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은 사실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   

2025. 3.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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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한번에 몰아서 감상한 미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제로 데이(Zero Day)>란 드라마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1분 동안 모든 네트워크, 통신, 송전 시스템 등이 마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고작 1분이라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겁니다. 항공, 철도, 도로교통, 병원 등의 시스템이 곧바로 붕괴될 테니 그 시스템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안전할 리가 없겠죠.

<제로 데이>는 바로 그 1분의 '블랙 아웃'으로 인해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사이버 테러의 배후를 색출하는 소위 '제로데이 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임명된 전직 대통령이 주인공인데요,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일 테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6화로 구성된 드라마이니 주말에 몰아보기 딱 좋은 분량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로버트 드니로 분)이 의회에 나와 연설하는, 6화의 말미 부분을 보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 연설에서 어렵사리 이런 말을 합니다.

"제로 데이에 사용된 사이버 무기는 원래 국가 안보국이 개발한 것이었습니다.보고서에는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모든 증거가 자세히 제시됐습니다. (중략) 그것들은 사실(fact)입니다. 사실이지만 진실(truth)은 아닙니다."

 


그가 말한 마지막 문장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닙니다."에 나오는 두 단어,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아시나요? 서로 의미가 비슷해서인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두 단어를 혼용하곤 하는데요, 엄연히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왜 <제로 데이>의 주인공이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닙니다.'라고 말했는지 알아야 하죠. 우리는 지성인이니까요. ^^

사실의 정의는 쉽습니다. 실제로 있었거나 있는 일을 뜻하죠. 하지만 진실의 정의는 좀 어렵습니다. 보통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 바로 진실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돼 있는데요, 무슨 의미인지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진실이다'라고 구분하는데요, 진실이라고 해서 꼭 숨어 있지는 않기에 정확한 정의는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진실을 정의합니다. "여러 가지 사실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본질적 진리 혹은 진상"이라고 말입니다. 좀 어렵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분명 한 번 이상은 봤음직한 그림으로 설명해 보죠. 아래 그림이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구분해 줍니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실제로 있는 일이기에 그 자체로는 사실(fact)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죠. 카메라 프레임 밖에는 더 많은 사실들이 존재합니다. 화면 나타나지 않는 모습과 정보들이 바로 더 많은 사실들이죠. 이 여러 가지 사실로부터 우리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죠. 화면에서 칼로 공격하려는 이가 알고보니 도망치는 사람이었음을. 또한 위협 받는 이가 칼 들고 쫓아가는 사람이었음을.

쉽게 말하면, 사실은 실제로 있었거나 있는 사건의 조각들 하나 하나를 의미하고, 진실은 그 조각들을 모두 맞춰 볼 때 떠오르는 진상 혹은 진리인 것이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며, 발사한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은 각각 사실입니다. 물리학자는 이 모든 사실을 '중력'이란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 철도라는 인프라를 깔았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철도 준설 이외의 여러 사실들을 함께 따져보면 그들이 조선을 효율적으로 수탈하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진실입니다.

"몇 시간 안에 계엄을 해제했다."란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경고성 계엄 혹은 '계몽령'이었다."란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몇 가지 사실에만 목을 거는 얼간이들의 생떼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사실들을 모아서 따져보면 절대 계몽령이라는 개소리(bullshit)를 내뱉을 수가 없죠.

사실보다는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이 시대 지성인의 필요조건은 아닐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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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만도 못한 리더?   

2025. 3.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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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몇 주 전에 모 인터넷 방송에 나와 의미있는 고사를 공유했습니다.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유 작가는 방송에서 '도척의 5도(道)'를 언급하며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국가 리더의 부족함을 질타했습니다.

도척은 춘추시대의 인물로 성격이 포학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천하의 못된 강도였습니다. 실존 인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자(莊子)>라는 책에 그의 고사가 소개돼 있죠. 9천명이나 되는 거대 강도단의 두목인 그에게 어느날 한 졸개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습니까?"

이 말을 들은 도척은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라고 말하면서 다섯 가지의 도를 제시합니다.

성(聖): 재물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
지(知): 훔칠지 말지를 잘 판단하는 것
용(勇): 누구보다 먼저 훔치러 들어가는 것
의(義): 나올 때 가장 늦게 나오는 것
인(仁):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

원래는 '성, 용, 의, 지, 인'이지만 유 작가의 설명처럼 위의 순서가 더 논리적입니다. 

 



저는 유 작가의 설명을 듣자마자 이 '도척의 5도'가 리더십의 기본을 매우 간명하게 함축한 말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디에 가치 있는 재물이 숨어 있는지 알아내는 능력, 즉 '성'은 사업의 기회나 문제의 원인을 간파할 줄 아는 리더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리키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도둑질할 타이밍을 판단하고 도둑질할 방법을 계획하는 능력, 즉 '지'는 시대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판단하여 직원들에게 그 방법의 빅 픽처를 제시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뜻하죠. 경계가 삼엄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먼저 들어가는 자세, 즉 '용'은 실패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장서서 전략을 추진하는 실행력을 의미합니다.

훔치고 나서 부하들이 다 빠져나갔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탈출하는 자세, 즉 '의'는 실행했던 전략이 실패하더라도 그 책임을 온전히 자신이 감수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에 워낙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리더들이 많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리더의 도'입니다.

마지막으로,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행동, 즉 '인'은 전략의 성공으로 일궈낸 성과물을 극소수의 경영자나 대주주가 독점하지 않고 그 성공을 이룬 모든 이들에게 각자 기여한 만큼 공정하게 평가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려는 리더십 요소입니다.

도척의 5도를 리더십의 다섯 가지 요소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네요.

성(聖): 비즈니스 마인드
지(知): 전략적 사고
용(勇): 실행력
의(義): 책임감
인(仁): 공정한 평가/보상

만약 어떤 이가 리더라는 감투를 쓰고 있음에도 이 다섯 가지 요소 중에 하나라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를 '강도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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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의 비결은 '낄끼빠빠'   

2025. 3.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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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주 듣는 팟캐스트가 하나 있습니다. '월말 김어준'이란 유료 팟캐스트인데요, 과학, 철학, 미술, 고전 문학, 음악, 취미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가 출연하여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지식들을 여러 에피소드로 만들어 월 단위로 발행하는 방식의 팟캐스트입니다. 여러분도 청취를 추천 드리는데요, 유튜브 채널로도 '맛보기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가끔 몇몇 에피소드는 무료로 풀 버전이 풀리기도 합니다.

저는 박문호라는 과학자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특히 좋아하는데요, 이 분은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지질학 등 분과 학문들을 '통섭'하는 내용으로 본인의 지식을 풀어냅니다. 그는 어느 에피소드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몽골의 초원을 탐사하는, 소위 '몽골 탐사단'이란 프로그램을 여러 번 진행하며 얻는 교훈 하나를 공유하는데요, 바로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문제가 발생하면 입을 닫으라'는 교훈입니다. 이 말에 고개를 갸웃할 것 같은데요, 박문호 박사가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짐작컨대 몽골의 초원 지역은 비포장 도로뿐이라서 탐사단을 태운 미니버스의 타이어가 종종 펑크가 나곤 합니다. 아무도 없는 오지에서 발생하는 문제라서 탐사단원 전체가 협력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모르면 문제 해결에 나서지 말라'고 일갈합니다. '빵꾸'가 난 상황을 보면서 각자가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라며 아이디어를 내봤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거든요. 운전께나 해본 사람이나 과거에 타이어 펑크를 경험한 이들이 아무리 조언한들 운전 기사를 향한 '배 놔라, 감 놔라' 식의 조언에 불과합니다. 

혹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아닌 것 같은데...여기에서 이렇게 고립되면 어쩌지' 라고 줄곧 끌탕을 한다면 운전 기사는 수리에 집중하지 못하겠죠.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모르면 멀찌감치 빠져서 입을 닫는 것이, 아니 그 시간에 다른 유익한 활동을 하는 것이 운전 기사를 돕는 일이고 빨리 펑크를 수리하는 방법입니다. 박문호 박사는 탐사단을 인솔했던 여러 번의 경험으로 이를 절감했던 겁니다.

코끼리의 몸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이런 질문을 들으면 아마도 여러분은 코끼리의 몸무게를 바로 추측하기 시작할 겁니다. 모르면서 말이죠. '1톤은 넘겠지? 아냐, 웬만한 트럭 크기는 되니까 5톤 가량일거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처럼 모르는 것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 답을 맞출 거라고 착각하는 게 우리의 습성이라고 해요. 인간의 머리가 뛰어나다 보니 알지 못하는 것도 알아낼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타이어 펑크를 해결하는 일도 머리를 맞대고 소위 '팀워크'를 발휘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면서 '협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곤 합니다. 해당 분야나 기술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아무리 협력해 봤자 문제가 해결되기 만무합니다. 이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행이죠. 이걸 꼬집는 속담이 바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가 아닐까요?

팀워크는 팀원들이 문제에 '다같이 달라 붙어서 다같이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팀워크는 축구공만 보면서 몰려 다니는 동네 축구일 뿐이죠. 문제가 생기면 그걸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해결할 줄 아는 이가 문제 해결을 주도하도록 하는 게 먼저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훈수 둘 생각은 말고 입을 닫아야 합니다. 그가 도와 달라고 할 때만 기꺼이 도와줘야 합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시쳇말로 '낄끼빠빠'의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것이죠. 

저는 적어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런 행동과 마인드가 좋은 팀워크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리더라면 이런 식으로 팀워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다같이 달라붙어서 다같이 해결하는 협력이 능사는 아닙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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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차별   

2024. 12.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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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리뷰하는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볼 때면 이런 소리가 꼭 나옵니다. “이 차의 스티어링 휠(핸들)은 돌리기가 쉽지 않아서 여성 운전자들에겐 힘들 것 같네요.”, “이 차는 작고 귀여운 스타일이라서 여성 오너분들이 꽤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손이 작은 여성 운전자분들은 이 레버를 잡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어떤가요? 적어도 한번쯤 들어본 멘트일텐데요, 혹시 여러분은 그런 말에 동의합니까? 여자는 힘이 약하고 체격이 작으며 우락부락한 SUV가 아니라 작고 귀여우며 컬러풀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편견이 깊이 배인 멘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스운 건 여자 리뷰어들도 이런 멘트를 자주 날린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여자들이 그런 편견에 ‘적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연희동의 모 약국에서 일하는 여성 약사는 체격이 작고 목소리도 여리여리하지만 클래식 포르셰를 타고 굉음을 내며 출퇴근을 합니다. 어느날 저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차를 보며 엄지척을 했습니다. ‘여자가 저런 차를?’이란 의미가 아니라, 그녀의 취향이 부러워서였죠.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모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대표(여성이다)는 다루기가 까다롭고 힘이 들며 승차감도 좋지 않다고 알려진 모 SUV를 몰고 다닙니다. 외모나 말투 어디에서도 그 차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통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근력이 약하고 체격이 작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제품이나 음식, 문화 상품 등에 대한 ‘취향’까지 남성과 통계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취향과 선호는 성별과 무관합니다.

여성을 약한 존재라고 단정하며 말하는 자동차 리뷰어들은 “이 차의 스티어링휠은 좀 빡빡하네요. 부드러운 스티어링을 선호하시는 분들은 이것을 감안하고 선택하셔야겠습니다.”라고만 말해야 옳습니다. “키 작은 사람이나 여성 운전자분들에게는 불편하겠네요.”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건 키 작은 사람들과 여성 전체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아닐 수 없죠. 차별이 별 건가요? 취향을 키나 성별 등 태생적 속성으로 재단하는 게 바로 차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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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까닭   

2024. 1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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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집 안에서만 은거하며 지낸 노인은 행색이 남루했고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면모를 풍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사는 10살 짜리 철 모르는 꼬마들은 그런 노인을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은 방과후 집으로 가는 길에 노인의 집 앞에서 노인의 이상한 면모에 대해 비웃곤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노인은 밖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못생기고 바보 같은 대머리라고 크게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노인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여느 날처럼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을 앞마당에서 만났습니다. 노인은 "내일 너희들 중 누구나 여기에 와서 지금처럼 무례한 소리를 질러대면 각자에게 1달러씩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이 제안을 들은 아이들은 다음날에 노인의 집 앞을 찾아와 흥에 겨워 욕설을 마구 질러댔습니다. 

노인은 그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꾹 참고 아이들 모두에게 1달러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와서 욕설을 퍼부으면 각자에게 25센트씩을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25센트라는 돈이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한 아이들은 그 다음날에도 노인의 집 앞에 와서 욕지거리를 해댔습니다. 노인은 군말하지 않고 약속대로 25센트를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에게 1센트 줄 테니 내일도 와서 이렇게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1센트라고?"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노인에게 "됐어요!"라고 말하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아이들은 노인의 집앞에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인을 욕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죠.

노인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거워서(?) 하던 행위에 돈으로 보상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을 놀려대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사라지게 만들고 '외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로 대체했습니다. 돈에 의해 유지되던 외적 동기는 노인이 1센트라는 푼돈을 주겠다고 말하자 이내 사라져 버렸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욕하는 행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겁니다. 노인의 이야기는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보상이 줄거나 없어지면 흥미가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말이 안 되는 속담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살펴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미운 아이의 미운 짓에 보상을 하면 그 미운 짓을 할 내적 동기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A를 하면 B를 주겠다"라고 말하는 방식의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A보다는 B에 집중해 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일 잘 하면 돈을 주겠다"라는 보상 방식은 직원들에게 일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엉뚱한 신호를 주는 꼴입니다. 또한 오로지 돈이라는 외적 동기에 의해 일의 즐거움을 확인 받도록 직원들을 조건화합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조성하려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외면한 채 외적 동기를 강화하는 쉽고 빠른 대증요법을 가함으로써 직원들을 내적 동기가 사라진 '외적 동기의 노예'로 만들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하기 바랍니다.




제 신간 <시나리오 플래닝>이 이제 예약판매를 끝내고 아래의 서점에서 정상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구매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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