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하지 않는 것이 공감의 시작   

2024. 1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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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경다방>을 개업하면서 사업용 통장을 개설한 적이 있는데요, 통장의 1일 이체 한도가 고작 30만원이더군요. 제가 항의를 하니 ‘대포 통장’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요즘에는 실적이 없는 사업체에는 이체 한도를 제한한다는 게 은행 측의 대답이었습니다. 

취지는 알겠지만, 이제 막 창업된 사업체가 실적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실적(매출)이 없지만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 사전에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이체 한도에 제한이 걸리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편집 디자이너, 표지 디자이너, 인쇄소 등에 작업비를 송금을 해줘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은행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실적을 가져와. 그러면 이체 한도를 확대해 줄게.” 
—> “하지만 초기라서 실적이 없어. 나갈 비용만 있고.” 
—>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어. 실적이 있어야 돼.”…. 

결국 저는 서점들과 맺은 계약서를 들고 가 “아직 매출은 없지만 이들과 맺은 계약서가 있다. 그러니 냉큼 풀어 달라”고 해서 겨우 이체 한도를 정상적인 비용 지출이 가능한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초기 사업체의 발목을 잡는 맹점이 있다는 걸 비판하려고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요약해서 올렸습니다. 대부분 제 경험에 공감했으나 하나의 댓글을 보며 조금 기분이 상하고 말았죠. 

“은행도 기본 셋업이 있겠지요. 관상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려니 이해하십시오.” 

제도의 모순을 지적한 저에게 ‘뭘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고 그래. 마음 쓰지 말고 넘어가.”라고 하는 듯 했습니다. 그에게 저는 “그래도 이렇게 떠들어야 조금은 바뀌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댓글을 달았지만, 사실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를 위로하고자 했던 말이라면 위로의 표현이 상당히 잘못됐습니다.”라고 말이죠.

공감(共感)이란 무엇일까요? 한자 뜻 그대로 ‘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입니다. 부당한 사건을 당해 상처를 받거나 분노가 치밀면 당사자와 같은 마음이 되어주는 것이 공감이죠. 직원이 팀장과 면담하며 업무의 고충과 동료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팀장 본인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에 힘들어 하고 분노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직원의 감정에 이입되어 같이 상처를 느끼고 같이 분노하며 같이 슬퍼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직원이 그런 말을 팀장에게 꺼낸 이유는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대담하게 넘어가.”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닐 겁니다. 당장에 팀장에게 조언과 해결책을 듣고 싶어서도 아니죠. 그저 자신의 고충과 힘듦을 이해 받고 싶고 위무 받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섣부른 조언은 직원에게 상처를 주고 직원과 리더 사이에 벽을 공고히 만들어 버리니 굉장히 해롭습니다.

공감은 일단 상대방과 같이 느끼는 것이고 조언과 충고의 욕구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뭘 어떻게 할지, 그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제 블로그 앞에 분변 같은 악플을 남겨도 일일이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동료가 아무 생각없이 트러블을 일으킨다면 그 동료와 속깊은 대화를 나눠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걸 모르는 직원이 있겠습니까? 

“그 친구는 원래 성격이 그러니 네가 좀 이해하고 참아라”는 조언은 ‘공감하는 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네가 참 힘들겠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공감 없는 조언은 어찌보면 악플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 안에 기생하는 ‘조언충’과 ‘일침충’을 박멸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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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과 '강점'의 차이를 아십니까?   

2024. 1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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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2가지 질문을 각각 던진다고 가정해 보세요?

(1) 당신의 ‘역량’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각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두 질문에 동일한 답변을 할 겁니다. 역량과 강점, 막연하게 ‘내가 잘하는 것’ 혹은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 똑같이 인식할 테니까요. 하지만, 둘은 엄청나게 다른 개념입니다.

역량(competency)은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훌륭하게’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knowledge), 스킬(skill), 능력(ability)을 가리킵니다. 지식, 스킬, 능력에 대한 기대 수준이 바로 역량이죠. 누군가의 역량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가 풍부한 지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지(지식), 전문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있는지(스킬), 직무와 관련된 업무에 적용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능력)를 판단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남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의 역량은 강점일 수도 있고 강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높은 수준의 역량이 누군가의 강점이 되려면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높은 수준의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단거리 달리기 선수를 예로 들어볼게요. 짧은 거리를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려면 아시다시피 민첩성, 순발력, 유연성, 근력 등의 역량이 요구됩니다.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갖추면 어느 정도 수준의 대회에 나가 입상을 기대할 수 있죠. 

그러나 달리기에 대한 관심과 동기, 열정이 없다면 뛰어난 선수로 인정 받으려는 기대는 접는 것이 낫겠죠. 지속적으로 자신의 달리기 역량을 키우려는 의지와 열정이 뒷받침된 역량이라야 강점이라 말할 수 있고, 강점을 갖춘 자라야 ‘자기 세계’의 강자가 됩니다.

강점은 역량보다 ‘더 근본적이고 더 내재적이며 더 개인적인 것’입니다. 역량은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고, 강점은 ‘역량을 사랑하느냐 아니냐’의 잣대죠. 역량은 외부로 드러나지만 강점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역량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지만, 외부인에 의해서 역량이 강점으로 승화되지는 않습니다. 강점은 배움과 가르침이 자신의 관심, 동기, 열정과 합쳐져서 남들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생겨나니까요.

정리해 볼까요? 어떤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 ‘역량이 있는 것’이고, 그 역량에 관심과 열정을 쏟을 때 ‘강점일 수 있는 것’이며, 그 결과로 남들보다 뛰어난 수준에 도달할 때 비로소 그 역량은 강점이 됩니다. 여러분 자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강점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통찰을 얻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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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가 여러분의 동료라면?   

2024. 11.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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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자주 보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스머프>였는데요, 여기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캐릭터는 '투덜이 스머프'였습니다. 누군가가 즐거워하거나 재미있어 하면 "난 OOO 싫어!"라고 내뱉으며 팔짱을 끼는 모습이 그때는 꽤나 귀여워 보이더군요. 저의 '반골' 성향과 비슷한 것 같아서 애착(?)이 가는 캐릭터였죠.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투덜이들에 둘러싸여 지낸다면 악몽이 따로 없을 겁니다. 모든 것에 불만을 터뜨리는 직원이 여러분 옆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끝도 없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경영진은 뭐가 문제인지, 회사나 관리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등을 아무때나 지껄이는 직원의 말을 들어주다 보면 덩달아 기분이 저하되고 일할 의욕도 떨어지기 쉬울 겁니다. 또한, 여러분도 전염되어 제2의 투덜이가 될 위험도 있죠. 

만약에 여러분이 투덜이 직원의 불만을 해소시켜주려고 시도한다면 그 노력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투덜이들은 여러분의 도움을 원치 않거든요. 그들은 해결책을 찾기보다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리는 데 더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조언을 하거나 해결책을 알려주면 그 말에서도 또 불만거리를 찾아냅니다. "그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돼!" 

 



이런 직원이 여러분 옆에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먼저 명확한 경계선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내가 너의 말 상대는 해주겠지만, 매번 똑같은 불만을 내뱉지는 말아.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고, 그런 짜증을 여러 번 듣기는 싫어!"라고 말입니다. 

지속적인 불만은 타인을 짜증나게 만든다는 점 역시 언급하세요. 여러분도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너처럼 그렇게 불만을 생각날 때마다 반복하지는 않아."라고도 밝히세요. 

그리고 목적의식이 포함된 불만을 말하도록 유도하세요. 그래야 알멩이없는 투정이나 하소연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어요. 해결책에 빨리 다다를 수도 있죠. 투덜이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그렇게 우는 소리하면서 불만을 터뜨릴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불만을 좀 해결해 봐."라고 말입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그에게 매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조언해 보세요. 불만을 터뜨리고 싶을 때마다 본인이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라고 말이에요. 그러면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고 좋은 기분으로 회귀할 수 있죠.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투덜이짓을 그만두지 않으면 그가 어떤 불만을 말하든 무시로 일관하면 됩니다. 받아주니까 마구 떠드는 것이니까요. 받아주지 않으면 제풀에 지치겠죠. 듣기 싫은데도 따라다니면서 쫑알쫑알거리면 무안이 답입니다. "그건 내 사정이고!"라고 낮고 강한 어조로 제압하세요. 곧 그러다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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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깨끗하면 괜찮은 겁니까?   

2024. 11.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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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나 <채근담> 같은 고전을 읽다보면 '군자'와 '소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합니다. '군자'에서 '군'은 한자 그대로 '임금'이란 뜻이라기보다 행실이 어질고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반대로 '소인'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두 단어의 뜻은 이렇게 큰 차이를 갖는데요, 사실 누군가를 보며 '이 사람은 군자인가, 아니면 소인인가?'란 의문에 무엇을 기준으로 딱 떨어지게 판단해야 할까란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단 하나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제 밤에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고전 <명심보감>을 풀이한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는데요, 페이지를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군자와 소인의 차이'란 글을 접했습니다. 그 글에 소개된 <명심보감>의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방군자 율방소인 
禮防君子 律防小人

이 말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군자의 잘못은 예의로 막고
소인의 잘못은 법률로 막는다.

 

군자든 소인이든 사람이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데요, 군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더라도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행동을 조심하죠. 만약 의도치 않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부끄러운 행동이 밝혀지만 잘못을 바로 고하고 깊이 반성하며 처벌을 감수합니다.

반면, 소인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법에 저촉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걸리지만 않으면 좋아합니다. 설사 걸리더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법에는 저촉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죠. 이처럼, 잘못이 드러날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가 바로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작금에 여러 '나쁜 뉴스'를 장식하는 인사들 중 군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바로 드러날 거짓말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내뱉으며 순간을 모면하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무척 강조합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임에도 법이 지고지순한 도덕률인 양 발언하는 '소인배'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을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인정해야 하는지 심각한 의문이 듭니다.

부끄러움을 뜻하는 한자어 '치(恥)'는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에 귀를 기울였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카메라 앞에 나와 '나는 법적으로 깨끗하다. 그러니 잘못 없다'고 외치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소인배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부끄러움이 없기에 그들은 절대 군자가 되지 못합니다. 군자가 아니라면 그 위치에 있으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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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을 지키지 마세요   

2024. 11.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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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평소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를 다른 이들에게 종종 표출하는지요? 아니면 정치 성향은 절대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까? 많은 사회인들은 남들에게 정치 성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드러내는 순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니 되도록 삼가야 한다는 점을 일종의 에티켓으로 삼고 있을 겁니다. 자기 의견을 밝히지 않는 '중립적인' 태도를 일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특정 정치 무리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뭐, 나는 잘 모르겠다' 혹은 '두고볼 일이다'라는 식으로 의견 표출을 저어하거나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듯한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이렇게 중립을 고수하는 것이 타인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본인이 중립을 지키는 것을 긍정적인 태도라고 스스로 평가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중립을 지키거나 의견을 공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진실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갖는다고 하니까요. 그런 사람을 의심스러워 하거나 신뢰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것은 실험으로 밝혀진 결과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둘씩 짝을 이루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을 연구자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이때 참가자들은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파트너'와 짝을 이룰지, 아니면 '총기 소유에 관해 의견을 말하지 않는 파트너(즉 중립적인 파트너)'와 짝을 이룰지를 선택해야 했어요.

참가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흥미롭게도 총기 소유를 반대하는 참석자들은 중립적인 사람보다는 총기 소유를 찬성하는 사람과 짝을 이루고 싶어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자기 의견을 밝히지 않는 사람은 솔직하지 못하다, 신뢰하기가 어렵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의견과 정반대인 사람을 상대적으로 더 신뢰한다니, 참으로 신기하죠? 

중립은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중립은 '옳은 편이 어딘지 끊임없이 판단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정치집단이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거나 반대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면 그때마다 엄정한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 중립적인 사람의 자세입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중립주의자'들이 타인들로부터 "저 사람의 속을 모르겠어."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계적 중립을 지킬수록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중립의 역효과'를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옳다고 판단하는 쪽이 있다면 두려워 말고 그쪽을 편 드세요.


*참고논문
Silver, I., & Shaw, A. (2022). When and why “staying out of it” backfires in moral and political disagreement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51(10), 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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