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새와 배부른 새, 누가 공격적일까?   

2011. 1.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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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속에 배고픈 새와 배부른 새가 각각 한 마리씩 있습니다. 두 마리의 새에게 생전 처음 보는 먹이를 던져 주면 둘 중에 누가 먼저 쪼아댈까요? 아마 여러분은 배고픈 새라고 생각하겠지만, 정답은 배부른 새입니다. 오랫동안 굶주린 새들은 배고픔을 이기려고 아무 먹이나 쪼아댈 것 같지만, 먹이를 선택하는 데에 매우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배고픈 새들은 이상하게 보이는 먹이를 본능적으로 피합니다. 기력도 허약한데 이상한 먹이를 먹었다가 치명적인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배부른 새들은 매우 과감하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배가 불렀기 때문에 맛있는 먹이만 골라 먹을 것 같지만,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새로운 먹이를 찾아 다니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와 같이 환경이 우호적이면 공격적으로 변하고, 반대로 환경이 좋지 않으면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게 동물들의 생태적인 특징입니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는 환경의 변화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수치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자신감, 공격성, 대담성, 그리고 심지어는 광기를 유발하는 호르몬입니다. 다른 무리를 이루는 붉은원숭이들은 서로 서식지가 겹치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먹이와 암컷들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결국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제압하면서 서식지를 독차지하게 되고 두 집단은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런데 현장을 관찰하던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패배한 원숭이들은 예전보다 적게 싸움을 벌이고 유순해진 반면, 승리한 원숭이들은 예전보다 더 포악한 행동을 나타냈기 때문이죠.

연구자들은 양측 원숭이들을 포획해서 호르몬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조사해 봤습니다. 그 결과, 승리한 원숭이들에게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게 상승했지만, 패배한 원숭이에게서는 수치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서식 환경이 갑작스럽게 개선(예 : 서식지를 독차지)되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촉진되고, 분비된 테스토스테론이 원숭이로 하여금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강화하게 만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동물들만 그런 게 아니라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이 열악해지면 매우 보수적으로 변하고, 내외부 환경이 좋아지면 상당히 공격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엔론’입니다. 엔론은 한때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회사이고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었지만, 알다시피 분식회계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회사가 잘 나가다보니 경영진들은 자신감에 차서 보다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공격성은 공격적인 경영을 더욱 강화하는 '포지티브 피드백' 현상을 보였습니다. 회사의 공격적인 경영 방식은 공격적인 성향의 직원들이 더 많이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전체적으로 엔론의 조직문화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유지'된 탓에 분식회계 쯤이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질러 버린 겁니다. 엔론이 몰락하기 바로 직전에 호르몬 수치를 재봤다면, 아마 구성원 전체의 테스토스테론가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이지만 여성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대부분 남성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환원주의적 생각이지만) 구성원 각자의 테스토스테론 상승은 조직의 문화와 의사결정의 성향 등을 공격적으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인자(因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배고픈 새들은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 역시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이런 상황을 역발상적으로 타파하겠다는 취지로 '공격경영'이란 기치를 내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공격적이지 않고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급조된 전략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열악한 상황과 환경이 조직 구성원 전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보신주의와 무력감이 조직을 장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워진 전략들은 말만 공격경영입니다. 그저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좀더 열심히 하자'라는 식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나빠진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진짜 공격경영'을 성공시키려면, 전략보다는 일단 구성원들이 활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력감을 탈피하고 동기부여가 되어야 좋은 전략이 나오고 실행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이란 호르몬은 공격성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만감에 빠지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역사를 호령했던 수많은 강대국이 몰락한 근본적인 이유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부적인 ‘나태함’ 때문이었습니다. 기원전 3천년 당시 이집트는 사방 600마일에 이르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풍요롭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지요. 하지만 풍요는 안정을, 안정은 나태를 낳았으며, 미개한 민족이라 무시해 온 힉소스인들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경계해야 합니다. 조직이 잘 나갈 때 공격적으로 과감하게 내리는 의사결정이 자칫 여러분의 기업을 몰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호르몬 변화를 주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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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힘들고 불편한 이유   

2011. 1.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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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인사평가가 끝난 회사도 있고 이제 평가를 시작하는 회사도 있을 겁니다. 평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피평가자(부하직원)들의 불만 중 하나는 평가자(상사)가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 없이 주관적인 관점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의를 제기할 겨를 없이 평가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행도 불만을 키우는 주범이죠.

이런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평가 결과를 한 자리에 모여 '합의'하는 절차를 운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절차를 진행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가 아주 어색해 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평가자는 피평가자에게 자신의 평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피평가자는 자기평가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죠.



합의하는 자리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서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이 오갈 수 있고, 피평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가가 관대해질 수 있으며, 합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평가자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되어버린다는, 새로운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 잘 해보자는 제도가 구성원들의 불화를 야기하는 불씨라고 공격 받기도 하죠. 그래서 평가 합의 절차는 없던 것으로 하고 과거의 '밀실 평가'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평가 결과를 합의하고 타협하는 걸 불편해 하고 두려워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합의를 어려워하는 걸까요?

에릭 와이너는 "서구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 버리려고 애쓴다"고 말합니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를 보면 탑승자 각각이 자신에 맞는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자동차 실내의 적정온도도 서로 타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각자 알아서 조절하도록 만든 것이죠. 주위를 살펴보면 점차 이런 물건들이 많아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이 강조되면서 하나의 물건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취향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에릭 와이너는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놓고 타협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로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될까?"라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타협은 기술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한다"고 덧붙입니다. 개인화된 편안한 생활 뒤에 숨은 비용이 생각보다 큼을 경고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가 합의 절차가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새로운 불만을 없애려고 '평가지표'를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제도 개선의 방향을 잡는 것, 바로 이것이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내는 평가지표만 잘 구축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나 평가 결과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미시적으로 분석해서 '개인화'된 평가지표를 만들면 타협과 합의와 같이 불편한 과정 없이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화된 물건들과 서비스가 넘쳐나면서 평가제도도 그렇게 개인화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된 건 아닐까요?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타협이 힘들고 불편하다고 해서 제도가 개인적으로 치달으면 우리는 타협과 합의의 기술을 잊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개인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겠죠.

타협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중요한 절차로서 매우 소중한 기술입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해서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쪽으로 제도가 설계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용차에 탄 서너 명의 승객이 "조금 더우니 온도를 낮추자"라는 아주 간단한 타협의 필요조차 없도록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설치하는 비용,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클지 모릅니다.

(*참고도서 :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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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불씨를 살려라   

2011. 1.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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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변화에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변화의 시작과 지향점을 알리는 일은 리더들의 의무이자 권한이죠. 그렇지만 리더들이 지금까지의 관행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의지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그것에 따라와 주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주저 앉아 버릴 겁니다. 변화는 항상 저항을 동반하기 마련이라서 직원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고의 관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업의 변화는 요원합니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해야 발화(發火)되는 걸까요? 기업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인식하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조직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발발하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성공적인 변화관리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물의 진화가 긴 정체기를 거치며 끊어졌다가 갑자기 다시 이어진다는 ‘단속(斷續)평형론’을 주장합니다. 진화는 작은 변화가 꾸준히 누적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는 뇌의 크기 변화를 예로 듭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진적으로뇌의 크기가 커진 게 아니라, 뇌의 크기가 몇 세대 동안은 정체됐다가 어느 세대에 이르러 누적된 진화의 힘을 폭발시켜 갑자기 빠르게 성장했다는 겁니다.

단속평형론은 던컨 와츠가 밝혀낸 '좁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좁은 세상 효과란 그물코처럼 매우 질서 정연한 네트워크에 몇 개의 지름길을 무작위하게 추가하면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경로의 길이가 갑작스럽게 짧아짐을 일컫는 말입니다.

생태계는 수많은 종과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복잡한 네트워크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들은 현 시점에서 가장 최적화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이가 부족해지고 기후마저 척박해지기 시작하면, 즉 환경이 개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면 '부적응 모드'에 돌입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런 압력을 '선택압'이라고 부르는데, 선택압은 기존의 최적화된 네트워크에 새로운 지름길을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지름길이란 개체가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죠. 적응의 과정에서 처음에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다가 지름길의 수가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진화의 네트워트에 좁은 세상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굴드가 단속평형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진화가 '창발(創發)'합니다.

진화가 점진적이지 않고 갑작스럽게 어느 순간에 나타나듯이(물론 굴드의 단속평형론이 옳다는 가정 하에서입니다), 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생태계처럼 기업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 얽힌 네트워크이고 '경쟁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변화는 점진적이지 않고 어느 '문턱'을 넘으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조직의 변화를 창발적으로 일으켜야 할까요? 알다시피 수소(H2)와 산소(O2)가 결합하면 물(H2O)이 됩니다. 화학 반응식은 아주 간단하지만, 수소와 산소를 밀폐된 용기 안에 넣고 마구 뒤섞는다고 해서 물이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물이 만들어지려면 수소 분자는 수소 원자로, 산소 분자는 산소 원자로 분리돼야 하는데, 수소와 산소는 그 자체가 안정적인 물질이라 결합을 풀려하지 않습니다. 결합을 풀려면 에너지가 반드시 가해져야 하는데 이를 ‘활성화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려면 활성화 에너지라는 문턱을 넘어야만 합니다. 이를 기업에 대입하면 활성화에너지는 변화에 저항하려는 직원들의 사고, 관행,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걸 넘어서야 조직의 변화가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죠.

조직의 변화라는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려면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많은 기업이 비전과 전략을 요란하게 수립해 놓고서도 변화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중단되는 이유는 바로 변화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뜬구름 잡는' 목표는 직원들에게 아무런 지침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촉매라는 물질을 사용하듯이 변화의 촉매 역할을 맡을 사람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을 변화주도자(change agent)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직원들이 가진 저항감을 해제시키고 변화의 필요성과 이득을 쉬운 말로 이해시킨다면 변화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의심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자율권을 부여한다면, 변화를 좀더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조직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에서 아래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반짝 효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 많은 저항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직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수시로 전달해서 어느 순간 임계점에 이르러 변화가 창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변화의 불씨를 살아나게 하는 경영의 '중용'입니다.

신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행복이 가득한 2011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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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지향, 소식소식(少食少式)   

2010. 12.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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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0년이 하루가 채 남지 않은 시간입니다. 알다시피 유별하게도 2010년엔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 사건이 많았던 해였습니다. 그 때문에 저도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웠던 적도 있었고 마음을 졸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9년보다 2010년이 한결 나은 해였습니다. 2009년의 시장 상황이 워낙 안 좋았던 탓이었을지 모르지만, 2010년엔 컨설팅 사업이 그런대로 원활하게 돌아가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바라지도 않았지만) Daum View 블로거대상대한민국 블로그어워드의 후보로 처음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4년 째에 접어든 블로그 활동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좋은 신호라고 간주해도 되겠죠.


틈틈이 책을 써서 곧 출간(1월말)될 예정입니다. 문제해결에 관한 책인데 정본(定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겠지만 문제해결 분야의 기본 텍스트로 읽혀지도록 나름 신중을 기한 책입니다. 그러나 원고를 보내놓고 나니 눈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자꾸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아무쪼록 저의 전작들보다는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벽두에 제가 정한 지향점은 '행불유경(行不由經)'이었습니다. '지름길이나 뒤안길로 가지 않고 큰길로만 다닌다'란 뜻을 지닌 사자성어죠. 행불유경의 마음으로 살았는지 2010년을 되돌아 봅니다. 늘 그렇지만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많이 남습니다.

2011년에 제가 정한 지향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소식소식(少食少式)

이 말은 고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사자성어입니다.

앞의 소식(少食)은 말 그대로 밥을 적게 먹는다는 뜻입니다. 상당히 형이하학적인 목표죠? 나이가 들면서 신진대사가 떨어지는데 식사량은 그대로니 몸에 부담이 됩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2011년엔 양보다 질 위주의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감량도 할 생각입니다. 목표는 7kg입니다.

뒤의 소식(少式)은 올바른 조어(造語)인지는 모르지만 '형식적인 일을 줄이고 경계하자'라는 뜻으로 정한 두 번째 지향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대개 보수적으로 변합니다. 여기서 보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변화에 저항하고 변화를 기피하려는 성향을 뜻합니다.

보수주의와 형식주의는 형제지간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형식주의에 천착하는 경향을 지닙니다. 형식의 완고한 틀 안에 변화의 꿈틀거림을 잡아넣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런 '옹고집'은 신체의 느려진 신진대사 속도 때문일지 모릅니다. 신진대사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는 변화의 속도가 부담스러워 형식이라는 과속방지턱을 곳곳에 세우는 것일 테니까요(보수성과 나이가 정(正)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요).

간단히 말하면, 소식(少食)으로 느려지는 신진대사에 보조를 맞추고, 소식(少式)으로는 느려지는 신진대사에 저항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이 먹었다는 '티'를 너무 내는 것 같군요(저는 아직 젊답니다 ^^). 2011년 말이 되어 소식소식(少食少式)을 잘 지켰노라고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消息)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만 지나면 2011년의 붉은 태양이 솟아 오릅니다. 하지만 아직 2011년의 지향점을 정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2010년의 마지막 날, 여러분에 손엔 어떤 사자성어가 쥐어질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지향점 네 자를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공유해 주길 바랍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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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가 주인을 조종한다고?   

2010. 12.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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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영화 '아바타'에는 캡슐 속에 들어간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아바타가 나옵니다. 주인이 캡슐 속을 빠져나오면 의식을 잃어버리고 쓰러지기 때문에 아바타는 주인 없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유기체 덩어리'라고 불러도 될 존재죠. 오직 주인만이 아바타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바타는 주인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자들은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가상세계를 사용하여 이러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평범하게 생긴 것부터 매력적인 것까지 아바타를 하나씩 배정했습니다. 참가자의 실제 매력과는 상관없이 무작위로 아바타를 나눠준 것이죠.



그랬더니 매력적인 아바타를 가진 참가자는 평범한 아바타를 받은 참가자보다 가상세계에서 다른 사람(가상의)들과 친근한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비록 가상세계지만 좀더 자신있게 말하고 스스럼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죠. 실제로 그 참가자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가상세계에서 자신이 부여 받은 아바타의 매력도에 상응하는 행동을 나타낸 겁니다. 바로 주인이 아바타로부터 거꾸로 통제 받을 수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

그러한 증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최후통첩 게임'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게임의 룰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 게임에는 두 사람이 참가합니다. 게임을 통제하는 실험자는 첫번째 사람에게 100 달러를 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하죠. "저 사람에게 100 달러 중 얼마를 줄지를 제안하라. 만약 그사람이 제안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물론 당신은 한푼도 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첫번째 사람이 100 달러 중에 자신은 70 달러를 갖고 나머지 30 달러를 두번째 사람에게 제안한 후에 두번째 사람이 그걸 수용하면 각각 70 달러, 30 달러의 돈을 벌게 됩니다. 만약 두번째 사람이 거절하면 둘다 한푼도 벌지 못하는 것이죠. 첫번째 사람은 자신이 100 달러를 몽땅 갖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0 달러를 제안(?) 받는 두번째 사람이 그걸 거절하면 100 달러는커녕 한푼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사람에게 0 달러보다는 큰 금액을 주겠다고 제안해야 거절 당할 위험이 적겠죠.

첫번째 사람이 두번째 사람에게 1 달러를 주겠다(자신은 99 달러를 갖고)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학적으로 보면, 두번째 사람은 첫번째 사람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해야 합니다. 1 달러라도 버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1 달러를 제안 받으면 감히 자신에게 그런 푼돈을 제안한 첫번째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서 '거절'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사람은 두번째 사람에게 얼마를 제안해야 자신이 최대의 돈을 벌게 되는지 고민에 빠지죠. 이것이 최후통첩 게임의 내용입니다.

다시 아바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엔 아바타의 키를 달리 해서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배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키가 큰 아바타를 소유한 자에게 최후통첩 게임의  첫번째 사람의 역할을 맡도록 하면, 평균적으로 자신은 61달러를 갖고 두번째 사람에겐 39 달러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키가 작은 아바타를 가진 자는 자신이 52달러, 두번째 사람에겐 48 달러를 제안했습니다.

이번엔 반대로, 두번째 사람의 역할(첫번째 사람에게 제안을 받는 역할)을 참가자들에게 맡겨 보았습니다. 그리고 100 달러를 75 대 25로 나누자는 제안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키가 큰 아바타 소유자들의 38%만 이 제안을 수용했고, 키가 작은 아바타 소유자들은 72%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나죠? 키가 큰 아바타를 가졌다는 사실이 좀더 이기적으로 변모를 시킨 걸까요, 아니면 자신감을 높여준 걸까요? 혹은 자신에게 돈을 적게 주는 사람을 응징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커진 걸까요? 아마 해석하기 나름일 겁니다.

지금까지는 아바타의 매력이 가상세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영향을 현실세계에까지 이어집니다. 가상세계에서 매력적인 아바타를 받았던 사람에게 예쁘고 멋진 이성의 사진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과 데이트를 할 거라고 믿는 비율이 상대적으로(평범한 아바타를 받았던 사람들에 비해) 높았다고 합니다. 가상세계에서의 매력을 현실세계에 투영시킨 셈이죠.

이와 같은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1차적으로 이 실험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아바타가 부여되냐에 따라 자신감이나 이기심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의미는 현실세계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주제가 가상세계에서는 아주 자유롭게 수행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상세계를 통한 실험 결과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벌어질 현상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외모의 변화가 행동과 자존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현실세계에서 실험을 하려면 성형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외모나 체격으로 변모시키기 어렵습니다. 가상세계는 이를 가능케 하죠. 아바타 실험 이외에, 질병이 사람들 사이에 어떤 패턴으로 퍼져 나가는지, 기업과 같은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지, 개인들의 약한 유대감이 네트워크(인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주제도 가상세계에서 컴퓨터를 활용하여 얼마든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의 연구를 사회물리학(sociophysics)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 사회학과 물리학을 결합시킨 학문이죠.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로 간주하고 간단한 몇 개의 로직을 부여한 후에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지 살펴보는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지난 번에 포스팅한 '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와 '팀의 강한 결속을 깨뜨려라'라는 글은 사회물리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글이죠(이 글에서 소개한 아바타 실험은 엄밀히 말해 사회물리학이라고 볼 수 없을지 모르겠네요).

요즘 경영학은 답보 상태입니다. 새로운 발견이나 제안이 거의 없습니다. 혹자는 성공한 경영자가 왜 성공했는지를 알려면 경영학자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경영자 자신은 모른다는 소리죠. 이처럼 경영학이란 앞에서 기업들을 끌고가는 학문이 아니라 기업들의 뒤를 따라가며 정리만 해주는 학문이라고 폄하됩니다.

경영학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 사회물리학적 연구 방법을 채용하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사회물리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면 지금까지 가설이나 철학을 근거로 도입된 제도들이 과연 조직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적절한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조직관리나 성과관리 등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지 모릅니다.

학문의 새로운 세계는 학문 스스로 벽을 깨고 밖으로 나갈 때에야 발견됩니다. 이제는 벽 안에서 깊게 파고드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다른 학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이 때로는 '자기부정'의 과정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고통 속에서 뛰어난 통찰이 얻어집니다. '아바타'가 주인을 조종한다는 것, 껍질을 깨지 않았으면 발견되지 않을 통찰입니다.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경영학이 시급히 채용해야 할 통찰의 기술입니다.

(*참고도서 : '행복은 전염된다', '사회적 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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