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이 사람잡게 그냥 두세요   

2024. 3.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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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 중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들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심리학에서 말하는 ‘더닝-크루거 효과’과 바로 이 속담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합니다. 코넬 대학교의 저스틴 크루거와 데이비드 더닝이 밝힌 현상이라서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상인) 학생들을 모아 놓고 ‘유머 감각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유머 감각 점수는 두 사람만 알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자네의 유머 감각은 평균보다 얼마나 높은가?’라고 질문했어요. 재미있게도 실제의 유머 감각 점수가 하위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본인의 유머 감각을 평균보다 높게 평가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능력이 처질수록 ‘자신감’을 더 많이 내보였던 거죠.

 

실력은 별로 없으면서, 즉 아는 건 조금밖에 없으면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 심리가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의 의미겠죠. 보통은 이를 부정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는 심리로 여기는데, 오늘 저는 자동차 타이어 교환을 카센타에 맡겨 놓고 근처 커피숍에서 공상에 잠겼다가 ‘글쎄, 더닝-크루거 효과가 나쁘기만 할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자신감이 과연 의미없는 것일까?’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워크맨이나 데크 같은 음향기기 수리는 젬병이던 제가 본격적으로 오디오 수리를 취미로 삼게 된 것은 더닝-크루거 효과가 가져다 준 뜻밖의 선물일지 모릅니다. 몇 개 고쳐서 오디오가 돌아가는 걸 보고 ‘아, 이거 별거 아니잖아!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자신감을 얻었기에 시작이 가능했던 새로운 취미니까요. 그렇게 초기에 선무당이 사람잡는 ‘자신감의 도약’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고장난 오디오를 방치해 뒀거나 고쳐볼 의지가 있다 해도 그저 누군가에게 수리를 의뢰하는 것에 그쳤을 겁니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오랜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아직 인간에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게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득이 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려면 자신감이라는 도약대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러니 자신감이 지나쳐 리스크를 크게 발생시키는 경우가 아니라면, 또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면, ‘나 잘났다’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선무당 마인드를 오히려 귀엽게 봐주고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그에게 다가가 ‘너는 정말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구나’라고 힐난하는 ‘일침쟁이’가 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는 별 거 아니구나’라고 반성할 텐데, 한창 재미를 느끼는 시기에 찬물을 끼얹는 꼰대가 될 필요가 있을까요? 선무당이 사람잡게 그냥 두세요. 자녀들에게나 직원들에게나.

 

지금 저는 선무당 시기를 지나 자신감 저하라는 골짜기를 지나는 중입니다. 자신감에 불타서 무작정 정크품 수리에 돌입했다가 소위 ‘해먹은’ 경험들이 쌓이니 초기의 자신감은 옛일이 됐습니다. 이 시점에서 ‘몰라, 못하겠어’라고 나가떨어지는 게 진짜 선무당이고 ‘바보’겠죠. 제가 그런 진짜 선무당에 그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고치다가 망가뜨린 워크맨이 테이블 위에 사체처럼 누워 있는 걸 보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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