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접착제)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2024. 3.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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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는 워크맨, 데크와 소형 음향기기 수리를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열 번을 고치면 6~7번 가량은 스스로 어깨를 으쓱할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워낙 제 수리 실력이 근본 없이 여기저기에서 주어 들은 것으로 이뤄졌기에 도중에 중단하거나 아예 망가뜨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학습의 왕도라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아주 뼈아픈 실수로 새삼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겠습니다.

 

Braun이라는 브랜드를 말하면 대부분 면도기를 떠올리지만, 한때는 오디오 업계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네임 밸류가 있던 기업입니다. 특히 유명 산업 디자이너인 디터 람스의 디자인으로 알려진 곳이죠. 과거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디터 람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것을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저는 Braun의 앰프와 카세트 데크, 라디오 등을 가지고 있는데, 저에게 마음대로 쓸 돈이 충분하다면 집 안 가득콜렉팅하고 싶을 만큼 수집욕을 자극하는 브랜드입니다.

 

워낙 오래된 제품(50년대 ~70년대)이라 여기저기에 병을 달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날 무슨 ‘만용’이 솟구쳤는지 선반 위에 놓인 앰프를 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앰프는 나름 괜찮은 소리를 내주었는데 차츰 좌우 볼륨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오른쪽에서 소리가 나긴 하는데, 왼쪽에 비하면 음량이 50%도 안 됐습니다. 게다가 이 앰프에는 입력 소스를 선택하는 버튼이 제대로 눌러지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눌린 채로 고정되지 않고 다시 빠져나오는 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아주 살살 누르면서 속으로 ‘제발 고정돼 다오’라고 간절한 마음을 실어야 겨우 고정됐습니다.

 

그간 워크맨 같은 소형 기기만을 고치다가 무게가 20kg가 넘는 앰프를 분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크기가 커서 각 부품의 위치와 상태가 눈에 잘 띄였습니다.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는 이유는 고정에 쓰이는 스프링과 걸쇠 등에 먼지와 기름때가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죠. 먼지라도 닦아야겠다고 했다가 우연히 발견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알콜을 열심히 뿌려가며 깨끗이 닦아내니 눌러도 잘 고정되지 않았던 버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잘 고정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정말 ‘나는 천재로구나!’라고 자찬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때 저는 앰프의 뚜껑을 닫아야 했습니다. 눈에 무엇이 씌였는지 ‘왜 이 버튼 캡에는 유격이 있지? 캡과 버튼 사이에 유격이 없도록 하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뭔가 느슨해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죠. 저는 순간접착제를 써서 약간씩 흔들리는 버튼 캡을 고정시켜 버렸습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됐는데도!

 

순간접착제가 다 굳은 걸 확인하고 앰프 뚜껑을 닫아 전원을 연결하니,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겁니다. ‘왜 이러지? 손보기 전에도 소리는 나왔는데? 소리 출력 쪽은 만진 적도 없는데?’ 그때 쾅~하고 뇌리에 뭔가가 내리꽂혔습니다. ‘버튼 캡의 유격에 의미가 있는 것이구나!’ 그건 유격이 아니라 어떤 버튼이 선택됐는지, 선택되지 않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한 ‘공간’이었던 겁니다. 옛날 기기들이 디지털 기기가 아니라 아날로그 기기임을 망각한 탓이었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저는 순간접착제로 굳어버린 버튼 캡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워낙 단단하게 붙어서 전혀 떨어지지 않았죠. 칼을 사용해도, 바늘을 써도, 아세톤을 뿌려봐도 한번 붙어버린 버튼 캡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 나는 천치로구나!’ 저는 제 머리를 여러 번 쥐어박으며 자학했습니다. (구하려면 구할 수는 있지만) 아끼는 앰프를 망가뜨리고 말았다는 감정은 좌절에 가까웠죠. 저는 결국 버튼의 캡을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강력하게 붙어있는 탓에 니퍼와 ‘뻰치’를 써서 뽀개는 방법밖에는 없었죠. 디터 람스 옹에게 뭔가 죄를 짓는 듯한 심정으로 버튼 캡을 뜯어내는 제거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앰프는 손보기 전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버튼 캡들이 다 빠져버려 앙상해진 앰프의 소리는 왠지 처량했습니다. 

 

순간접착제를 한번 쓰면 직전의 상태로 되돌리기기 어렵습니다. 직전 상태로 되돌리려면 무언가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죠. 저는 순간접착제를 바르기 전에 이렇게 질문했어야 했습니다. ‘이걸 발라서 붙이면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데 그래도 괜찮은가?’라고. 이 질문의 답은 ‘아니오’가 분명했지만, 멍청하게도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결정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순간접착제로 붙이기와 같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있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이 있죠. 두 결정 중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이냐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버튼 캡의 유격을 순간접착제로 붙이자는 결정(되돌릴 수 없는 결정)은 그 유격의 용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해서는 안 될 나쁜 결정’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순간접착제를 쓰는 건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야.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은 없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면, 순간접착제가 아니라 쉽게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테이프로 버튼 캡을 고정시켜 보자고 결정했을 겁니다. 그렇게 하고나서 앰프 소리가 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면 ‘아, 이 유격은 없애면 안 되는 것이구나’라고 깨달으며 테이프를 제거했을 테죠.

 

되돌릴 수 있는 결정과 되돌릴 수 없는 결정, 무엇이 더 나은 결정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을 되돌릴 수 없는 결정보다 자주 해야겠다는 게 뼈아픈 실패로부터 얻은 메시지입니다. 조직 운영을 하며 전략이나 내부 제도 등을 결정할 때, 개인이 자기 삶에 중요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이 결정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아닌지, 혹시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이 존재하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그 결정의 파급효과가 크다면 꼭 그래야 합니다. 옛 금성사의 광고카피처럼, 순간(접착제)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니까요!  (끝)

 

P.S. 저는 요즘 그 캡을 구하려고 이베이를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의 후유증이 참 크네요, (3D 프린팅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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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이 나온다구요? 그래서요?   

2024. 3.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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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헤드폰과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겨 듣기에 그와 관련한 인터넷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해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른 회원들이 쓴 글에서 좋은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활동 중이죠. 그래서 그곳 회원들에게 저는 약간 ‘네임드’ 회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금주의 인기멤버로 서너 번 선정되기도 했고요.

 

최신 음향기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긴 하지만, 워크맨이나 스피커, 앰프처럼 제가 가진 몇 안 되는 빈티지 음향 기기를 자랑삼아(“전 이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올리곤 합니다. 달리는 댓글 대부분은 ‘예쁘다, 멋있다’는 반응이지만, 가끔 신경을 거슬리는 댓글이 올라옵니다. 댓글을 단 사람은 악의없이 장난으로 올렸겠지만 그 내용은 묘하게 제 기분을 뒤틀어 놓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것을 좋아하시니(가지고 계시니) 연식이 딱 보이는 걸요?”와 같은 댓글입니다. 풀어 말하면, “이런 것을 가지고 있으니 나이가 많이 먹었겠다.”라는 뜻입니다. 글에서 제가 어렸을 때 사용했던 기기라고 소개했으니 계산해 보면 제가 몇살인지 바로 유추할 수 있었겠죠. 

 

저는 이런 댓글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처음에는 좀 당황했습니다. ‘댓글쓴이의 의도가 뭘까? 연식이 오래되면(나이가 많으면) 안 되는 걸까? 여기 회원들은 죄다 30대 이하 뿐인가? 자기네들 노는 곳에 왠 노땅이 설치냐는 뜻일까?’ 카페 운영자의 말에 따르면, 회원의 연령 분포는 (주로 남자이긴 하지만) 10대부터 60대까지 퍼져 있습니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관심이 적은 영역이고 일반 전자기기보다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평가 받는 헤드폰과 이어폰을 구매할 능력을 감안한다면 카페에는 20~30대뿐만 아니라 40~50대의 회원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겠죠. 그런데 왜 굳이 ‘연식’ 운운하는 댓글을 ‘굳이’ 다는 걸까요? 나이들었다는 것 자체가 지적해도 될 만한 약점인가요? 조금은 짜증이 나서 한번은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이죠?”라는 대댓글을 단 적이 있습니다(상대방은 침묵…).

 

 

나이듦이 왠만하면 남들에게 감춰야 할 부끄러움인가요?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도 “이 노래가 좋다. 아, 이런 말 하면 내 연식이 드러나려나?”라며 ‘아차!’하는 듯 언급하는 글을 제법 자주 봅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할까?’ 글쓴이가 별뜻 없이 내뱉거나 쓰는 이런 류의 말 속에 ‘나이드는 것은 부끄럽고 감춰야 하는 일이야’라는 편견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저는 생각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20대 시절에 40~50대 부장님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 시절을 함께 한 노래니까 아직도 좋아하나 보군’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뭐야, 저 촌스럽고 오글거리는 음악은!’이라고 조롱했었지요. 이제 제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 20~30대 친구들에게 ‘연식 딱 나오네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제가 얼마나 치기 어렸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나이 먹은 게 부끄러움이 아니듯 나이 젊은 게 자랑은 아니니까요. 곰곰이 따져 생각하면, 연식 운운하는 소리는 인종 차별이나 남녀 차별적 발언과 진배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흑인이군요?”라고 댓글 달 수 있겠습니까?

 

하도 연식 운운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으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속으로 ‘그래, 너는 젊어서 좋겠다. 얼마든지 내 연식을 지적해 주렴’이라고 튕겨 내버리죠. 그러고는 ‘하지만 난 나이들어 좋은 걸!’이라고 뒤따라 내뱉습니다(물론 속으로). 정말입니다. 나이들어서 아주 좋다는 걸 오늘 느꼈거든요.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못사게 했거나 돈이 없어서 못샀던, 소위 키덜트용 장난감 하나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외쳤습니다. “나이들어서 좋구나. 내맘대로 이런 걸 살 수 있으니까!”

 

누구나 평균 수명을 산다면 인생 전체에서 얻는 경험의 양이나 질은 비슷비슷합니다. 누가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와 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했냐의 차이 밖에는 없습니다. 나중에 나온 자가 먼저 나온 자를 보며 ‘당신의 경험은 구리다’라고 말할 이유도, 권리도 없죠. 더욱이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니까요. 코미디언 지상렬이 연식 운운하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다죠?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참, 시원한 일성입니다. 사람의 존귀한 삶에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나 붙일 ‘연식’이라는 단어, 이제는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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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도움은 거친 법   

2024. 3.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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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컨텐츠의 대세는 ‘숏폼(short-form)’인 것 같습니다. 틱톡, 릴스, 쇼츠 등 SNS마다 짧은 동영상이 긴 동영상을 밀어내고 점차 주류가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컨텐츠 소비의 ‘호흡’이 갈수록 짧아지는 탓일까요? 아니면 긴 컨텐츠를 읽기엔 다들 바쁘기 때문일까요? 혹은 뭔가에 쫓기는 ‘속 시끄러움’ 때문일까요? 이유가 무엇인든 간에 숏폼의 ‘득세’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저 역시 숏폼을 즐겨 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정보를 얻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저녁엔 무슨 요리를 할까?’ 궁리할 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의 숏폼을 찾아보게 되죠. 1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레시피 하나의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소개하니까 여러 레시피를 찾아봐도 시간적인 부담이 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개의 숏폼을 본 다음 냉장고 속 재료를 따져보고 ‘그래, 이 요리를 해보자.’라고 결정하곤 하죠. 숏폼 보다가 날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본인이 통제를 잘한다면 유용한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검색하고 얻는 장점이 큽니다.

 

그리고 가끔은 삶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건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동영상을 봤습니다. 어둔 색의 코트를 입은 천사가 등장하는 동영상이었는데, 그는 찌뿌린 얼굴을 하고 코트 속에 몸을 파묻듯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어느 건물에서 어떤 여자가 유모차를 밀며 나오는 걸 본 천사는 유모차 덮개를 거칠게 쳤습니다. 당연히 아기의 엄마는 그런 천사를 보며 화를 냈지만 천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렸죠. 우연이었을까요? 결과적으로 천사가 유모차 덮개를 친 덕에 아기는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둔 표정의 천사는 길을 건너려던 어느 남자의 발을 걸어서 넘어뜨렸습니다. 역시나 아주 거칠고 폭력적이까지 한 행동이었습니다. 쓰러진 남자는 당연히 천사를 올려다 보며 분노를 터뜨렸죠. 그 순간 빠르게 질주하는 커다란 자동차가 남자 앞을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천사가 발을 걸어준 덕에 남자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죠. 동영상은 이런 메시지를 보여주며 끝을 냅니다. “당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주변을 돌아보세요. 천사의 도움은 거친 법입니다.” (URL을 잃어버려서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뜻입니다).

 

살면서 항상 좋은 일만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나쁜 일들이 예고없이 찾아오죠. 하지만 그런 불행은 어쩌면 천사의 ‘거친 도움’은 아닐까, 그 동영상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당장은 불행이더라도 멀리서 보거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아, 지나고 보니 그 일이 나에게는 행운이었어.’라고 깨닫는 경우가 아마 한두 번은 있을 겁니다.

 

저에게도 이런 새옹지마의 경험이 몇 가지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학사경고를 두 번 연속으로 맞아 1년 정학이라는 징계를 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경험했지만, 그 덕에 저는 대학 생활의 ‘겉멋’에서 벗어나 군대 제대 후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학점이 빵꾸난’ 과목들을 대부분 A로 끌어올렸고 장학생까지 될 수 있었죠. 운이 좋았습니다.

 

잘 다니던 컨설팅 회사 때려치고 벤처사업을 한답시고 뛰어들었다가 3개월만에 말아먹은 후 어디에도 취업하기 어려웠을 때는 열패감이 한동안 저를 옥죄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저는 어렵사리 독립할 수 있었고 지금껏 ‘가늘고 길게’ 컨설턴트로 일을 영위하고 있죠. 남들이 다 손사래쳤던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를 맨땅에 헤딩하듯 어렵사리 수행한 덕에 지금껏 그걸로 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행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 운이 좋았죠.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요즘 저는 객관적으로 불행이라 말할 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속이 시끄러운 상태죠. 불쑥불쑥 부정적인 감정들이 비대해지려고 하는 오늘 저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천사의 도움은 늘 거친 법이지’라고. 물론 이렇게 되뇌인다고 해서 (무슨 조울증도 아니고) 어두었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지는 않지만, 의지할 만한 무언가를 얻었다는 느낌은 듭니다. 길고 어둔 터널을 지날 때 발 앞을 비춰주는 1촉짜리 램프랄까요?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는데 이렇게 바꿔 봅니다. ‘삶의 잠깐은 불행이지만 삶의 전부는 행운’이라고. 누구에게나 수호천사가 있는 법이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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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사이언스도 아닌데, 뭐"   

2024. 3.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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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오디오 수리를 새로운 취미 생활로 ‘영입’했습니다. 사람 일이란 계획하거나 예상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는데요, 몇 개월 전만 해도 오디오 수리를 취미로 할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에게 한두 번 수리를 맡겼다가 되돌아온 물건을 보고 ‘이 정도는 나도 고칠 수 있지 않나? 별로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에게 지출한 수리비도 사실 좀 아까웠고요. 

 

‘그 돈이면 내가 하자!’ 당장 집에 고장나서 돌아가지 않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한번 분해해 봤습니다. 가장 고장이 잘 난다고 말하는 부위를 간단하게 만져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놀랐습니다. 사실 대단한 스킬을 구사한 것은 아니었고 고무벨트 갈아주고 기어가 잘 돌아가도록 기름칠 한 게 전부였지만, 무언가를 살려낼 수 있다는 데 엄청난 쾌감을 느꼈죠. 

 

이런 경험 후에 저는 워크맨이나 카세트 데크 같은 고장난 기기를 일부러 ‘당근마켓’ 같은 중고장터에서 사들여서 고치는 취미를 갖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절대 기웃거리지 않았을 쇼핑몰에서 납땜 인두기, 미세 드라이버, 각종 공구 등을 구매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사는 게 참 흥미롭구나’란 감탄이 나오더군요. 그만큼 ‘나의 세계’가 한뼘 정도는 넓어졌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어떤 기기는 제가 지닌 전기 지식으로는 전혀 손볼 수 없을 정도로 ‘정크’라서 다시 중고시장으로 돌려보내거나 제 손으로 눈물 머금으며(진짜로) 파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10개를 사면 6~7개 가량은 살려내니까 정크품을 중고로 사들인 값을 벌충하고도 남습니다(그렇다고 고친 물건을 판매는 하지 않지만). 별것 아닌 제 스킬로 이 정도면 스스로 뿌듯해 하기 충분하죠. 아주 심각한 고장품이 아니면 이제는 ‘겁 없이’ 뜯어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로켓 사이언스’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나요? 굉장히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지식이나 스킬을 비유하는 영어식 표현입니다. 하늘로 물체를 쏘아올려 대기권 밖으로 안전하게 날려보내는 일이 과거에는 엄청나게 어렵고 돈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겠죠. 그래서 ‘로켓 사이언스가 아니다.’란 말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관심을 가지면 할 수 있다.’라는 뜻이 됩니다. 

 

“로켓 사이언스도 아닌데, 뭐.”라고. 이 말은 제가 종종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종의 ‘최면 문구’이기도 합니다. ‘경다방’이라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외부 전문 인력에게 편집일을 맡기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제가 그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금은 건방진 생각을 했던 거죠. ‘편집 일이 뭐 로켓 사이언스도 아닌데.’라는 암시를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말입니다. 편집을 할 때마다 헤매기는 하지만 이것저것 참고해 가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보면 ‘로켓 사이언스도 아닌데, 뭐’라고 자신만만했던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굳어서’라기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많아졌다는 ‘지적 부유함’의 즐거움이랄까요?

 

오디오 수리든 편집이든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라고 못할 이유가 없죠. 시행착오 겪으며 배우고 반복하면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껏 접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고 싶을 때, 내외부에서 그렇게 하길 바라거나 강요할 때, 혹은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한번 말해 보면 어떨까요? “로켓 사이언스도 아닌데, 뭐.” 여러분의 세계를 조금씩 넗히는 '마법의 주문'일지 모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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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일기 시즌 2를 시작합니다   

2024. 3.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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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영일기 구독자 여러분, 3월 4일부로 경영일기 시즌 2가 시작합니다. 그동안 기다려 주셔서 감사 드리고 새로이 구독자가 되신 분들께 환영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경영일기 시즌 2는 과거와 다른 성격의 글로 이어가려 합니다. 시즌 1은 인사, 조직문화, 리더십 등과 관련한 ‘경영 지식’을 위주로 글을 발송했지만, 시즌 2는 말 그대로 ‘일기’ 성격의 글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들었던 생각, 누군가와의 대화, 길 가면서 겪은 경험 등 제 일상에서 경영과 관련한 것을 일기처럼 편안하게 서술하는 방식이 될 겁니다. 여기서 ‘경영’이란 기업이나 조직의 경영만을 일컫지는 않습니다. 경영의 정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개인으로서 무언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 역시 경영이죠. ‘개인 경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흔히 쓰는) ‘자기 계발’이라고 해야 할까요? 용어야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이 ‘잘 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저의 생각을 ‘경영 일기’라는 타이틀로 풀어볼까 합니다. 

 

인사, 조직문화, 리더십 등의 경영 지식은 여러 매체가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고 많은 분들이 그 지식을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내용을 제가 반복해 말하는 것보다는 제 일상 속에서 건져낸 경영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가는 것이 여러분에게나 저에게도 새로운 컨텐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영 일기는 평일 하루 한 편씩 아침 8시에 여러분의 이메일 주소로 배달됩니다. 일기는 자유롭게 쓰는 글이니까 어떤 날은 길고 어떤 날은 몇 줄 안 될 때도 있을 겁니다. 매일 ‘좋은’ 생각이 생겨나지는 않으니까요. 출근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고, 여러분의 의견도 자유롭게 나눠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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