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를 독자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아니 과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삶의 소중한 통찰을 얻는 데 그 어떤 책들보다 도움이 되는 교양과학책을 추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름하여 ‘내 인생을 바꾼 다섯 권의 교양과학책’. 말이 좀 거창할지 모르지만, 각각의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를 구분지을 만큼 제 가치관과 세계관 전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들입니다. 이미 읽은 책도 있을 겁니다. 혹여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실망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과학 용어가 좀 어려울 수 있는데, 교양과학책 읽기도 일종의 습관이라서 몇 권 읽다보면 용어가 익숙해질 뿐더러 설령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대략의 의미만을 알고도 술술 읽힐 겁니다.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이 책을 읽으면 ‘정치 본능’이 인간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범위나 강도의 크기만 있을 뿐) 생명체의 기본 특질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러 마리의 침팬지가 서로 야합하고 속이고 공격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가는지가 소설처럼 재미나게 서술돼 있습니다. 이 책을 제 인생을 바꾼 교양과학책 중 하나로 선정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용어가 거의 없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직장인이라면 필독서!
<풀 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진화학자인 그는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얻은 지혜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쉽게 설명하는 ‘대중 과학자’였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주는 그의 대표 저서인 이 책은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다양성의 증가다’라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허황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죠. 인간 진화는 ‘우연과 무작위’의 부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읽으면 그의 촘촘한 논리와 박식한 지식에 매혹될 겁니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이미 읽었을 대표적인 교양과학책입니다. 아직까지 과학 부문의 베스트셀러에 랭크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빨리 읽기 바랍니다.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할 테니까요.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 자체가 꽤나 도발적이어서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건 책을 숙독하지 않고 제목이나 광고 카피만 보고 제멋대로 유추한 탓입니다. 생명체는 유전자의 운반체일 뿐이다, 라는 그의 과감한 주장이 무엇을 진정 의미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찾아 보기 바랍니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일리야 프리고진
복잡계 혹은 카오스 이론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아마존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발생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죠? ‘비선형적’인 ‘피드백(되먹임)’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복잡한 현상들을 낳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질서’가 숨어있다는 것이 복잡계 이론 혹은 카오스 이론의 얼개입니다. 이 책은 좀 전문적이라서 쉽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꼭 도전해 보세요. 세상을 선형적(혹은 기계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상당히 교정될 겁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S. 쿤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은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로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말입니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확확’ 바뀌는 시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이 전환’입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뉴턴의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전통적 원자 이론이 양자역학으로… 이렇게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과학의 유산이 쌓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AI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잖습니까? 과학책이라기보다 과학철학에 가까운 이 책을 읽고나면 ‘부드럽고 점진적 변화’가 과연 존재하는가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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