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보노보 같은 영장류를 평생 연구한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을 아십니까? 이 분이 아쉽게도 75세를 일기로 지난 1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30대에 첫 책으로 출간한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은 인간 권력의 심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죠. 제가 ‘절대 버리지 않는 책’ 중 하나로 꼽을 만큼 훌륭한 책이니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합니다. 소설처럼 읽히는 몇 안 되는 교양과학책입니다.
그의 연구 중 대표적인 것은 흰목꼬리감는원숭이 2마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포도 대 오이’ 실험입니다. 사라 브로스넌(Sarah Brosnan)과 그는 원숭이가 조약돌을 건네면 그 대가로 오이를 주었습니다. 오이는 원숭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이렇게 조약돌을 ‘화폐’ 삼아 오이를 받아먹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드 발은 중간에 실험 조건을 바꾸기로 합니다. 한 원숭이에게는 조약돌을 받은 대가로 포도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계속 오이를 주기로 한 것이었죠.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포도를 받아 먹는 원숭이를 보며 ‘불공정하다’란 감정이 들었겠죠? 원숭이에게 당분이 많은 포도는 오이보다 훨씬 ‘비싼’ 음식이니까요.이렇게 ‘보상 차등’을 주니가 오이만 받아먹던 원숭이는 화를 내면서 조약돌을 던져 버렸고 잘 먹던 오이까지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이 유명한 실험은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한다’, ‘내가 남보다 무엇을 손해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살피고 계산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진화적으로 우리의 친척이라 할 수 있는 원숭이가 그러니까 인간 역시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죠. 굳이 실험을 해보지 않더라도 인간은 원래 비교를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프란스 드 발이 그걸 이렇게 단순명료한 실험으로 증명했던 겁니다.
프란스 드 발이 동물 행동학에 기여한 업적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동물 역시 키스를 하거나 껴안는 등 스킨십으로 서로 화해를 도모하는 행동을 취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그는 이 행위에 ‘화해 행동(Reconciliation)’이라는 용어를 붙였습니다. 특히 보노보는 성행위를 화해의 수단으로 삼을 만큼 독특한 종인데요,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 연구를 진행하던 당시에 학계의 주류를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동물들에게는 ‘자기인식’이 없기에 화해 행동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키스하고 껴안는 행위는 그저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그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동물은 쥐, 다람쥐, 비둘기였기 때문입니다. 종의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동물은 어느 종이 다 마찬가지’란 접근방식으로 연구하던 그들에게 동물의 화해 행동은 있을 수 없었죠.
드 발이 그들을 동물원으로 데리고 가서 화해 행동의 장면과 패턴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싶어했지만,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초청을 거절했고 앞으로 관여도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이론을 무너뜨릴 무언가를 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사실을 대체해서 그럴까요? 행동주의 심리학은 현재 퇴물 학문이 되었습니다.
75세면 요즘은 조금은 이른 나이입니다. 아쉽습니다. 당분간 그가 남긴 책들(총 16권이라고 합니다)을 다시 읽으며 인간 본성의 비밀을 복기하고 싶군요. 그의 명복을 빕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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