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다섯 권의 교양과학책   

2024. 3.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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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를 독자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아니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삶의 소중한 통찰을 얻는 데 그 어떤 책들보다 도움이 되는 교양과학책을 추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름하여 ‘내 인생을 바꾼 다섯 권의 교양과학책’. 말이 좀 거창할지 모르지만, 각각의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를 구분지을 만큼 제 가치관과 세계관 전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들입니다. 이미 읽은 책도 있을 겁니다. 혹여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실망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과학 용어가 좀 어려울 수 있는데, 교양과학책 읽기도 일종의 습관이라서 몇 권 읽다보면 용어가 익숙해질 뿐더러 설령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대략의 의미만을 알고도 술술 읽힐 겁니다.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이 책을 읽으면 ‘정치 본능’이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범위나 강도의 크기만 있을 뿐) 생명체의 기본 특질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 마리의 침팬지가 서로 야합하고 속이고 공격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가는지가 소설처럼 재미나게 서술돼 있습니다. 이 책을 제 인생을 바꾼 교양과학책 중 하나로 선정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용어가 거의 없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필독서!

 

<풀 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진화학자인 그는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얻은 지혜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쉽게 설명하는 ‘대중 과학자’였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주는 그의 대표 저서인 이 책은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허황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죠. 인간 진화는 ‘우연과 무작위’의 부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촘촘한 논리와 박식한 지식에 매혹될 겁니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이미 읽었을 대표적인 교양과학책입니다. 아직까지 과학 부문의 베스트셀러에 랭크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빨리 읽기 바랍니다.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할 테니까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 자체가 꽤나 도발적이어서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건 책을 숙독하지 않고 제목이나 광고 카피만 보고 제멋대로 유추한 탓입니다. 생명체는 유전자의 운반체일 뿐이다, 라는 그의 과감한 주장이 무엇을 진정 의미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찾아 보기 바랍니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일리야 프리고진

복잡계 혹은 카오스 이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아마존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발생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죠? ‘비선형적’인 ‘피드백(되먹임)’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복잡한 현상들을 낳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질서’가 숨어있다는 것이 복잡계 이론 혹은 카오스 이론의 얼개입니다. 이 책은 좀 전문적이라서 쉽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꼭 도전해 보세요. 세상을 선형적(혹은 기계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상당히 교정될 겁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S. 쿤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은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로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말입니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확확’ 바뀌는 시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이 전환’입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뉴턴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전통적 원자 이론이 양자역학으로… 이렇게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과학의 유산이 쌓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AI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잖습니까? 과학책이라기보다 과학철학에 가까운 이 책을 읽고나면 ‘부드럽고 점진적 변화’가 과연 존재하는가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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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가 공감의 시작   

2024. 3.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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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필수 역량으로 요즘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공감 능력’입니다. 직원들이 “팀장님은 우리와 잘 공감하는 분이야.”라며 공감 능력에 높이 평가할수록 직원은 리더를 적극적인 사람, 포용적인 사람, 혁신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또 공감 능력이 높은 리더와 함께 일할수록 직원들의 이직률이 낮죠(우수인재의 이탈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공감’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한자어 뜻을 그대로 풀면 ‘함께 느끼는 것’이 공감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 타인의 감정이나 경험 등을 ‘비슷한 수준으로 느끼는 것’이 공감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누군가 속내를 털어놓으면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공감 잘하는 스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꽤 정확한 신호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예전에 발표된 심리 연구에 따르면, 가족이나 친구, 팀 내의 상사와 직원들은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경험과 감정을 다른 이들보다 자주 공유하는데 이렇게 가까운 사이일수록 ‘공감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경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잘 아는 사이이기에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말하며 상대방의 감정이나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단하고 속단하는 거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털어놓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몇 마디만 듣고서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딱 선을 긋듯 말하면 못다한 말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상대가 다 안다는데 계속 말을 이어가면 불평분자로 인식될까 우려하여 속으로 ‘내가 말을 말지’라며 마음을 닫고 맙니다. 직원과 리더처럼 상하 관계에서는 빛의 속도로 마음의 문이 닫히겠죠.

 

공감을 잘하는 리더는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라고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겪는 경험이나 사건을 본인이 겪었으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반응’해 줍니다.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었구나.”라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이 더욱 깊은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격려할 줄 알죠. “그래서 어떤 감정이 생기던가요?”라고.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까지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지’는 ‘내가 공감을 잘하지’란 말처럼 속빈 강정일뿐만 아니라 직원들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라는 마인드. 대화할 때 이것만 염두에 두면 지금보다 공감 능력을 20~30%쯤은 높일 수 있을 겁니다. 참 쉽죠?  (끝) 

 

 

*참고논문

Savitsky, K., Keysar, B., Epley, N., Carter, T., & Swanson, A. (2011). The closeness-communication bias: Increased egocentrism among friends versus stranger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7(1), 26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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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드 발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   

2024. 3.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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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보노보 같은 영장류를 평생 연구한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을 아십니까? 이 분이 아쉽게도 75세를 일기로 지난 1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30대에 첫 책으로 출간한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은 인간 권력의 심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죠. 제가 ‘절대 버리지 않는 책’ 중 하나로 꼽을 만큼 훌륭한 책이니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합니다. 소설처럼 읽히는 몇 안 되는 교양과학책입니다.

 

그의 연구 중 대표적인 것은 흰목꼬리감는원숭이 2마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포도 대 오이’ 실험입니다. 사라 브로스넌(Sarah Brosnan)과 그는 원숭이가 조약돌을 건네면 그 대가로 오이를 주었습니다. 오이는 원숭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이렇게 조약돌을 ‘화폐’ 삼아 오이를 받아먹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드 발은 중간에 실험 조건을 바꾸기로 합니다. 한 원숭이에게는 조약돌을 받은 대가로 포도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계속 오이를 주기로 한 것이었죠.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포도를 받아 먹는 원숭이를 보며 ‘불공정하다’란 감정이 들었겠죠? 원숭이에게 당분이 많은 포도는 오이보다 훨씬 ‘비싼’ 음식이니까요.이렇게 ‘보상 차등’을 주니가 오이만 받아먹던 원숭이는 화를 내면서 조약돌을 던져 버렸고 잘 먹던 오이까지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프란스 드 발

 

이 유명한 실험은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한다’, ‘내가 남보다 무엇을 손해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피고 계산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진화적으로 우리의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원숭이가 그러니까 인간 역시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죠. 굳이 실험을 해보지 않더라도 인간은 원래 비교를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프란스 드 발이 그걸 이렇게 단순명료한 실험으로 증명했던 겁니다.

 

프란스 드 발이 동물 행동학에 기여한 업적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동물 역시 키스를 하거나 껴안는 등 스킨십으로 서로 화해를 도모하는 행동을 취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그는 이 행위에 ‘화해 행동(Reconciliation)’이라는 용어를 붙였습니다. 특히 보노보는 성행위를 화해의 수단으로 삼을 만큼 독특한 종인데요,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 연구를 진행하던 당시에 학계의 주류를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동물들에게는 ‘자기인식’이 없기에 화해 행동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키스하고 껴안는 행위는 그저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동물은 쥐, 다람쥐, 비둘기였기 때문입니다. 종의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동물은 어느 종이 다 마찬가지’란 접근방식으로 연구하던 그들에게 동물의 화해 행동은 있을 수 없었죠.

 

드 발이 그들을 동물원으로 데리고 가서 화해 행동의 장면과 패턴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초청을 거절했고 앞으로 관여도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론을 무너뜨릴 무언가를 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사실을 대체해서 그럴까요? 행동주의 심리학은 현재 퇴물 학문이 되었습니다.

 

75세면 요즘은 조금은 이른 나이입니다. 아쉽습니다. 당분간 그가 남긴 책들(총 16권이라고 합니다)을 다시 읽으며 인간 본성의 비밀을 복기하고 싶군요. 그의 명복을 빕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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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이 사람잡게 그냥 두세요   

2024. 3.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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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 중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들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더닝-크루거 효과’과 바로 이 속담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합니다. 코넬 대학교의 저스틴 크루거와 데이비드 더닝이 밝힌 현상이라서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상인) 학생들을 모아 놓고 ‘유머 감각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유머 감각 점수는 두 사람만 알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자네의 유머 감각은 평균보다 얼마나 높은가?’라고 질문했어요. 재미있게도 실제의 유머 감각 점수가 하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본인의 유머 감각을 평균보다 높게 평가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능력이 처질수록 ‘자신감’을 더 많이 내보였던 거죠.

 

실력은 별로 없으면서, 즉 아는 건 조금밖에 없으면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 심리가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의 의미겠죠. 보통은 이를 부정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는 심리로 여기는데, 오늘 저는 자동차 타이어 교환을 카센타에 맡겨 놓고 근처 커피숍에서 공상에 잠겼다가 ‘글쎄, 더닝-크루거 효과가 나쁘기만 할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자신감이 과연 의미없는 것일까?’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워크맨이나 데크 같은 음향기기 수리는 젬병이던 제가 본격적으로 오디오 수리를 취미로 삼게 된 것은 더닝-크루거 효과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일지 모릅니다. 몇 개 고쳐서 오디오가 돌아가는 걸 보고 ‘아, 이거 별거 아니잖아!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자신감을 얻었기에 시작이 가능했던 새로운 취미니까요. 그렇게 초기에 선무당이 사람잡는 ‘자신감의 도약’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고장난 오디오를 방치해 뒀거나 고쳐볼 의지가 있다 해도 그저 누군가에게 수리를 의뢰하는 것에 그쳤을 겁니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아직 인간에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게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득이 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려면 자신감이라는 도약대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러니 자신감이 지나쳐 리스크를 크게 발생시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면, ‘나 잘났다’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선무당 마인드를 오히려 귀엽게 봐주고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그에게 다가가 ‘너는 정말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구나’라고 힐난하는 ‘일침쟁이’가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는 별 거 아니구나’라고 반성할 텐데, 한창 재미를 느끼는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꼰대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선무당이 사람잡게 그냥 두세요. 자녀들에게나 직원들에게나.

 

지금 저는 선무당 시기를 지나 자신감 저하라는 골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자신감에 불타서 무작정 정크품 수리에 돌입했다가 소위 ‘해먹은’ 경험들이 쌓이니 초기의 자신감은 옛일이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몰라, 못하겠어’라고 나가떨어지는 게 진짜 선무당이고 ‘바보’겠죠. 제가 그런 진짜 선무당에 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고치다가 망가뜨린 워크맨이 테이블 위에 사체처럼 누워 있는 걸 보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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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이나 독립을 생각하는 분들께   

2024. 3.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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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저에게 이직과 관련하여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 외에도 아예 1인 기업으로 독립해 활동하면 어떻겠냐는 문의도 들어오곤 하죠. 저번 주에도 한 분이 이메일로 문의해 오더군요. 아마 제가 조금 이른 나이(30대 초)에 독립하여 지금껏 (가늘고 길게) 1인 기업 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문의에 저는 “웬만하면 옮기지 마세요.” 혹은 “그냥 월급 받으면서 일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는 식으로 경력 전환 의지를 꺾어(?) 놓는 편입니다. 

 

물론 무턱대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요. 이직하는 게 좋겠습니다.” 혹은 “독립해서 활동해도 충분히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라는 조언도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그 사람이 왜 이직하려 하는지, 왜 힘든 1인 기업(혹은 사업)을 목표로 하는지를 충분히 묻고 난 다음에 내리는 결론이 대개는 “이직하지 마세요. 그냥 회사 생활 하세요.”이거든요.

 

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건 이직이나 독립을 결정하기로 한 ‘동기’가 건설적이지 않고 대개는 도피성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하기 어려운 상사나 동료, 이상한 회사 문화를 이유로 이직/독립을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저 그런 문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뿐이지 이직/독립 자체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당연히 그런 문제 상황이 이직/독립의 계기를 던져줍니다. 그렇다면 문제에 매몰돼 있기보다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저는 즉각 “계속 다니세요. 뭘 그만두려 해요. 다른 데 가도 똑같아요.”라고 말하거나, 이직/독립에 약간의 성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계속 회사에 다니면서 더 준비하고 고민해 보세요.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조언합니다.

 

아주 가끔 진지하게 이직/독립 자체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해줄 말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더 신나서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주면 ‘다 알아듣고 행동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죠.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들이 되도록 적게 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이직/독립을 계획하는 이들은 설령 현 직장에서 겪는 문제 때문에 이직/독립을 결심했다 하더라도 저에게 와서 그런 문제 상황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더군요. 이미 계획이 섰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어서겠죠.

 

이직과 독립은 굉장히 위험한 과정입니다. 옮겨간 직장이 예전 회사보다 더 ‘악질’일 수 있고, 1인 기업으로 독립했더니 파리만 날릴 수 있으니까요. 이직/독립을 진지하게 계획한다는 것에는 플랜 B가 반드시 포함됩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되돌아가거나 다른 경로로 트는 계획이 어쩌면 이직/독립 계획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잘 될 때보다 잘 안 될 때가 더 많은 법입니다. 우수한 야구 선수도 10번 타석에 나서면 7번 가량 아웃되니까요. 

 

현재의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이직/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플랜 A도 없지만 플랜 B도 없습니다. 현재의 직장을 벗어나면 뭐든 잘 될 거라 믿습니다. ‘근거없는 자신감’인지 ‘희망 회로’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희망의 배신’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저에게 이메일로 문의해 온 분에게 답장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분이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이 글로 답장을 대신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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