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 졸라매자는 말, 더 이상 하지 말자   

2008. 9. 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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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각각 100개의 구슬이 담긴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첫 번째 항아리에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각각 50개씩 들어있고, 두 번째 항아리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몇 개씩 섞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자. 만일 검은 구슬을 뽑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어떤 사람이 제안해 온다면, 당신은 두 개의 항아리 중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대니얼 엘스버그가 수행한 이 실험에서 참가자의 대부분은 검은 구슬이 뽑힐 확률이 50%로 정해져 있는 첫 번째 항아리를 선택했다. 두 번째 항아리가 검은 구술이 붉은 구슬보다 더 많이 들어 있을 가능성을 있음에도 확률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은 한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검은 구슬이 몇 개 들어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두 번째 항아리를 배제하고 확률이 확실하게 제시된 첫 번째 항아리를 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진화의 오랜 기간 동안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실성을 택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체득했고 그런 학습 결과가 유전자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요즘 유가와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북한이 6자회담의 합의를 깨뜨리고 영변의 핵 봉인을 해체하는 등 기업을 둘러싼 거시환경에 일대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매순간 방향타를 바꾸는 불확실성 하에 놓여 있고, 경영의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영자라면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환경의 예측 불가능성을 구성원들에게 인지시키고 그것을 잘 다루지 못했을 때 온전히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조직의 변화 대열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황이 어려워졌으니 허리끈 졸라매고 열심히 뛰어보자’라는 캠페인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써먹은 탓에 더 이상 구성원들을 감화시키지 못한다. 더군다나 조직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강압적인 지시는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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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가득 메운 변화동인들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확실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활용해 보는 방법은 어떨까? 어떤 대학에서 B형 간염이 유행했을 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검진을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검진을 받고 나온 학생들에게 B형 간염의 증상이 어떤지 설명해 주었는데,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간이 충혈되고 신경체계가 왜곡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설명한 반면, b그룹에게는 근육통, 무기력, 악성 두통처럼 쉽게 증상을 상상할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해 주었다.

3주 후에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질문하자, 머리 속에 증상이 쉽게 그려지는 설명을 들었던 b그룹의 학생들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을 높게 추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은 위기를 확실하게 머리 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구성원들을 변화로 이끌려면 중후장대한 목표와 전략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를 발화시키는 힘은 9.11 테러 같은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이면서 생생한 이야기로부터 나온다.

불확실성이 커가는 요즘,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나리오 플래닝’ 은 전략기법이라기보다 변화에 불을 댕기고 변화 과정을 관리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먹구름 속에 감춰진 미래를 펼쳐 보이고 미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시키고 대응을 위해 조직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위기 대응을 위해 조직 전체의 일사불란한 대응을 주문하고 싶다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전통적 방식의 조직관리는 곤란하다. 미래의 위험과 기회가 확실하게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듦으로써 변화가 아래에서 위로 번지도록 유도할 때 성장의 엔진이 활활 타오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 논문)
Imagining Can Heighten or Lower the Perceived Likelihood of Contracting a Diseas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9월 12일자로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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