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소실, 노무현 탓, 이명박 탓 운운마라!   

2008. 2. 1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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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이 돼서야 알았다. 숭례문이 타 버린 사실을. 동영상 속에서 타들어가는 숭례문의 몸을 보면서 가슴이 아픈 이가 나 뿐만은 아닐거다. 누군가 홧김에 싸질러 버린 분노 한 덩어리 때문에 4천 8백만명의 가슴이 아프다.

언론이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는 허술하기 그지 없다. 문화재 관리 체계는 여기서 자세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문제가 많다. 관리 당국의 태만과 손발 안 맞는 화재 대응체계는 응당 비난과 책임 추궁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시각을 스스로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땅 속에 묻힌 문화재가 발견되면 그것 때문에 아파트 완공이 늦어질까 걱정하는 우리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예를 들어 OO토성 주변은 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지역인데, 주민들은 OO토성 때문에 자기네들 집값이 안 오른다고 푸념이다. 문화재가 재개발의 발을 묶는다고 성토한다. 급기야 현수막까지 내건다. 그 빨간 글씨의 현수막은 우리가 문화재를 대하는 마음의 자화상이다.

유럽의 도시를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의 향기를 느낀다. 옛것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복원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의 색깔을 담아 낸다. 두오모에 올라 바라봤던 피렌체의 전경. 도시 전체에 케첩을 뿌려 놓은 듯 붉은 지붕의 예스런 건물들을 보면서 나는 참 부끄러웠다.


서울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매우 무미건조한 도시다. 어딜 봐도 회색의 빌딩, 재건축 현장의 거대한 타워 크레인들, 도시를 점령한 자동차들, 그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어 내면서 600년 고도의 숭례문과 흥인지문 사이를 질주한다.

우리의 600년은 남산한옥마을이나 민속촌과 같이 박제된 모형 속에서나 혹은 현대식으로 급조된 청계천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많던 기왓집과 초가들은 이미 개발이란 이름 앞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서울을 문화의 도시라 부르지 마라. 서울은 이미 문화가 썩은, 문화가 죽은 도시다. 서울 뿐만이 아니다. 전국의 어느 도시를 가봐도, 옛것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도시의 특색을 전혀 알 수 없는, 표정 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황소개구리처럼 우글댄다.

노무현 탓이다, 이명박 탓이다, 유치하게 싸우지 마라. 우리는 피멍이 맺히도록 가슴을 치며 스스로를 꾸짖어야 한다. 남겨두기 보다는 없애고, 고쳐 쓰기 보다는 다시 지으려 하는 우리의 개발 관성이 숭례문을 불태워 버렸다.

우리 모두가 너를 불태워 버렸다. 숭례문이여, 부디 우리를 용서치 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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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무는 공원   

2008. 2. 1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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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경의 공원.
날씨가 좀 풀려서 걸어 다닐 만 했는데,
6시가 돼 갈수록 찬 공기 때문에 볼 살이 얼얼했다.
조금만 참으면 봄이지만, 빨리 오기를 고대해 본다.
겨울은 힘든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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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몰입교육은 망하기 딱 좋다   

2008. 2. 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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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애초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보인다. 인수위의 '다급한' 정책 발표와 수정 제안이 실패 확률을 더 높이고 있다. 그 이유를 다음의 비유를 통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핵심부품이 50개로 이루어진 자동차와, 10개로 이루어진 차가 각각 1대씩 있다. 가격, 디자인, 성능, 품질 등 기타 조건이 모두 동일하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차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답은 핵심부품의 개수가 작은 차를 고르는 것이 안전을 위해 옳은 결정이다. 각 핵심부품이 제대로 동작할 확률(즉, 신뢰도)이 99.94%라고 해보자. 이 정도 신뢰도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50개 핵심부품 모두가 올바르게 작동할 신뢰도를 구하려면 99.94%를 50번 곱하면 된다. 그 값은 97%이다.

반면 핵심부품이 10개로 이루어진 차가 제대로 운행할 신뢰도는 99.94%를 10번 곱해서 얻은 99.40%이다. 핵심부품이 50개로 이루어진 차보다 1.6%가 더 높은 신뢰도를 가진다. 이 정도(1.6%) 차이는 별 것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자동차를 100만 대 생산한다고 했을 때, 1만 6천대에 해당하는 값이기 때문에 무시할 숫자가 아니다.

이 예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복잡하게 설계된 제도나 시스템일수록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하는 것이 제도의 오류룰 최소화하는 방법이 된다. 오류는 복잡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영어몰입교육 정책은 취약한 제도들의 '꾸러미'로 구성되어 있다. 완성도(신뢰도)가 낮은 제도들의 꾸러미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중 하나가 실패하면 정책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지 모든다. 예를 들어, 인수위가 내놓은 영어몰입 정책 중 대표적인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방침' 하나도 여러 가지 세부 요건이 갖추어져야 성공이 가능하다.

우선,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교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교사를 확보하려면 기존 교사를 교육시켜야 하고 새로운 교사를 충원해야 한다. 기존 교사를 교육시키려면, 예산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교육시킬 또다른 선생(원어민)들과 교육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bla bla bla...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기 위해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세부 제도들 모두가 잘 실행이 되어야 한다. 그 중 어느 하나의 세부제도가 삐끗하면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는 야심찬 계획 조차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영어몰입 정책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만일 영어몰입 정책에 누수가 발생하면, 해결을 위해 보완 장치를 붙이게 된다. '개선'이라는 이름 하에 말이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위의 예에서 말했듯이, 오히려 추가로 덧붙여진 보완 장치가 영어몰입 정책 전체의 복잡성을 높이고 실패 확률 역시 높이게 된다. 최악의 경우 보완장치가 정책의 본질을 압도하는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의욕에 차서 너무 앞서 나가면 안 된다.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야 한다.  10년 야당의 한풀이일지 모르지만, 이슈를 빵빵 터뜨리는 인수위의 정책 발표는 국민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뿐더러 처음부터 실패확률을 크게 안은 채 가는 위험한 행동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이지, 오년지소계(五年之小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숨 좀 고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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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Go Stop)!   

2008. 2. 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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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 때문에 시누이와 올케가 물고 뜯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사건은 명절 뒤 끝에 항상 나오는 뉴스 중 하나이다.

고스톱 하면서 싸우지 맙시다. 기분 좋게 잃고 기분 좋게 나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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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을 만나다   

2008. 2. 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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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도 강의가 있었다. 힘든 어제의 강의 때문에 오늘 강의는 좀 꾀가 났다. 설 연휴 전날이라 강의를 일찍 끝내고 와이프와 영화를 보러 갔다. 아들녀석은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라, 간만에 자유로왔다.

오늘의 영화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이다. 황정민이 슈퍼맨이었던 사람으로, 전지현이 프로덕션의 PD로 나온다. 약간의 반전이 있기 때문에 줄거리를 말하지는 않으련다. '대머리 악당'이 누굴 지칭하는 말인지, 영화 말미에야 깨달았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의 영화였다. 현실과 환타지가 교차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황정민의 천연덕스러운 '미친 사람' 연기도 좋았다. 나중에 황정민의 개인사 이야기가 나올 때 눈물이 조금 질금거렸다.

아쉬운 점 하나는 전지현의 연기다. 평이했다. 영화에서의 보이쉬한 행동과 말투는 CF퀸으로서의 이미지를 떨쳐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메이크업의 투혼(주근깨가 살짝 보이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저 예쁠 뿐이었다. 영화배우로 이름을 남기려면 알을 깨는 고통이 그녀에게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아쉬운 점 두번째는 교훈적인 내러티브의 지나침이었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통해서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싶은 욕심이 좀 과한 느낌이다. 절제를 좀 했으면, 예를 들어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허진호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3인칭 관찰자적 관점을 견지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릴 적,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슈퍼맨이길 바랬다. 빨간 보자기를 망토 삼아 골목을 뛰어 다니며 악당 녀석(주로 나보다 어린...)을 꿀밤 놓고 달아나는 재미 때문에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악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침 방역차가 오는 날이면 허연 연기를 쫓아 다니며 마치 구름 위를 나는 듯 황홀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약 뿌리는 소리에 묻히고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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