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문은 항상 열려 있어'란 말은 위험하다   

2017. 6. 2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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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1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방으로 들어와.”

회사에서 자신의 방을 따로 가지고 있는 고위 임원들이 직원들과 자주 오픈 마인드로 의사소통하려는 취지에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상당히 많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한번쯤은 윗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분이었나? CEO나 고위 임원이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고 말하면 정말로 할 말이 있을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우리는 ‘역지사지’를 자주 입에 올리고 또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임은 물론이고 좋은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는 게 바로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는 말을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지위에 있으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또 한 번 증명된다. ‘내 방으로 언제든 들어와’란 말은 상당히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표현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결코 활발한 의사소통을 조성하기 위한 말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헐트Hult 인터내셔널 경영대학원의 메건 리츠(Megan Reitz)와 컨설턴트인 존 히긴스(John Higgins)는 ‘내 방은 열려 있어’란 말은 세 가지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직원들이 할 말이 있을 때는 임원의 ‘영역’에 들어와야 한다는 점, 둘째 따로 방이 있을 만큼 임원은 ‘지위가 높다’는 점, 셋째 언제 문을 열지 말지 임원 자신이 결정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임원의 방에 들어가는 직원의 심정은 맹수의 영역으로 걸어들어가는 초식동물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의 불균형이 극대화된 장소에서 혹시나 임원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을 건넬 수가 있을까? 다른 장소(이를테면 정수기 옆이나 화장실 앞)에서 똑같은 말을 꺼낼 때와 비교해서 그 기분 나쁨이 배가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네가 감히 여기서 그런 말을!’ 그렇기에 임원의 방에 들어와 직언을 할 의도였던 직원은 진짜로 해야 할 말을 시원하게 다하지 못하고 방 문을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직원의 말을 경청하고자 하더라도 임원이 변명을 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직원의 말을 약간 자르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게 비록 미묘할지라도 직원에게는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무엇이든 잘 들어주겠다니, 안 그렇구나! 여전히 불통이구만! 이제 여기에 들어와서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지’라며 직원은 입을 닫을 것이다. 한번이라도 경청하지 않는 모습이나 뉘앙스를 전달하면 불통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임원의 방이 바로 ‘맹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더 증폭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의 방으로 들어와서 언제든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할 때는 정말로 본인이 그럴 마음이 충분하고 ‘겸손’한지, 반대되는 의견이나 나쁜 소식을 들을 때도 잘 듣는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섣불리 ‘내 방은 열려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는 말은 자신이 활발한 의사소통을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의사소통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꼴임을 주지해야 한다. 본인은 그냥 문만 열어 놓고, 들어와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체는 직원이어야 한다고? 맹수의 방으로 어떤 직원들이 자주 들어오겠는가? 이를 보고 임원은 직원들이 자기와 의사소통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다. 활발한 의사소통은 물건너 가버린다.


직원들에게 의사소통하라고 독려하거나 힐난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직원들을 침묵케 만드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리츠와 히긴스는 꼬집는다. 방 문 하나 열어 놓는 걸로 의사소통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생각 자체로 경영자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다. 직원들과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 싶다면 직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영역에서 섞이고 부딪히는 자연스러운 동선 속에서 의사소통은 서서히 발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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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 빵집은 먹방의 저주에 빠질 것인가?   

2017. 6. 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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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0일(화) 유정식의 경영일기 

 

“팥빙수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햇볕이 뜨거운 거리를 무려(?) 400미터나 걸어서 오래 전부터 연희동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빵집을 찾은 H군이 점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때이른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한낮의 목마름과 공복감을 동시에 해소하기에 딱 좋은 음식이 팥빙수 아니겠는가? 그런데 팥빙수를 팔지 않는다니, H군의 땀으로 흥건한 얼굴은 이 말을 듣자마자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왜 안 팔죠?”

전혀 물러설 용의가 없는 H군이 따져 물었다.

“팥이 다 떨어져서요.”

“왜죠?”

상담가의 직업병인가? H군은 난처해 하는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랬다. 수요미식회에 이 빵집의 단팥빵이 소개된 모양이었다. 빵집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빵이라고 자랑스레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들고나던 소박한 곳에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가 궁금했던 H군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방송에 소개된 단팥빵을 더 많이 만들어 팔려고 팥빙수에 쓸 팥이 없는 게로군! 아무리 그래도 막 더워지는 때에 팥빙수를 팔았다가 안 파는 게 어딨나! 이건 동네 사람들을 홀대하는 것 아닌가!


H군이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팥빙수. 내가 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땐 팥을 더 달라면 기꺼이 주곤 했다.



놋그릇에 콩가루가 뿌려진 얼음 알갱이가 가득 담긴 팥빙수를 먹을 생각으로 한껏 기대에 찼던 H군은 풀이 죽은 채 다시 뜨거운 햇볕 속으로 되돌아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땀을 닦으라고 H군에게 휴지를 건넨 다음 이렇게 말했다. “먹방의 저주가 그 빵집에도 미치겠는데요.” 먹방의 저주란 이런 것이다. 요즘 횡행하는 수많은 먹방들, 그래서 이제는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먹방에 어떤 음식점이나 제과점이 소개되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그곳으로 일시에 몰린다.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음식점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음식이 없어 못파는 기회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잘 팔리는(방송에 소개된) 음식에 인력이든 재료든 무엇이든 집중한다. 다른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나 만드는 사람에게나 홀대를 받는다. 


외지 손님들이 많아진 탓에 오래된 동네 단골들 역시 이 과정에서 홀대를 받는다. 일부러 단골을 홀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줄이 길어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H군의 경우처럼 팥이 없어서 팥빙수를 못 먹는 상황, 즉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상황이 바로 동네 단골이라는 충성고객들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단골들은 섭섭함을 느끼며 점점 발을 끊기 시작한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먹방은 오늘도 계속되고 내일도 계속된다. 지금은 외지 손님이 많아 몸이 모자랄 지경이라 해도 다른 먹방에서 소개된 비슷한 음식으로 외지 손님들은 이동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손님들이 한두 번 먹어보고 아주 특별할 게 없다고 느낀다면 ‘재구매율’은 상승할 줄 모르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그렇게 길었던 대기줄은 짧아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동네 단골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떠난 단골들은 이미 다른 ‘대체재’를 확보했고 한번 상한 빈정은 회복되기가 어렵다. 지나다가 옛정 때문에 찾은 단골들이 몇몇 있겠지만 외지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에만 그간 집중한 탓에 먹고 싶은 ‘자기만의 음식’은 사라졌거나 예전 맛만 못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라며 옛단골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이게 먹방의 저주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연희동에는 방송에 소개된 유명 중국 음식점이 있는데, 그 전에는 동네 손님들을 중심으로 고급 중국요리와 술이 주로 팔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셰프가 방송을 ‘엄청 타면서’ 예약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나는 모르고 이곳에 예약전화를 했다가 기겁을 했다). 당연히 동네 단골들은 이 중국집의 요리를 맛볼 기회를 차단 당했고 예약을 안 해도 언제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부근의 다른 중국집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이곳을 찾는 연희동 주민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먹방의 저주는 종종 ‘객단가’의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방송을 보고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주로 주문하는 음식은 중국집의 3총사인 짬뽕, 짜장면, 탕수육에 집중되는 바람에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출)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소문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위의 빵집도 단팥빵은 많이 팔겠지만 나중에 주판알을 튕겨보면 객단가 혹은 고객 1인당 이익기여도가 하락하지는 않을까?


빵집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친 김에 더 해보겠다. 효자동에 있는 어떤 빵집은 들어가자마자 점원들이 접시에 시식용 빵을 들이밀며 ‘우리 빵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빵입니다. 2등은 저 빵이고, 3등은 저 빵입니다.’라고 말한다(요샌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 번 정도 갔었는데 매번 그랬다). 잘 알려진 빵집이라고 해서 어떤 빵이 있나 천천히 구경할 셈이었는데, 점원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통에 마음이 급해지고 눈치가 보여서 오히려 빵집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1, 2, 3등이 아닌 빵을 고르면 죄가 되나요?’ 1~3등이 아닌 빵들이 슬퍼보였고, 이런 영업방식이 고객에게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해주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도 야채빵과 앙금빵에만 손님을 일부러 몰게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곳이다.




2015년 1월에 전국의 10대 빵집을 돌아다니면서 각 빵집을 경영의 시각으로 간단하게 분석해 본 적이 있다(덕분에 엄청나게 조회수가 높았다. http://www.infuture.kr/1501 ). 그때 내가 나름 1등으로 꼽았던 빵집이 부산의 ‘백구당’이었다. ‘크람빵’이 유명하다고 해서 맛보려고 했는데 둘러봐도 없어서 나는 점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손님들이 크람빵만 너무 찾는 바람에 다른 빵들이 외면 받는 것 같아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고 점원은 대답했다. 여러 가지 빵을 많이 만들어도 크람빵만 팔리니 빵 만드는 사람의 자존심은 이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크람빵만 연신 만들어 팔다가 먹방의 저주와 비슷한 패착을 겪고 난 후에 마침내 동네 단골의 중요성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용기에 감복 받는 나는 크람빵 맛을 못 본 섭섭함도 잊고서 베스트 3에 백구당을 자신있게 올려 놓았다.


“이제 어디 가서 팥빙수를 먹나?”

H군은 팥빙수에 미련이 많은 듯 했다.

“그러면 우리가 직접 빙수가게나 해볼까요?”

이 말을 듣고 H군은 나에게 눈을 흘겼다. 어디서 뺨 맞고 와서 괜히 나한테 화풀이다. 어쨌든 40년 전통의 동네 빵집이 부디 먹방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를, H군이 다시금 시원하게 팥빙수를 들이키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매일 시달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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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팀 직원들에게 드리는 부탁 말씀   

2017. 6. 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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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6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박근혜 정부 때 강행됐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1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른 것으로서 환영할 만한 조치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3점이 감점되어 이에 따라 임금에 불이익을 받고 직원들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성과연봉제의 골자였다. 그간 공무원노조와 사측이 성과연봉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었는데, 이제 그 갈등이 해소되리라 생각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3년 간, 나는 보험사 노조, 카드사 노조, 지자체 노조, 중앙부처 노조 등 이런 저런 노조들로부터 강의와 자문 의뢰를 받았다. 주로 사용자 측에 ‘복무’하는 것이 컨설팅의 특성인데, 나는 어느새 노조들이 찾아와 상의하는 컨설턴트가 됐고 노조의 입장에서 컨설팅하고 강의를 몇 번 진행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2012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제고하라’ 혹은 ‘평가를 버려라’는 메시지를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어제는 지인이 내가 2시간 가량 강의한 유튜브 동영상을 모 노조에서 교육 자료로 사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평가를 없애라는 나의 주장이 제법 여러 곳에 전파되고 있는 모양이다.




성과연봉제를 없앤다고 하면, 혹은 평가를 없애라고 하면 그 대안을 무엇이냐는 소리가 항상 뒤따라 붙는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폐지하면 그 빈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폐지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 소리가 무책임하게 들리고 변화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문제가 많은 것이라면 그걸 없애는 것 자체가 대안 아닌가? 다른 무엇을 만들어서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할까? 문제가 크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그 문제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얼른 폐지부터 한 다음에 대안을 차차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문제, 평가보상의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기에 다시 언급하지 않으련다. 내가 기존의 평가를 없애라는 주장을 할 때마다 연봉은 어떻게 결정하냐, 승진은 어떻게 결정하냐, 직원들이 일 안 하고 놀면 어떻게 하냐, 동기부여가 안 될 것이다, 등등 어떤 반론과 의문이 제기될지도 거의 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기가 힘들어서 Q&A집을 만들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미 여러 매체(책, 웹사이트 등)에서 평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했으며 몇몇 기업들의 사례가 있기에 굳이 그래야 하나 싶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사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공부를 참 안 한다 싶은 의심에 이른다. 문제가 있는 걸 본인들이 이미 알면서 대안 찾기를 두려워(혹은 게을리) 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5대 기업 안에 드는 모 인사팀 직원들에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소개된, 평가를 없앤 외국기업의 사례를 읽은 적이 있냐고 물으니 다들 금시초문인 표정이었다.




어떨 때는 고작 1~2시간 강의를 하러 간 나에게 평가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대안과 함께 여러 사례를 이야기해 줘도 꼭 이렇다!) 강짜까지 놓는 직원을 본다. 강의평가에서도 ‘대안이 부족했다’란 코멘트가 보일 때면 1~2시간 강의에서 컨설팅까지 바랐는지 섭섭한 마음이 들곤 한다. 1~2시간 내에 해소될 문제라면 굳이 나를 불러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물론 그런 직원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왜 스스로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왜 대안 마련엔 손을 놓으려 하는지 따지고 싶기까지 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 1만 시간(혹은 10년) 이상 훈련하면 전문가의 위상을 갖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어느 부서에 10년 이상 근무했으니 ‘나는 전문가야’라고 생각하면 이 법칙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인사팀에 10년 이상 근무했더라도 밖에 나가 고객에게 자문할 실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조직 내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인사팀에 오래 근무한 고참직원일 뿐이다. 공부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치열함이 밑바탕이 돼야 10년 후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서두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을 빌려 분명히 말한다.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대안은 없다. 각자의 기업 특성과 현실에 맞게 평가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례는 참고만 하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외부에 있는 컨설턴트가 들어와서 만들어 주길 기대하지 마라. 컨설턴트에게 묻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해답을 찾아 나가라. 적어도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며 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시원하게 정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부족한 컨설턴트의 부탁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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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가지라고 쉽게 말하지 마라   

2017. 6. 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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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목) 유정식의 경영일기  


“열정을 좀 가져. 열정을 가지면 안 될 일이 없어.”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채근하거나 응원할 때 ‘열정’이란 단어를 언급한다. 역량이 부족해서 어떤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성격이나 기질상 그 일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열정만 있다면 못해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들여다 봐도 열정의 필요성은 어디에나 등장하는데, 열정을 갖는 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되는 ‘쉬운’ 일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로 깔려 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조언은 모두 열정을 장착한 상태를 전제로 한다. 헌데 열정을 갖는 것이 정말 쉬울까?


나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어원을 따져보기를 즐긴다. 그러면 단어에 담긴 고유의 의미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의미를 비교하면서 뜻밖의 통찰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원을 알려주는 www.etymonline.com 란 사이트에서 열정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passion’를 쳐보니 생각치 못한 의미와 만났다. 10세기에 쓰인 라틴어 passionem은 십자가의 매달린 예수의 육체적 고통을 의미했다. 우리가 열정의 뜻으로 보통 알고 있는 ‘열광’이나 ‘환호’, ‘선망’과 같은 뉘앙스는 17세기에 가서야 덧붙여졌을 뿐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passion의 본래 의미였다. 어원으로 봐도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그렇기 때문에 열정을 갖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그야말로 ‘도전’이다.




열정의 동반자가 고통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은 ‘없어야’ 고통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열정을 갖지 않으면 유리한 점이 많다. 책임을 덜 질 수 있고 좀더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고 개인 활동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열정이 부족한 것이 별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열정이 부족한 것에는 일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든지, 상사가 제대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든지, 보상이 따라주지 않는다든지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자기 잘못을 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냉정히 말해, 열정 역시 일종의 재능이라서 ‘그래, 이제부터 열정을 가지겠어.’라는 다짐으로 쉽게 불타오르지 못한다.


조직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리더가 열정이 부족한 직원에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목표 설정과 성과관리 방법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방법들이 직원의 마음에 열정이 끓어오르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안다. 열정의 옆좌석에 고통이 동반하는데 누가 쉽사리 열정의 열차에 올라타겠는가? 사실 리더가 성과관리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도달하도록 직원들을 채근하고 상기시키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열정에 관한 한 최종적인 목표다.


리더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열정의 열차에 올라태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단호히 구분하는 일이다. 열정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직원을 억지로 태우려 한다면 그들에게 시간과 노력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정작 열정을 가진 자(열정을 가질 준비가 된 자)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게 된다.  


열차에 태울 직원들을 선별했다면 그들이 쉽사리 열정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들여다 봐야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업무가 조직의 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팀원들 중에서는 남들보다 덜 중요하고 덜 긴급한 업무를 담당하지만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업무를 담당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일이 타 팀원들의 성과 창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나아가 팀과 회사 전체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김 대리의 일은 목표 달성에 아주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개별 업무의 아웃풋이 어떻게 타인 업무의 인풋이 되고 성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열정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구체적인 기대감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열정의 행동을 알려주고 그런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도록 해야 한다. 매출 얼마, 고객만족도 얼마, 라는 식으로 목표 달성치를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 팀이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일이 많아 야근을 하는 동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객 대상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상황에서 요구되는 행동을 명확히 제시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조직의 ‘시민’으로서 어떤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지 전달하고 서로 합의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열정이라는 열차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않는다. 탑승자들이 열차의 각 부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일러주어야 한다.


또한 절대 지속적인 피드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정적이지 않았던 사람은 ‘무열정’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제부터 열정적으로 일해야지!’라고 생각해도 오랫동안 굳어진 몸은 관성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 또한 리더도 열정적이지 않은 구성원을 보고도 가만히 두고 넘어가려는 관성에 빠진다. 특히 1년에 한번 평가하고 면담하는 제도가 운영 중이라면 그때까지 피드백을 미루려고 한다. 1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자네는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아.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한다면 직원이 과연 그런 피드백을 받아들일까? 1년 동안 그 많았던 행동 변화의 기회들은 다 던져 버리고 이제와 한 번의 피드백으로 변화를 바라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직원에게 욕을 먹을 것을 염려해 피드백을 주저하는 리더라면 열정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열정적인 사람으로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직원은 리더의 행동과 마인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말이다. 물론 리더도 사람인지라 열정적이지 않을 수 있고 항상 열정적이지는 못하다. 완벽한 롤모델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열정적이려고 노력하라는 말이다.


열정은 고통을 내포하기 때문에 끌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열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리더는 직원의 저항을 반드시 경험한다. 평가와 보상이라는 장치로 절대 열정을 끌어낼 수 없다. 솔직하고 대담하게 나아가라. 감동적인 스토리나 구호 같은 것에 기대기보다는 직들에게 열정의 구체적인 행동을 바란다고 솔직하게 말하라. 그런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대화할 때 열차의 무거운 바퀴는 목적지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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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에어비앤비의 매력   

2017. 6. 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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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9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오늘의 경영일기는 이번에 새로 나온 저의 번역서 '에어비앤비 스토리'에 올린 옮긴이의 글로 대신합니다. 제 경험을 위주로 썼으니 일기처럼 읽힐 겁니다. ^^ 참고로 이 책은 어제 날짜로 발간되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이야기를 번역해 보면 어떻겠냐는 편집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침 안동의 하회마을을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같이 여행하던 일행에게 번역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모두들 놀란 눈을 하며 당장 수락하라고 야단이었다. 다들 한 번 이상 에어비앤비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앞으로의 여행도 에어비앤비를 1순위로 삼는다고 입을 모으며 에어비앤비의 장점을 줄줄 쏟아냈다. 호텔보다 저렴한 숙박비로 여러 명이 넓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호스트가 게스트를 위해 마련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낯선 장소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즐거움이 매력이라고 말하며 서로 어디어디에서 묵어 봤냐며 한창 수다를 떨었다. 나는 에어비앤비의 장점 자체보다 그렇게 재미나게 에어비앤비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 놀라웠다. ‘에어비앤비 빠’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몇몇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삶과 문화를 경험해 보라는 에어비앤비의 권유가 듣기 좋은 선전문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호스트의 얼굴을 마주하고 호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 역시 지금껏 수차례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동안 호스트의 얼굴을 한번도 직접 본 적 없고 사이트에 나온 사진을 보며 문자 메시지를 나눈 것이 전부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숙소가 위치한 지역으로 시각을 넓혀보면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매력은 ‘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제가 번역한 책, 에어비앤비 스토리



이 책의 번역을 얼추 마무리 지었을 때 나는 지인들과 함께 일본 교토를 여행했다. 에어비앤비 이야기를 번역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다. 유명 관광지라서 도심의 호텔은 지나치게 비싼 이유도 있었지만 교토의 뒷골목을 경험하고 싶었기에 상대적으로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변두리로 숙소를 예약했다. 호스트가 이메일로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여니 작은 공간에 집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차고 다다미 냄새가 풍기는 숙소는 여느 일본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묵었던 교토의 에어비앤비 숙소



다음날 아침,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던 우리는 간판도 없는 작은 중고 LP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다. 다들 LP 애호가인 우리는 만세를 부를 뻔했다. 교토의 변두리에서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500~1000엔)으로 오래된 LP를 판매하는 곳을 만나게 되리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신나게 LP를 고르고 주인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교토 시내 구경은 어느새 뒷전으로 물러나 버렸다. 호텔에 묵었으면 이런 즐거움은 절대 경험하지 못했으리라.


숙소 근처의 작은 LP 가게



이런 극적인 발견은 그날 저녁에도 있었다. 한창 놀다가 허기가 진 우리는 서점 점원에게 동네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빗 속을 걸어 점원이 지도에 그려준 집을 어렵게 찾아간 우리는 ‘closed’란 팻말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래서 아무 식당이나 가자며 들어간 곳이 ‘카라반’이라는 동네식당이었다. 허름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이름인데다가 동네 아저씨들이 한켠에서 담배를 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나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마침 나온 치킨 가라아게와 카레 라이스를 한 입 먹어보고 ‘유레카!’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관광 안내 책자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그곳은 교토 대학생들에게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저녁도 그곳에서 배불리 먹었고 나는 다시 올 것을 다짐하며 구글맵에 위치를 기록했다. 옮긴이의 말에 쓰기에 이처럼 좋은 소재가 있을까? 유명 관광지가 되어 버린 안동 하회마을 같은 곳이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행운이었다.


식당 카라반의 소박한 간판



책에도 소개됐듯이 에어비앤비는 단순한 숙박 서비스에서 벗어나 호스트를 중심으로 한 ‘체험’으로 무게중심을 점점 옮겨 가고 있다. 교토 여행을 같이 갔던 사람들과 홍대 부근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경험’과 ‘체험’의 차이가 무엇인지 잠시 토론한 적이 있다. 영어로는 두 단어 모두 ‘experience’라서 견해에 따라 정의가 다르겠지만, 우리는 나름 열띤 토론을 통해 제3자적이고 ‘안전한’ 입장에 머무는 것이 경험인 반면 상황에 뛰어들어 몸소 체득하고 느끼는 것이 체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경험과 체험을 구분해서 사용했고 에어비앤비가 새로이 추구하는 전략 방향을 체험이라고 번역했다. 


체험이야말로 에어비앤비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독특한 가치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현지인처럼 머물다가 구석에 위치한 중고 LP가게와 ‘카라반’ 식당 같은 곳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 것이다. 이 책으로 에어비앤비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이 끝났으면 이제 체험할 차례가 아닐까? 나처럼 각자의 보물장소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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