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저에게 이직과 관련하여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 외에도 아예 1인 기업으로 독립해 활동하면 어떻겠냐는 문의도 들어오곤 하죠. 저번 주에도 한 분이 이메일로 문의해 오더군요. 아마 제가 조금 이른 나이(30대 초)에 독립하여 지금껏 (가늘고 길게) 1인 기업 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문의에 저는 “웬만하면 옮기지 마세요.” 혹은 “그냥 월급 받으면서 일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는 식으로 경력 전환 의지를 꺾어(?) 놓는 편입니다.
물론 무턱대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요. 이직하는 게 좋겠습니다.” 혹은 “독립해서 활동해도 충분히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라는 조언도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그 사람이 왜 이직하려 하는지, 왜 힘든 1인 기업(혹은 사업)을 목표로 하는지를 충분히 묻고 난 다음에 내리는 결론이 대개는 “이직하지 마세요. 그냥 회사 생활 하세요.”이거든요.
왜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건 이직이나 독립을 결정하기로 한 ‘동기’가 건설적이지 않고 대개는 도피성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하기 어려운 상사나 동료, 이상한 회사 문화를 이유로 이직/독립을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저 그런 문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뿐이지 이직/독립 자체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당연히 그런 문제 상황이 이직/독립의 계기를 던져줍니다. 그렇다면 문제에 매몰돼 있기보다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고민을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저는 즉각 “계속 다니세요. 뭘 그만두려 해요. 다른 데 가도 똑같아요.”라고 말하거나, 이직/독립에 약간의 성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계속 회사에 다니면서 더 준비하고 고민해 보세요.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조언합니다.
아주 가끔 진지하게 이직/독립 자체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해줄 말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더 신나서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 주면 ‘다 알아듣고 행동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죠.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그들이 되도록 적게 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이직/독립을 계획하는 이들은 설령 현 직장에서 겪는 문제 때문에 이직/독립을 결심했다 하더라도 저에게 와서 그런 문제 상황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더군요. 이미 계획이 섰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어서겠죠.
이직과 독립은 굉장히 위험한 과정입니다. 옮겨간 직장이 예전 회사보다 더 ‘악질’일 수 있고, 1인 기업으로 독립했더니 파리만 날릴 수 있으니까요. 이직/독립을 진지하게 계획한다는 것에는 플랜 B가 반드시 포함됩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되돌아가거나 다른 경로로 트는 계획이 어쩌면 이직/독립 계획 자체보다 더 중요합니다. 잘 될 때보다 잘 안 될 때가 더 많은 법입니다. 우수한 야구 선수도 10번 타석에 나서면 7번 가량 아웃되니까요.
현재의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이직/독립을 원하는 사람은 플랜 A도 없지만 플랜 B도 없습니다. 현재의 직장을 벗어나면 뭐든 잘 될 거라 믿습니다. ‘근거없는 자신감’인지 ‘희망 회로’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희망의 배신’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저에게 이메일로 문의해 온 분에게 답장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분이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지만, 이 글로 답장을 대신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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