을 내겠다고 미리 알려라.
예컨데 '이번에 나는 가위를 낼 거야'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무엇을 낼까요? 아마도 그는 '바위'를 내지 않고 '보'를 낼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말을 바꿔 '보'를 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선언한 대로 '가위'를 내면 상대방이 낸 '보'를 이길 수 있죠. 이긴 다음엔 "거 봐, 내가 가위 낸다고 했잖아."라고 덧붙이면 좋겠죠?

5. 잘 모를 땐 '보'를 내라.
사람들의 가위바위보 패턴을 분석해 보니, 가위를 낼 확률이 29.6%라고 합니다. 이론적인 확률치인 33.3%보다 조금 작지만, 그 작은 확률 차이가 상대방의 가위바위보 전술을 모를 땐 매우 유용합니다. 상대방이 '가위'보다는 '보'나 '바위'를 낼 확률이 조금 높기 때문에, 여러분의 최선의 전술은 '보'는 내는 것입니다. 이 확률은 세계가위바위보협회에 근거한 것입니다.

일본의 수학자 미츠이 요시자와가 725명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바위가 35%, 보가 33%, 가위가 31%였다고 해요(합쳐서 100%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반올림 때문인듯).

이보다 많은 전술이 세계가위바위보 협회의 사이트에 있으니 읽어 보기 바랍니다. ( https://wrpsa.com/rock-paper-scissors-strategies/ )

가위바위보 같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하는 게임에도 심리가 의외로 깊숙이 관여합니다. 그래서 게임은 심리 싸움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오늘 점심 내기로 동료들과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 보세요. 위의 전술을 이용한다면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이 내용을 구독자 여러분만 알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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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가 높을수록 칭찬에 인색하다   

2024.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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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사용하면 좀 촌스런 표현이라고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진리인 말이 있습니다. 바로 베스트셀러 제목이기도 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란 말입니다. 칭찬이 리더에게 아주 필요한 스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텐데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에서도 칭찬의 중요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직원들에게 동료의 칭찬할 거리를 생각하게 하면 나중에 동료의 아이디어를 보다 신중하게 고려함으로써 팀의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직원이 칭찬 받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직원을 좀더 친절하게 대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연구도 있죠.

이처럼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많은 이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데요, 왜 여전히 많은 직원들이 칭찬을 ‘고파 하고’ 있을까요?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한 성과를 거뒀는데도 리더가 별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든가,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월급 받으니까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성취감에 찬물을 확 끼얹는 리더들이 제법 많거든요. 어떤 리더는 칭찬을 하기는 하는데 영혼 없이 하는 바람에 오히려 직원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경향이 존재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칭찬하는 법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조직 내에서 권력의 핵심(이너서클)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인데요, 이는 연구로 증명된 경향입니다.

 



연구자는 학술 논문 말미에 통상적으로 담기는 ‘감사의 말(Acknowledgements)’이란 섹션을 분석했는데요, 지위가 높은 저자(즉 정교수)가 지위가 낮은 저자(조교수급)에 비해 감사 표현을 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681명의 위키피디아(Wikipedia) 에디터들이 교환한 136,215개의 코멘트를 분석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키피디아 생태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편집자들이 페이지 편집 권한이 적은 편집자들에 비해 감사 표현을 덜 했으니까요.

실제 실험에서는 어땠을까요? 실험 조작을 통해 자신을 권력이 센 상사라고 여기는 참가자들은 그렇지 못한 참가자들에 비해 감사의 말을 덜 했다고 해요(3.98회 대 7.55회). 게다가 '권력자'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상대적으로 덜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뭔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감사 표현을 덜 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덜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응당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권력자들의 머리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겠다 제안한다면 고맙기는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나는 도움 받거나 혜택을 받아도 되는 위치에 있어.”라는 ‘당연함’이 자리하고 있기에 남들이 열 번 할 칭찬을 대여섯 번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죠. 

또한 권력자들은 이미 타인들과의 관계가 탄탄히 조성돼 있기에 관계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적습니다. 아쉬운 게 없다는 소리죠. 반면 권력이 적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힘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동기가 작용하기에 대여섯 번 칭찬해도 충분할 일에 열 번, 스무 번씩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하죠. 감사할 일이 아닌데도, 또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그리 합니다.

칭찬 문화가 조직에 뿌리를 내리려면 고위 리더가 행동으로서 직접 본을 보여야 합니다. “나는 그래도 돼”라는 마음을 버리고 “저 직원의 입장이 된다면 나는 어떤 칭찬의 말을 듣고 싶을까?”라는 역지사지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직원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연봉을 받아 간다고 해서 그들의 노고와 고투, 분전 끝에 이뤄낸 성과를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퉁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칭찬 잘하는 리더, 그로 인해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고 싶은 리더라면, '난 그래도 돼'라는 계급장부터 떼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Anicich, E. M., Lee, A. J., & Liu, S. (2021). Thanks, but No Thanks: Unpacking the Relationship Between Relative Power and Gratitud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014616722110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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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핑계   

2024. 8.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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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워크맨 같은 작은 오디오 기기를 수리하면서 소위 '당근질'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당근마켓에 저렴하게 나온 '정크 워크맨'을 구입하거나, 수리를 마친 워크맨을 며칠 사용하다가 '충분히 가지고 놀았으니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팔자' 싶어서 매물로 내놓는 일이 많아졌죠. 하루에 열두 번은 당근마켓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당근 매니아가 된 지 8개월 쯤 됐는데, 저에게 워크맨을 사고 싶다고 문의하는 사람들 중에 제가 보기에는 아주 특이한 유형이 있더군요. 바로 '와이프에게 물어보고 구입할게요' 혹은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 유형입니다. 이들은 저에게 DM을 보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구매자: OOO가 판매됐나요?
나: (속으로 '판매 안 됐으니 계속 리스트에 있지!'라고 내뱉으며) 네, 아직 팔리지 않았습니다. 구매 가능합니다.
구매자: (한참 뜸을 들이다) OOOO원만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나: (속으로 '이미 싸게 내놓은 건데 또 깎아 달라니!'라는 짜증이 나지만 짐짓 아닌 척 하며) 죄송하지만, 깎아 드릴 수 없습니다.
구매자: (한참 묵묵부답하다가) 알겠습니다. 원래 가격에 구매하겠습니다.
나: 감사합니다. 입금하시고 주소, 성함,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세요.
구매자: (말없이 한두 시간 후에) 와이프에게 물어봤더니 사지 말라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나: (황당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습니다. ^^

이런 식의 대화가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제가 헤아려 본 것만 벌써 예닐곱 번은 되니 '와이프를 운운하는' 유형의 구매자들이 상당한 퍼센테이지로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와이프한테 물어보니까 사지 말라고 합니다'라는 말이 그저 핑계가 아니라 참말일까요? 참말이라고 가정하자면 저는 왠지모르게 슬퍼지더군요. 워크맨 하나 구입하는 데 O만원도 마음대로 지출하지 못하다니요! 어디 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한다 해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텐데, 혹은 가족끼리 가볍게 외식을 하더라도 O만원 쯤은 우습게 넘는 게 요즘 물가인데, 어쩌다 큰 맘 먹고 워크맨을 구입하려는 욕구를 저지 당하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구매자들의 와이프들께서 '워크맨 같은 것에 O만원을 지출하는 건 아깝다. 유튜브로 음악 들으면 되잖아! 그 돈이면 씨...'라고 일갈하고픈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애같은 남편이 유치한 취미 생활에 정신 못차리는 것 같아 혼구녕을 내고 싶고, 한번 물꼬를 터주면 한없이 깊은 '개미지옥'에 빠져 버릴 것 같아 처음부터 철저히 단속하고 싶은 것이겠죠.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래도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구매자의 글을 보노라면 심연의 바다에 돌멩이 하나 가라앉는 듯한 슬픔이 아려옵니다. 무슨 마약에 손을 대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발을 담그지 말라니요! 남자들을 두둔한다고 욕하지는 마세요. 와이프들로부터 '남편이 사지 말래요'라는 듣는다 해도 저는 똑같은 슬픔에 사로잡혔을 테니까요.

하지만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말은 거짓말일 때가 더 많다는 게 제 짐작입니다. 사고 싶은 마음이 급해서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화장실에 가서 속을 비우고 나와서는 '그걸 산다고 내가 음악을 얼마나 더 듣겠나' 싶어서 구매 욕구가 싹 사라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 더 좋은 물건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구매욕이 싹 옮겨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궁금합니다.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말이 왜 좋은 핑계가 된 걸까요? '죄송하지만 구매 의사를 철회하겠습니다.'라고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애먼 와이프를 운운하며 빠져 나가려 하는 걸까요? 와이프는 '사라 마라'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와이프 핑계를 대면 상대방이 '네네, 그렇군요.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라고 바로 납득할 것 같은가 보죠?

제 물건을 안 산다고 해서 화를 내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안 산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살 테고 안 팔린다 해도 경제적으로 제가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에게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저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란 핑계가 잦다는 게 흥미로울 뿐입니다. 유년시절에 '엄마가 하지 말랬어'라는 누구도 토달 수 없는 변명이 어른이 되어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훌륭한 핑계로 옮겨 간 것인지 모르겠어요. 

이유야 어떻든,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말로 둘러대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입니다. 남에게 '나는 악덕 와이프와 산다'라고 폭로하는 거나 마찬가지임을 아셔야죠. 설령 진짜로 와이프가 못 사게 했더라도 말입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저에게 실상을 고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최근에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와이프한테 다시 말했더니 사라고 합니다. 계좌번호 알려 주세요." 그 분이 와이프를 설득하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짐작해 보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 오더군요. '와이프가 사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며 신이 났을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라도 깎아 드려야 하나 싶었답니다. 하지만 저는 구매할까 말까의 상황에서 '와이프 운운'하는 분들께는 얄쨜없답니다. '와이프 핑계'라는 밈(meme)을 멸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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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권력자의 버르장머리   

2024. 8.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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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권력자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자신만만해 하는데요, 그러다 무리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조직 전체를 그르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어느 심리 실험에서 권력자로 스스로를 인식한 참가자가 주사위 게임에 임했는데, 본인이 주사위를 던질 수도 있었고 타인이 대신 던져줄 수도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타인에게 주사위를 던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권한을 넘겨주는 행위라 여겼기 때문인지 대부분은 본인이 주사위를 던지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반면 지배를 받는 쪽으로 인식된 참가자들은 타인에게 주사위 던질 권리를 더 많이 넘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주사위는 자신이 던지든 남이 던지든 차이가 없습니다. 무작위적이니까요. 내가 던져 나쁜 숫자가 나올 수도, 남이 던져 좋은 숫자가 나올 수도 있죠. 내가 던진다고 해서 무작위성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자신이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니, 이 얼마나 큰 만용일까요! 그저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후에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걸까요?

권력욕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권력자가 기본적으로 훌륭한 성품과 긍정적인 권력욕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그가 어떤 과정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에 도달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좋은 권력욕을 지닌 리더는 주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결정이 잘못됐을 때는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죠.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집니다. 이런 권력자들은 조직, 사회, 공동체, 인류의 거시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는 변화를 우선하는데, 상당히 희소한 존재들이기에 만약 이들이 눈에 띄면 어떻게든 조직에 붙들어 두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고요.

반면 나쁜 권력자는 본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쪽으로 강하게 편향되어 있기에 이 세상을 ‘내가 이기면 상대방은 지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합니다. 이게 그들의 사고방식이자 고질적인 버르장머리입니다. 여러분의 팀, 사업부, 회사 전체를 이끄는 리더는 과연 어느 쪽인지 곰곰이 따져 보세요.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조직이 나쁜 권력자를 ‘모시고’ 있으면 각종 사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데요, ‘밑의 사람들’의 역량이 특별히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입을 닫는’ 선택을 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한 사건은 어떻게 볼 때 그 원인이 아주 사소했습니다. 원자로의 상황을 윗사람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지만, 실무자는 야단 맞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입을 닫아 버리고 윗사람의 심기만을 살폈죠. 고작 그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낳고 말았습니다.

힘을 가진 자는 이런 ‘침묵’이 무엇에서 기인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침묵의 원인이기 때문이죠. 밑의 사람들을 그리 만든 건 바로 본인입니다. 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는지, 사고의 뒷수습을 왜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구성원들을 강하게 질타하거나 처벌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강압적이고 이기적인 권력욕이 낳은 비극임을 먼저 반성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죠. 그리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인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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