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뭐가 좋은가?   

2011. 1. 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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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평가하는 방식을 정할 때 항상 고민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절대평가가 좋은가, 아니면 상대평가가 좋은가'하는 문제죠. 아마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평가 방식을 결정할 때 이런 고민을 분명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모두 장단점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죠.

알다시피 절대평가는 직원 한 사람을 놓고 그가 정해진 목표나 기대하는 역량 수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팀원들이 다 목표를 달성했다면 그들에게 모두 높은 평가등급을 매길 수 있죠. 반면에 상대평가는 목표나 기대수준에 얼마나 도달했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팀원들이 다 목표를 달성해도 반드시 1등과 꼴찌로 서열을 매기죠.



평가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상대평가 방식을 채용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회사도 그럴 겁니다. 물론 상사가 부하직원을 평가할 때는 절대평가 방식을 쓴다고 말로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 연봉 인상률을 정하거나 성과급 지급액을 결정할 때는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을 적용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거리가 꼭 붙습니다.

상대평가는 단점이 매우 많습니다. 우선, 상대평가는 성과를 왜곡합니다. 어떤 팀에 소속된 팀원들이 모두 역량이 뛰어나도 그 중 몇 명에겐 '일못하는 직원'이란 꼬리표가 붙습니다. 반면 역량이 저조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팀에서는 객관적으로 봐도 별볼일 없는 직원이 '일잘하는 직원'이라는 부당한 횡재를 누리죠.

또한 상대평가는 직원들의 협력을 깨뜨리는 촉매(?)로 작용합니다. 상대평가는 같은 부서(또는 같은 사업부)에 속한 동료들을 누르고 올라가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줍니다. 말이 동료지 그들은 모두 '나의 경쟁자'가 되어 버리죠. 거의 모든 기업의 업무 특성상 직원들 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이 필요하지만, 동료를 도와주면 자칫 '나의 상대점수'가 하락할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내 할일'만 하는 게 최고라는 인식을 직원들에게 강하게 심어주고 말죠.

다시 말해, 상대평가는 내부경쟁을 부추기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직원들의 경쟁을 가속시키는 게 무슨 잘못이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직원들의 경쟁은 성과 창출의 동기를 극대화시킨다'란 '경쟁주의적 철학'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달리기를 할 때 혼자 달리는 것보다는 경쟁자와 함께 뛰어야 기록이 잘 나오니 말입니다.

그러나 달리기는 개인이 혼자 모든 것을 관장하고 결정 내릴 수 있는 운동입니다. 옆 줄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과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경쟁은 상호의존도가 낮을 때만 유용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회사가 크든 작든 다른 직원의 직간접적인 도움 없이 전적으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거의 없을 겁니다.

어떤 직원이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도 그건 그 직원 혼자만의 업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이미 업무와 업무, 직원과 직원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입니다. 현실이 이러한데, 개인들의 성과를 무 자르듯 구분하고 1등과 꼴찌를 가리겠다는 발상은 매우 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입니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직원들 간의 끈끈한 동료의식과 협동심을 깨뜨리기 때문이죠.

결국 상대평가는 조직의 경쟁력을 약화시킵니다. 내부경쟁을 부추겨서 직원들의 협력이 사라지고 이기주의가 판을 칩니다. 일 잘하는 직원은 점차 일할 동기를 잃어버리거나(그래서 무임승차자가 되어 버리거나) 회사를 나가 버립니다. 일 못하는 직원들은 상대평가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 잘하는 직원인 듯 자신을 포장하는, 기회주의적인 무임승차자로 남습니다.

"상대평가를 하지 말라는 소리 같은데, 그러면 직원들의 연봉과 성과급은 어떻게 결정하란 말인가요?"란 질문이 생깁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래도 상대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상대평가를 해서 직원들의 연봉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효과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의 크기를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고작 차등 보상을 위한 수단으로 상대평가를 채용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이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절대평가는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을까요? 물론 절대평가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을 달성하기로 약속했는데 시장환경이 좋지 않아서 5밖에 달성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1년 내내 고생을 했더라도 인정 받지 못합니다. 섭섭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죠. 반대로 시장이 좋아 20을 달성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두둑한 성과급을 받아가겠죠. 이렇듯 절대평가에는 직원 자신이 콘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성과가 좌우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평가보다 덜하지만 절대평가도 내부경쟁을 독려하는 터라 직원 간, 부서 간의 협력을 깨뜨립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나 기대수준을 달성하려면 옆에서 도움을 청하는 동료를 가능한 한 무시하고 오직 그것만 보고 달려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소위 '잘 나가는' 부서에 배치되면 높은 보상을 받, 매번 죽을 쑤는 부서(또는 일이 힘든 부서)에 배치되면 일 잘하는 직원이라도 적게 보상 받을 수 없는 불합리함도 상대평가와 마찬가지로 불거집니다. 인사부서에 로비를 잘 하느냐, 얼마나 목소리를 크게 내느냐에만 신경 쓸 가능성이 크죠.

이쯤에서 여러분은 "상대평가도 문제, 절대평가도 문제라면 도대체 평가를 하란 소리요, 하지 말란 소리요?"라는 생각을 가질 겁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은 이렇습니다. 평가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절대평가로 해야 하며, 절대평가로 한다 해도 차등 보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가의 목적은 직원들에게 비전/전략 달성의 방향을 가이드함으로써 비전/전략 달성에 직원들을 몰입시키는 데 있습니다. '최고의 품질 달성'이라는 회사의 목표를 개인 단위로 끌어내려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지표로 설정하고, 직원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측정함으로써 목표에 차츰 다가서기 위함이 평가의 본래 목적입니다. 누가 일 잘하고 일 못하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습니다. 얼마나 차등 보상해야 하는지는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별이든 사업 단위별이든 모든 '차등 보상'은 상대평가를 반드시 수반할 수밖에 없고 위에서 말한 온갖 폐해를 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등 보상을 폐기하거나 극소화하고, 대신에 회사 전체의 잉여 성과를 직원들이 골고루 나눠 갖는 방식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부경쟁이라는 '제로섬 게임'에 빠지지 않고 경쟁사와의 외부경쟁에 직원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다. 경쟁은 외부(타사)를 향해야지 결코 내부를 향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내부경쟁을 없애고 회사 전체의 성과를 공평하게 공유한다는 생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이유는 바로 무임승차자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 무임승차자는 '언제 어디서나' 생기기 마련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평가 결과를 개인별로 차등 보상하는 데 활용하면 오히려 무임승차자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그들은 필요악이죠.

그들에게 부당하게 지출되는 비용이 아깝다고 해서 내부경쟁을 가속한다면(특히 상대평가를 통해), 더 큰 비용이 발생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경쟁력 약화를 야기할지 모릅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직원 모두를 동참시키고 협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무임승차자는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남성 의류 유통업체인 '더 멘즈 웨어하우스'란 회사는 판매원 중에 누군가가 독보적으로 높은 매출을 달성하면 그에게 경고를 줍니다. 그가 동료들에게 갈 고객들을 나누지 않고 독차지한다고 해석하기 때문이죠. 그가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혼자만 높은 성과를 올리면 그를 해고한다고 합니다. 일반 회사와 정반대의 조치죠?

이 회사는 이렇듯 협력을 추구하는 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확고합니다. 직원들 간의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면 조직의 성과가 좋지 않으리라 예상하겠지만, 혼자서 높은 매출을 올린 판매원을 내보내니 오히려 매장 전체의 성과는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개인평가든 조직평다든, 평가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가가 내부경쟁을 부추기고 협력과 상호작용을 저해하는 주범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를, 개인 성과보다는 조직 전체의 성과를, 금전적 보상보다는 성공 경험을, 내부경쟁보다는 외부경쟁을,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성과를 추구하는 데 힘을 모아야합니다.


(*참고도서 :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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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암소'를 쫓아내라   

2011. 1.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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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관찰한 어느 회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회사는 부사장 이상만 되면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지급했습니다. 부사장 이상의 임원들에게 운전기사가 모는 차 한 대를 지급하는 게 별것 아닌 듯 하지만, 문제는 그런 부사장들이 회사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60명이 될까 말까한 회사에 부사장 이상의 임원들이 10명이 넘었으니 말입니다. 운전기사의 수도 10명이 넘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회사의 성과가 좋다면야 그러한 호사가 용납되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 회사의 재무 상태는 그저 그런 수준을 넘어서 악화되기 직전이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습니다. 불요불급한 비용 지출이 지나치게 많은 탓에 순이익은 손익계산서에 나타내기 민망한 수준이었죠.



실무자들이 재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궁리하던 끝에 운전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의전용' 승용차의 운영 비용이 언급되었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그 금액이 작은 조직에서 감당할 만한 비용의 수준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동종업계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예우라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비용 항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자마자 어디선가 "그것은 건드릴 수 없다"라는 반론이 단호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운전기사와 의전 승용차 관련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가 소위 '높으신 분'들에게 엄청난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삭감해야 합니다"라며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기에 임원 예우 비용을 삭감하자는 이야기는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결국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비용(예를 들어 소모품비나 여비 등)의 지출을 줄이거나 없애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불요불급한 비용을 없애자는 애초의 의지가 뱀 꼬리처럼 초라해지고 말았던 겁니다.

임원 예우 비용과 같이 감히 건드리기 어려운 대상을 '신성한 암소'라고 부릅니다. 인도에서는 길 한 가운데에 드러누운 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자동차나 사람들이 그 소를 건드리지 않고 돌아서가거나 소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고 하죠. 그만큼 인도에서 소는 신성시되는 동물입니다. 특히 암소는 더욱 귀하게 대접받죠.

'신성한 암소'는 조직 내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불가침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문제인 줄 알면서도 고쳐야 한다고 용기 있게 제안하지 못하는 대상이 여러분의 회사 내에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하리라 짐작됩니다. 위계 때문에, 정리(情理) 때문에, 혹은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어'라고 말하는 오랜 전통 때문에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시되는 그 무엇이 분명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회의 공간은 부족한데 열 명 이상은 족히 들어갈 널찍한 방을 임원 혼자 차지하는, 공간 활용의 비효율이 뻔히 보여도 그걸 지적할 용기를 갖기 어렵겠죠. 제가 만난 어떤 분의 말처럼, 쓰지도 않는 고리짝 같은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느라 죽을 맛이라도 상사가 옛날에 그 시스템을 만들어서 승진했다면 "그 시스템을 폐기하자"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상사의 업적을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죠.

사설 교환기를 생산하는 '미텔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는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D 직원들 450명이 모여 3일 동안 강도 높은 워크숍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71페이지에 달하는 '신성한 암소 목록'을 작성하고 그 암소들을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논의를 진행하며 곧바로 실행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스테이크 파티'로 성공적인 워크숍을 자축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경영자와 직원들이 함께 모여 '신성한 암소 몰아내기' 워크숍을 한번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기득권을 내놔야 하는, 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겠죠. 기업이라는 조직의 지향은 개인의 기득권 보호가 아니라 미션이라는 점을 모두가 수용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신성한 암소는 인도에서만 존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가야할 길에 길게 드러누운 신성한 암소가 있다면 돌아가지 말고 얼른 쫓아버리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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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말하고도 답을 모르는 이유   

2011. 1.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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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잠깐 TV에서 '꽃다발'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처음 봐서 모르겠지만 여러 출연자가 게임을 하면서 퀴즈를 맞히는 프로그램인 듯 했습니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보던 중에 하나의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사회자(개그맨 정형돈)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우울증 치료에 탁월하고, 폐암 환자의 5년 후 생존확률을 2배나 높여주는 것으로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출연자들이 문제를 듣자마자 서로 자기가 답을 말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더군요. 저도 답이 무엇일까, 궁금했답니다. '대체 하늘이 내린 선물이 뭘까?'



사회자는 가수 유채영에게 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유채영은 특유의 목소리로 "음...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면 바로....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란...... 파?"라고 대답하더군요. 사회자는 대답을 듣자마자 '땡!'을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아, 바로 답 근처까지 왔는데...."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졌습니다. 유채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내가 뭐라고 말했지?"라며 방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답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햇빛을 받고 자란.....파"라고 말했음을 기억해 내고도 정답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사회자가 "유채영 씨가 이미 답을 말했다"라고 다른 출연자들에게 힌트를 주니까 "파가 아니라 양파!", "파가 아니니까 마?"라는 대답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사회자는 "유채영 씨가 답을 수 차례 이야기했다구요!"라고 배를 부여잡으며 웃더군요. 출연자들이 왜 답을 말하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이때 저는 답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이 오답의 바다를 표류하는 동안, 유채영은 결정적 발언을 한 자격(?)으로 문제를 맞힐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가졌지만 답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떤 여자 출연자가 "햇빛!"이라고 정답을 말하고 나서야 유채영은 정답을 말해 놓고도 답을 맞히지 못한 것이 어이가 없었던지 쓰러질듯 웃음을 터뜨리더군요. 사회자들은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못 맞힐 수 있냐며 유채영을 비롯한 출연자들을 장난스레 꾸짖으면서 다음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장면은 '사고의 프레임(Frame)'을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유채영이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파"라고 말하는 순간, 하늘이 내린 선물은 바로 음식이라는 '프레임'을 출연자와 TV를 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빛의 속도로 설치했습니다. 물론 유채영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람들에게 형성된 사고의 프레임은 아주 강력했습니다. 그래서 "파가 아니라 양파", "그렇다면 마?"라는 식으로 밭에서 자란 채소류 이외의 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던 겁니다. "햇빛"이라는 단어를 말해놓고도 그게 답인지 모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여러분이 이미 정답을 알고 느긋하게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이라면(혹은 사회자의 입장이라면), 정답을 다 말해놓고도 못 맞히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고 출연자들이 바보스럽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낫을 보고도 기역자를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프레임에 한번 '갇히게' 되면, 프레임에 갇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사고를 제약하고 맙니다. 프레임 안에서 여러분의 사고는 프레임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위와 같은 퀴즈나 게임에서는 사고의 프레임을 깨뜨리기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아주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사고의 '감옥'을 설치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이지만, 그만큼 깨지기도 쉽습니다. 창의적 사고를 주제로 한 워크숍이나 강의에서 사고의 틀을 깨야만 풀 수 있는 퍼즐을 본 적이 있다면(그리고 퍼즐 풀기에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면) 퍼즐이 형성한 프레임 쯤이야 간단하게 없앨 수 있겠죠.

한번 형성되면 웬만한 공격에도 깨지지 않는 사고의 프레임들은 '느리지만 집요하고 체계적인'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통 '이론(理論)'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 시대의 주류가 될 때, 그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르죠. 이론들은 서로 경쟁하고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신자유주의와 그것과 대척점에 서있는 케인스주의 등이 그렇죠.

이런 이론들은 오랜 학습과 연구와 같이 '느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철옹성 같은 프레임을 형성하고 마침내 자신의 숙주인 인간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그러고는 이론의 틀로만 현상을 이해하게 하고, 이론과 반대되는 현상들을 예외일 뿐이라 배척케 합니다.

게다가 프레임은 이론과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맹렬하게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비록 이론이 현상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해도, 이론을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론이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할 때, 혹은 이론이 다른 차원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킬 때 우리는 그것을 '이상(理想)'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2010년의 마지막 날,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계발 전문가로 이름이 자자한 모 씨의 트윗 때문이었죠. 여기서 그의 트윗을 인용하지는 않겠으나 진보진영이 추진하는 '무상급식'을 맹렬히 비난하는 투의 트윗이었습니다. 그걸 두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들(비난하는 사람들이 제 타임라인에는 더 많았지만)들의 트윗과 RT가 세밑의 트위터를 달궜습니다.

그는 자신의 트윗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짐짓 당황했는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의 트윗을 추가로 올리더군요. 맞습니다. 그에겐 분명히 '무상급식은 나쁘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권리는 그에게는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존중 받으려면 자신의 주장에 대한 타인의 반박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가 그토록 비판 받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가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사고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상급식에 상당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그것이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를 위협하는 '빈자(貧者)'들의 아우성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내놓는 책에서 꾸준히 주장하는 생각도 그러하죠. 자신이 신봉하는 이론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교조주의적이고 편협한 사고 방식이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한 이유입니다.

어렵게 배웠고 수십 년간 외쳐온 이론이 잘못됐다고 순순히 인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고의 프레임이 자신의 숙주인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결점을 숨길 뿐만 아니라, 설령 현상을 틀리게 설명하고 반영하는 오류를 나타났다 해도 어떻게든 '삐져나온' 옷자락을 이론의 구멍 안에 쑤셔 넣게 만듭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리란 공포심도 완고한 고집에 한몫합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진정한 자기계발 전문가라면 바로 자신이 사고의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시각에 눈떠야 하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와 반대되고 신자유주의를 훼손한다 해서 현실을 외면하거나 예외로 치부하는 일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관성'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론을 천착하다 못해 그것을 범접치 못할 이상(理想)으로 떠받들며 신성(神性)을 수호하는 행위는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아닐까요?

이론이 만든 프레임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론이 있어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뭔가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고의 프레임은 맹목이란 부작용도 함께 선물합니다.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파"라고 말해 놓고 "햇빛"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론을 앞세우고 현실은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 일은 '꽃다발'의 출연자들이 밭에서 자란 채소류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것과 같죠. 곰팡내 나는 이론의 책갈피에 갇힌 그의 모습이 안쓰러운 이유입니다.

사고의 프레임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나를 지배하는 프레임이 무엇인가'라고 자문할 때 철옹성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열린 사고(open-mind)의 시작이고 바로 옆에 있는 답을 찾아내는 동력이겠죠. 그러나 이런 자문조차 부단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항상 깨어 있으려면 말입니다.

'열린'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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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겨울바다, 당일치기 강릉 여행   

2011. 1.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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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강원도 쪽에 업무상 갈 일이 있었는데, 이왕 나선 김에 가족들과 '당일치기 강릉 여행'을 겸했습니다. 한겨울의 바다도 보고, 맛있는 점심과 맛있는 커피도 먹고 싶었습니다. 사진 몇 장으로 어제의 짧은 여행을 가름해 봅니다.

2년 전에 맛있게 먹었던 전복수제비를 다시 먹고 싶어서 들른 곳. 정동진 바로 위쪽의 등명해수욕장 입구에 있습니다. 평일 낮인데도 손님이 제법 있습니다.


음식점 내부의 모습.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복수제비가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이 시원합니다 . 해물파전도 고소하죠.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등명해수욕장에 바닷바람을 쐬러 갔습니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닷물이 가슴을 뻥 뚫어줍니다. 모래밭에 쌓인 하얀 눈도 묘한 정경을 자아냅니다.


강한 바람을 타고 실려온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모래밭에 부서집니다.


등명해수욕장에서 정동진 방향으로 본 풍경입니다. 저멀리 '배가 산으로 갔다는' 썬크루즈 리조트가 보이네요. 2년 전에 저기에서 하룻밤 묵었었죠. 다시 보니 반갑네요.


사진만 보면 한여름의 파도 같습니다. 정말 푸른 빛깔입니다.


발 아래 펼쳐지는, 파도의 하얀 치맛자락.


여름이면 저 위에 인명구조요원이 썬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겠죠? 한겨울에 보는 해수욕장 풍경엔 세월의 흐름이 고여 있습니다.


정동진으로 향하는 기찻길.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는 맛도 꽤 운치 있겠죠?


등명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은 곳, '커피 보헤미안'.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찾는 곳입니다. 월/화요일은 쉰답니다.


로스팅한 커피콩을 보관하는 곳. 저기에서 바로 원두를 덜어다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뽑습니다.


커피를 볶는 로스팅룸입니다.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제가 마신 '하와이안 코나'입니다. 다른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커피인 듯해서 골라 봤습니다. 바디감이 가볍고 신맛이 납니다. 이것 말고 가장 비싼(?) '블루 마운틴'도 마셨는데, 여러 가지 맛이 풍부하고 바디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게 가히 커피의 왕이라 부를만 하더군요.


2년 전에 갔던 '카페 테라로사'와 이곳 '커피 보헤미안'을 자연스레 비교할 수밖에 없더군요. 둘다 강릉 지역에 위치한 로스팅 하우스이기 때문입니다. 두곳 모두 커피맛은 좋지만, 인테리어가 커피 하우스답고 이것저것 볼거리도 많은 테라로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커피 맛을 잘 모르는 문외한의 판단이니, 참고하지는 말아 주세요. ^^

커피를 마시고 나니 오후 3시. 저녁을 먹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인데 추운 날씨에 갈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계획상 '교동반점'이란 곳에서 저녁으로 짬뽕을 먹으려 했지만, 사정이 생겨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했습니다.

서울에서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강릉, 그곳은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 휭~하니 다녀올 만큼 겨울바다는 손에 잡힐 듯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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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11. 1.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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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 달 12월에는 모두 6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리 많은 독서량은 아니었지만, 워낙 몇몇 책들이 400~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해봅니다. ^^

12월에 읽은 책을 정리해 보니, 나름대로 다방면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래도 관심 영역이 아니거나 생소한 내용이 많은 책들은 읽어가기가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직 제 독서의 '근육'이 자라지 못한 탓이겠죠. 또한, 천천히 읽으면 될 텐데 누구에게 검사 받기라고 하는 것처럼 '권수'에 집착하는 성급함도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2011년엔 양보다는 질적인 독서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이것이 금년의 '독서 지향점'입니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이라면(하지만 읽어야 할 좋은 책이라면), 하루에 한 페이지씩만 야금야금 파들어가듯이 읽으면 되겠죠.

12월에 읽은 6권의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간단하게 서평을 달아놓으니 선서(選書)할 때 참고하기 바랍니다.


행복은 전염된다

행복은 전염된다 : 행복의 유지와 확산에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일러주는, 보기 드믄 주제의 책입니다. 네트워크가 개인의 정서, 건강, 정치적 성향 등에 매우 중요한 결정인자로 작용한다는 여러 가지 매력적인 실험들과 연구 결과를 담은 책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기획서 제안서 작성법

기획서/제안서 작성법 : '기획서 쓰기'와 관련하여 강의를 하기 위해 참고도서로 읽은 책입니다. 초보자들에게 타겟이 맞춰진 터라 고급 기술은 다루지 않는 게 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그런 내용을 표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겠죠. 결국 고급 기술은 스스로 연마해야 할 과제죠. 여러 가지 주제별 기획서 샘플이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기획서의 얼개를 잡는 데 유용하게 쓰이리라 생각됩니다.


사회적 원자

사회적 원자 : '사회물리학'이라고 하는 생소한 분야를 일반인들에게 쉽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사회현상을 연구할 때 개인들을 원자나 분자로 간주하고 여기에 간단한 몇 가지 규칙을 대입하면, 실제로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상당히 근사하게 묘사할 수 있을뿐더러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물리학의 연구 방법입니다. 기업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내용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창조의 순간: 새로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창조의 순간 : 이 책은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창조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밝히는 독특한 관점의 책입니다. 창조성(창의성)이 인간에게만 허락된 재능이 아니라 컴퓨터도 충분히 창의적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펼칩니다. 그러나 책은 읽기가 좀 버겁습니다. 뭐랄까요, 간단하게 말해도 될 것을 현학적이고 추상적으로 서술하는 저자의 문체는 책을 읽는 것을 노동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인공지능, 기호학, 정보학 쪽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만 권합니다.


이성적 낙관주의자

이성적 낙관주의자 : 지구온난화와 자원고갈과 같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인간들이 현명하게 이겨나갈 수 있다는 요지의 책입니다. 희망적인 메시지이지만, 저자의 논거는 인간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놀라운 문명과 업적을 이루었으니 앞으로도 잘하리라는 식이 대부분이어서 읽어가는 동안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재기 넘치던 매트 리들리도 '외삽의 오류'에 빠진 듯합니다. 또한, 자신의 박물학적 지식을 과시하려는 듯 쏟아부을 듯이 나열한 예시들이 책읽기를 오히려 버겁게 만듭니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이 책은 원제처럼 '지적인 자기방어법'을 다룹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언어, 숫자, 과학, 언론 등에 숨어있는 거짓정보와 선전선동에 속지 않는 법을 가르칩니다. 특히 언론이 저지르는 교묘한 속임수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면역을 길러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몇몇 사례는 이미 다른 책에서 자주 봤던 터라 신선감이 떨어지는 흠이 좀 있으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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