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가치를 높이는 법은?   

2024. 11.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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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아주 더운 여름날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서 있습니다. 그 가게는 오직 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두 가지 용량으로 판매합니다. 하나는 10온스 짜리 컵에 8온스의 아이스크림이 담겨져 있고, 다른 하나는 5온스 짜리 작은 컵에 7온스의 아이스크림이 컵보다 높게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말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구입한다면 각각 얼마에 살 용의가 있습니까?" 큰 컵에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기지 않았지만 용량으로 보면 작은 컵보다 많기 때문에 큰 겁에 컵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심리학자의 실험에서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모 대학교 학생들은 큰 컵에 평균 1.85달러를 지불하고 작은 컵에는 평균 1.56달러를 지불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가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함께 보여주지 않고,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큰 컵을 제시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작은 컵만을 보여준 다음 가격을 매겨보라고 요청하자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큰 컵만을 본 학생들은 평균 1.66달러를 내겠다고 말했으나 작은 컵만을 본 학생들은 평균 2.26달러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두 아이스크림을 함께 보며 비교할 때는 아이스크림 양에 따라 가격을 적절하게 정했지만, 둘 중 하나만의 가격을 독립적으로 매길 때는 남은 공간 없이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겨져 있는가라는 느낌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큰 컵에 존재라는 '빈 공간'이 가치를 절하시키는 효과를 일으킨 겁니다.

이 간단한 실험은 우리에게 한 가지 시사점을 줍니다. 즉, 상대방으로부터 가치를 정당하게(혹은 실제보다 더 크게) 인정 받으려면 '컵의 빈공간'을 인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시사점은 직원의 역량과 성과를 평가할 때에도 적용됩니다. 아이스크림 실험의 큰 컵처럼 잠재력이 크지만 실제로 드러내는 역량과 업적이 그 잠재력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할지 모릅니다. 잠재력이 크다는 믿음을 남들에게 주는 직원에게 실제 받아야 할 평가점수보다 박하게 줄 가능성이 있죠.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던 직원이 놀랄 만한 성과를 이번에 나타냈다면(작은 컵에 넘치도록 담긴 아이스크림처럼) 그 자체가 '기특하고 기쁜' 일이라 평가를 후하게 줄지도 모릅니다. 절대적으로 보면 전자의 직원이 후자의 직원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나타냈더라도 말입니다.

평가의 객관성은 과연 달성 가능한 일일까요? 잠재력이 크면 역량이 뛰어난 직원이 평가절하되고, 잠재력이 낮은데도 역량이 보통인 직원이 평가절상될 수 있음은 객관적 평가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덧글)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큰 컵이 돼야 할까요, 아니면 작은 컵이어야 할까요?


*참고논문
Hsee, C. K. (1998). Less is better: When low‐value options are valued more highly than high‐value options. Journal of Behavioral Decision Making, 11(2), 10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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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뚫린 사무실은 위험합니다   

2024. 11.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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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에 여러분이 일하는 사무실을 한번 둘러보세요. 혹시 파티션이 없거나 낮게 설치되어 누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 정도로 뻥 뚫려 있지 않은가요? 소음이나 시각 측면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만한 구조물이 별로 없나요? 만일 그렇다면 이 글의 내용을 주목하세요. 파티션 없이 소위 ‘열린 공간’을 지향할 경우. 이득보다 문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몇몇 학자들은 각자의 연구를 통해 이렇게 ‘오픈 플랜(open-plan)’을 적용한 사무실에서 직원들의 상호작용이 증가한다고 주장했고, 그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뻥 뚫린 형태의 사무실 레이아웃을 도입했죠. 직원들 간의 소통 활성화와 협력 강화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그 후의 여러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프라이버시를 침해 당한 직원들이 일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는 바람에 성과가 저하된다는 점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시드니 대학교의 김정수(Jungsoo Kim)는 오픈 플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현장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한 그는 사방이 막혀 있어 독립적인 공간을 가진 경우에 직원들의 근무환경 만족도가 월등히 높음을 발견했어요.



반면에 완전히 개방적인 구조의 사무실과 파티션이 낮은 사무실에 대해서 직원들은 만족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화나 잡담, 키보드 소리 등 옆 동료가 발생시키는 소음으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사운드 프라이버시(sound privacy)’ 문제 때문이었거든요.

소리뿐만 아니라 ‘비주얼 프라이버시(visual privacy)’ 문제도 집중력를 해치는 원인이었습니다. 탁 트여 있어서 동료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다 노출시켜야 하니 이는 당연한 결과였죠. 개방 구조의 사무실에 일하는 직원들이 그런 레이아웃이 동료 간의 상호작용을 증진시킨다는 것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독립적인 공간을 가질 때 상호작용이 용이하다고 답변했습니다. 김정수의 연구는 오픈 플랜 사무실이 소통과 상호작용에 유리하다는 점, 직원들의 근무환경 만족도를 끌어올린다는 점은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결과입니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환경은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 웰빙,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레이아웃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되고, 레이아웃 변경도 일종의 생산성 향상 전략으로 여겨야 합니다. 또한 성과 향상을 기대하는 특정 직원이 물리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위치에 앉아 일하고 있다면, 즉 프라이버시를 존중 받기 어려운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의 자리를 옮겨 주거나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방법을 마련해 주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열린 소통’을 추구한다고 해서 공간까지 확 열리게 만드는, 1차원적인 조치가 얼마나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유념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Kim, J., & de Dear, R. (2013). Workspace satisfaction: The privacy-communication trade-off in open-plan offices. Journal of Environmental Psychology, 3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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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를 잘하려면 '글'을 잘 쓰세요   

2024. 11.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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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조직들이 2024년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바로 인사평가와 승진 결정일 겁니다. 빠른 조직은 벌써 평가 데이터를 수집 중일 테고 대부분은 12월말이나 내년 1월 중에 평가를 진행하겠죠.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은 '평가의 객관성'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데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객관적인 평가는 지나친 이상 혹은 환상입니다. 성과가 숫자로 딱딱 결산되는 직무가 아닌 이상, 여러분이 하는 업무는 수치로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정성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고, 평가자의 주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납득 가능성'이라고 봅니다. 평가자가 내린 결과를 피평가자(직원)이 얼마나 납득하고 수용하느냐가 평가제도의 지향점이 되어야 합니다. 평가자의 주관이 담긴 평가결과라 해도 직원이 '맞아. 내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해. 팀장님이 잘 보신 거야.'라고 납득하는 게 중요하지, 직원의 성과가 89점이냐 95점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평가 결과를 잘 납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오늘은 평가 결과를 직원들에게 피드백하는 '포맷' 측면만 말씀을 드릴게요. 보통 피드백 포맷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점수'나 '등급'처럼 수치로 평가 결과를 정리하는 방법이고요, 나머지 하나는 수치를 배제하고 마치 에세이처럼 평가자가 피평가자의 성과나 역량, 태도, 행동 등에 관해 자기 의견을 '내러티브'하게 서술하는 방법입니다. 간단히 말해, '수치 피드백'과 '내러티브 피드백'이 있죠.

 



평가의 납득 가능성을 높이려면 둘 중 어떤 방식을 채택해야 할까요? 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다행히 최근에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주리 대학교의 김준용 교수가 에밀리 지텍(Emily Zitek)과 함께 한 연구가 바로 그것인데요, 두 사람은 1,600여명을 대상으로 가상 조건 하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피평가자의 입장이 되어 가상의 상사로부터 평가 피드백을 받았는데요, 1그룹은 수치 피드백을 받았고, 2그룹은 내러티브 피드백을, 3그룹은 둘을 섞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내러티브 피드백을 받은 2그룹이 평가의 공정성을 가장 높게 평가했고, 수치 피드백을 받은 1그룹이 그 공정성을 가장 낮게 평가했습니다.  내러티브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은 피드백 내용을 가장 잘 이해했고 상사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업무 전체를 잘 반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균형있게 제시되었다고도 평했죠.

내러티브 피드백의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었어요. 2그룹 참가자들은 성과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많은 영감과 동기를 얻었다고도 답했습니다. 반면, 수치로만 피드백 받은 참가자들은 상사가 자신들의 단점과 부정적인 측면만 꼬집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해요. 강점은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것 같다고도 답했습니다. 그러니 개선하려는 의지와 동기가 약할 수밖에 없었죠.

납득 가능성 측면에서 내러티브 피드백이 수치 피드백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여러분이 평가 결과를 피드백 받는 직원의 입장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수치나 등급만 나타나 있는 결과표를 보고 무슨 '감동'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이거, 상사가 나를 제대로 평가한 것 맞아?'라는 의심만 들겠죠.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평가 계량화'에 지나치게 목을 매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조직의 지적능력에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평가의 납득성, 공정성, 직원들의 성과 개선 동기, 상사와 직원들 간의 신뢰를 높이고자 한다면, 아니 적어도 지금보다 나쁘게 만들지 않으려면 상사가 진정으로 직원들의 성과와 역량 향상에 애를 쓰고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수치 뒤에 숨지 말고, 직원 하나하나에 관해 열심히 글을 쓰세요. 그게 평가자로서 상사에게 꼭 필요한 의무입니다. 만약 이 의무가 매우 버겁다면, 안 하셔도 좋습니다. 평가자란 위치에서 내려오면 되니까요.


*참고논문
Kim, J., Zitek, E. M., & Stroup, C. M. (2024). The power of words: Employee responses to numerical vs. narrative performance feedback. Academy of Management Discoveries,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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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으로 남들과 차별화하세요   

2024. 11.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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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이 제 책 <시나리오 플래닝>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거나 설명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을지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나 산업이 어떻게 될지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알 수 있나?”, “제가 OO에 집을 사려는데, 괜찮을 거 같나요? 시나리오 플래닝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도구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시나리오 플래닝을 미래학(未來學)과 동일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결코 미래학(Futurology)이 아닙니다. 엘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와 같은 미래학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반인들이 미래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였지요.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 이동>과 같은 책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학에 열광했습니다.

미래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죠. 우리가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확실한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이나 판단에 기여하기 위한 학문이 바로 미래학입니다.

 



미래학이 이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작은 요인에 집중합니다. 즉 ‘트렌드’를 발굴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문헌 연구, 전문가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의 스킬을 동원해서 미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냅니다. 예를 들어, 지식노동자들이 대접 받을 거라든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될 거라든지 등이 미래학의 아웃풋이었죠.

이와 달리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둡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하면서 불확실성이 매우 작은 요인인 트렌드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큰 요인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관심 대상입니다.

애당초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기법이 아닙니다. 대신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우리의 미래가 여러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질 수 있음을 제시하죠. 미래학자들은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만 제시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미래학자들은 확실하게 “이렇게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언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들에 대비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이고 가치이니까요. 

정리하면, 미래학은 트렌드에 집중하고,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에 집중합니다. 트렌드는 많은 기업이나 사람들이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기 수립하는 전략이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죠. 전혀 차별적이지 않으니 경쟁우위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트렌드가 아니라 불확실한 요소에 집중할 때 남들과 차별화된 전략을 궁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가장 큰 효용입니다.

제 책 <시나리오 플래닝>에서 그 방법과 예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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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인재를 '전투'에 소모시키지 마세요   

2024. 1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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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과 미국 전투기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적용했던 인력 양성의 방식을 살펴 보면 특이한 패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그들은 뛰어난 조종 실력을 보이는 조종사, 적기를 여러 대 격추시켰다든지 눈부신 전공을 세운 조종사들을 후방으로 빼곤 했어요. 왜냐고요? 바로 후배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교관을 맡게 하려고 그런 것이었죠. 그래야 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뛰어난 실력과 가치 있는 노하우를 전수시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전쟁이 한창이라서 당장 베테랑 조종사를 전투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 가장 잘 통하는 상황이랄까요? 이렇게 해서 영국과 미국 연합군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전투에서 잃는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였고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우수 조종사를 양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들과 완전히 반대로 한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진주만 공습 후 미국과 맞짱을 뜬 일본이었습니다. 그들은 실력이 떨어지고 실전 경험이 적은 조종사에게 교관 역할을 맡겼어요. 베테랑 조종사들을 전투에 계속 투입했고요. 이래서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요?

실력 없는 선생들로부터 우수한 조종사들이 배출되겠습니까? 평균적으로 실력이 크게 향상되기 어려울 뿐더러 실제 전투 상황과는 다른 내용으로 교육을 받게 되겠죠? 더 큰 문제는 베테랑 조종사들을 전투에 계속 밀어 넣다보니 그들이 전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투 때마다 말 그대로 ‘녹아내려’ 버렸던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이 지녔던 ‘암묵지’ 역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베테랑 조종사 대다수를 잃은 일본군은 1944년 6월 19일에 벌어진 필리핀 해전에서 미국 전투기로부터 말 그대로 ‘칠면조 사냥’을 당하고 맙니다. 2개월도 안 되는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이 복잡한 편대 전술을 얼마나 많이 익혔겠습니까?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기본적인 스킬도 부족했으니까 말 다했죠. 일본군은 어떻게든 있는 조종사, 없는 비행기를 다 끌어 모아서 필리핀 해역에서 미국과 일전을 벌입니다. 

수백 대의 전투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미군을 압도하리라 기대하면서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지만, 미숙한 조종사들이 모는 ‘제로센’ 전투기는 미군 조종사들의 손쉬운 먹이감이었습니다. 왜 ‘칠면조 사냥’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시다시피 칠면조는 몸이 둔해서 위협을 해도 멀리 도망가지 못하는 새인데, 제로센이 딱 그랬던 것이죠. 일본군은 베테랑 조종사를 전장에 소모시킨 벌을 필리핀 해전에서 제대로 받았습니다. 결국 일본은 오키나와 쪽으로 퇴각하면서 그들이 ‘절대 국방선’이라 설정했던 전선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재 육성에 있어 리더의 장기적인 안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수인재를 ‘전투’에 계속 내보내면 당장은 성과가 잘 나고 돈도 잘 벌리겠죠, 하지만 황금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이 될 수 있으니 우수인재가 번-아웃되도록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마리의 ‘황금 거위’가 태어나려면 우수인재를 인력 양성에 활용하는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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