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 목적은 아무거나 좋습니다   

2024. 7.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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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제법 많은 분들이 '살면서 책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오늘은 '책 쓸 결심'을 하신 분들께 짧게 조언을 좀 드릴까 하니, 가볍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 조언은 어디까지나 제 의견일 뿐이니까요.

책을 쓰겠다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정리한다는 차원일 수도 있죠. 혹은 누가 책을 써서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 걸 보고 부러운 마음에 책을 써보자 결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책은 이런 목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인세로 몇 억 벌어보겠다는 야심도 훌륭한 목적입니다. 이름 석 자가 담긴 책을 죽기 전까지 한 권쯤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힘껏 박수쳐 줄 수 있는 목적이죠. 누군가를 위해하고 근거없이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반드시 인류의 행복과 공영을 위해 책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책을 써야겠다는 동기 자체가 생긴 것이 중요하지 목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을 쓰는 목적이 뭔가 원대한 이상과 이어져 있을수록 책은 잘 써지지 않을 것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글을 쓸라치면 들이닥치는 자기검열의 잣대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막을 테니 말이죠. 책 하나 쓰는 데 지나친 ‘엄숙주의’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주제로 책을 써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저에게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그걸 저에게 왜 묻나요?’라고 의아해 합니다. 그건 제가 답해줄 질문이 아니거나와 답을 알 수도 없기 때문이죠. 본인이 그간 살아오면서 느낀 소소한 감상이어도 좋고,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연구해 온 주제여도 좋습니다. 아니면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책을 써가면서 동시에 지식을 쌓고 싶은 주제여도 상관없습니다. 직장에서 특정 직무를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얻은 실무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체계화하겠다는 주제여도 훌륭합니다.

“어떤 주제로 책을 써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한 주제라고 생각되나요? 그러면 책으로 쓰세요.”입니다. 알다시피 책은 보통 짧게는 200여 페이지에서 길게는 5~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가집니다. 책을 어떻게 편집하냐에 따라 페이지가 팍팍하게 혹은 ‘널널하게’ 구성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책 두께가 보장되지 않으면 상품성의 관점에서 매우 곤란합니다.

평소에 자신의 관심분야에 속한 여러 책들을 접했을 터이니 ‘이 분야의 책들은 대략 이 정도의 분량이구나’라고 감을 잡고 있을테죠. 통상적인 분량의 책으로 담아낼 수 있기만 한다면 무슨 주제라도 좋습니다. 만약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몇 페이지면 끝날 주제라면 책으로 펴내기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편이 낫습니다.

어쨌든 여러분 중에 책을 쓰기로 결심한 분이 있다면 주제의 고급짐 여부는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마구' 써보기를 권합니다. 그 주제와 관련해서 쓰고 싶은 '꼭지'를 매일 구상하고 그것을 매일 풀어서 써보세요. 더도 말고 덜고 말고 하루에 1페이지씩만 쓰세요. 넉넉잡아 1년 반이 넘으면 책 한 권 분량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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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통찰하려면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세요   

2024. 7.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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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겪으면서 비대면 방식의 근무, 즉 원격근무나 재택근무가 더이상 우리에게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굳이 사무실에 나와 서로 얼굴 보면서 일하지 않아도 생산성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등장할 정도로 비대면 근무의 긍정적 효과를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죠.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각자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성과관리의 어려움이 있다든지, 그로인해 성과 창출의 의욕이 떨어진다든지, 자유로운 대화와 논쟁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창출되기 어렵다든지 하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죠.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와 현장사례 역시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반된 두 입장 중에서 어느 쪽이 옳으냐는 일단 차치하기로 하고, 서로 간의 '근접성'이 아이디어의 교류 측면에서 필수요소라는 점을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연구자들은 251개의 스타트업들이 한 건물에 모여 일하는 일종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실험 장소로 삼았습니다. 각 스타트업(회사)은 서로 오가면서 어깨너머로 다른 스타트업의 일하는 모습이나 아이템, 문화 등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아, 저 회사의 이런이런 것은 우리에게 유용하겠는걸?'이라는 아이디어를 포착하겠죠.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런 교류가 몇 미터 내에서 일어나는가'였습니다.

 

2년 6개월 가량 조사를 해보니, 이런 교류는 20미터 내로 가까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면 같은 층에 있는 스타트업이라 해도 마치 다른 층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더라는 것입니다. 20미터 이내에 있으면 이웃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방식을 채택할 확률이 3%포인트 증가했지만, 그 이상 떨어져 있으면 아이디어 채택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20미터 이내로 서로 붙어 있더라도 두 회사의 목표시장이 근본적으로 다를 때에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하다는 것이었어요. 이때는 아이디어 채택률이 3.7%포인트 증가했으니까요. 두 회사가 제품은 같아도 비슷한 그룹의 고객을 목표로 한다면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많다고 추측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시사하는 대목이죠. 오히려 서로 달라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바로 '대면이 혁신에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혁신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유에서 새로운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존의 유'는 우리와는 다른 영역에 존재하던 아이디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설명한 연구에 따르면) 이런 류의 아이디어 유입은 20미터 이내에서 서로 대면을 해야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하잖습니까! 그 이상 떨어져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요. 고로, 대면이 혁신의 필수요소 중 하나입니다. 증명 끝!

이 연구의 시사점은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얼굴을 보며 말을 건낼 수 있는 거리, 예컨대 적어도 20미터 이내로 대면해야 서로가 서로를 배우고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웹, 이메일, 줌, SNS 등으로는 수동적인 학습은 가능할지라도 아이디어를 교류하는 데에 한계가 (아직은) 명확하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함께 시간을 보내야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죠.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명언을 빗대어 말한다면, 만날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일지 모릅니다. 정서적 안정감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어깨 너머로 배운다'는 말은 근접성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선조의 혜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고 혁신하려면 가까이 다가가세요. 낯선 사람들에게로.


*참고논문
Roche, M. P., Oettl, A., & Catalini, C. (2024). Proximate (Co-) Working: Knowledge Spillovers and Social Interactions. Management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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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유산을 공평하게 나눠 가지려면?   

2024. 7.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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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소유한 300평의 땅 중에서 큰 아들에게는 200평을, 작은 아들에게는 100평을 주겠노라고 유언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 보니 300평이 아니라 겨우 50평 밖에 안 되는 땅이었죠. 몇 년전에 복지시설에 250평을 기부하고서는 아버지 본인도 잊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이럴 때 두 아들은 각각 얼마씩 땅을 나누어 가져야 할까요?

첫 번째 방법은 '지분율' 만큼 나눠 갖는 것입니다. 큰아들의 지분율은 2/3, 작은아들이 지분율은 1/3이니까 다음과 같이 나눠 가지면 되죠.

큰아들 = 50평 *  2/3  = 33.4평
작은 아들 = 50평 *  1/3 = 16.6평

그런데 이 방법이 공평한 걸까요? 두 사람 모두 만족하는 해법일까요? 아마도 작은아들은 100평을 기대했다가 겨우 16.6평만 받게 됐으니 큰아들보다 더 불만이 클 겁니다. 그 크기의 땅에는 집을 짓기도 버겁겠죠.

 



두 번째 방법은 '둘이 서로 갖겠다고 경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똑같이 나누라'는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게임 이론'에서 제시하는 '공평 분배법(Equal Division of the Contested Sum, EDCS)'입니다. 이 케이스에서 두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50평의 땅 전체를 놓고 서로 경쟁합니다.  따라서 공평 분배법을 따른다면 50평의 땅을 25평씩 똑같이 나누는 것이 최적 해법입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땅 = 50평
경쟁하는 땅의 크기 = 50평
경쟁 없는 땅의 크기 = 0 평

큰아들 = 50평의 반인 25평
작은아들 = 50평의 반인 25평

만일 큰아들이 100평을, 작은아들은 50평을 받기로 했는데, 아버지의 땅이 100평 밖에 안 된다면, 공평분배법에 따라 땅을 얼마씩 나눠야 할까요? 둘이 경쟁하는 땅의 크기는 50평입니다. 큰아들은 100평 전부를 원하고, 작은아들은 50평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경쟁하지 않는 땅의 크기는 50평이 됩니다. 따라서 큰아들에게는 경쟁하지 않는 땅인 50평을 준 다음에, 경쟁하는 땅인 50평을 둘이 공평하게 나눠서 25평씩 나누어 가지면 되겠죠.


아버지가 물려준 땅  = 100평
큰아들의 지분          = 100평
작은아들의 지분       = 50평

경쟁하는 땅의 크기  = 50평
경쟁 없는 땅의 크기 = 50평

큰아들    = 경쟁 없는 땅의 크기 + 경쟁하는 땅의 1/2 = 50평 + 25평 = 75평
작은아들 = 경쟁하는 땅의 1/2 = 25평


공평분배법은 가능한 한 서로가 '감정을 상하지 않고' 자산을 나누는 지혜를 알려 줍니다. 지분율에 따라 무조건 나누는 방식은 깔끔하고 공정한 분배 같지만, 각자가 가져가야 할 지분의 총합보다 남아 있는 자산의 크기가 얼마 안 될 때는 공평분배법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 충분히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는 방법이죠.

공평분배법이 겉으로 보기엔 어려워 보이고 '이게 옳은가?' 싶겠지만, 여러분은 이미 공평분배법을 일상생활에서 적용하고 있어요. 내가 2천원을 내고, 친구가 1천원을 내서 3천원 어치의 떡볶이를 주문했는데 주인이 1천원 어치만 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면, 친구와 떡볶이를 어떻게 나눠 먹겠습니까? 이럴 땐 둘이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 먹지 않습니까?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눌 때는 오늘 말씀 드린 공평분배법을 적용해 보세요. 지분율 가지고 이전투구하는 건 볼썽사납습니다. 째째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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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내용을 담은 두 개의 보고서가 있다고 해보세요. 하나는 글씨체가 또렷하고 바탕색과 대비가 커서 알아보기 쉽게 쓰여졌지만, 다른 보고서는 조악한 폰트로 흐리게 인쇄됐습니다. 내용의 차이가 전혀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떤 보고서에 높은 점수를 줄까요? 당연히 전자의 보고서를 높이 평가할 겁니다.

이는 연구 결과로도 확실히 증명된 바인데요,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재원(성능) 정보와 함께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고객 리뷰 정보를 읽고 나서 MP3 플레이어의 적정 가격을 0달러에서 300달러 사이로 선택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연구자는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읽기 쉬운 폰트로 쓰여진 정보를 주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읽기 힘든 폰트로 적힌 정보를 읽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자의 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가격을 평균 126.3달러로 책정했고, 후자의 참가자들은 평균 162.1달러를 써냈습니다. 이것은 읽기 편한 글을 읽으니 기기의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발음하기 편하냐, 그렇지 못하냐도 큰 차이를 낳는다는 것도 이 연구의 결과입니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발음하기 쉽습니까?

(1) Artan, Kado, Boya
(2) Lasiea, Taahhut, Emniyet

단어의 의미를 몰라도 (1)은 쉽게 발음할 수 있을 겁니다. (2)는 스펠 하나하나를 맞춰봐야 발음을 유추할 수 있죠. (1)과 (2)는 가상의 증권회사 이름이었는데요, 실험 참가자들은 발음하기 좋은 (1)번 증권회사의 투자 의견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발음이 좋은 이름은 시작할 때부터 몇 점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는 피하려고 합니다. 쉽게 감각되는 정보를 더 크게 받아들이려고 하죠. 이것은 가능한 한 인지 활동의 부담을 덜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합니다. 읽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정보를 접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정보를 거부하거나 꼬투리를 잡고 싶은 의도가 발동하기 시작하죠.

지금 여러분이 작성 중인 글이나 보고서를 살펴보세요. 글씨가 크고 또렷합니까? 문장들은 발음하기 좋고 리드미컬한가요? 정보를 타인에게 쉽게 전달하고 설득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헙니다. 

물론 일부러 흐릿하게 보이고 발음이 어렵도록 만들어서 ‘뭔가 귀티가 나 보이는’ 효과를 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소통의 속도와 질을 감안한다면 형식적인 또렷함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때로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참고논문
Shah, A. K., & Oppenheimer, D. M. (2007). Easy does it: The role of fluency in cue weighting.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2(6), 37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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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려면 '엉뚱한 취미'를 가지세요   

2024. 7.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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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좋은 취미를 즐기는 것은 행복감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370명의 미니아폴리스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원 가꾸기 같은 취미가 도시 주민들의 행복감 증진에 가장 좋은 취미라고 합니다. 같은 정원 가꾸기라 해도 장식용 가드닝보다 야채 키우기가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고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좋은 취미라고 하네요.

그러나 취미 즐기기는 공짜가 아닙니다. 무언가를 생산할 시간을 취미 생활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 시간에 일을 하면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잖습니까? 쉬지 않고 일하면 당장은 성과가 높아지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커다란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이것은 상식이죠.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키아라 켈리(Ciara M. Kelly)라는 경영학자는 달리기, 공예, 암벽등반, 스탠드업 코미디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129명의 일반인을 모집하여 7개월 간의 연구에 참여시켰습니다. 그리고 취미생활을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즐기고 있는지, 취미생활에 얼마나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지를 1개월마다 한 번씩 질문했습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생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 즉 ‘자기 효능감(self-efficacy)’를 측정했죠. 

 



분석을 해보니 보통 수준보다 취미생활에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그리고 자신의 취미를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기 효능감(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증가하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 일치하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켈리는 각자의 취미가 업무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즉 유사성을 따로 조사했는데요, 취미 생활이 자기효능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업무와 유사하지 않은 취미'를 진지하게 즐길 때였습니다. 

반면에 '업무와 유사한 취미'를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자기 효능감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역효과가 관찰됐습니다. 예를 들어 직업이 경영자인 사람이 경영서적을 탐독하는 것을 취미로 즐긴다면 독서 생활은 ‘내가 훌륭하게 조직을 경영하고 있다’는 믿음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격투기 선수가 취미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것, 가수가 악기 연주를 취미로 갖는 경우도 비슷할 겁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입니다. 취미가 업무와 유사하면 같은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취미와 업무가 서로 다투는 형국이 됩니다. 이럴 때 취미는 레저 생활이라기보다 업무의 연장일 뿐이죠. 수의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에게 반려동물 돌보기는 엄밀히 말해 취미가 아닙니다. 산업 디자이너가 풍경 수채화를 즐기는 것 역시 취미가 아니죠. 

과학자라면 암벽 등반이 좋은 취미이고, 경영자라면 그림 그리기가 좋은 취미입니다. 나 같은 자칭 ‘경영 작가’에게는 작은 마당 가꾸기나 워크맨 수리가 제법 훌륭한 취미죠. 자신의 업무를 ‘완전히’ 잊어 버리도록 해주는 '엉뚱한 활동'이야말로 업무의 고됨을 씻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취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어제 도착한 정크 워크맨을 분해해 수리했습니다.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녹아붙은 고무벨트를 닦아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지만, 그 덕에 이 글을 빠르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저의 자기 효능감도 1퍼센트쯤 높아졌겠죠?  


*참고논문
Kelly, C. M., Strauss, K., Arnold, J., & Stride, C. (2019). The relationship between leisure activities and psychological resources that support a sustainable career: The role of leisure seriousness and work-leisure similarity.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10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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