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9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오늘의 경영일기는 이번에 새로 나온 저의 번역서 '에어비앤비 스토리'에 올린 옮긴이의 글로 대신합니다. 제 경험을 위주로 썼으니 일기처럼 읽힐 겁니다. ^^ 참고로 이 책은 어제 날짜로 발간되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이야기를 번역해 보면 어떻겠냐는 편집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침 안동의 하회마을을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같이 여행하던 일행에게 번역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모두들 놀란 눈을 하며 당장 수락하라고 야단이었다. 다들 한 번 이상 에어비앤비를 경험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앞으로의 여행도 에어비앤비를 1순위로 삼는다고 입을 모으며 에어비앤비의 장점을 줄줄 쏟아냈다. 호텔보다 저렴한 숙박비로 여러 명이 넓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호스트가 게스트를 위해 마련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낯선 장소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즐거움이 매력이라고 말하며 서로 어디어디에서 묵어 봤냐며 한창 수다를 떨었다. 나는 에어비앤비의 장점 자체보다 그렇게 재미나게 에어비앤비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이 더 놀라웠다. ‘에어비앤비 빠’들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몇몇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삶과 문화를 경험해 보라는 에어비앤비의 권유가 듣기 좋은 선전문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호스트의 얼굴을 마주하고 호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경우가 드물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 역시 지금껏 수차례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동안 호스트의 얼굴을 한번도 직접 본 적 없고 사이트에 나온 사진을 보며 문자 메시지를 나눈 것이 전부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숙소가 위치한 지역으로 시각을 넓혀보면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매력은 ‘동네’에 있기 때문이다.
제가 번역한 책, 에어비앤비 스토리
이 책의 번역을 얼추 마무리 지었을 때 나는 지인들과 함께 일본 교토를 여행했다. 에어비앤비 이야기를 번역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다. 유명 관광지라서 도심의 호텔은 지나치게 비싼 이유도 있었지만 교토의 뒷골목을 경험하고 싶었기에 상대적으로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변두리로 숙소를 예약했다. 호스트가 이메일로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여니 작은 공간에 집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차고 다다미 냄새가 풍기는 숙소는 여느 일본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묵었던 교토의 에어비앤비 숙소
다음날 아침,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던 우리는 간판도 없는 작은 중고 LP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다. 다들 LP 애호가인 우리는 만세를 부를 뻔했다. 교토의 변두리에서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500~1000엔)으로 오래된 LP를 판매하는 곳을 만나게 되리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신나게 LP를 고르고 주인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교토 시내 구경은 어느새 뒷전으로 물러나 버렸다. 호텔에 묵었으면 이런 즐거움은 절대 경험하지 못했으리라.
숙소 근처의 작은 LP 가게
이런 극적인 발견은 그날 저녁에도 있었다. 한창 놀다가 허기가 진 우리는 서점 점원에게 동네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빗 속을 걸어 점원이 지도에 그려준 집을 어렵게 찾아간 우리는 ‘closed’란 팻말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래서 아무 식당이나 가자며 들어간 곳이 ‘카라반’이라는 동네식당이었다. 허름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은 이름인데다가 동네 아저씨들이 한켠에서 담배를 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나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마침 나온 치킨 가라아게와 카레 라이스를 한 입 먹어보고 ‘유레카!’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관광 안내 책자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그곳은 교토 대학생들에게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저녁도 그곳에서 배불리 먹었고 나는 다시 올 것을 다짐하며 구글맵에 위치를 기록했다. 옮긴이의 말에 쓰기에 이처럼 좋은 소재가 있을까? 유명 관광지가 되어 버린 안동 하회마을 같은 곳이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행운이었다.
식당 카라반의 소박한 간판
책에도 소개됐듯이 에어비앤비는 단순한 숙박 서비스에서 벗어나 호스트를 중심으로 한 ‘체험’으로 무게중심을 점점 옮겨 가고 있다. 교토 여행을 같이 갔던 사람들과 홍대 부근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경험’과 ‘체험’의 차이가 무엇인지 잠시 토론한 적이 있다. 영어로는 두 단어 모두 ‘experience’라서 견해에 따라 정의가 다르겠지만, 우리는 나름 열띤 토론을 통해 제3자적이고 ‘안전한’ 입장에 머무는 것이 경험인 반면 상황에 뛰어들어 몸소 체득하고 느끼는 것이 체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경험과 체험을 구분해서 사용했고 에어비앤비가 새로이 추구하는 전략 방향을 체험이라고 번역했다.
체험이야말로 에어비앤비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독특한 가치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현지인처럼 머물다가 구석에 위치한 중고 LP가게와 ‘카라반’ 식당 같은 곳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세 알 것이다. 이 책으로 에어비앤비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이 끝났으면 이제 체험할 차례가 아닐까? 나처럼 각자의 보물장소를 발견하길 바란다.
'[연재] 시리즈 > 경영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팀 직원들에게 드리는 부탁 말씀 (0) | 2017.06.16 |
---|---|
열정을 가지라고 쉽게 말하지 마라 (0) | 2017.06.15 |
진정한 원더우먼은 누구인가? (1) | 2017.06.07 |
어느 까페의 흔들리는 테이블을 보며 (0) | 2017.06.05 |
스타벅스에 가면 마음이 편안한 이유는? (0) | 2017.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