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까페의 흔들리는 테이블을 보며   

2017. 6. 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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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오늘 아침 브런치나 먹으러 갈래요?”

“오, 좋아요! 어디로 갈 건데요?”

“홍대 근처에 있는 F카페, 어때요?”

“어, 거기요? 거긴 별론데…”

“왜요? 거기 12시까지 브런치를 뷔페로 먹을 수 있고 커피도 무제한인데.”

“음식은 좋은데요, 거기 테이블이 문제에요. 테이블이 너무 흔들려서 가기가 싫어졌어요.”


며칠 전에 동료와 나눴던 대화다. 동료가 가기가 싫다고 댄 이유를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지난 번에 찾았을 때 테이블이 출렁거려서 도저히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기 어려웠다. 2~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상판이 기둥 하나에 붙어있는 구조였는데, 그 결합이 느슨한 탓에 모든 테이블이 죄다 시소처럼 상판이 아래 위로 1~2센티미터 가량 흔들렸다. ‘이러다 뜨거운 커피를 엎는 거 아냐? 테이블에 팔을 올려 놓을 수도 없고, 영 불편해.’


지나가는 종업원에게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안 흔들리는 테이블은 없나요?”

종업원은 미안한 듯 대답했다.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테이블이 문제라는 걸 모르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는 물었다. “저번에도 테이블이 이렇게 흔들렸는데 왜 안 고치나요?”

종업원은 연신 미안한지 손을 마주 비비며 말했다. “이게 구조상 고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힘없는 종업원을 탓해서 뭐하랴. 나는 정장을 차려입고 로스팅 기계 앞에서 커피콩에 코를 갖다대는, 사장인 듯 보이는 사람(아닐 수도 있다)을 쏘아 보았다. 저렇게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할 생각 말고 테이블이나 고치든지, 고치는 게 불가능하면 매몰비용을 아까워 말고 바로 교체나 할 것일지! 본인이 이렇게 흔들리는 테이블에서 커피를 매일 마셔야 한다면 과연 그냥 놔둘까?




혹시 F까페의 대표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리고 매장 매출이 점차 감소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바로 테이블을 교체할 것을 권한다.  흔들리는 테이블은 고객이 매장에서 느끼는 안정성에 꽤나 큰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니까 말이다. 그냥 상식선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험으로 증명된 바다. 워털루 대학교의 데이비드 킬리(David R. Kille)는 대학생 47명(남 25명, 여 22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약간씩 흔들리는 의자와 테이블에 앉혔고 나머지 그룹은 안정적인 의자와 테이블에 앉게 했다. 그런 다음,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 등과 같이 널리 알려진 네 커플이 5년 내에 헤어질 가능성을 7점 척도로 평가해 달라고 했다. 


분석해 보니, 흔들리는 의자와 테이블에 앉은 참가자들이 안정적인 의자와 테이블에 앉은 참가자들에 비해 네 커플이 깨질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고, 안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흔들리는 테이블에서 불안하게 커피와 음식을 먹은 손님의 마음 속에는 커피향이나 음식맛보다는 그 매장에 주는 불안정성 때문에 다시 찾기를 꺼려할 것이 분명하다. 특별히 맛있거나 특별히 저렴하지 않으면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테이블을 바꿀 것을 권하는 것이다.


사소하게 보이는 가구의 안정성이 인간의 심리를 크게 좌우한다는 점은 비단 F까페와 같은 음식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이 매일 살을 붙이고 앉아 있는 의자와 책상이 과연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지, 열심히 일하도록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 따져 보는 것도 경영자의 관심사항이 되어야 한다. 




내가 아는 컨설턴트 A는 과거에 유명 가구회사에 다닌 적이 있는데, 그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가 전혀 통일돼 있지 않을 뿐더러 낡아 빠졌었다고 털어 놓았다. 명색이 가구회사가 직원들의 업무용 가구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는다니, 듣는 나도 어이가 없었다. 작년인가, 그 회사를 업무 협의를 위해 찾은 적이 있었다. A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어서 옆눈으로 직원들의 책상과 의자를 살펴보고 전체적인 인테리어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애석하게도 십 몇 년 전의 상태가 별로 개선된 것 같지 않았다. 가구 회사가 왜 이 모양이지, 싶었다. 회사 직원들의 자존감이 얼마나 낮을지 짐작이 됐다.


A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나 더 추가하면, 고객 대상의 매장 인테리어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데 판매직원들을 위한 휴식공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다 해도 매우 '후지다'고 한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영업사원들이 휴식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건의하니까 경영진은 그럴 공간이 없다는 소리만 하더란다. 직원들을 사람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명확한 신호다.


업무환경을 구글이나 에어비앤비처럼 돈을 쏟아부어 화려하고 멋있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잘 열리지 않는 책상서랍을 열다가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결국에 부서 간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든지, 얼룩지고 뜯긴 의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떨어지는 자존감 때문에 업무에 몰입하지 못한다든지 해서 잃어버리는 이익과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회사 물품 관리를 책임지는 총무부서도 이제는 이런 전략적이고 심리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책상 하나도 내 몸 하나를 의탁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서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


흔들리는 테이블 때문에 F끼페를 포기한 나와 동료는 바로 메밀국수집으로 향했다. 그곳의 테이블은 소박하기 그지없고 촌스러웠지만 팔뚝을 얹고 몸을 기대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했다. 아무렴, 테이블은 모름지기 이래야지! 그게 테이블의 기본 아닌가?



(* F까페에 그 후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글은 F까페가 아직 테이블을 고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서 쓰여졌습니다.)



(*참고논문)

Kille, D. R., Forest, A. L., & Wood, J. V. (2013). Tall, dark, and stable: Embodiment motivates mate selection preferences. Psychological Science, 24(1), 1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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