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심어도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이유   

2017. 6. 23. 09:55
반응형



2017년 6월 23일(금)


“여기에 왜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지 모르겠네!”

연희동 서연중학교 앞을 지나던 H군은 눈살을 찌뿌리면서 이렇게 짜증을 냈다. H군이 멈춰선 곳을 쳐다보니 서연중학교 교문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인 코너였는데, 늘 무단투기된 쓰레기로 지저분한 곳이다. 언덕 아래의 코너라서 깊이가 깊어서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도 안심(?)이 될 것 같은 곳이다. 무단투기된 쓰레기 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쓰레기를 내놓는 날(연희동은 화, 목, 일)에도 그곳에는 쓰레기봉투가 가득하다. 쓰레기봉투는 자기집 앞에 놓으라고 구청에서 그렇게 홍보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그렇게 쌓아놓는 이유는 역시 쓰레기를 갖다 놔도 버려진 쓰레기들이 아늑(?)하게 머물다 갈 만한 곳이기 때문인 듯 하다.


“여기에 화분을 갖다 놓으면 뭘 해! 여기에 쓰레기를 쑤셔 넣는데.”

여전히 짜증을 내는 H군의 어깨 너머로 보니 구청에서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설치해 놓은, 붉은 꽃이 대형 화분 세 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틈으로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는 곳에 꽃을 심어 놓으면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가 예뻐진 그곳을 더럽히는 게 미안해서 그냥 돌아간다는 심리를 어디서 보긴 했나 보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갖다 두면 차가 갈수록 파괴되고 쓰레기로 가득해진다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작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 나름 고민한 흔적이었다.




하지만 화분의 형태를 보면 쓰레기를 갖다 버려도 안심이 될 만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대형 화분의 높이는 배꼽까지 올라올 만큼 높았고 아래로 갈수록 아래로 좁아지는 모양이었다. 게대가 세 개의 화분을 밀착시키지 않고 두뼘 정도 떨어뜨려 놓아서 사이 사이에 빈 공간 훤히 드러났다. 거기에 커다란 장난감 자동차를 쑤셔 박아놓은 걸 보고 H군이 열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면 대걸레 자루가 벽에 기대어 있고 벽과 화분 사이에 대형 플라스틱 뚜껑과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엉켜 있는 걸 볼 수 있다. 배출하는 날이 아닌데도 쓰레기봉투가 화분 앞에 떡하니 누워 있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다.


화분을 가져다 놓으려면 벽에 확실이 밀착시켜 쓰레기를 숨길만 한 공간을 최대한 없애고 사각형으로 된 화분을 사용하여 그 사이에도 빈 공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진처럼 빈 공간을 만들어 두면 아무리 꽃이 예뻐도 쓰레기를 버리고자 하는 욕구를 이겨낼 수 없다. 그냥 화분만 갖다 놓으면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않겠지, 하며 안일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문제는 겨울에 더 커진다. 지금은 날씨가 여름이라 꽃을 심어둘 수 있지만 꽃이 없는 겨울에는 이게 화분인지 쓰레기통인지 언뜻 구분하기가 어렵다. 지난 겨울에 보니 화분 안까지 지저분한 쓰레기가 넘쳐났다.




사람의 심리를 활용한 조치는 끊임없는 관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주 미묘한 차이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도 있고 아예 생각하지도 못한 행동을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여러 가지 제도나 크고 작은 규칙들이 아주 작은 차이로 직원들의 행동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 면밀한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구청 관계자들은 이를 간과한 모양이다. 화분을 갖다 놓는 것만 생각했지, 화분의 형태와 설치 방식까지 고민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화분을 심은 후에 무단투기가 줄었는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데 역시 이것에도 무관심한 것 같다. 화분 설치로 무단투기를 줄였다, 라고 내부 보고서나 구정 홍보에 활용하면 그만이겠지 싶다.


“에이, 짜증나. 짜증나니까 OOO에서 팥빙수 사줘요.”

왜 내가 팥빙수를 사야 합니까, 따지려다가 나는 이렇게 말했다.

“OOO에서 팥빙수 안 한다면서요?”

H군의 얼굴에는 낙담과 분노가 어지럽게 교차했다. 나는 미팅이 있다고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반응형

  
,

'싸나이답게'라는 최악의 사과문을 보며   

2017. 6. 22. 09:48
반응형



2017년 6월 22일(목) 유정식의 경영일기 


“싸나이답게, 시원하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량을 베풀어 거둬 주십시요.”

BBQ가 16,000원이었던 치킨값을 20,000원으로, 3주 사이에 25퍼센트나 올렸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정 후 급철회하고 어제(2017년 6월 21일) 공식 블로그에 올린 사과문 중 일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 사과문을 보자마자 ‘장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싸나이답게 시원하게?’ 사나이도 아니고 싸나이라니! 2만원으로 인상했다가 철회하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대단한 아량이라도 베푸는 듯한 뉘앙스가 강하게 풍겼다. ‘그래, 너희들이 불만이라고 하니까 마음씨 좋고 아량 넓은 내가 봐줄게. 난 싸나이니까!’


BBQ 공식 블로그 캡쳐



이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사과를 하는 건지 시혜를 베푸는 건지 헛갈리는 사과문구는 대체 누가 쓴 건가? 필시 홍보부서에서 사과문을 작성했을 텐데, 사과문 작성의 기본은 사과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토씨 하나까지 면밀하게 살피는 것 아니겠는가? 홍보 책임자가 이런 사과문을 썼고 블로그에 버젓이 게재까지 했다면 그 사람은 홍보쪽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진정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최악의 문장이기 때문이다. 


BBQ의 오만한 사과문은 직원 개개인의 역량의 총합은 절대 리더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단적인 사례다. 나는 이 사과문의 홍보 책임자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추측한다. 필시 그 위에 군림하는 리더(다 알 것이다)가 사과문을 ‘이렇게 저렇게 써라. 싸나이라는 말이 들어가게’라고 먼저 지시를 내렸거나, 홍보부서에서 결재를 올린 사과문을 본인이 직접 고쳐 써버렸을 가능성을 짐작해 본다. 홍보부서가 제대로 된 역량이 있는 곳이라면 리더가 고쳐 쓴 사과문이 진정성 없음을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걸 알아차렸더라도 리더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아니었겠는가? 반론 제기가 건전한 의견 주장이 아니라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만드는) 조직문화가 좀 많은가? 리더가 고쳐쓴 사과문을 보고 속으론 ‘이거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활짝 웃으며 ‘정말 명문이십니다’라고 리더를 칭송하고서 ‘뭐, 리더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쩔 수 있겠어? 리더가 다 책임지겠지’라는, 요즘 말로 ‘웃픈’ 광경이 사과문 게시 전의 상황은 아니었을까? 나는 사과문 속 싸나이는 BBQ라는 회사 전체가 아니라 바로 리더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추측해 본다. 




‘싸나이’이란 단어 속에는 권위주의와 오만함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무시와 절대적인 남성 위주의 시각도 내재돼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회사가 그러하듯 BBQ 역시 남자직원들이 여자직원들보다 많을 것이고 관리자 레벨에서는 남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렇다 해도 여자직원들도 엄연한 조직의 구성원인데 ‘싸나이답게’라니! BBQ는 남자들만의 조직인가? 여자직원들은 남자직원들의 부속품인가? 은연 중 여성을 무시하고 비하하며 여성은 그저 치킨 판촉을 위한 모델로만 여기는 내부 문화가 존재하기에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 회사를 남성으로 지칭하고 만 것이다. 


BBQ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에는 직원들이 BBQ 로고가 등에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나온다. 사과에 직원들이 동원된 것이다. 가격 인상 결정은 고위 경영자가 해놓고 사과 퍼포먼스는 직원들이 한다? 왜 자신들의 잘못을 직원들이 대신 사과해야 하는가? 왕자가 잘못을 하면 매를 댈 수 없기 때문에 매맞는 아이에게 회초리를 가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경영자가 자기 대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이유라고 말한다면 그에게서는 ‘직원 만족’이나 ‘직원 존중’은 절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사과의 기본은 잘못을 저지른 자가 직접 하는 게 옳듯이 최종 결정을 내린 책임자가 직접 머리를 숙이는 게 기본 중 기본이다. BBQ는 이런 측면에서 기본이 전혀 없다.


리더 1인 체제라는 비민주적 문화 속에서 탄생한 이번 사과문은 잘못된 사과의 ‘모범(?) 사례’로 교과서에 실릴 것 같다. 이번 사건이 홍보부서의 최종적인 실책이 아니라고 이해하더라도 ‘주십시오’를 ‘주십시요’로 잘못 쓴 맞춤법 오류(‘싸나이’는 사나이를 강조하기 위한 애교로 봐주더라도)는 좀 반성해야 한다.


반응형

  
,

'내 방 문은 항상 열려 있어'란 말은 위험하다   

2017. 6. 21. 10:15
반응형



2017년 6월 21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방으로 들어와.”

회사에서 자신의 방을 따로 가지고 있는 고위 임원들이 직원들과 자주 오픈 마인드로 의사소통하려는 취지에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상당히 많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한번쯤은 윗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분이었나? CEO나 고위 임원이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고 말하면 정말로 할 말이 있을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우리는 ‘역지사지’를 자주 입에 올리고 또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임은 물론이고 좋은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는 게 바로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는 말을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지위에 있으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또 한 번 증명된다. ‘내 방으로 언제든 들어와’란 말은 상당히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표현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결코 활발한 의사소통을 조성하기 위한 말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헐트Hult 인터내셔널 경영대학원의 메건 리츠(Megan Reitz)와 컨설턴트인 존 히긴스(John Higgins)는 ‘내 방은 열려 있어’란 말은 세 가지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직원들이 할 말이 있을 때는 임원의 ‘영역’에 들어와야 한다는 점, 둘째 따로 방이 있을 만큼 임원은 ‘지위가 높다’는 점, 셋째 언제 문을 열지 말지 임원 자신이 결정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임원의 방에 들어가는 직원의 심정은 맹수의 영역으로 걸어들어가는 초식동물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의 불균형이 극대화된 장소에서 혹시나 임원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을 건넬 수가 있을까? 다른 장소(이를테면 정수기 옆이나 화장실 앞)에서 똑같은 말을 꺼낼 때와 비교해서 그 기분 나쁨이 배가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네가 감히 여기서 그런 말을!’ 그렇기에 임원의 방에 들어와 직언을 할 의도였던 직원은 진짜로 해야 할 말을 시원하게 다하지 못하고 방 문을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직원의 말을 경청하고자 하더라도 임원이 변명을 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직원의 말을 약간 자르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게 비록 미묘할지라도 직원에게는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무엇이든 잘 들어주겠다니, 안 그렇구나! 여전히 불통이구만! 이제 여기에 들어와서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지’라며 직원은 입을 닫을 것이다. 한번이라도 경청하지 않는 모습이나 뉘앙스를 전달하면 불통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임원의 방이 바로 ‘맹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더 증폭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의 방으로 들어와서 언제든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할 때는 정말로 본인이 그럴 마음이 충분하고 ‘겸손’한지, 반대되는 의견이나 나쁜 소식을 들을 때도 잘 듣는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섣불리 ‘내 방은 열려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는 말은 자신이 활발한 의사소통을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의사소통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꼴임을 주지해야 한다. 본인은 그냥 문만 열어 놓고, 들어와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체는 직원이어야 한다고? 맹수의 방으로 어떤 직원들이 자주 들어오겠는가? 이를 보고 임원은 직원들이 자기와 의사소통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다. 활발한 의사소통은 물건너 가버린다.


직원들에게 의사소통하라고 독려하거나 힐난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직원들을 침묵케 만드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리츠와 히긴스는 꼬집는다. 방 문 하나 열어 놓는 걸로 의사소통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생각 자체로 경영자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다. 직원들과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 싶다면 직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영역에서 섞이고 부딪히는 자연스러운 동선 속에서 의사소통은 서서히 발화될 것이다.




반응형

  
,

그 동네 빵집은 먹방의 저주에 빠질 것인가?   

2017. 6. 20. 08:38
반응형




2017년 6월 20일(화) 유정식의 경영일기 

 

“팥빙수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햇볕이 뜨거운 거리를 무려(?) 400미터나 걸어서 오래 전부터 연희동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있는 빵집을 찾은 H군이 점원에게서 들은 말이다. 때이른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한낮의 목마름과 공복감을 동시에 해소하기에 딱 좋은 음식이 팥빙수 아니겠는가? 그런데 팥빙수를 팔지 않는다니, H군의 땀으로 흥건한 얼굴은 이 말을 듣자마자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왜 안 팔죠?”

전혀 물러설 용의가 없는 H군이 따져 물었다.

“팥이 다 떨어져서요.”

“왜죠?”

상담가의 직업병인가? H군은 난처해 하는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랬다. 수요미식회에 이 빵집의 단팥빵이 소개된 모양이었다. 빵집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빵이라고 자랑스레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들고나던 소박한 곳에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가 궁금했던 H군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방송에 소개된 단팥빵을 더 많이 만들어 팔려고 팥빙수에 쓸 팥이 없는 게로군! 아무리 그래도 막 더워지는 때에 팥빙수를 팔았다가 안 파는 게 어딨나! 이건 동네 사람들을 홀대하는 것 아닌가!


H군이 간절히 원했던 바로 그 팥빙수. 내가 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땐 팥을 더 달라면 기꺼이 주곤 했다.



놋그릇에 콩가루가 뿌려진 얼음 알갱이가 가득 담긴 팥빙수를 먹을 생각으로 한껏 기대에 찼던 H군은 풀이 죽은 채 다시 뜨거운 햇볕 속으로 되돌아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땀을 닦으라고 H군에게 휴지를 건넨 다음 이렇게 말했다. “먹방의 저주가 그 빵집에도 미치겠는데요.” 먹방의 저주란 이런 것이다. 요즘 횡행하는 수많은 먹방들, 그래서 이제는 지긋지긋하기까지 한 먹방에 어떤 음식점이나 제과점이 소개되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그곳으로 일시에 몰린다.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음식점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음식이 없어 못파는 기회손실을 최소화하려고 잘 팔리는(방송에 소개된) 음식에 인력이든 재료든 무엇이든 집중한다. 다른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나 만드는 사람에게나 홀대를 받는다. 


외지 손님들이 많아진 탓에 오래된 동네 단골들 역시 이 과정에서 홀대를 받는다. 일부러 단골을 홀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줄이 길어서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 H군의 경우처럼 팥이 없어서 팥빙수를 못 먹는 상황, 즉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상황이 바로 동네 단골이라는 충성고객들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단골들은 섭섭함을 느끼며 점점 발을 끊기 시작한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먹방은 오늘도 계속되고 내일도 계속된다. 지금은 외지 손님이 많아 몸이 모자랄 지경이라 해도 다른 먹방에서 소개된 비슷한 음식으로 외지 손님들은 이동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손님들이 한두 번 먹어보고 아주 특별할 게 없다고 느낀다면 ‘재구매율’은 상승할 줄 모르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그렇게 길었던 대기줄은 짧아진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동네 단골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떠난 단골들은 이미 다른 ‘대체재’를 확보했고 한번 상한 빈정은 회복되기가 어렵다. 지나다가 옛정 때문에 찾은 단골들이 몇몇 있겠지만 외지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에만 그간 집중한 탓에 먹고 싶은 ‘자기만의 음식’은 사라졌거나 예전 맛만 못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라며 옛단골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이게 먹방의 저주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연희동에는 방송에 소개된 유명 중국 음식점이 있는데, 그 전에는 동네 손님들을 중심으로 고급 중국요리와 술이 주로 팔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셰프가 방송을 ‘엄청 타면서’ 예약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나는 모르고 이곳에 예약전화를 했다가 기겁을 했다). 당연히 동네 단골들은 이 중국집의 요리를 맛볼 기회를 차단 당했고 예약을 안 해도 언제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부근의 다른 중국집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이곳을 찾는 연희동 주민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먹방의 저주는 종종 ‘객단가’의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방송을 보고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주로 주문하는 음식은 중국집의 3총사인 짬뽕, 짜장면, 탕수육에 집중되는 바람에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매출)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소문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모르긴 해도, 위의 빵집도 단팥빵은 많이 팔겠지만 나중에 주판알을 튕겨보면 객단가 혹은 고객 1인당 이익기여도가 하락하지는 않을까?


빵집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친 김에 더 해보겠다. 효자동에 있는 어떤 빵집은 들어가자마자 점원들이 접시에 시식용 빵을 들이밀며 ‘우리 빵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빵입니다. 2등은 저 빵이고, 3등은 저 빵입니다.’라고 말한다(요샌 안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 번 정도 갔었는데 매번 그랬다). 잘 알려진 빵집이라고 해서 어떤 빵이 있나 천천히 구경할 셈이었는데, 점원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이렇게 나오는 통에 마음이 급해지고 눈치가 보여서 오히려 빵집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1, 2, 3등이 아닌 빵을 고르면 죄가 되나요?’ 1~3등이 아닌 빵들이 슬퍼보였고, 이런 영업방식이 고객에게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해주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유명한 군산의 ‘이성당’도 야채빵과 앙금빵에만 손님을 일부러 몰게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곳이다.




2015년 1월에 전국의 10대 빵집을 돌아다니면서 각 빵집을 경영의 시각으로 간단하게 분석해 본 적이 있다(덕분에 엄청나게 조회수가 높았다. http://www.infuture.kr/1501 ). 그때 내가 나름 1등으로 꼽았던 빵집이 부산의 ‘백구당’이었다. ‘크람빵’이 유명하다고 해서 맛보려고 했는데 둘러봐도 없어서 나는 점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손님들이 크람빵만 너무 찾는 바람에 다른 빵들이 외면 받는 것 같아 지금은 만들지 않는다고 점원은 대답했다. 여러 가지 빵을 많이 만들어도 크람빵만 팔리니 빵 만드는 사람의 자존심은 이를 용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크람빵만 연신 만들어 팔다가 먹방의 저주와 비슷한 패착을 겪고 난 후에 마침내 동네 단골의 중요성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용기에 감복 받는 나는 크람빵 맛을 못 본 섭섭함도 잊고서 베스트 3에 백구당을 자신있게 올려 놓았다.


“이제 어디 가서 팥빙수를 먹나?”

H군은 팥빙수에 미련이 많은 듯 했다.

“그러면 우리가 직접 빙수가게나 해볼까요?”

이 말을 듣고 H군은 나에게 눈을 흘겼다. 어디서 뺨 맞고 와서 괜히 나한테 화풀이다. 어쨌든 40년 전통의 동네 빵집이 부디 먹방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를, H군이 다시금 시원하게 팥빙수를 들이키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안 그러면 매일 시달릴 참이다.


반응형

  
,

인사팀 직원들에게 드리는 부탁 말씀   

2017. 6. 16. 09:51
반응형



2017년 6월 16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박근혜 정부 때 강행됐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1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른 것으로서 환영할 만한 조치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3점이 감점되어 이에 따라 임금에 불이익을 받고 직원들의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것이 성과연봉제의 골자였다. 그간 공무원노조와 사측이 성과연봉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었는데, 이제 그 갈등이 해소되리라 생각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3년 간, 나는 보험사 노조, 카드사 노조, 지자체 노조, 중앙부처 노조 등 이런 저런 노조들로부터 강의와 자문 의뢰를 받았다. 주로 사용자 측에 ‘복무’하는 것이 컨설팅의 특성인데, 나는 어느새 노조들이 찾아와 상의하는 컨설턴트가 됐고 노조의 입장에서 컨설팅하고 강의를 몇 번 진행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도 2012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제고하라’ 혹은 ‘평가를 버려라’는 메시지를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계속 주장해 왔던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어제는 지인이 내가 2시간 가량 강의한 유튜브 동영상을 모 노조에서 교육 자료로 사용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평가를 없애라는 나의 주장이 제법 여러 곳에 전파되고 있는 모양이다.




성과연봉제를 없앤다고 하면, 혹은 평가를 없애라고 하면 그 대안을 무엇이냐는 소리가 항상 뒤따라 붙는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폐지하면 그 빈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폐지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 소리가 무책임하게 들리고 변화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문제가 많은 것이라면 그걸 없애는 것 자체가 대안 아닌가? 다른 무엇을 만들어서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할까? 문제가 크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그 문제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얼른 폐지부터 한 다음에 대안을 차차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문제, 평가보상의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기에 다시 언급하지 않으련다. 내가 기존의 평가를 없애라는 주장을 할 때마다 연봉은 어떻게 결정하냐, 승진은 어떻게 결정하냐, 직원들이 일 안 하고 놀면 어떻게 하냐, 동기부여가 안 될 것이다, 등등 어떤 반론과 의문이 제기될지도 거의 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기가 힘들어서 Q&A집을 만들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미 여러 매체(책, 웹사이트 등)에서 평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했으며 몇몇 기업들의 사례가 있기에 굳이 그래야 하나 싶어진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사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공부를 참 안 한다 싶은 의심에 이른다. 문제가 있는 걸 본인들이 이미 알면서 대안 찾기를 두려워(혹은 게을리) 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5대 기업 안에 드는 모 인사팀 직원들에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소개된, 평가를 없앤 외국기업의 사례를 읽은 적이 있냐고 물으니 다들 금시초문인 표정이었다.




어떨 때는 고작 1~2시간 강의를 하러 간 나에게 평가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대안과 함께 여러 사례를 이야기해 줘도 꼭 이렇다!) 강짜까지 놓는 직원을 본다. 강의평가에서도 ‘대안이 부족했다’란 코멘트가 보일 때면 1~2시간 강의에서 컨설팅까지 바랐는지 섭섭한 마음이 들곤 한다. 1~2시간 내에 해소될 문제라면 굳이 나를 불러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물론 그런 직원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왜 스스로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왜 대안 마련엔 손을 놓으려 하는지 따지고 싶기까지 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 1만 시간(혹은 10년) 이상 훈련하면 전문가의 위상을 갖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어느 부서에 10년 이상 근무했으니 ‘나는 전문가야’라고 생각하면 이 법칙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인사팀에 10년 이상 근무했더라도 밖에 나가 고객에게 자문할 실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조직 내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인사팀에 오래 근무한 고참직원일 뿐이다. 공부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치열함이 밑바탕이 돼야 10년 후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서두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을 빌려 분명히 말한다.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대안은 없다. 각자의 기업 특성과 현실에 맞게 평가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례는 참고만 하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외부에 있는 컨설턴트가 들어와서 만들어 주길 기대하지 마라. 컨설턴트에게 묻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해답을 찾아 나가라. 적어도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며 문제 해결을 미루려는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시원하게 정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부족한 컨설턴트의 부탁 말씀이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