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같은 팀장, 자식같은 팀원'은 나쁘다   

2011. 9. 16. 09:10
반응형



캐나다의 정신의학자인 에릭 번(Eric Berne)은 '교류 분석 이론'을 정립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번은 인간의 말과 행동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성인형(Adult), 부모형(Parent), 자식형(Child)였죠.

성인형은 상호존중과 개방성,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자신에게 이입할 줄 아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부모형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듯이 통제적이고 비판적인 행동 유형을 말하죠. 반면 자식형은 감정이 앞서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양식을 가리킵니다. 번이 지나치게 인간의 말과 행동을 단순화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상호 교류의 양식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통찰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그의 업적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상호작용의 방식이 '성인형 대 성인형'이라고 말합니다. '부모형 대 부모형'이나 '자식형 대 자식형'의 상호작용은 오해를 가중시키고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말합니다. 조직에서 자주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예를 들어볼까요?

팀장이 기획안을 꾸물거리면서 올리지 않는 팀원에게 이렇게 한마디 합니다.

"지시한 지가 2주일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기획안을 올리지 않는 거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런 말은 통제하고 비판을 가하는 '부모형'의 전형입니다. 부모형의 말은 자식형의 말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가 뭐라고 야단을 치면 핑계거리를 대면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는 자식처럼 말입니다. 팀원은 아마 이런 식으로 대꾸할 겁니다.

"제가 OOO일로 바쁜 거 안 보이세요? 상무님이 지시사항이라서 그것 먼저 해야 한다고요."

대담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팀원이라면 팀장의 부모형 말에 부모형 대답으로 대항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급하면 직접 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박 대리가 요즘 한가한 것 같은데, 걔한테 시키시지요."

팀원이 이렇게 대꾸하면 아마도 팀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팀원의 멱살을 잡을지 모릅니다. 섬약한 성정을 가진 팀장이라면 속으로 화를 삭이면서 괴로워하겠지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감정만 상합니다. 감정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이상도 염려해야 하는, 불행한 '교류 방식'이죠.

팀장이 만약 자식형의 대화법으로 이렇게 말하면 팀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OOO기획안, 빨리 좀 줘. 전무님이 보자고 하신단 말이야."

아마 대담한 팀원(소위 '싸가지가 없는' 팀원)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모형으로 대꾸하겠죠. '급하면 당신이 하라'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팀원보다는 아래와 같이 '칭얼거리는' 자식형 대답을 하는 팀원들이 더 많을 겁니다. 

"저도 힘들어 죽겠단 말이에요. 왜 저만 가지고 그러세요?"

이런 대화법 또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못하고 팀장과 팀원 사이의 불만만 가득 쌓이고 맙니다. 상하를 막론하고 자식형 대화법이 주류를 이루니 팀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이 됩니다.

에릭 번이 이상적인 상호 교류 방식이라고 한 '성인형 대 성인형' 대화법을 팀장과 팀원이 항상 염두에 둔다면, 아마도 아래와 같은 대화가 일어날 겁니다.

팀장 : 자네가 바쁜 건 잘 알지만, 실은 그 기획안을 전무님이 1주일 후에 열릴 경영회의 때 발표해야 해서 꼭 필요해. 해 줄 수 없을까?

팀원 : 죄송합니다. 저도 실은 상무님이 별도로 시킨 OOO일로 좀 바쁩니다. 상무님께 이야기해서 그 일은 잠시 미루자고 하겠습니다. 전무님 일이 더 급하니까요.

팀장 : 고마워. 상무님한테 이야기할 때 나도 같이 갈게.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이해하실 거야.

팀원 : 네, 알겠습니다.

팀장 : 아, 그리고 좀 힘들겠지만 오늘부터 나와 같이 기획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보자고. 이따 3시에 회의실에서 보면 어떨까?

팀원 : 네, 자료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요, 5시쯤 보면 어떨까요?

팀장 : 그래, 그러자고. 



이상적인 상황이라서 좀 작위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팀원으로 하여금 기획안 수립에 전념케 하려면(즉,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인형 지시법과 성인형 대답법이 다른 유형의 교류 방식보다 우월합니다. 

문제가 좀 급하고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면 사람들은 강압적인 부모가 되거나(부모형 교류), 감정이 앞서서 요리조리 피하는 자식이 될(자식형 교류) 가능성이 큽니다. 위와 비슷한 상황일 때 (마음을 좀 차분히 하고) 성인형 교류를 하려고 노력한다면 상대방도 성인형 대화법으로 응대하면서 문제해결에 머리를 맞대는 '화기애애'한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노력이 없이는 팀장과 팀원 간의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겠습니다. '부모 같은 팀장과 자식같은 팀원'이라는 구도는 절대로 좋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