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비정상으로 판단한 의사들   

2011. 9. 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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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에 신생아들 중 일부는 가슴샘 혹은 흉선이라고 불리는 호르몬 분비기관이 비대해 기도를 압박하는 바람에 질식으로 사망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고 합니다. 일명 '흉선림프특이체질'이라고 부르는 증상이었습니다. 흉선은 신생아 때부터 커지기 시작하여 사춘기 때 가장 커지는데, 그 발육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사망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흉선이 과도하게 커지는 일을 사전에 막으려면 초기에 확대된 흉선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당시의 의사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방사선을 사용한 치료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방사선 치료법은 그때(1920~1950) 첨단 의학 기술로 각광을 받았죠. 그러나 수천명이 이 치료법을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흉선 비대로 인해 사망하는 일들이 발생했죠. 게다가 흉선의 비대와 질식사와의 관계를 설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제는 치료법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의사들이 '비대해졌다'라고 판단한 흉선이 사실은 정상적인 크기의 흉선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정상적인 크기의 흉선을 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그들이 연구용으로 사용한 시체가 전체를 대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해부를 위해 쓰인 시체들은 거의 모두 가난한 자들의 것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친척 중 누군가가 사망하면 해부학 실습용이나 연구용으로 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죠.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영양 섭취가 불가능했던 죽은 자의 흉선은 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학자와 의사들이 해부를 통해 관찰한 흉선은 사실 비정상적으로 작은 것이었죠. 그래서 의사들은 그렇게 작은 크기의 흉선을 정상적인 크기라고 여기고 말았던 겁니다.

애초부터 잘못 선별된 표본인데 그것을 가지고 전체를 설명하려 한 오류를 범한 겁니다. 그러니 멀쩡한 크기의 흉선을 가진 아이들에게 예방한답시고 방사선 치료를 해봤자 소용이 없었던 것이죠. 쓸데없이 방사선을 목구멍 안으로 쬐여서 오히려 다른 질병을 유발했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흉선 말고도 부신의 정상적인 크기를 잘못 판단해서 엉뚱한 치료를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부신은 보통 아드레날린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인데,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와 고통이 적기 때문에 부신의 크기가 작다고 합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큰 부신을 가지고 있죠. 

마찬가지로 의사들이 주로 해부를 한 시체들은 거의 대부분 가난한 자들의 것이었기에 큰 크기의 부신을 정상적인 크기의 부신으로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특발성 부신 위축'이라는 증상을 앓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편향을 '가용성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접하거나 취할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말하죠.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자신이 가용성 편향에 빠져있지 않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판단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잡는 것 그 자체'입니다. 판단의 기준을 먼저 오류없이 세운 상태에서 결론을 내려야 옳은 판단이 되는 것이죠.

성급한 판단을 내리려는 마음의 관성을 이겨내야 1세기 전의 의사들처럼 엉뚱한 치료법으로 우왕좌왕하지 않을 겁니다(1세기 전이라고 했지만 요즘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성찰하는 뜻깊은 금요일 되십시오.

(*참고도서 : The TROUBLE WITH TESTOSTERONE: And Other Essays on the Biology of the Human Predicament, Robert M. Sapolsk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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