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용어를 많이 섞어 쓰나요?   

2024. 6.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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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는 대화를 할 때 우리말 용어가 있는데도 굳이 영어로 된 말을 지나치게 많이 섞어 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상대방에 배려심이 적다고 판단합니다. 이게 편견인 이유는 어떤 분야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영어 용어를 자주 접하고 억지로 한국말로 번역된 용어를 쓰느니 간명하게 영어 단어를 쓰면 의사소통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가 그 분야의 사람이 아닌 줄 잘 알면서도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를 내뱉을 때입니다. 10년 전 쯤 어느 미팅 때 누군가가 자꾸만 ‘텔코.’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텔코’는 ‘Telco.’이고 ‘Telecom Company(통신 회사)’의 줄인 말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죠.

자기네끼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내뱉는 단어겠지만, 저처럼 통신 쪽엔 문외한인 사람에겐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자주 쓴다는 ‘강종(강제 종료)’. ‘갠소(개인 소장)’ 같은 외계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컨설턴트라고 하니까 그 정도 용어는 알아 듣겠거니 해서 내부인과 대화하듯 편하게 나를 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나의 배경지식을 과대평가한다’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조금 없구만’이라는 편견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전문용어의 과다 사용은 자신감이 낮음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연구자는 지위가 낮아서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높은 지위에 있기에 자신감이 높은 상황, 이렇게 두 가지 상황을 설정한 다음에 참가자들이 전문용어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상대적 지위가 낮은 조건의 참가자들이 상대적 지위가 높은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전문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상대적 지위의 낮음을 전문용어로 보호 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죠. 상대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외부인과 대화할 때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습니다. 본인이 상대방보다 지위가 낮다는 것을 은연 중에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일단 상대방이 이쪽 분야의 지식이 별로 없다는 전제 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의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되면 그에 따라 대화의 수준을 상향해야 좋지 않을까요?


*참고논문
Brown, Z. C., Anicich, E. M., & Galinsky, A. D. (2020). Compensatory conspicuous communication: Low status increases jargon use.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61, 27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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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라굽쇼?   

2024. 6.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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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한번쯤 이런 생각한 적이 있을 겁니다.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 회사를 그만 둘 때나 고의로 어떤 모임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때 혹은 억울함을 보상 받고자 누군가와의 약속을 일부러 깰 때 우리는 속으로 이 말을 뇌까리곤 합니다. 

특히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런 보상이 돌아오지 않거나 오히려 희생양으로 몰려 '그곳으로부터 이탈'을 결심할 때 우리는 이런 작은 '저주'를 속으로 날리죠. 솔직히 저도 몇 번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던가요? 여러분이 없어도 일이 잘 돌아가지 않던가요? 그곳에 속할 때는 여러분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겠지만 어이없게도 누군가가 여러분을 '손쉽게' 대체하지 않던가요? 아니면, 아예 여러분이 하던 일이 없어도 되는 일이였다는 듯 잊혀지지 않던가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분이 없어도(그리고 '내'가 없어도) 조직은 잘만 굴러갑니다. 겸연쩍게도 말이에요.

이 작은 '진리'를 오늘(일요일) 새삼 되새겼답니다. 오늘 낮에 OTT에서 시청한 일본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는 몇 번의 인생을 되풀이해 살면서 실수나 사고를 예방하고 교정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더군요.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잔잔하고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장면 중에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를 느끼게 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삶을 되풀이하는 주인공은 그 앞의 생애에서 벌어진 비행기 사고를 막으려고 직접 파일럿이 됐습니다. 비행기의 기장이 되어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지 않을 항로로 기수를 돌리려고 했던 거죠. 그 비행기에 탄 친구들과 승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머리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미생물 연구원으로 네 번째 삶을 살 때 그녀는 새로운 균을 발견했고 그 덕에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생(다섯 번째 삶)에는 비행기 파일럿으로 살기에 당연히 그 균을 발견할 수 없었을 터였죠. 그녀는 180명의 승객을 구하려다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그러다 그녀는 네 번째 삶에서 자신이 발표한 것과 같은 주제의 논문이 출판됐는지 검색하더니 복잡한 표정을 짓습니다. 누군가가 그 균을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이미 논문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출판 날짜를 보니 자신의 출판일보다 몇 년은 앞섰습니다.

'오히려 내가 이 균을 발견하지 못하게 막은 걸림돌은 아니었나?'

자기가 그 자리에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것, 아니 자기가 없었으면 누군가가 벌써 이룩했을 업적이란 점에서 세상은 더 잘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안도하면서 비행기 기장이 되어 승객을 구하겠다는 계획에 몰두합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나 보자!'는 우리 각자가 1인칭 시점(자기 얼굴을 보지 못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만, 얄밉게도 '그곳들'은 잘 돌아갑니다. 아쉽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가 빠져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갑자기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다고 팀이나 회사가 망하지는 않으니까요.

다행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살면서 여러 번 내뱉은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란 저주를 흡수하고 완충시킬 만큼 충분히 안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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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해도 된다'라는 말의 힘   

2024. 6.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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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나 동료에게 무언가를 '급히'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그걸 같이할 사람이 그 사람 밖에 없을 때, 그리고 그 사람도 원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예, 제가 같이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할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요청을 승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상사이거나 고객이라면 그 사람은 여러분의 요청을 압박이라 여길 수 있고 만약 요청을 거절한다면 비난섞인 소리를 듣거나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여러분이 가하는 압박에 못이겨 상대방이 요청을 '마지못해' 수락한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충 하는척 하면서 질낮은 결과물을 들고 오거나 마감일이 나중에 가서 "저, 못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그 사람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자발적으로 여러분의 요청을 수락해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가지고 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구에 의하면, 상대방에게 '요청을 거절해도 된다'라는 것을 인식시킬 때 압박감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저의 부탁을 거절해도 됩니다."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알려줘도 실제로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신기하죠? 

그런데 문제는 '거절해도 좋아요'란 뜻을 어떤 식으로 전달하냐는 것입니다. 요청을 해놓고 바로 "제 요청을 거절해도 됩니다."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잖습니까? 혹여 상대방이 이 말을 듣자마자 "그러면, 저는 안 할래요."라고 대답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뻘쭘해지고 두 사람 사이가 미묘하게 틀어질 테니까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두 방법 모두 '거절할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첫째,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입니다. "부탁을 거절해도 좋아요."란 말을 듣고 바로 "안 하겠습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분위기에 휩쓸려 마지못해 수락하고 말겠죠. 그러니 이렇게 요청하는 게 좋아요. "이것을 부탁 드리는데요, 거절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결정하지 말고요, 내일까지 고민해 보고 알려 주시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다면 상대방에게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1시간 후에 대답해 주겠습니까?"라고는 할 수 있겠죠.

둘째, 이메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메일로 여러분의 요청을 상세하게 써서 보내면 상대방은 그걸 읽고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거절하겠다는 이메일을 쓰려다가도 생각을 고쳐먹고 요청을 수락할 수도 있죠. 요청사항을 숙고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 요청을 압박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고, 수락한 후에는 자발적으로 일을 수행할 겁니다.

오늘은 요청을 압박이나 명령으로 느끼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팁을 알아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존중'의 미덕이 여기에도 깔려 있습니다. '내가 막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동반하는 사람'이라는 존중과 상호신뢰가 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Sommers, R., & Bohns, V. K. (2018). The voluntariness of voluntary consent: Consent searches and the psychology of compliance. Yale LJ, 128,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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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희망하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2024. 5.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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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 사고방식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것'이라고 여깁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면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죠. 그도 그럴것이, 수많은 연구들이 긍정적 사고방식의 효과를 증명했습니다. 창의력을 3배 증진시키고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하며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13%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까요.

또한 긍정적 사고방식을 탑재한 사람일수록 리더십 스킬이 남들보다 우수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역시 더 낫다는 이야기도 상식처럼 돌아다니죠.

하지만 긍정적 마인드가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경계해야 합니다. 문제가 벌어졌다면 그 문제를 즉각 해결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도 웃으면서 "괜찮을 거야. 큰 문제가 아닐 거야. 언젠가 나아지겠지"라고 스스로에게 혹은 동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하나쯤 있을 겁니다(만약에 없다면, 여러분 본인일지도). 그가 여러분에게 강조하는 긍정주의는 약이라기보다 독이 아니던가요?

약이 아니라 독인 이유는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할 수 있다'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얼굴 붉히고 서로 논쟁하며 괴로운 표정으로 해결책을 궁리하고 시행착오로 좌절을 거듭한다 해도 해결책이 나올까 말까인데, 그냥 웃으라니요!

 


만약 여러분 주위에 이렇게 독이 되는 긍정주의를 강조하거나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멀리하는 게 여러분 정신건강에 좋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Reimagine Inclusion>이란 책의 저자인 미타 말리크(Mita Mallick)는 다음의 3가지 중 하나 이상에 해당되는지 판단해 보라고 권합니다.

1. 그 사람 주위에는 '예스맨'들만 있다
긍정적 사고를 강요하는 그에게 누가 'No'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뭐가 됐든 'Yes' 혹은 'OK', '당신 말이 맞습니다'라고 대답하겠죠. 의심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을 겁니다.

2. 칭찬이 과하다
별것 아닌데도 과도할 정도로 칭찬하는 것도 독이 되는 긍정주의의 모습입니다. 물론 칭찬은 '일반적으로는' 좋은 것이지만, 상대방을 '조종(manipulate)'할 목적으로 하는 칭찬에는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이 일을 할 사람은 너밖에 없어. 난 너를 믿어!"

이 말은 동기를 불어넣으려는 말이긴 하지만,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던진다는 것은 상대를 옳아매려는 의도일지 모릅니다.

3. 어떤 상황에도 웃으라고 말한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문제가 터져서 힘든데 "얼굴 찡그리지 마라. 좀 웃어라. 그렇게 신경 곤두세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잘 될 거야"라며 전혀 도움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긍정주의는 약이 아니라 독입니다. 앞뒤 안 가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죠.

긍정주의는 밝게 웃으며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절로 잘 되리라 기대하는 것도 아니죠. 올바른 긍정주의는 '끊임없는 행동과 대처가 언젠가는 미래를 유리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행동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긍정주의죠. 그렇기에 긍정주의의 반대말은 부정주의가 아니라 '행동 없는 긍정주의'입니다.

행동 없는 긍정주의를 시전하는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있다고요? 오히려 그를 깔끔하게 손절하는 것이 여러분의 긍정적 삶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비로소 '행동에 몰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참고기사
https://hbr.org/2024/05/does-your-boss-practice-toxic-posi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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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많은 연봉을 받는 방법   

2024. 5.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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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협상을 벌일 때 어떤 사람은 '대략 어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타사 동일직무의 연봉을 언급하면서 정확한 숫자로 희망연봉을 제시합니다. 아마 후자보다 전자의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요, 대부분 조직에서는 ‘희망연봉을 말해보라’는 말을 듣고도 자신감 없이 뭉뚱그려 대답하곤 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이 바로 이렇다면 앞으로 연봉 협상에 임할 때는 가능한 한 ‘끝자리’까지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겠네요. 이는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니 믿어도 됩니다.

연구자는 280명의 참가자들에게 보석가게 주인과 보석값을 놓고 흥정하는 가상 상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보석 값으로 20달러, 19달러, 21달러를 각각 제시할 경우, 참가자들이 얼마의 금액을 역제안할지 보고자 했죠. 

 



그랬더니, 19달러나 21달러를 제시했을 때보다 끝자리가 0으로 끝나는 ‘20달러’를 제안 받았을 때 참가자들은 깎아 달라고 더 많이 역제안을 했습니다. 뒤이어 실시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커피 자판기 가격으로 9, 10, 11달러를 제시했더니 참가자들은 9달러나 11달러일 때보다 10달러를 제안 받았을 때 더 깎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실험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정확한 숫자’가 뭉뚱그린 숫자에 비해 강력한 심리적 ‘닻’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닻 효과(Anchor Effect)’란 처음 제시된 수치에서 사람들의 사고가 멀리 달아나지 못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인데요, 끝자리까지 자세한 숫자(가능하면 소수점 아래자리도 명시된 숫자)의 닻 효과가 훨씬 크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뭉뚱그린 숫자가 상대적으로 가격 조정을 크게 받을까요? 추측하건대 숫자가 구체적이지 않으면(예를 들어 3,000만원), 금액을 제안 받은 사람은 제안자가 원래의 값(이를테면 2,786만원)을 그저 끌어 올렸거나 정보를 숨긴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희망연봉을 제시할 경우에는 4,500만원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4,450만원이라고 말해야 좋을 겁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뭉뚱그린 숫자보다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높은 연봉으로 계약을 하게 됐다면, 저에게 커피 한 잔 사시고요.


*참고논문
Mason, M. F., Lee, A. J., Wiley, E. A., & Ames, D. R. (2013). Precise offers are potent anchors: Conciliatory counteroffers and attributions of knowledge in negotiation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9(4), 759-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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