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승진심사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현재의 직급에서 얼마나 일을 잘 했는가'일 것이다. 기본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그간 쌓은 업적을 취합하여 가장 높은 '평점'을 얻는 직원을 승진서열의 맨꼭대기 위에 둔다. 승진서열이 높아도 정치적인 이유와 전략적인 판단으로 승진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현재의 직급에서 일을 잘 해낸 직원(혹은 일을 잘했다고 자신을 잘 드러낸 직원)이라면 윗직급이나 관리자의 지위로 승진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승진을 일종의 '보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특히 보상 수준이 직급과 강하게 연동되는 기업일수록 '하이 퍼포머'들을 보상하고 유지(retention)하는 차원에서 승진을 보상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물론 현재 직급에서 일을 잘한 직원이 그보다 높은 직급이나 관리자의 지위에 올라가서도 일을 잘할 가능성은 제법 크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승진해서 오히려 망가지는 경우)도 역시나 제법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는 윗직급이나 새로운 역할(특히 관리자 역할)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직원을 보상 차원에서 승진시키기 때문인데, 이는 조직뿐만 아니라 직원 개인에게도 모두 손실이 되고 만다. 실적 높은 영업사원에게 영업소장 역할을 맡긴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조직은 우수직원을 승진을 시키지 않고 현재의 직급을 계속 유지시켰을 때 나오게 될 성과를 잃어 버리고, 개인은 본인이 잘 수행하지 못하는 역할을 맡은 결과로 '큰일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경력 상의 낙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관리자에게 필요한 역량이 부족하지만 현재의 직급에서 훌륭한 성과를 냈다고 해서 관리자 역할로 승진된 직원들 중에서 상당수의 마이크로 매니저가 나온다는 점이다. 관리자로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다는 점을 반성하고 리더십을 키우려 노력하기보다는 밑의 직급에 있을 때처럼 행동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야 본인의 '능력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주위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는 자기만족적 착각, 그리고 여기에 관리자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 경영진으로부터 내려오는 성과 창출에 대한 물리적 압박 등이 더해지면 직원들에게 대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만다. 알다시피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는 직원들의 일할 동기와 창의력을 크게 저하시키고 장기적으로 성과를 갉아먹는다.
그렇기에 나는 승진은 보상이 아니라 '새로운 채용'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오고 있다. 현재의 직급에서 제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낸 우수직원이라 해도 관리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관리자로 '채용해서는 안 된다'. 우수한 평가 결과에 대한 어드밴티지는 줄 수 있을지라도 그 자체가 승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수직원들을 윗직급 혹은 관리자로 승진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까? 승진의 기본조건은 해당 직원이 비전 제시, 의사결정, 성과관리, 코칭 등과 같은 '관리자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승진심사관들은 해당 직원이 승진에 적합한 사람인지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리더십 전문가인 진 해미트(Gene Hammett)의 조언을 내 관점으로 해석하여 여기에 소개한다).
첫째, '빅 픽처'에 집중하는 사람인지 살펴야 한다. 나무 위로 오를수록 좀더 넓은 영역이 눈에 들어오듯이, 위로 승진할수록 넓은 영역을 볼줄 알아야 한다. 해당 단위조직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라, 전사적인 관점으로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산업 전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조직 전체의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어야 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빅 픽처를 제시한다는 것은 그저 커다란 꿈을 꾼다는 것과 구별되어야 한다. 거시적인 목표를 실천적인 목표로 상세화하고 그것에 도달할 현실적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빅 픽처'에 집중한다는 진짜 의미이다.
둘째, 직원의 동기가 승진하는 데에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승진한다고 해서 일할 동기가 언제나 커지는 것은 아니다. 승진이 동기부여 수단이 되는 직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직원도 있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실무를 계속 집중하려는 직원들도 분명 있다. 밀레니얼 세대들 중에서는 신경써야 할 책임은 많고 권한과 보상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중간관리자로 '승진하기가 싫다'는 의견이 꽤나 많다. 전문 분야에 집중하면서 '워라벨'을 유지하는 것이 직원에게는 감투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문제는 있다. 보상이 직급에 강하게 물려 있는 경우엔 팀장이 되기 싫은 직원을 승진시켜야 하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관리자 path'외에 '전문가 path'를 만듦으로써, 계속해서 실무에 전문적으로 파고들 직원들을 위한 별도의 직급/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
셋째, 대인관계에 어느 정도 능한 사람인지 평가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접촉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진다. 본인이 관리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와 경영자를 직접 상대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과 협력업체, 정부 관계자 등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수직원들 중에는 직무 전문 역량은 우수해도 대인관계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자가 제법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대인관계 역량은 성격의 내/외향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업무적인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할 사람인지 판단해야 한다.
넷째,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리자가 되면 리더십을 잘 발휘해야 한다는 것, 상위 조직으로부터 내려오는 성과 창출에 대한 압박, 직원들의 알듯 모를듯한 저항, 외부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 여러 가지로 인해 스트레스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크건 작건 조직을 대표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역시 관리자에겐 엄청난 부담이 된다. 이런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지 못하는 관리자는 여기에서 생기는 분노를 직원에게 쏟아내거나 번-아웃되어 '될대로 되라'는 스탠스를 취할 위험이 있다. 평소 해당 직원이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돌아보면, 그가 승진되고 나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4가지 관점을 간과하고서 단순히 밑의 직급에서 일을 잘했다고 보상 차원으로 직원을 승진시킨다면, 마이크로 매니저를 계속해서 공급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마이크로 매니저가 많은 조직에서 직원들은 우리 회사의 승진이 효과적으로 엄격하게 잘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을 것이고, 일에 전념하지도 않을 뿐더러(마이크로 매니저의 지적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다짐을 할 것이다.
퍼포먼스(performance)는 포텐셜(potential)이 아니다. 하이 퍼포머가 아니라 하이 포텐셜을 승진시키는 것이 마이크로 매니저를 줄이는 근본적인 조치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