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면 알수록 나쁜 결정을 한다   

2012. 9. 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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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브래드 바버(Brad M. Barber)와 테런스 오딘(Terrance Odean)은 증권 중개인들과 전화를 통해 주식을 사고 팔다가 온라인 주식 거래 방식으로 전환한 1,607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투자 수익률과 투자 습관 등을 조사했습니다.1)  다소 복잡한 데이터 분석 방법을 썼기에 여기에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그 결과만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연구 샘플에 포함된 투자자들은 전화로 거래하던 방식에서 시장 수익률보다 2%포인트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헌데 온라인 거래 방식으로 전환하고 나니 그들의 평균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보다 연간 3%포인트 이상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화를 통해 투자할 때보다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거래했고 투기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주식 턴오버(turnover)율이 73.7%에서 95.5%로 증가했고, 투기성 턴오버율이 16.4%에서 30.2%로 상승한 것이 바로 증거였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바버와 오딘은 '지식의 환상(Illusion of Knowledge)'으로 이 결과를 설명합니다. 지식의 환상이란 무언가에 관한 데이터와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거래 시스템을 통해 투자와 관련된 각종 수치와 그래프, 리서치 자료 등을 전화로 거래할 때보다 훨씬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 넘쳐나는 정보들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시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과신을 주기에 충분하죠. 지식의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내리는 투자 의사결정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투기성 투자의 실제 리스크를 낮게 평가합니다. 


우리는 좀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좀더 많은 정보를 찾아내면 미래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허나 이 또한 지식의 환상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밀하게 보이는 수치들과 정량적 모델이 특정한 미래를 확신하도록 만들지 않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가 쓴 <승자의 편견>에서 언급된 AT&T가 단적인 사례입니다.2)  1980년에 AT&T는 세계적인 컨설팅사인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에게 2000년이 되면 전세계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얼마나 될지를 예측해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알다시피 맥킨지는 미국의 Top 5 MBA 출신이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운, 소위 '두뇌 집단'이죠. 


맥킨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광범위하고 복잡한 조사와 정밀한 정량 모델을 써서 2000년의 휴대전화 사용자는 전세계 통틀어 100만 명 밖에 안 될 거라 예측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AT&T는 휴대전화 사업 진출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당시 휴대전화 사용자는 7억 5천만 명에 달했습니다. 예측치보다 무려 750배나 컸죠. AT&T는 휴대전화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잘못된 맥킨지의 예측 때문에 잃어버렸고 그 근본원인은 지식의 환상에 있었습니다.


많이 알수록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적게 알아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수치와 각종 정보는 이미 지나온 과거에 대해서만 정확한 결과를 알려줄 뿐입니다. 그것들이 정확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오늘 내리는 의사결정이 지식의 환상으로 비롯된 '과도한 믿음'은 아닌지 숙고하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1) Brad M. Barber, Terrance Odean(2002), Online Investors: Do the Slow Die First?, The Review of Financial Studies, Vol. 15(2)


2)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승자의 편견>, 박여진 역, 생각연구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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