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게 피드백하지 마라. '조언'하라   

2022. 9. 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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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기업들이 '평가'의 폐해를 절감하고 이를 대신할 방법으로 '피드백' 방식을 채택 중이거나 앞으로 대체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다. 평가의 본래 목적이 구성원의 역량 개발과 동기부여, 이를 통한 조직성과의 창출인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정형 평가'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성원의 동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왔다.

나는 그동안 사정형 평가의 문제점과 피드백의 중요성을 설명해 왔기에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다. 다만, 기존 평가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로 '활발한 피드백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또 당초에 바라던 효과(구성원의 역량개발 등)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리더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일종의 '평가' 개념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가를 없애는 대신에 피드백을 강화하겠다고(혹은 새로 도입하겠다고) 하면, 구성원들은 '아, 이제 피드백 방식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는 것이구나'라고 인식하기 십상인데, 그렇게 되면 큰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왜 그럴까? 하버드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인 윤재원(Jaewon Yoon)은 피드백이 평가의 개념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면, 개선해야 할 영역,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제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본래 피드백은 상대방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며, 장점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단점을 또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행위인데, ‘피드백하라'는 말은 그런 행위를 오히려 소극적으로 만들고 상대방을 '평면적'으로 평가만 하려고 한다고 윤재원은 지적한다. 

 



그는 피드백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토록 하려면 피드백이라는 말보다는 '상대방에게 조언(advise)하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윤재원은 20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교사직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쓴 가상의 지원서를 읽고서 지원서 내용에 대해 '피드백해 달라' 혹은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피드백을 요청 받은 그룹보다 조언을 요청 받은 그룹이 가상의 지원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제안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피드백 요청 그룹은 "이 사람은 지원조건을 아주 충족시키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 경험이 있고, 가르치는 스킬을 적절하게 갖추었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코멘트를 쓴 반면, 조언 요청 그룹은 지원서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지원서를 보완할지를 상세하게 코멘트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조언 요청 그룹은 피드백 요청 그룹보다 '개선 영역'을 34퍼센트 많게 코멘트하고 '개선 방법'을 56퍼센트 많게 제안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윤재원은 194명의 정규직 직원들에게 동료의 최근 업무성과에 대해 '피드백' 혹은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실험을 해보니 피드백을 요청 받은 직원들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실천가능하지 못한 코멘트를 많이 제시했다. 이를테면 "업무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이 아주 좋은 성과를 냈다"는 식이었다.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칭찬이라서 기분은 좋겠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피드백해 달라'는 말과 '조언해 달라'는 말이 이렇게 의외의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피드백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의 '과거 상황과 과거의 성과'를 떠올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피드백을 상대방의 성과를 '심사(judge)'하는 행위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피드백이란 말이 미래지향적 코멘트를 덜하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 조언해 달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할 준비를 하게 된다. 심사하기보다는 '기회'를 더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넛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피드백하기보다 조언하는 게 낫다고 해서 평가를 대체하는 공식적 제도로 피드백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피드백이라는 말을 쓰되 그것이 과거의 성과를 평가하거나 심사하는 것이 아님을 구성원들에게 잘 인식시키면 된다. '직원들의 성과를 피드백하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말고 '직원의 개선점, 발전 가능성을 피드백하라'고 말하면 '직원에게 조언하라'고 말할 때와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윤재원이 실시한 후속실험에서 나온 결과인데, 가상의 지원자가 쓴 지원서를 이번에는 "개선점에 초점을 맞춰 피드백해 달라"고 요청하자 조언을 요청할 때와 거의 동일한 효과가 나왔다. 

예전에 나는 모 기업에 피드백을 중심으로 기존의 평가제도를 대체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피드백이란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뜻이 연상됩니다."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그는 피드백이 '상대방이 했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답했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드백할 것이 있다면 내용과 상관없이 일단 기분부터 나빠진다고도 고백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니 그사람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피드백'이라는 단어를 양식에 표기하지 않고 대신에 '개선해야 할 점', '개선을 위한 나의 제안'이라는 두 개의 기입란을 남기도록 조정했다. 그렇게 하니까  보다 건설적인 조언이 제시되는 효과를 경험했다.
 
평가를 피드백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드백은 절대 만능이 아닐뿐더러 어떨 때는 오히려 직원의 동기를 꺾어 놓기도 한다. 그렇기에 리더들에게 '직원들의 성과를 피드백하라'는 점을 강조할 때는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피드백해야 하는지를 가이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피드백은 과거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조언이어야 함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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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직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2022. 9. 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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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MZ 세대, 그러니까 요즘 젊은 직원들이 조직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해 보고자 한다. 그 직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파악해야 그들을 어떻게 우리 사람으로 끌어들이고, 조직에 오래 남아 있게 만들고, 그들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이트릭스라고 하는 회사에서 젊은 직원들, 즉 미래의 직원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000명의 직원들, 그리고 500명의 인사 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미국 기업에 다니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라서 우리나라의 경우가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거시적인 면에서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이트릭스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간단하게 소개할 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설문 조사 결과, 미래의 직원들은 조직에게 가장 많이 기대하는 것은 ‘보다 유연한 근무 환경'이었다. 직원들 중 88퍼센트는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공간적 제약 없이 일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88퍼센트라면 상당히 압도적인 비율이다. 반면에 인사 담당자들은 67퍼센트만이 이 말에 동의했다. 직원들과 인사 담당 임원 사이에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원들은 꼭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코로나로 원격근무가 일상화되었고 사무실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중에는 굳이 서울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확산되지 않을까란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두 번째로 미래의 직원들이 조직에 가장 바라는 것은 ‘생산성을 측정하는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까 언급했듯이,  반드시 사무실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커졌기에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성과를 내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측정하는 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창출한 가치에 따라서 평가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86%의 직원들은 회사가 아웃풋보다는 아웃컴에 우선순위를 두기를 원하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어떤 뜻인지 알려면 아웃풋과 아웃컴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아웃풋은 업무로 인해 창출되는 결과물을 의미한다. 가장 단적인 예는 매출액이다. 반면 아웃컴은 업무로 인해 창출되는 고객가치를 뜻한다. 내가 열심히 만든 제품을 고객이 사용해서 편의와 행복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아웃컴이다. 사이트릭스의 설문조사로 우리는 미래의 직원들이 
단순한 아웃풋이 아니라 아웃컴으로 평가 받기를 원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사 담당 임원들 중 절반 정도만이 직원들의 요구와 바람을 잘 알고 있고
조직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역시나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설문 조사 결과를 우리 조직에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사이트릭스의 수석 부사장인 팀 미나한은 ‘나무를 통해 숲을 보라’고 조언한다.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조직의 창의성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인력을  좀더 넓은 범위에서 뽑으라고 말한다. 원격근무가 확대되면 꼭 로컬 인력을 뽑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학습과 인재 육성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팀 미나한은 말한다.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 ‘업스킬링’, 새로운 스킬을 가르치는 ‘리스킬링’이 코로나로 인해 바뀌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이 우수인재를 끌어들이고 유지하는 방법으로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가 직원들이 일을 보는 시각과 일에 접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길 원한다면 미래의 인력이 조직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직원들은 유연한 근무 환경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바란다. 단순한 아웃풋보다, 고객과 사회에 미치는 결과, 즉 아웃컴으로 자신들의 성과가 평가받길 원한다. 이러한 젊은 직원들의 시각에서 조직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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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 스매싱 몇 대 맞고 취향을 살려라   

2022. 9. 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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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주간 유정식' 88호 경영수필에 실린 글입니다.

* '주간 유정식'을 정기구독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중고등학생 때, 내가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어른들이 지나가며 이렇게 한 소리씩 하곤 했다.
“너는 애늙은이도 아니고, 이런 음악을 듣냐? 젊은 애들 노래 안 듣고.”
그때 내가 들었던 음악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소방차, 전영록, 박남정, 김범룡, 이지연 등의 노래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타계한 조동진의 음악이었다.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른들이 왜 내게 애늙은이 같다고 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겨울비’, ‘나뭇잎 사이로’, ‘차나 한잔 마시지’ 같은 그의 노래 어디에도 빠른 비트나 복잡한 악기 구성은 찾아볼 수 없다. 담백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 읊조리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심박수가 줄어드는 듯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다. 간혹 감상이 지나쳐 멜랑꼴리해지기도 했는데, 나는 그렇게 인위적으로 형성된 우울감을 꽤 즐겼다. 가사 속의 남자라면 나는 어떤 기분일지, 그 남자가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빛으로 가득할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가 맞는 겨울비의 촉감은 어떨지, 어두운 벌판을 달리다 한가운데 우뚝서서 올려다 본 하늘엔 별이 가득하겠지 등을 상상하는 시간은 내게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이렇게 해소했다.

그렇다고 유행하는 노래를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워낙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통에 안 들을 수가 없었고 제목이나 멜로디 정도는 들으면 아는 수준이었다. 친구들은 왜 이런 음악을 좋아할까 의아해 하며 일부러 찾아 들어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왜 이리 빠르고 복잡한 음악을 즐길까? 속 시끄럽게시리…’라며 카세트 데크를 끄곤 했다. 반 친구들이 쉬는시간마다 그 시절의 ‘인싸템’인 ‘마이마이’나 ‘요요’, ‘아하’ 따위의 포터블 카세틏ㄱ를 꺼내들고 흥얼거리다가 내게 한번 들어보라고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꽂으면 그때마다 싫은 티를 팍팍냈다. “야, 너나 들어!”라고. 나는 인싸템 없는 아싸였다.

고등학교 시절, 곱상하게 생겨 가지고 내 뒷자리에 앉아 매일 유행가를 흥얼거리던 녀석이 있었는데, 노래를 곧잘 하는 편이구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내 취향이 아닌 노래를 연신 부르니 자습에 방해가 되었다. 뒤를 홱 돌아보며 “야, 노래 좀 그만해!”라고 소리를 지르면, 녀석은 용용 죽겠지, 하는 입술로 ‘어디 한번 내 입을 막아보시지.’라며 그 잘난 노래를 이어가곤 했다. 군대를 제대할 쯤 보니까 그 녀석은 듀엣 ‘녹색지대’의 멤버가 되어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게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노래를 불러대더니 그 재능을 살리는구나, 싶었다. 지금은 미사리 어느 카페의 단골 초대가수가 된 것 같아 좀 안쓰럽지만.

 

조동진 님. 돌아가시기 6개월 전쯤, 음식점에서 우연히 뵙고, 앨범에 사인을 받았답니다.


템포가 느리고 멜로디가 단순하며 악기 구성이 단촐하고 서정적인 노래를 좋아하는 취향은 사회인이 되어서도 이어졌고, ‘조동진 류’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당시엔 인디 가수를 이렇게 불렀다)들의 노래에 심취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하지 않으려는 반골 기질도 한몫했지 싶다. 서태지, R.E.F, 핑클, S.E.S 같은 댄스가수들의 비트 빠른 음악은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니었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나온다 싶으면 다이얼을 돌리곤 했다. 마치 못들어줄 소음을 들었다는 듯.

그러던 내가 요즘엔 비트가 강하고 빠르며 휘몰아치는 듯 질러대는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듣고 있으니 나조차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약 클레어 로진크란츠(Claire Rosinkranz), 두아 리파(Dua Lipa), 베니(BENEE),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lish), 멘 아이 트러스트(Men I Trust) 등의 노래를 즐겨 듣는 나를 누군가가 목격한다면, 내가 청소년 시기를 조동진 노래와 함께 했음을 상상조차 못하지 싶다. 물론 내 음악적 성향의 주류는 여전히 조동진 쪽에 가깝지만, 예전보다는 클레어 로진크란츠 쪽으로 무척이나 ‘우경화’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따져보니, 제대로 된 오디오 시스템을 구비하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전에는 아이폰에 번들로 딸려온 이어폰을 노트북PC에 꽂아 듣거나 조악한 소형 스피커로 백그라운드 뮤직을 틀어놓는 게 전부였다. 최고급 하이파이는 아니지만 새 오디오가 들려주는 소리는 나에게 신세계였다. 10년 묵은 귓밥을 말끔히 파낸 느낌이라고 할까?

싸구려 스피커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악기의 디테일이 느껴졌고, 예전에는 꽝꽝 찌그러지는 듯한 소리로만 들리던 드럼킥은 쩍쩍하는 소리로 찰지게 들리는 게 아닌가! 가수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지만 귀를 엄청 피곤하게 하는 소위 ‘치찰음’은 새 오디오와 새 헤드폰에서는 부드럽기만 했다. 악기 편성이 많은 음악은 안 좋은 기계로는 뭉치고 떡진 소리를 내지만, 나의 하이파이 시스템에서는 4K 영상을 보듯 해상도와 악기 분리도가 뛰어나서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게 재미있어서 템포 빠르고 다이내믹이 강하며 폭발적인 노래를 즐기게 됐던 것이다. 그렇다. 도구가 좋아졌기에 그랬던 것이다.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이 거실에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멋지게 장식해 놓을 만큼 좀 사는 집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여느 청소년처럼 박남정이나 소방차의 노래를 즐겼을까? 음악 취향이 우경화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을 가능성이 높았지 싶다. 어쩌면 내가 조동진 류의 노래에 심취했던 것은 기질탓이 크지만 집에 있는 음악 청취 도구라고는 모노 카세트 레코더 하나 밖에 없었던 형편도 한몫했으리라. 그마저도 안테나가 떨어져 나가 주파수를 맞추려면 안테나 있던 자리에 옹색하게 스테플러를 세워 놓아야 했다. 식구들이 자는 시간이면, 스테레오는 언감생심, 한쪽 밖에 없는 산업용 이어폰으로 들어야 했던 ‘모노 청소년’이었다.

 


취향에도 범위가 있고 지평이 있다. 그리고 그 범위와 지평은 상당 부분 취향 즐기기를 돕는 도구가 좌우한다. 도구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스펙으로 취향의 경계가 결정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도구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거나 아예 차별적인 것으로 바꾸면 현재의 취향 한계선이 풀리고 취향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 내가 이 나이가 되어 조동진 족의 땅에서 클레어 로진크란츠 족의 땅으로 취향의 경계선을 넓혔듯이 말이다.

충실한 도구가 당신의 취향을 충실하게 만든다. 때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는 법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싼 도구를 사들이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기를 바란다. 싸구려 도구로 본인의 훌륭한 취향을 옥죄지 말라는 뜻이다. 어떤 취향이든 해당 카테고리에서 싸구려에 속한 도구로 만족하고 있다면 다른 데 쓸 돈을 끌어오더라도 미들급 도구까지는 접근해 보는 건 어떨까? 그 후에는 각자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기억하라. 당신의 취향에는 그렇게 해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런 의미로, 장바구니에 새 오디오를 담아본다. 내 취향에 신선한 물과 비료를 줄 때가 다시 돌아왔으니까. 허락보다 용서가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등짝 스매싱 몇 대 맞고 당신의 취향을 살려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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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시간을 치열하게 인내하는 법   

2022. 3.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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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주간 유정식' 70호 경영수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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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이후 국민의 절반은 자신의 투표권에 효능감을 경험하며 새 정부에 나름의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머지 절반은 깊은 실의에 빠져 있으리라. 생각 같아서는 확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하다못해 훌쩍 해외여행이라도 떠나면 좋겠지만 아직 코로나 시국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터라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그것’만 떠올리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길을 걷다가도 “저 무리의 절반은 나와 생각이 완전히 반대이겠구나.”란 생각에 공포스러웠다고 말하거나, 음식점 옆자리에서 보란 듯이 축하 건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그곳을 바로 빠져나와야 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이 글이 나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글이라 조심스러운 마음이지만, 그리고 나 또한 그 절반의 일원이라서 반대 의견을 지닌 구독자분들의 오해를 살까 두렵긴 하지만, 일종의 자기치유의 방도랄까? 현재 집단우울증의 증상을 겪는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에게 앞으로 5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실 나라고 해서 방법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인생의 구루로부터 답을 절실히 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찾아 봤다. 기억하겠지만, 2016년 말에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때에 절반이 넘는 많은 미국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모양이다. 

구글에서 ‘How to survive in trump’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상당히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글도 있고 여러 정치 블로거들이 분노를 담아 휘갈려 쓴 듯한 글도 있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심했던지 아마존에 절망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조언을 담은 <트럼프 세상에서 살아남기(Trump Survival Guide)>란 책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나는 요 며칠 동안 그 글들을 꼼꼼히 읽으며 우리 상황에 맞는 ‘내가 뽑지 않은 대통령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머리 속으로 정리했다. 어떤 조언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 의미가 적었고, 또 어떤 조언은 가열찬 반격을 주장하는 것이라서 몸을 추스를 힘도 없는 지금의 상태에선 무리가 있었다. “이민이나 가버려야겠다.”라든지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져야겠다.”라는 생각도 나름의 방책이겠지만, 5년은 긴 시간이다. 좌절하거나 도피하기엔 아까운 시간이고,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절망 혹은 분노의 에너지를 ‘우리 개인의 생산적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에 집중하기로 했고, 여기에 나만의 생각을 몇 가지 끄적거려 본다.

축적의 로드맵을 그려라
5년 후가 되면 자신에게 ‘작품’ 하나가 남을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일 먼저 조언한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5년의 시간을 축적에 매진할 절호의 기회로 설정하면 어떨까? 그게 자기 인생 최초의 책이 됐든 아니면 기술이나 자격증이 됐든, 지금까지 막연히 생각만 했거나 기대를 했던 것을 성취해 낼 시간으로 사용하기에 5년은 아주 넉넉하다. 내가 ‘축적’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한번에 큰 걸음을 내딛으려 하기보다는 조금씩 해나가야 의지력을 유지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2026년 말까지의 달력을 쭉 펼쳐 놓고 본인이 축적해 내고자 하는 것을 어떤 단계로 성취해 갈 것인지 ‘큰 그림’을 그려보라.

예를 들어 책을 쓰고 싶다면 이렇게 로드맵을 정하면 어떨까? 5년 중 2년은 해당 주제에 대한 공부와 자료 찾기에 매진하고, 3년차엔 책 전체의 구성에 집중하며, 나머지 2년은 본격적으로 책을 쓰고 완성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며칠 밤을 새워 일필휘지로 쓰기보다는 일주일 중에 특정 시간대를 정해서 “이 시간은 온전히 책을 쓰는 데 사용한다”고 다짐하기 바란다. 한번에 2~3페이지만 쓰기로 한다면 2년 후에는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축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시간을 늘려라
개인적으로 요 며칠 유튜브를 절독하고 뉴스를 끊었다. SNS에 글을 올리긴 하지만 뉴스피드를 보지 않고 내 ‘담벼락’만 본다. 그랬더니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여유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매일 1시간씩 음악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고 그간 지지리도 읽히지 않았던 종이책의 글밥도 눈에 들어온다. 글 한 편을 한두 시간만에 뚝딱 써내는 기적같은 생산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온라인에 푹 빠져 살았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소모적이었고 비생산적이었는지 새삼 느끼는 중이다. 지금의 이 상황이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했다 싶다.

지금은 온라인의 즉시적이고 단편적이며 심도 낮은 정보를 멀리하고 누군가가 오랜 시간을 축적해 낸 깊이 있는 지혜에 탐닉할 절호의 기회다. 예전에는 불가촉천만처럼 취급했던 진지하고 두꺼운 고전을 사서 읽어라. 어려울수록 좋다. 언제 어려운 글을 읽을 기회가 있겠는가? 수행하듯 읽고 또 읽어라.

책읽기가 버겁다면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남는 시간에 술이나 마시고 잠이나 자는, ‘무취미’의 삶은 옆에서 보기에 안쓰럽기 그지없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취미여야 하고 행복감을 고양하는 취미여야 한다.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취미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나는 5년 동안 목공을 취미로 해 볼 생각이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나면 시작해 보려 한다. 5년 후에 작은 스툴이나 테이블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는 능력치에 도달하면 좋겠다 싶다. 

 


지지하는 단체를 후원하라
정치적 무관심의 기류를 사회 전체적으로 조성한다는 것, 이게 바로 절망과 체념이 무서운 까닭이다. 염증의 대상은 정치가들이지 정치 그 자체가 아니다. 또한 선거가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헌신하는 단체나 정당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일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 참여다. 긍정적인 의미로 정부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며 저항하는 일이다. 밖에서 욕만 하지 않고 지지하는 정당의 당원이 되어 실질적 압력을 가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다.

꼭 그런 단체에 직접 참여해 활동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으면 동물보호단체에, 경제민주화를 신념으로 삼는다면 그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단체에 자신이 최선을 다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게 ‘소리없는 기부’일 수도 있고, 찬성 의사를 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좀더 적극적이라면 평화적인 ‘온/오프라인’ 시위에 가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고독해지는 법을 배워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외롭게 지내라는 소리는 아니니까. 어른이 됐다는 것은 스스로 경제적,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고독을 즐길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통 사춘기를 지나며 부모와의 분리 불안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지만, 나이를 충분히 먹고서도 주변인들과의 정신적 분리에는 익숙하지 못한 이들이 생각 외로 많다. 늘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누군가의 도움을 갈망하고,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타인의 결정에 삶을 맡기는 이들. 고독할 줄 모르는 삶은 불행하다. 

고독이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에 잠시멈춤을 누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삶을 ‘철학하며’ 5년을 보내자. 정치공학적인 난삽한 가십과 덜떨어진 유사 담론에 취하지 말고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온전히 자신을 사색하자. 사색(思索)은 ‘깊이 생각하며 무언가를 찾는다’는 뜻이다. 고독해야 사색할 수 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을 이렇게 ‘멍 때리며’ 사색하는 시간으로 보내려 한다. 5년이니까 앞으로 500시간 가량을 사색하는 데 쓸 수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큰 위안이 된다.

5년 후면 나는 50대 후반이 된다. 치열하게 인내하며 살련다. 이 아까운 시간을 절망하는 데, 그들 욕하는 데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쓴 글이니, 나와 반대를 찍으신 분들은 노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조(自助)의 몸부림이라고 여기는 아량을 베풀어주기 바란다.  (끝)

 

* 이 글은 '주간 유정식' 70호 경영수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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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 유정식 저자   

2021. 11. 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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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팀창클럽에서 제 책을 주제로 진행하는 북토크 안내문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 

<착각하는 CEO>, <문제해결사>, <나의 첫 경영어 수업> 등의 HR/경영 관련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컨설턴트인 유정식 저자님을 모셨습니다.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 (infuture.kr)

근간 <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에는 가볍지만 가벼울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의 삶의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회사생활과 연결이 됩니다. 인사 전문가시니 만큼 리더십이나 인사 제도, 조직 문화 등에 대해서도 좋은 답을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일시 : 11월 29일(월) 20시, Zoom

​***

모집기간 => 11월 2일(화) ~ 28일(토)

신청방법 => 링크 누르고 신청서 작성

신청자격 => 팀장클럽 Lv.1 이상 (참여 행사 2회 이상 노쇼 회원은 제외, 노쇼는 슬픕니다)

접속방식 => 신청서에 적어주신 휴대폰 번화와 메일 주소로 당일 줌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기타 => 북 토크 참여해주신 분 중 다섯 분께 도서를 증정합니다 (인원 변경 가능)

***

https://youtu.be/0fN0HBju208

 

처음에는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만나지 말아야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곧 나아지겠지, 애써 불안을 감추며 놀기에 전념했지만, 역대급으로 낮은 한 달 소득을 손에 쥐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글쓰기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글을 썼다. 영업을 하거나 사업을 전환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나는 글을 썼다.

이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글쓰기가 궁극적인 ‘내 일’임을. 그리고 그걸 내 무의식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왜 글을 씁니까?”라고 물으면 이제 나는 답하리라. “내 일이니까요.”라고.

1 일이 끊겨서 TV를 봅니다

낙관주의가 사람 잡는다

취임식에서 직원을 해고한 리더

헤어짐을 통보하는 자의 예의

록펠러를 이긴 흑인 여성 CEO

우리집 개가 당신보다 잘할 것 같네요!

고스톱 치다가 멱살잡지 않으려면

고질라가 쳐들어와도 회의만 하렵니까?

어쨌든 대통령을 구했으니 잘한 걸까?

일이 끊기니 주차운이라도 있어야지

나는 놈 위에 꼼수 쓰는 놈

물건 정리와 워크 다이어트

스파르타쿠스는 왜 로마로 가지 않았나?

한낱 중위가 장군에게 대든 이유

사공이 많아서 얼어죽은 군인들

2 코로나 덕에 이런 글도 씁니다

난생 처음 줌을 해봤습니다만...

일이 끊겨서 주식 투자를 했습니다만...

일이 끊겨서 출판사를 냈습니다만...

코로나 시대에 좋은 취미란?

재택근무 선배가 알려 드립니다, 에헴!

3 일이 끊겨서 까칠해졌습니다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유감

전문가라면 욕먹을 각오도 좀 하라

MBTI가 신빙성이 없다굽쇼?

리더가 너무 잘나도 곤란하다

연희동이 안드로메다입니까!

설민석 비판을 비판한다

정말 사람 뽑을 계획이 있는 거요?

내가 이소라에게 실망한 이유

오래 소장한다면서 금세 팔다니요!

기상청은 구라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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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를 줘야만 속이 후련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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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 삶의 방식과 관점입니다만...

싸고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

적성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걸레질만 봐도 일 잘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을 믿지 말고 돈을 믿어라

공간이라는 무서운 존재

나는 새해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섣불리 조언하고 충고하지 않는다

태도가 전부다

오늘 할일을 오늘 끝내는 법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고 일하는 법

나는 이렇게 허슬했다

글 쓰기 싫을 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맺음말. 일이 끊겨서 책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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