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인재를 '전투'에 소모시키지 마세요   

2024. 1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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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과 미국 전투기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적용했던 인력 양성의 방식을 살펴 보면 특이한 패턴 하나가 눈에 띕니다. 그들은 뛰어난 조종 실력을 보이는 조종사, 적기를 여러 대 격추시켰다든지 눈부신 전공을 세운 조종사들을 후방으로 빼곤 했어요. 왜냐고요? 바로 후배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교관을 맡게 하려고 그런 것이었죠. 그래야 후배들에게 그가 가진 뛰어난 실력과 가치 있는 노하우를 전수시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전쟁이 한창이라서 당장 베테랑 조종사를 전투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 가장 잘 통하는 상황이랄까요? 이렇게 해서 영국과 미국 연합군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전투에서 잃는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였고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우수 조종사를 양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들과 완전히 반대로 한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진주만 공습 후 미국과 맞짱을 뜬 일본이었습니다. 그들은 실력이 떨어지고 실전 경험이 적은 조종사에게 교관 역할을 맡겼어요. 베테랑 조종사들을 전투에 계속 투입했고요. 이래서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요?

실력 없는 선생들로부터 우수한 조종사들이 배출되겠습니까? 평균적으로 실력이 크게 향상되기 어려울 뿐더러 실제 전투 상황과는 다른 내용으로 교육을 받게 되겠죠? 더 큰 문제는 베테랑 조종사들을 전투에 계속 밀어 넣다보니 그들이 전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투 때마다 말 그대로 ‘녹아내려’ 버렸던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이 지녔던 ‘암묵지’ 역시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베테랑 조종사 대다수를 잃은 일본군은 1944년 6월 19일에 벌어진 필리핀 해전에서 미국 전투기로부터 말 그대로 ‘칠면조 사냥’을 당하고 맙니다. 2개월도 안 되는 교육을 받은 조종사들이 복잡한 편대 전술을 얼마나 많이 익혔겠습니까?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기본적인 스킬도 부족했으니까 말 다했죠. 일본군은 어떻게든 있는 조종사, 없는 비행기를 다 끌어 모아서 필리핀 해역에서 미국과 일전을 벌입니다. 

수백 대의 전투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미군을 압도하리라 기대하면서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지만, 미숙한 조종사들이 모는 ‘제로센’ 전투기는 미군 조종사들의 손쉬운 먹이감이었습니다. 왜 ‘칠면조 사냥’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시다시피 칠면조는 몸이 둔해서 위협을 해도 멀리 도망가지 못하는 새인데, 제로센이 딱 그랬던 것이죠. 일본군은 베테랑 조종사를 전장에 소모시킨 벌을 필리핀 해전에서 제대로 받았습니다. 결국 일본은 오키나와 쪽으로 퇴각하면서 그들이 ‘절대 국방선’이라 설정했던 전선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재 육성에 있어 리더의 장기적인 안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수인재를 ‘전투’에 계속 내보내면 당장은 성과가 잘 나고 돈도 잘 벌리겠죠, 하지만 황금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꼴이 될 수 있으니 우수인재가 번-아웃되도록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마리의 ‘황금 거위’가 태어나려면 우수인재를 인력 양성에 활용하는 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제 신간 <시나리오 플래닝>이 이제 예약판매를 끝내고 아래의 서점에서 정상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구매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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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출세에 좀 겸허해 지시기를.   

2024. 11.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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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이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듣거나 그들이 쓴 책을 보면,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여러분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저는 그 말을 10~20% 가량만 귀담아 듣고 나머지는 흘려 보냅니다. 그들 성공의 대부분은 사실 운에 의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물론 성공한 사람들의 땀과 노력은 박수와 칭송을 받을 만합니다. 저는 그들의 신고(辛苦)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과 재능, 노력이 성공의 대부분을 견인했다는 식의 논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력과 재능이 없는데도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는 듯한 스탠스에는 더더욱 동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성공한 이유의 대부분은 운이었을 테니까요.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 싶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하지는 않지만, 고맙게도 저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곤 합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떻게 해야 저도 선생님처럼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마다 저는 좀 곤혹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분명 저도 노력은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재능이 한줌 가량 있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밥은 좀 얻어 먹으며 다닐 수 있는 까닭은 대부분 운입니다.

 


우선 저는 극악 난이도의 학력고사를 치른 탓에 보기좋게 떨어질 줄 알았지만 2지망을 잘 써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첫 직장은 IMF 직전에 부도를 맞고 타사에 인수되었지만, 그 덕에 저는 대학 때 동경했던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수 합병 과정을 겪은 상사들이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고 공중에 붕뜬 저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죠.

며칠 전 <시나리오 플래닝> 개정판을 낸다는 소식을 구독자 여러분께 드렸는데요, 제가 시나리오 플래닝 전문가로 (조금은) 알려져 있고 그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이유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그 운은 남들이 손사레치던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를 엉겹결에 받아서 수행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왜 저에게 그 일이 주어졌냐고요? 동료 컨설턴트들이 다 프로젝트에 투입돼 있을 때 저는 프로젝트를 막 끝내고 쉬고 있던 차였거든요. 정말 운이 좋았죠?

외국계 컨설팅사를 나와 혈혈단신으로 인퓨처컨설팅이란 회사를 시작했을 때 마침 컨설팅 시장이 활황이라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모 온라인 잡지에 글을 기고한 것을 계기로 책 저자로 데뷔할 수 있었고, “너 이거 한 번 강의해 볼래.”라는 누군가의 대타로 강의를 맡게 됐다가 지금은 기업 강사로 ‘약’을 팔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소한 운들이 엎어지고 포기하려는 저를 일으켜 세웠으니, 누군가가 저에게 성공의 비결을 혹시라도 묻는다면 당황하며 ‘어버버~’할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글쎄요. 하다보니 이렇게 됐죠.”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공의 대부분은 운에서 비롯된 것이니 소위 '출세'했다고 으스대거나 고개를 빳빳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남들을 업신여기거나 탄압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학력고사나 수능시험 잘 봐서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들이 고작 사법고시 잘 치른 행운을 권력 유지하는 데 평생 써먹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본인의 출세에 좀 겸허해 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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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미래를 예측하지 마세요   

2024. 11. 1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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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CEO의 신년 경영방침이 발표되면 경영기획 부서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느라 매우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이때 그들은 ‘작년까지 이렇게 되어왔으니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반드시 이 목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해야 한다’는 행정편의적 사고를 가동합니다. 예측을 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렇게 목표가 정해지죠. 미래의 모습을 다각도로 그려보고 대책을 강구하는 전략적 사고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과거의 패턴이 인간의 판단력을 지배하기 때문에 수많은 예측과 예측을 기반으로 한 계획이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요,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에이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UN 가맹국 중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 묻는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1부터 100까지의 숫자가 적힌 룰렛 게임을 먼저 한 후에 정답을 말하도록 했죠. 

 


그 결과, 참가자가 룰렛 게임에서 10을 찍으면 평균적으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을 25%로, 65를 찍으면 45%로 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실험은 아프리카 국가 비율과 전혀 관련이 없는 룰렛 게임의 결과가 답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심리학에선 이런 현상을 ‘닻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르죠. 요컨대, 룰렛 게임의 결과가 닻이 되어서 답변이 멀리 달아나지 못하도록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예측도 이와 동일한 오류를 범하게 합니다. 과거의 추세가 강력하고 무거운 닻이 되어 그 범위 내에서만 미래를 추측하고 사고하도록 만들죠. 예를 들어, 예측 모델이 내년 매출액을 금년보다 10% 성장할 거라 전망한다고 해보세요. 전사 목표와 부문별 목표를 정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내년도 시장이 몇 가지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하여 오히려 마이너스 2% 성장을 기록하리라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겠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근거를 자세히 들어보라며 즉각 반박에 나설 겁니다. 성과 축소처럼 민감한 사안도 없으니까요. 그의 의견이 신빙성이 있다면 10% 성장이 마이너스 2% 성장으로 수정될까요? 아마 그러기 쉽지 않을 겁니다. 예측 모델이 10%를 가리키는데 어찌 그것을 무시하고 마이너스 2%로 고칠 수 있을까요? 그의 의견이 상당히 타당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10% 성장을 7% 정도로 끌어내리는 것에 만족합니다. 더 이상 이견이 없으면 내년에 잘해보자며 구호를 외치고 회의를 마무리하는 게 전형적인 광경이죠.


예측을 과신하지 마세요. 아니, 예측하지 마세요.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로 미래를 관측하세요. 여러 가지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케이스별로 대비책을 미리 만들어 두세요. 이것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여러분 개인이나 조직에서 수용하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인드입니다. 제 책 <시나리오 플래닝 - 불확실한 시대의 성공 전략>이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저의 새 책 <시나리오 플래닝>은 현재 인쇄 중이기에 '예약판매' 중입니다. 

아래의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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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시나리오 플래닝>에 구독자 여러분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시나리오 플래닝이 꼭 필요한 조직과 개인에게 많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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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 - 불확실한 시대의 성공전략> 출간!   

2024. 11. 1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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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광고' 하나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제 책이 나왔습니다. 완전한 새 책은 아니고, <전략가의 시나리오>의 개정판인 <시나리오 플래닝>입니다. 올해 초에 절판된 <전략가의 시나리오>의 판권을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경다방)로 가져와서 개정해 출판한 책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입니다. '불확실한 시대의 성공 전략'을 부제로 달았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에 벌어질 상황들을 여러 시나리오로 설정하고 각 시나리오의 대응책을 수립한 다음, 특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을 때 준비된 대응책을 즉각 실행하기 위한 전략 기법입니다.

AI 기술 상용화, 지구온난화, 신냉전 분위기, 국내외 정치 지형 변화 등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변화의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려서는 안 되겠죠? 무조건 열심히, 무조건 복지부동도 안 되겠죠?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 미래의 기회를 선점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원한다면 시나리오 플래닝을 여러분의 전략적 사고의 툴로 삼기 바랍니다.

 



기존의 책은 작은 폰트로 420페이지가 넘었는데요, 이번에 새로 나오는 <시나리오 플래닝>은 316페이지로 간추렸습니다. 분량이 줄면 내용이 빈약해졌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아셔야 할 시나리오 플래닝의 핵심에 집중했기에 오히려 시나리오 플래닝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콤팩트해진 책이라 읽기에 부담도 없습니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는 개인이 일상에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조직에서 전략을 논할 때만 시나리오 플래닝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부록 1을 보시면 예시와 함께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을 익힐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인쇄되는 동안이라 예약 판매 중입니다. 아래의 인터넷 서점을 방문하면 책 소개와 함께 예약 구매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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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구매자를 위한 혜택]

여러분의 많은 예약 구매를 부탁 드리며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예약 구매를 하시고 '구매 인증'을 해주시는 분들 여덟 분을 추첨하여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무엇인가(가제)'란 오프라인 강의에 모실 예정입니다. 해당 강의는 무료이고, 12월 중에 실시할 예정입니다. 장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이고, 2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정확한 일시와 장소는 당첨자분들께 추후 통지하겠습니다.

구매 인증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약 구매 후 결제완료 화면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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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때, 메일 내용에 성함과 연락처(핸드폰) 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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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시나리오 플래닝>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시나리오 플래닝이 꼭 필요한 조직과 개인에게 많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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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하지 않는 것이 공감의 시작   

2024. 1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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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경다방>을 개업하면서 사업용 통장을 개설한 적이 있는데요, 통장의 1일 이체 한도가 고작 30만원이더군요. 제가 항의를 하니 ‘대포 통장’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요즘에는 실적이 없는 사업체에는 이체 한도를 제한한다는 게 은행 측의 대답이었습니다. 

취지는 알겠지만, 이제 막 창업된 사업체가 실적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실적(매출)이 없지만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 사전에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이체 한도에 제한이 걸리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편집 디자이너, 표지 디자이너, 인쇄소 등에 작업비를 송금을 해줘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은행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실적을 가져와. 그러면 이체 한도를 확대해 줄게.” 
—> “하지만 초기라서 실적이 없어. 나갈 비용만 있고.” 
—>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어. 실적이 있어야 돼.”…. 

결국 저는 서점들과 맺은 계약서를 들고 가 “아직 매출은 없지만 이들과 맺은 계약서가 있다. 그러니 냉큼 풀어 달라”고 해서 겨우 이체 한도를 정상적인 비용 지출이 가능한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초기 사업체의 발목을 잡는 맹점이 있다는 걸 비판하려고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요약해서 올렸습니다. 대부분 제 경험에 공감했으나 하나의 댓글을 보며 조금 기분이 상하고 말았죠. 

“은행도 기본 셋업이 있겠지요. 관상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려니 이해하십시오.” 

제도의 모순을 지적한 저에게 ‘뭘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고 그래. 마음 쓰지 말고 넘어가.”라고 하는 듯 했습니다. 그에게 저는 “그래도 이렇게 떠들어야 조금은 바뀌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댓글을 달았지만, 사실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를 위로하고자 했던 말이라면 위로의 표현이 상당히 잘못됐습니다.”라고 말이죠.

공감(共感)이란 무엇일까요? 한자 뜻 그대로 ‘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입니다. 부당한 사건을 당해 상처를 받거나 분노가 치밀면 당사자와 같은 마음이 되어주는 것이 공감이죠. 직원이 팀장과 면담하며 업무의 고충과 동료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팀장 본인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에 힘들어 하고 분노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직원의 감정에 이입되어 같이 상처를 느끼고 같이 분노하며 같이 슬퍼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직원이 그런 말을 팀장에게 꺼낸 이유는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대담하게 넘어가.”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닐 겁니다. 당장에 팀장에게 조언과 해결책을 듣고 싶어서도 아니죠. 그저 자신의 고충과 힘듦을 이해 받고 싶고 위무 받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섣부른 조언은 직원에게 상처를 주고 직원과 리더 사이에 벽을 공고히 만들어 버리니 굉장히 해롭습니다.

공감은 일단 상대방과 같이 느끼는 것이고 조언과 충고의 욕구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뭘 어떻게 할지, 그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제 블로그 앞에 분변 같은 악플을 남겨도 일일이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동료가 아무 생각없이 트러블을 일으킨다면 그 동료와 속깊은 대화를 나눠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걸 모르는 직원이 있겠습니까? 

“그 친구는 원래 성격이 그러니 네가 좀 이해하고 참아라”는 조언은 ‘공감하는 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네가 참 힘들겠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공감 없는 조언은 어찌보면 악플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 안에 기생하는 ‘조언충’과 ‘일침충’을 박멸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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