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은 인사의 기초   

2011. 3.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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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회사에 근무한다면 업적평가와 함께 역량평가를 받을 겁니다. 역량평가를 실시하려면 먼저 '역량모델'이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역량모델은 조직에서 하나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특성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선발, 교육, 평가, 승계계획(Succession Plan) 등을 위한 관리도구로 활용됩니다.

역량모델을 구축하는 방법, 즉 역량모델링은 많은 기업들이 이미 실행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알고 있으리라(여러분이 인사 담당자라면) 판단됩니다. 헌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역량모델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자주 제기되는 오해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즉, 무엇이 역량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라는 오해
2)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 라는 오해
3)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오해



첫 번째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란 오해는 일반적으로 회사에 오래 근무한 관리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것인데, 직원들이 우수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이미 다 안다는 직감에서 나오는 오해입니다. 그들은 정리되지는 않을 뿐이지 다 아는 것을 돈을 들이고 직원들의 시간을 뺏어가면서까지 ‘멋있게’ 정리하고 증명할 필요가 있냐는 반대 의사를 보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러 회사의 인사 담당자와 인터뷰를 해보면, 몇몇 인사 담당자는 역량모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들은 직무기술서를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의 근본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몇몇 소수(일반적으로 경영자나 인사부서)의 직감으로 역량모델을 ‘대충’ 만들어 낸 탓에 담당자 스스로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역량모델을 구축해 놓고도 그것을 선발, 평가, 교육 등 인사제도에 적절하게 반영하거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시용으로 만들어 낸 역량모델이니 인사 운영에 활용될 리 만무할 겁니다. 바로 이런 관행 때문에 역량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우리 조직의 역량모델이 무엇인지 잘 안다. 다만 활용하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오해와 저항에 대하여 인사부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역량모델링은 무엇이 우리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역량인지 밝히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수 차례의 인터뷰와 서베이와 관찰을 통해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을 명확히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도출된 역량모델을 선발, 교육, 평가 등에 적용하여 성과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하게 됐다면 역량모델에 투자할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래 근무한 구성원일수록 과거의 사고방식, 기업환경 등에 기초하여 역량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명하복’과 같은 구닥다리 신념에 근거한 역량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거의 신념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조직문화 구축을 가속하기 위해서라도 역량모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란 오해는 수시로 변화하는 기업 환경 때문에 어차피 다시 뜯어 고쳐야 할 것이라면 뭐하러 비용과 시간을 소요해 역량모델을 설계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업이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체질을 갖추는 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량모델은 특정한 상황에 일회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처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밝혀내어 구체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업이 고객관계관리시스템(CRM)을 구축했거나 구축 중인데 앞으로 몇 년 후에 다른 종류의 시스템이 도입되거나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역량모델은 ‘고객관리’를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실행하도록 기업 고유의 ‘철학’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역량모델이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한다면 이것은 기업의 경영철학이 매번 환경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것과 다를 바 없겠죠.

세 번째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란 오해는, 조직 내에 운영관리자, 영업관리자, 생산관리자, 연구원 등 서로 다른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이를 역량모델이라는 하나의 공통모델로 묶으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는 역량모델의 구성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역량모델은 일단 전사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을 먼저 고려하여 설계됩니다. 즉, 인사팀장이든 영업사원이든 우리 회사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행동의 특성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역량모델입니다. GE의 경우 ‘1등 아니면 2등’ 철학은 일부의 역할 및 직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사고와 행동의 특성을 규정하는 '지시봉'입니다.

앞서나가는 기업이라면 경영자에서 말단 사원을 꿰뚫는 서너개의 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역할 또는 직무별로 그런 역량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오해에서 말하는 역할 및 직무별 다양성은 ‘역량의 개별적 구성’이 아니라 ‘역량개발방안의 차별성’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한 역량모델은 전사적으로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이를 공통역량이라 함) 뿐만 아니라, 각 역할과 직무에 따라 특수하게 요구되는 개별역량(이를 직무역량이라 함)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세 번째 오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역량모델을 갖춘다고 조직의 성과가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량모델을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역량모델은 인사제도의 기초공사에 해당합니다. 기초공사 없이 그 위에 인사제도를 쌓아올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회사의 비전에 직원들의 행동과 사고를 정렬시키는 도구인 역량모델을 다시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회사는 이 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직원들은 저 산으로 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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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머리에 뿔이 난 이유   

2011. 3.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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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알다시피 유태인들은 오래 전부터 유럽인들의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질긴 생활력과 경제력, 독특한 종교와 신념 등이 유럽인들의 눈에는 고까워 보였나 봅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타가 유태인과 집시를 절멸시켜야 하는 열등한 종족이라고 말하면서 잔인한 유태인 말살 정책을 펴기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유태인은 자신들과 다른 이상하고 불쾌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유태인을 처음 본 사람들은 유태인들에게 뿔이 어디에 달렸냐고 물어 볼 정도였습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었죠. 이런 고정관념은 미술 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의 조각상을 보면 머리에 뿔 두 개 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뿐만 아니라 도나텔로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머리에 뿔이 난 모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보입니다)

모세는 바로 유태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든 유태인들의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고 믿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고정관념이 형성된 걸까요? 모세의 머리엔 진짜 뿔 두 개 있었던 걸까요?

이런 고정관념은 작은 실수에서 비롯됐습니다. 성경의 출애굽기 34장 29절부터 35절 사이에는 신과 소통한 이후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머리와 얼굴에서 '광채가 발한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확히 3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출애굽기 34장 35절)


중세 때 이 부분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광채나 광선을 뜻하는 히브리어 karan은 '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번역자는 광채 대신에 뿔을 택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겁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대목을 읽고는 뭔가 봐서는 안 되는 것이 모세의 머리에 있다고 생각해서 karan을 뿔로 보는 실수를 범한 듯 합니다. 

아니, 실수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번역자의 고정관념 속에는 사탄의 머리에 달린 뿔과 모세에 머리에서 빛나는 광채를 동일시했던 것일지 모르죠. 오역 하나 때문에 유태인들은 머리에 뿔 달린 존재, 사탄과 같은 존재로 오해를 받고 갖은 핍박을 받았으니 그들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만한 일입니다.

많은 고정관념의 실체를 파고 들면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작은 실수 때문이라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리고 설령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사실이 발견되어도 쉽사리 고정관념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유태인들의 머리에 뿔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보아 왔으면서도 수천 년간 그런 고정관념이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고정관념은 한번 형성되면 그것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와도 약화는 될지언정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정관념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 고정관념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단어 하나를 잘못 번역한 것처럼 작은 실수 때문은 아닐까요? 잘못된 고정관념을 찾아 그것을 격파해 낸다면 보다 넓은 시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말
8년 전에 나온 어느 경영서를 보니 손익분기점(Break Even Point)라는 말이 '도산하는 시점'이라고 잘못 번역돼 있더군요. 이런 식의 작은 번역 실수(실수가 아니라 무지일지도...)가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엉뚱한 고정관념을 형성시킬까 우려됩니다.

(*참고도서 : '명료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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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대변인, 과연 효과가 있을까?   

2011. 3.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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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크고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가 질 좋은 의사결정을 저하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를 저해한다는 이야기를 지난 번에 했습니다. 회의 때 리더 혼자 떠드는 경우, 회의 결과가 거의 만장일치로 끝나는 경우, 회의가 논의의 장이 아니라 거의 결정된 사항을 확인만 한다는 관행이 굳어져 있는 경우, 회의가 의사결정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자주 오용되는 경우 등이 바로 집단사고가 만연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집단사고를 최소화하거나 없애기 위한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몇 가지 팁을 얻을 수 있습니다(트위터 친구분이 이 사이트를 알려주었죠). 그리고 지난 포스팅에서 집단사고를 '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를 회의에 의도적으로 참여시킨 사례를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리더의 입만 쳐다보며 침묵할 때 의도적으로 고용된 악마의 대변인이 나서서 리더의 의견이 틀렸다고 거듭 딴죽을 걸면 회의의 분위기를 통보나 지시가 아니라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효과가 있죠.



악마의 대변인이 집단사고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자주 소개되지만 이 방법이 항상 '먹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마의 대변인이 집단사고를 더욱 조장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찰란 니미스라는 학자는 악마의 대변인이 다수의 의견을 비판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더욱 지지한다는 역설적인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니미스는 대학생들을 데리고 실험을 했는데(역시 대학생처럼 만만한 실험 대상은 없나 봅니다. 어쨌든...), 그들에게 휴가에 대한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회의를 통해 방안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대학생들이 그 방안을 얼마나 잘 수립하는지 테스트했죠. 그랬더니 악마의 대변인을 참가시켰는데도 회의의 성과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회의 참가자들이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때도 마찬가지였고, 악마의 대변인에게 다수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자신이 원래 가진 의견을 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니미스는 악마의 대변인이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건전하고 의미있는 토론이 방해된다고 해석합니다. 악마의 대변인은 일부러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위해 회의에 참여한 입장이기 때문에 그쪽의 반박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무언가 발전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만 '일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그녀를 배제하고 토론하려 하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악마의 대변인을 회의에 참석시켰으니 여러 의견을 다 듣어보고 결정했다는 안도감과 믿음을 집단에게 주는 부작용입니다. 악마의 대변인이 관행처럼 굳어지면 의사결정의 결과를 과신해서 다른 잠재적 위험엔 눈을 감아버리는 관성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역할을 맡은 악마의 대변인은 지난 포스팅에서 든 사례처럼 집단사고에 물든 조직의 경직을 깨뜨리기 위한 초기의 장치로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회의 때마다 집단사고를 방지하겠다는 목적으로 악마의 대변인을 참여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미 집단이 활발한 토론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악마의 대변인은 열띤 토론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주범이 됩니다. 그래서 니미스의 실험처럼 악마의 대변인의 반대에 다시 반대하려는 집단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역설적으로 집단사고가 더 강해지고 말죠.

니미스의 실험에서 회의의 성과가 향상된 경우는 악마의 대변인이 참가한 경우가 아니라 '진정한 반대자'가 있을 때였습니다. 진정한 반대자는 왜 자신이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는지 논리가 탄탄할 뿐만 아니라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하게 '당신들의 의견은 틀렸다'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악마의 대변인보다 기탄 없이 말함으로써 열띤 토론의 장을 유도하는 사람이죠.

악마의 대변인이란 장치가 집단사고라는 얼음덩어리를 처음 깨기 위한 송곳의 역할을 하지만, 그걸 남용하는 것은 집단사고만큼이나 조직에 해롭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송곳을 자주 사용하면 무뎌지기 마련이니까요.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 참고도서 : '이기는 결정의 제 1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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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Trust) 방정식   

2011. 3.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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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를 할 때 '신뢰'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상당히 중요한 고리입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거래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고 설령 거래가 성립됐다 해도 서로에 대한 의심 때문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거나 이것저것 여러 가지 '보험 장치'를 덧붙이는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죠. 비단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친목을 다지는 일에도 신뢰가 밑바탕을 이루지 않으면 '그저 아는 사이' 이상으로 발전되기 어렵습니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끈끈한 접착제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평가해야 상대방의 나에게 줄지도 모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들을 접하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저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평가하곤 합니다. 하다못해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더라도 '이 의사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처방은 잘 내리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상대방의 신뢰 여부를 묻는 자문(自問)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 정도, 즉 '신뢰도'를 막연하게 평가하지 말고 신뢰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따져보면 어떨까요? 요소로 세분해 보면 신뢰도를 더 잘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누군가의 신뢰도를 측정할 때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요소는 바로 '의도'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도와주거나 내 말을 따를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 혹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나를 속일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중요시하죠. 여러분이 '의도'라는 말로 정의내리지 못했더라도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신뢰의 요소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의도'를 신뢰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평소 선한 의도를 꾸준히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를 100% 신뢰하겠죠. 하지만 선한 의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신뢰도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속일 의도가 없다 해도, 상대방이 내 말이라면 다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다 해도 나의 지시나 부탁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없다면 신뢰할 수 없겠죠. 부하직원에게 보고서 작성을 맡겼는데, 열심히 작업하는 그의 모습(의도)이 좋아 보여도 가져온 보고서가 엉망(능력)이라면 그를 신뢰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 부하직원의 보고서 작성 능력을 더 훈련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신뢰 수준으로 끌어올리든지, 아니면 웬만하면 일 잘하는 다른 직원에게 맡기든지 해야겠죠. 돌팔이라고 소문난 의사에게 여러분의 몸을 맡기고 싶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도'와 '능력'을 서로 반비례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능력이 좋은 사람은 왠지 나를 속일 것 같고(나쁜 의도를 가질 것 같고), 나에게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능력이 모자라니까 이러는 것 아니야?'라며 그의 능력을 폄하하죠. 보통 무료 진료라는 좋은 의도를 가진 의사보다는 비싼 진료비를 요구하는 의사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더 높게 평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의도'와 '능력' 사이에는 연관관계가 아주 적습니다. 독립적인 개념이죠.

그렇다면 능력과 함께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뢰해도 좋을까요? 이 두 개의 요소만 가지고는 아직 부족합니다. '우연'이라는 요소도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능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해도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계속 유지할지 확신할 수 없죠. 중요한 일을 같이 처리하려고 모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상대방이 중간에 교통사고를 내서 약속을 펑크낸다면 약하지만 신뢰에 금이 갑니다.

물론 불가항력이고 나와 상대방이 오랫동안 만날 사이라면 한두 번의 실수는 신뢰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우연히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쪽으로 판단이 쏠리게 됩니다. 우연이란 요소는 비즈니스에서 자주 벌어지는 '1회성 거래'에는 치명적인 영향이 끼치기도 하죠.

예를 들어 능력이 있고 고객을 위하는 마음(의도)도 충만한 어느 컨설턴트가 클라이언트 앞에서 제안서 발표를 하는데 가져온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나서 PT가 잠시 공전된다면 비록 그 컨설턴트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신뢰도가 떨어지는 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우연이란 개념을 통계에서 말하는 '편차'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가지고 신뢰도를 측정하는 방정식을 만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뢰도(%) = 의도 * 능력 * (100 - 우연)

각각 0부터 100까지의 퍼센테이지로 판단한 후 곱하면 상대방의 신뢰도가 산출되겠죠.  예컨대 의도가  90%, 능력이 50%, 우연이 10%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뢰도(%) = 90% * 50% * (100 - 10)%  = 약 40%

상대방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데 꼭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신뢰도를 평가해야 할 급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각 요소를 퍼센테이지로 계량화하는 일도 사실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정성적으로 판단해서 대략의 수치를 정해야 하죠. 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두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무턱대고 누군가의 신뢰도를 막연히 평가하는 것보다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놓고 차분하게 신뢰의 방정식의 해(解)를 구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것 말고, 상대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내가 무언가를 함으로써 신뢰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 이상을 변화시켜서 상대방의 신뢰도를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의도', '능력', '우연' 중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연'은 상대방도 나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변수입니다(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 '우연'을 컨트롤할 수 있기는 합니다). 신뢰도의 요소 중 '의도', '능력'은 상대방이 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선한 의도를 가지게 만들려면 그에게 돈(급여나 계약금 등)이라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평소 칭찬과 인정이라는 비금전적 인센티브를 활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능력 제고'에 내가 관여하는 상사나 동료의 입장이라면 그에게 교육을 시킴으로써 신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향상된 상대방의 신뢰도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신뢰감 형성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겠죠.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 인간관계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이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신뢰를 하위요소로 나눠 생각하는 것이 왠지 '환원적'인 듯해서 마뜩치 않을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 서로 상대방의 신뢰도를 올바르게 측정함으로써 쌍방이 기존에 쌓아둔 신뢰라는 자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상대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 보는 단초를 제공하기에 유용한 개념입니다. 신뢰의 방정식을 가슴에 담아 두세요. '신뢰 자산'이 복리 이자처럼 불어나지 않을까요?

(* 참고도서 : '머니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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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보다 보온병이 더 좋다   

2011. 3.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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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안 쿠베라는 실험경제학자는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높은 보수를 받으면 그만큼 열심히 일을 할 거라는 통념이 과연 옳은지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3시간 동안 도서 목록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광고를 내고 학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여담인데, 심리학자나 경제학자들은 피실험자로 학생들을 자주 선택하죠. '구하기' 쉬워서 그런 모양입니다. 어쨋든...



쿠베가 광고에서 학생들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시간당 12유로였습니다. 그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학생들을 무작위로 세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광고에서 약속한 금액대로 급여를 지급(3시간 동안 일하니 모두 36유로를 지급)하겠다고 말한 반면,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바로 학생들에게 7유로를 더 주기로 한 것이죠. "여러분에게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일이 끝나면 7유로를 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왜 당초 약속한 금액보다 20%나 더 많은 돈을 주는지 이유를 분명하게 알렸습니다.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뜻밖의 선물'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7유로에 해당하는 보온병을 역시 "감사의 표시로" 주기로 했죠. 이 세 그룹의 학생들 중 어느 그룹이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을까요? 뜻밖의 선물이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요?

7유로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두 번째 그룹은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처음에만 반짝하다가 결국 생산성이 비슷해졌죠. 20%나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생산성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 셈입니다. 반면, 보온병이라는 선물을 받기로 한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다른 그룹보다 30%나 큰 생산성을 나타냈습니다. 게다가 높은 생산성은 3시간 내내 계속됐다고 합니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금전적인 보상이 별로 효과가 적다는 뜻일까요? 물론 이 실험은 일회성인 아르바이트 업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고용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기업에 바로 투영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기업의 경우에 높은 보수를 받은 직원들이 계속 엻심히 일하면 이후에도 연봉이 오르고 승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그래서 금전적 보상은 효과가 없다고 쉽게 단정지을 순 없습니다.

쿠베의 실험으로부터 우리가 채택 가능한 시사점은 비금전적인 보상이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는 점입니다. 뜻밖의 선물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가가 중요하다는 점도 느끼게 하죠. 7유로의 돈과 7유로 짜리 보온병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활용가치가 클까요? 당연히 7유로의 돈이 큽니다. 보온병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물이죠.

하지만 보온병이란 선물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나를 고용하는 사람이 내게 선물을 하는 의도'를 선(善)하게 느끼도록 하는 효과가 현금보다는 훨씬 큽니다. 선물을 하기 위해 뭔가 고심을 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죠. 즉 보온병이 현금보다는 '왜 나에게 남들보다 좋은 보상을 해주는가?'란 의문에 더 충분한 답을 주는 셈입니다.

쿠베의 실험이 금전적 보상의 '효과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앞에서 말했지만, 돈을 많이 주면 성과가 높아진다는 생각은 반만 옳습니다. 높은 급여가 오히려 생산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회사가 원체 급여 수준이 다른 기업보다 높을 때, 회사가 원칙을 가지고 직원들의 기여에 응당한 보상을 한다기보다 시장 임금 수준이나 노조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피동적으로 급여를 인상할 때는 금전적 보상이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과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회사로부터 배려 받고 있다', '내 성과가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다'란 메세지를 직원들에게 주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죠. 효과가 있어도 처음에만 '반짝'하고 맙니다. 그런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하려면 비금전적 보상을 함께 구사해야 합니다. 비금전적 보상이라 해도 예상 가능해서는 효과가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근속년수를 바탕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비금전적 보상은 직원들로 하여금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돈만 낭비할 가능성이 큽니다. 성과가 나타날 때마다 예상 밖의 작은 선물을 해야 효과가 더 크죠.

여러분의 회사는 지금 어떤 보상을 채택하고 있습니까? 금전적 보상이 큽니까, 아니면 비금전적 보상 큽니까? 무엇이 됐든 직원들 사이에 '이런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해'라는 생각이 만연하다면 비용만 낭비하는 꼴일지 모릅니다. 예상치 못한 작은 비금전적 보상을 통해 '나는 존중 받고 있다'란 느낌을 줄 때 직원들의 가슴에 동기가 차오르기 시작하니까요.

(*참고도서 : '머니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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