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든 읽기 좋고 발음하기 좋아야 하는 이유
동일한 내용을 담은 두 개의 보고서가 있다고 해보세요. 하나는 글씨체가 또렷하고 바탕색과 대비가 커서 알아보기 쉽게 쓰여졌지만, 다른 보고서는 조악한 폰트로 흐리게 인쇄됐습니다. 내용의 차이가 전혀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떤 보고서에 높은 점수를 줄까요? 당연히 전자의 보고서를 높이 평가할 겁니다.
이는 연구 결과로도 확실히 증명된 바인데요,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재원(성능) 정보와 함께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고객 리뷰 정보를 읽고 나서 MP3 플레이어의 적정 가격을 0달러에서 300달러 사이로 선택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연구자는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읽기 쉬운 폰트로 쓰여진 정보를 주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읽기 힘든 폰트로 적힌 정보를 읽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자의 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가격을 평균 126.3달러로 책정했고, 후자의 참가자들은 평균 162.1달러를 써냈습니다. 이것은 읽기 편한 글을 읽으니 기기의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발음하기 편하냐, 그렇지 못하냐도 큰 차이를 낳는다는 것도 이 연구의 결과입니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발음하기 쉽습니까?
(1) Artan, Kado, Boya
(2) Lasiea, Taahhut, Emniyet
단어의 의미를 몰라도 (1)은 쉽게 발음할 수 있을 겁니다. (2)는 스펠 하나하나를 맞춰봐야 발음을 유추할 수 있죠. (1)과 (2)는 가상의 증권회사 이름이었는데요, 실험 참가자들은 발음하기 좋은 (1)번 증권회사의 투자 의견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합니다. 발음이 좋은 이름은 시작할 때부터 몇 점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는 피하려고 합니다. 쉽게 감각되는 정보를 더 크게 받아들이려고 하죠. 이것은 가능한 한 인지 활동의 부담을 덜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인합니다. 읽기 어렵고 보기 어려운 정보를 접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정보를 거부하거나 꼬투리를 잡고 싶은 의도가 발동하기 시작하죠.
지금 여러분이 작성 중인 글이나 보고서를 살펴보세요. 글씨가 크고 또렷합니까? 문장들은 발음하기 좋고 리드미컬한가요? 정보를 타인에게 쉽게 전달하고 설득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헙니다.
물론 일부러 흐릿하게 보이고 발음이 어렵도록 만들어서 ‘뭔가 귀티가 나 보이는’ 효과를 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소통의 속도와 질을 감안한다면 형식적인 또렷함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때로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참고논문
Shah, A. K., & Oppenheimer, D. M. (2007). Easy does it: The role of fluency in cue weighting.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2(6), 37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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