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유정식 2021년 6월 14일자(월)

 

https://www.youtube.com/watch?v=uDD9HZJHN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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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직원에게 일을 위임하는(시키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점을 지난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많은 리더들이 업무위임의 효과를 알면서도 정작 일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해당 업무를 담당할 만한 능력이 100%가 아닌데, 어떻게 직원에게 일을 위임할 수 있겠는가?"이다. 아직 일을 훌륭하게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않았으니 실패할 경우 리더 본인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의 능력이 100%가 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아마도 영원히 일을 위임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100%는 리더 본인의 능력 수준을 말하는데, 어떤 직원이 그런 수준에 도달해 있겠는가? 직원들이 리더만큼 100%의 능력에 도달해 있다면 직원들이 리더의 '밑'에서 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업무능력의 향상은 교육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업무를 실제로 수행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니 일을 위임하지 않으면 어떻게 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또한, 업무 수행을 통해 성공을 경험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동기부여의 실질적 방법이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물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직원에게 업무를 위임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리더는 일을 위임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시점에 '70퍼센트의 룰'을 떠올리기 바란다. 즉, 해당 업무를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70퍼센트 이상 된다고 여겨지는 직원에게는 비록 완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을 위임하라는 것이다. 나머지 30퍼센트의 능력은 그 일을 스스로 주관하며 수행하는 동안 채워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70퍼센트의 능력밖에 없는 직원이 그 일을 완벽한 수준으로 수행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들기 마련이라 직원을 신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일을 위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데,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100%의 능력을 발휘해 일을 완벽하게 실수없이 해내는 것이 중요한가, 일 직원의 능력을 끌어올리고 성공을 경험케 하며 동기를 제고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전제 하에 만약 전자로 결론이 난다면, 그 일은 리더 본인이 수행해야 한다. 후자라면, 일을 위임하라.

능력이 70퍼센트 정도인 직원이 그 일을 수행한다면, 아마도 리더 자신이 수행하는 것과는 '흥미롭고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일을 완수할 가능성이 크다. 부족한 30퍼센트의 능력이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는 창의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리더가 해당 업무에 가졌던 편견과 한계를 70퍼센트의 능력을 지닌 직원이 깨뜨리며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창의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조직의 창의력은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것이 창의력 제고의 근본적 방법이다.


앞으로 일을 위임할까 말까를 고민할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려라. "이 직원이 이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몇 퍼센트일까?" 리더 본인을 100으로 보고 그 직원이 70 정도에 해당된다고 생각되면, 주저할 것 없다. 바로 일을 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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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왕가의 두 번째 왕인 영국의 찰스 1세는 절대군주제에서 통할 왕권신수 사상을 주장하며 재위 기간 내내 의회와 정치적으로 반목하며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만 의회를 여는 행태를 여러 번 보였다. 일례로 1640년에 4월에 스코틀랜드 전쟁 비용을 승인 받을 목적으로 11년 만에 처음 의회를 열었지만, 찰스 1세는 의회가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자 1개월만에 다시 해산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찰스 1세와 의회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영국은 급기야 1642년에 왕당파와 의회파의 싸움인 '영국 내전'의 혼란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의회파가 수도 런던을 장악하자 인근의 옥스포드로 피신한 찰스 1세는 의회파와의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 전투 지휘관들에게 군대의 전권을 위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항상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군사 전략을 입안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던 찰스 1세로서는 어쩌면 꽤나 자연스럽고 어쩌면 자기방어적인 발상이었다.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고 평소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며 햇빛을 싫어할 정도로 은둔하기를 즐기는 등 이런저런 컴플렉스가 많았던 그는 자신이 앞장서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는 걸 매우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그런 부담을 떨치기 위해 권한위임이라는, 당시로서는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발상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유야 어쨌든 지휘관들에게 군대의 전권을 위임한다는 것은 요즘의 시각에서 볼 때 상당히 진보적이고 그의 말처럼 창의적인 전략 실행을 가능케 하는 선진적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권한이양 내지는 권한위임은 현대의 조직에서 무척 강조되는 리더의 덕목 중 하나로 여겨지니 말이다.

 

찰스 1세



하지만 찰스 1세가 단행한 권한위임은 커다란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진행하는 이세환 기자의 말에 따르면, 주로 지방 귀족들로 구성된 왕당파 지휘관들의 전투 지휘 능력이 보잘것없었다고 한다. 막강한 영국 해군과 달리 당시의 육군은 국왕이 비상시에 동원 가능한 군대가 고작 몇 십 명 수준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상비군의 병력 규모도 얼마 되지 않았고 훈련 수준도 매우 낮아 오합지졸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았다. 훈련은 한달에 한번 할까 말까였다. 여기저기에서 모인 민병대 수준의 군대는 통일된 지휘 체계에 정렬되지 못했고 사실 왜 싸워야 하는지 그 목표의식도 강하지 못했다. 지휘관들의 머리 속에는 의회파 군대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관한 전략 따위는 없었고 일단 붙어서 한번에 끝내면 된다는 막연한 낙관론이 지배했다(이것은 의회파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무능하고 전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지휘관들에게 권한위임을 하면, 게다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리더가 과감하게 권한위임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찰스 1세는 똑똑히 보여주었다. 찰스 1세는 부하들이 창의적인 발상으로 전략을 수립할 거라 기대했지만, 무능한 왕당파 지휘관들은 복지부동을 최선의 전략으로 선택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그들은 찰스 1세의 권한위임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핑계를 대며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의회파 군대가 지근거리에서 지나가도 일부러 못 본 척 하기 일쑤였고, 어쩌다 실수로(?) 맞닥뜨렸을 때도 전열을 정비하고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줄 몰라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했다(경험과 능력 없던 의회파 군대도 역시 그랬다).

이렇게 왕당파든 의회파든 오합지졸들의 싸움으로 시작된 영국 내전은 금방 끝날 줄 알았으나 무려 7년이나 지속되며 90만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찰스 1세가 의회파에 의해 참수형을 당한 1649년에 끝이 난다(공식적으로는 1651년에 종료).

권한위임과 권한이양은 기업 조직에서 바람직한 조치로 흔히 언급된다. 현장에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구성원의 동기와 자율성을 부여하며, 실질적 업무능력을 제고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리더십의 자연스러운 승계를 가능케 하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한위임의 효과가 빛을 발하려면 찰스 1세가 몸소(?) 증명했듯이, 지식 연마, 경험 축적, 철저한 규율 등을 통해 구성원의 기본적 역량이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권한위임의 기대효과 중 하나가 구성원의 역량 향상이긴 하지만, 그것은 기본역량이 충족된 상태에서 그보다 더 '고급진' 수준으로 향상시키고자 할 때만 발휘되는 효과다. 초보적 지식과 경험만 있는 자에게 권한위임을 한다고 해서 전문가적 역량을 기대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또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역량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야 한다는 것도 권한위임의 또 한 가지 전제조건이다. 왕당파 군대의 지휘관들은 '왕이 위험하니 도와주자'라는 목적만 있을 뿐,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목표의식은 거의 없이 내전에 그저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직문화를 혁신한다는 차원에서 권한위임(혹은 권한이양)을 추구한다면, 먼저 구성원들을 철저하고 치밀하게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1~2년에 끝날 일은 절대 아니다. 100퍼센트까지는 아니지만 하위 역할의 구성원이 상위 역할을 거의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된 상태, 부재 시에 대신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완성된 상태까지 이르도록 훈련시키려면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또한, 지속적으로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직급과 상관없이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구성원들을 발굴해 가야 한다. 이런 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권한위임은 오히려 조직문화의 와해와 조직의 붕괴를 앞당기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경계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임원(executive)'을 'CEO로부터 의사결정권과 조직관리를 이양 받은 자'로 정의한다. 임원은 CEO를 대신하고 CEO를 대변하는 사람, 즉 ‘작은 CEO’라고 말할 수 있다. 우스운 비유일지 모르지만 "신이 자신의 손길이 다 미치지 못하는 곳에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있듯이 CEO가 자신의 손길이 다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임원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성과가 좋다고 해서 보상 차원으로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것은 무척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임원이 자신을 그저 '자기네 사업부(혹은 부문)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만 여겨서도 안 된다. 임원은 유사시 CEO를 대신할 '작은 CEO'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담당 조직의 이익보다 회사 전체의 사업 기준에서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임원 한 명을 내외부적으로 뽑을 때 CEO는 쉽사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 찰스 1세의 패착은 여기저기에서 의용군 수준으로 모인 지휘관들에게 그 막중한 권한을 '마구' 하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 안 나서면 돼"라는 자기방어적 심리가 팽배해지고 말았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그 자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나 해당된다. 윗사람을 대신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지닌 자, 그리고 더 높은 수준으로 능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더 큰 권한을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찰스 1세는 사람 보는 눈을 키우든지, 아니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의회파에 대적할 만한 자기 세력을 철저히 육성하든지 했어야 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가?

 


*참고 사이트
국방TV 유튜브 <토크멘터리 전쟁사> 150부 영국내전 II
https://youtu.be/MEvm9Wef1Jk

 

네이버 지식백과 '영국 내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930&cid=59016&categoryId=59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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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오후까지 PC 앞에 앉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팀장이 갑자기 부르더니 "지난 번에 말했던 보고서의 방향이 바뀌었어. 새로운 방향에 맞게 다시 만들어야겠어."라고 말한다. 혹은 "위에서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때 하라고 했던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어."라고 말한다. 이때 직원인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글에서는 일을 번복할 때 리더가 지켜야 할 룰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리더가 일을 번복할 때 직원이 가져야 할 3가지 마인드 혹은 룰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라. 일을 다시 해야겠다 혹은 했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자, 라는 팀장의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다. 지금까지 몇날 며칠 고생을 했는데, 일을 번복하다니! 그 힘든 시간이 아무 소용이 없다니! 짜증과 분노가 명치 끝을 찌르고 얼굴이 붉게 변하면서 아무 일도 하기 싫은 심정이 된다.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팀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못마땅하다. 급기야 처음부터 일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리더의 지적 능력까지 의심스럽다. 또한, 윗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팀장이 '아주 쉽사리'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같아서 과연 팀장 본인의 생각은 있기나 한 것인지 또한 의심스럽다. 

감정이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일을 번복하지 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업무 로드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을 번복하든 그렇지 않든 회사에 왔으면 업무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 직원의 의무임을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일을 다른 방향으로 해야 한다면 앞으로 주어진 업무시간에 그 일을 '이어서' 하면 된다. 

 


일의 방향이 번복되지 않고 원래대로 진행될 때 10일이 걸린다고 해보자. 10일 후에 일을 끝마친다고 해서 그 후의 시간이 '노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인 조직이라면 그 후에는 새로운 업무가 다시 부여되기 때문이다. 일의 방향이 새롭게 바뀌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면, 지금까지 그 일에 얼마의 시간을 투여했든지 앞으로 10일 간 변경된 그 일에 다시 몰두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일을 번복하면서도 원래의 마감일을 지키라고 하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야근을 하든지 주말 근무를 하면서 마감일을 맞추느라 엄청 고생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이야기하겠다.)

리더가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엄청난 감정 노동이다(지난 글 참조) 그러니 직원은 일을 번복하려고 자신을 부른 팀장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을 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이미 지시했던 일을 번복하는 것은 리더 자신에게도 엄청난 감정적 부담이 된다. 팀장 개인의 생각이 바뀌었든 위에서 다른 지시가 내려왔든, 보통의 팀장이라면 '직원에게 일이 바뀌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까?'라고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윗사람-아랫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팀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팀장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수평적 조직문화 아니겠는가? 일의 번복은 팀장이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성과를 내고자 하는 팀장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불필요한 감정 대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의 방향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했던 일을 없던 것으로 하는 경우라면 어떤가? 이때도 직원 자신의 업무 로드가 늘어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다른 업무를 지시받을 때까지 약간의 휴지기를 가질 수도 있으니 업무 로드가 조금은 줄어든다. 기존 업무가 폐기되고 새로운 업무를 곧바로 부여 받는다 해도 업무 로드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직원의 의무는 퇴사하기 전까지는 업무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지, 퇴사 전까지 반드시 '몇 포인트'를 따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일이 폐기 당하는 바람에 이번에 0포인트가 됐다고 해서 퇴사 시점이 강제적으로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퇴사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지금 감정적 반응이 아닌 '매우 합리적'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껏 몇날 며칠을 고생해 만든 일을 자기 자신과 지나치게 일체화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팀장이 일의 방향을 바꾸거나 일을 폐기하는 것을 자존심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다. 어차피 업무시간에는 일을 하는 게 직원의 의무(자신이 연봉을 받는 이유)라 생각하면서 '욱'하는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덜하는 것이 스스로의 동기 저하와 번-아웃을 막을 수 있다.

둘째, 일을 번복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말해 달라고 요구하라. 이것은 팀장에게 따지거나 반발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일을 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번복하는 이유를 팀장이 흐릿하게 말하거나 아예 언급이 없을 경우라 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세가 직원이 지켜야 할 룰이다(나는 이런 것이 진정한 팔로워십이라고 생각한다). 번복의 이유는 앞으로 다시 하게 될 일의 방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아웃풋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번복의 이유가 납득되는 수준을 넘어 '그래, 나도 번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라며 스스로 '체득'되어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일할 맛이 나야 좋은 아웃풋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팀장이 "까라면 까야지, 뭘 그리 이유를 따져?"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따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만들 아웃풋의 방향을 올바로 이해하고 일에 몰두하기 위해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침착하게 대응하라. 그래도 팀장이 억지를 부리면? 직원 입장에서 당장에 어쩔 도리는 없다. '조용히'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리더가 아닌' 사람 때문에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라. 팀장이 어떻게 하든 '업무 시간에 일하는 게 내 의무니까'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통제하라. 그리고 괜히 '오버'하지 말고 그런 팀장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만 일을 끝내라(사실,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런 팀장을 둔 직원은 더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이 정도로만 팀에 기여한다).

 


셋째, 팀장과 함께 일을 새롭게 계획하라. 일이 중간에 번복되었다는 것을 '작은 변경'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일을 계획해야 한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아웃풋 중에 살릴 수 있는 것, 앞으로 해야 할 세부업무와 소요시간 등을 다시 산정하여 새로운 일정을 수립하라. 이렇게 하면 당초의 마감일까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서 마감일이 뒤로 연장될 수도 있다. 팀장이든 직원이든 일의 번복은 '새로운 일의 부여(혹은 위임)'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지, 기존 일의 수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감일을 연장해야 하는데 팀장이 주말근무나 야근을 은근히 요구하면서("월요일 아침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놔") 원래의 마감일을 강요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급한 일이라서 원래의 마감일을 지킬 수밖에 없다면, 동료 직원의 협력, 팀장 자신의 동참, 자료나 네트워크(인맥) 지원 등 팀장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팀장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 바란다. 또한 원래의 마감일에 어렵사리 맞추느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했다면 (회사의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 휴가를 요청하거나 팀장 권한으로 행사할 수 있는 보상 방안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고 직원 자신도 본인이 언제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등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기록에 남겨서 나중에 팀장과 평가 면담을 할 때 자기평가의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팀장이 여러 직원들의 기여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직원 역시 이런 기록을 평가 근거로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물론 직원이 이러한 세 가지 룰을 지킨다 하더라도 리더가 직원을 괴롭히기 위해 억지를 강요하거나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려고 한다면, 솔직히 직원으로서 할 수 있는 대응책은 별로 없다. 현명하고 '합리적 마인드'의 직원이라면 그런 리더와 거칠게 맞대응하면서까지 불필요한 갈등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 감정이 자기 자신을 압도하려 할 때마다 어차피 주어진 업무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 직원의 의무임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키는 게 최선의 방어책이지 않을까? 못된 리더가 나의 일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 수는 있지만 나의 감정까지 침범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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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는 며칠 전에 직원에게 시켰던(위임했던) 일을 취소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시켜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경영진으로부터 다른 지시가 내려왔거나, 경쟁사가 예상치 못한 전략으로 치고 나왔거나, 아니면 법적 이슈나 일본의 무역제재와 같은 돌발변수가 터져 그쪽부터 대응해야 하는 급박한 경우 등 그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혹은, 일을 시킨 리더 본인의 생각이 다르게 바뀌거나 관심이 바뀌었기 때문인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내외부 환경 혹은 리더 본인의 생각이 바뀌면 이미 지시했던 일을 폐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이때 리더가 어떤 식으로 일을 '번복'하는지가 직원의 일할 동기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일을 번복하기 위해(일을 폐기 혹은 변경하기 위해) 직원을 만나기 전에 리더가 다짐해야 할 것은 '직원 입장에서 생각하기'이다. 다시 말해, 일이 번복되었을 때 직원은 어떤 감정이 들지 상상하고 직원의 감정을 헤아리고 도닥이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시했던 일은 이제 그만해."라며 일을 번복하는 리더의 말을 들을 때 직원은 어떤 감정이 들까? 가장 먼저 발생하는 감정은 '그동안 '쓸데없는' 일을 했구나'라는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유관부서나 기관에게 자문을 구하고, 보고서의 틀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은 채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리던 모든 시간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물론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니 내가 했던 일이 무의미한 것으로 변했든 그렇지 않든 또다른 일을 맡아서 하면 그만이라고 '쿨'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의미없이 폐기되는 것을 보며 급격한 동기 저하의 위기에 직면한다. 

 



이렇게 '일의 의미'에 대해 회의감을 경험한 직원들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일의 의미'가 생산성과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인 하버드 대학 학부생들에게 바이오니클(Bionicle)이라 불리는 레고 블럭을 조립하도록 하고 처음 완성하면 2달러를 주고 그 다음 회부터는 매회 11센트씩 깎아서 지급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학생들을 몰래 두 그룹으로 나눴는데, '의미 그룹'의 학생들은 바이오니클 하나를 완성하면 책상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고 실험진행자로부터 새로운 세트를 건네 받았다. 이 학생들은 책상 위에 놓인 노동의 결과를 확인하면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시지푸스 그룹'에 속한 학생들은 말 그대로 시지푸스처럼 무의미한 반복 작업으로 느껴지는 상황에 처해야 했다. 바이오니클을 만들자마자 실험진행자가 냉정하게 그것을 바로 부수어버리고 다시 만들라고 했으니 말이다.

실험 결과, 의미 그룹의 학생들은 평균 10.6개의 바이오니클을 완성했지만, 시지푸스 그룹의 학생들은 7.2개 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또한, 의미 그룹은 수고료가 1.01달러 이하가 될 때 그만하겠다고 말한 반면, 시지푸스 그룹은 1.40달러일 때 두 손을 들었다. 일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니 그만큼 빨리 포기를 선언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일의 번복으로 인한 직원의 동기 저하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일을 번복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가능한 한 육하원칙을 꼼꼼하게 적용하여 직원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직원을 만나기 전에 머리 속으로 설명의 흐름을 생각하고 간단하게 메모를 하면 중구난방하지 않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지켜야 할 원칙은 '리더 본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그렇게 하래.", "사장님이 하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어?"라는 식으로 남의 탓을 하면서 '메신저'처럼 굴면 곤란하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의 주인공 리처드 윈터스가 훌륭한 리더라는 점은 그가 중대장 소블가 부적절한 지시를 내려도 소대원들에게는 소블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물론 '위'에서 일을 번복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할지라도 윗사람이 일을 번복하게 된 이유를 파악한 다음(그러려면 리더는 윗사람에게 이유를 '용감'하게 물어야 한다), 자신을 '주어'로 하여 배경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위에서 그렇게 하래"라고 말하는 리더를 보며 직원들은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데?'라며 반감을 가지며 리더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윗사람의 지시로 일을 번복하게 됐다는 말을 전해야 할지라도 최소한 본인의 생각을 더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직원이 일을 번복해야 하는 이유를 리더와 함께 알고 있다면, 배경과 이유 설명을 간략히 하거나 생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라도 직원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개의치 말고 물어보라"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똑같은 정보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수용하는 게 인간의 심리이니까. 

둘째, 미안한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고 해서 직원의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짧게 말해도 된다. 리더 자신이 충분히 고려하여 내린 결정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직원의 감정을 헤아리고 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짧은 말과 함께 잠깐의 침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셋째, 지금까지 했던 업무의 의미를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미안함을 진정으로 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애리얼리의 실험에서 봤듯이 고작 레고 블럭도 만들자마자 폐기 당하면 급격히 동기가 떨어지는데, 몇날 며칠 고생하여 만들어낸 보고서나 자료가 이제는 아주 소용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면 누가 일할 맛이 나겠는가? 다른 업무를 할 때도 '혹시 이 일도 없던 일이 되어 몽땅 버려야 하는 것 아냐?'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일에 몰입하기가 어렵고 아웃풋 역시 그리 뛰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리더는 지금까지 했던 작업의 내용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해야 하고 나중에 유사한 일이 생기면 그때 사용할 수 있다고 직원을 안심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무역제재로 일본 협력업체와의 제휴방안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면 "나중에 일본과 관계가 개선되면 그때 자네가 마련한 방안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야. 조만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또한 팀에서 관리하는 '자료 라이브러리'가 있다면 그곳에 적절한 네이밍으로 저장해 달라고 한다든지, 자신에게 이메일로 지금까지의 작업 결과를 보내 달라든지, 아니면 팀 회의 때 간략한 내용을 공유케 한다든지 해야 한다. 그저 "그거 이제 그만하고 다른 일을 해"라고 말하며 지금까지의 고생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금까지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수고 많았네"라고 '쓸데없음'을 리더가 앞장서서 꼬리표를 달아서는 절대 안 된다. 

넷째, 동일한 업무를 다른 방향으로 다시 해야 할 경우에는 일정을 새로 설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미 시켰던 일을 폐기하는 경우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해야 할 경우라면 아웃풋이 나오는 마감일을 새로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리더가 먼저 마감일을 제시하지 말고 직원의 의견을 물어보고 최대한 직원에게 맞춰 주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렇게 바꿔서 하려면 10일이 더 필요하겠는데요?"라고 한다면, 리더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권을 발휘해 직원의 의견을 받아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많은 리더들이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필요해? 주말이 있잖아", "야근을 좀 해야겠어"라며 마감일을 원래대로 고수할 것을 직원에게 강요한다. 남쪽으로 열심히 가던 중에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가야 한다면 그만큼 시간이 더 드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원점까지 와야 하고 또 원하는 만큼 북쪽으로 가야하니까) 직원의 'work & life balance'를 깨 가면서까지 마감 준수를 강조한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면 마감일 준수가 필수적일 수 있다. 이럴 때는 직원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리더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말로 급한 일이라면 여유가 있는 동료직원들에게 협력하여 일을 진행할 것을 지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직원의 양해를 최대한 구하고 직원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산이 아닌가봐'라며 일을 번복할 때 보통의 리더는 어떻게서든 직원에게 책임 추궁을 받지 않으려는 쪽으로 행동한다. 일을 번복하면 직원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그 분노와 짜증이 리더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직원에게 욕을 먹지 않고 '착한' 리더로, '존경 받는' 리더로 남고자 하여 일의 번복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책임을 피하려 한다면 그건 현명하기는커녕 무능하다는 뜻이다.

일의 번복된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미안함의 진정을 느끼게 하며, 지금껏 수행한 일의 의미를 소중히 하고, 직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일정을 새로 설정하는 것, 이것을 기억하고 실행한다면, '병가지상사'처럼 매일 일어나는 일의 번복 속에서 직원들의 동기 저하를 최대한 막고 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알지만 말고, 오늘부터 바로 실천하기 바란다.


*참고논문
Ariely, D., Kamenica, E., & Prelec, D. (2008). 

Man's search for meaning: The case of Legos.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67(3-4), 67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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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업무를 어떤 직원은 한 두 시간 안에 끝내지만, 다른 직원은 하루종일 붙잡고 있어도 끝내지 못하곤 한다. 또한, 어떤 직원은 팀장의 기대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훌륭한 아웃풋을 가지고 오지만, 다른 직원은 지시한 수준에 못미치거나 '구멍이 숭숭 뚫린' 저급한 아웃풋을 내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직원들의 역량 수준과 경험이 제각기 다를뿐더러 업무에 대한 몰입 정도가 또한 다르기 때문에 늘 팀 내에서 발생하는 팀장의 골치거리일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도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팀장은 빠른 시간 안에 일을 훌륭하게 처리하는 직원에게는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몰아주고 업무처리 속도와 아웃풋의 품질이 저조한 직원에게는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고 바쁠 것도 없는 일을 배정하게 된다. 특히 환경이 급박하게 돌아가거나 단기적 성과가 절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업무량 편중 문제가 심각해지고 만다.

업무량 편중이 문제가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우수직원은 자신에게 일이 몰리는 상황을 부당하다고 여기고 조직을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고 긴급한 업무를 우수하게 수행한다 해도 별다른 보상이 없다면 '억울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히 '일도 못하고 뺀질거리면서도' 본인과 동일한 보상을 받는 동료들이 곁에 있으면 우수직원의 동기는 급격하게 저하된다. 번아웃되거나 조직을 떠나고 만다. 우수직원에게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집중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업무량 편중이 우수직원에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역량과 성과 수준이 떨어지는 직원들 역시 자신들에게 부여되는 업무가 우수직원에게 주어지는 업무보다 상대적으로 저급하다고 여기면, 비록 자신의 역량 및 경력 수준이 모자른다고 생각하더라도 일에 대한 도전의지와 흥미를 잃어 버리고 만다. "왜 만날 나에게 이런 일만 시키는가?" 불만을 가질 뿐더러 일을 통한 역량 계발의 기회, 성과 창출을 통한 승진의기회 등을 발탁 당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역시나 동기 저하를 경험한다. 그렇게 되면 팀 역량 수준이 향상될 가능성은 물건너 간다. 물론 자신에게 적은 업무량이 배정된다는 것을 '해피하게' 여기거나 어떻게든 자신에게 일이 적게 주어지도록 교묘하게 행동하는 직원이 극소수 존재하긴 하지만,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첨언하자면, 이들은 팀장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금세 발각된다).

이렇듯 우수직원에게나 보통직원에게나 업무량 편중이 문제점을 일으키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서 팀성과를 훌륭히 창출해 내면서도 여러 직원들에게 일을 공평하게 배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팀장에게 주어진 숙명적 과제들 중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경우라도 문제적 상황이 발견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상(As-Is)'을 파악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문제를 인식하기보다는 과연 어떤 직원에게 현재 어떤 업무가 배정되어 있는지, 그 업무는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업무가 일정에 맞게 수행되는지, 그리고 중간 산출물의 품질은 어떠한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현황 파악이 있어야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데, 과연 이런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 팀장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금요일 오후에 따로 시간을 내어 이런 작업을 수행할 것을 조언한다. 직원들이 산발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면 그때그때 업무를 조정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간트 차트(Gantt chart)'를 만들거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그런 다음, 다음의 질문을 던져 현황을 면밀하게 분석하라.

- 업무가 과도하게 편중된 직원이 누구인가?
- 업무가 기대보다 적게 주어진 직원은 누구인가?
- 각 업무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는가?
- 일정보다 빠르거나 느려진 업무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중간산출물의 품질이 기대보다 뛰어난 업무는 무엇인가?
   그렇지 못한 업무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각 직원이 현재 가지고 있는 애로사항이 무엇인가?

- 어떤 직원과 언제 면담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매주 정기적으로 던져 문제를 발견하라. 그런 다음, 월요일 아침에 열리는 주간회의 때 직원들에게 (선별적으로) 문제를 밝힌 다음,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모으거나 팀장 본인의 생각을 제안하라. 필요하다면(혹은 민감한 사안이라면), 문제가 있는 직원들을 1대 1로 만나서 현황에 대한 팀장 본인의 판단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같이 논의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둘째, 일한 시간이 아니라 아웃풋을 기준으로 직원들의 성과를 인정하라. 직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량을 본인이 각 업무에 쏟은 시간을 가지고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 아웃풋의 품질이 높지 않더라도, 업무의 난이도가 절대적으로 평이하다 해도, 자신의 역량과 스킬이 높지 않아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더라도, 일단 업무를 붙들고 있는 시간으로 업무량을 판단한다. 비슷한 수준의 업무를 맡은 동료가 자신보다 일찍 퇴근한다면, 동료의 업무 속도와 품질이 자신보다 우수하다 해도 동료에게 주어진 업무량이 자신보다 적다고 오해를 하곤 한다.

이런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일한 시간 혹은 페이스 타임(face time,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 각 직원이 내놓은 아웃풋을 기준으로 공개적으로 칭찬하거나 팀장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보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일찍 성과를 내고 퇴근하는 우수직원을 향해 불만을 가지거나 공개적으로 불평을 낸다면 이를 저지하고 오해를 불식시킬 책임은 팀장에게 있다. 성과 중심의 조직이란 단순히 일한 시간이 아니라 성과를 중시하고 보상하는 조직 아니겠는가? 진정한 생산성이 무엇인지 직원들에게 충분히 각인시켜라.

 



셋째, 일을 못하면서 열의도 없거니와 심지어 동료에게 부정적 기운을 전달하는 직원을 배제시켜야 한다. 많은 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본 결과, 직원들은 우수직원이 자신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경우보다 일 못하고 열의 없고 뺀질거리는 직원들이 자신과 같은 연봉을 받는 경우에 더 분노한다. "왜 저 친구는 놀면서 회사 다니는데, 팀장님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면 실제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량을 과중하다 여길 것 아니겠는가? 그런 뺀질이 직원들에게 확실하게 경고하고 기대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라. 계속 뺀질이처럼 직장생활을 한다면 배제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려라. 직원들에게 대한 가장 큰 보상은 좋은 동료들과 같이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넷째, 업무가 상황에 따라 편중될 수 있음을 우수직원들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그 결과를 보상하라. 단기적인 대처를 위해 혹은 업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수직원에게 일이 몰리는 경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중요하고 긴급하며 어려운 업무를 우수직원에게 위임할 때 팀장은 이를 솔직하게 언급해야 한다. 팀장이 어떻게 지원할지, 진행되는 동안 서로 어떻게 소통할지 등을 충분히 논의함으로써 우수직원이 충분히 배려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기억했다가 (기록해야 한다!) 나중에 평가 결과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팀성과에 기여한 만큼 평가하고 보상하라. 이런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는 '승진 돌려먹기'와 연공서열, 다른 직원들 눈치보기 등 때문에 현장에서 자주 실종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역량을 키울 직원을 매주 고민하라. 긴급하고 중요한 상황이라고 우수직원을 혹사시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다.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어느 직원을 우수직원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 직원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긴 적이 없어서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번 빠진 '확신의 덫' 때문에 우수직원이 될 수 있는 직원의 잠재력을 보지 못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매주 금요일, 자신의 업무 배정 현황을 들여다보면서 '역량을 실험해 볼 직원'을 정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직원은 이 업무(혹은 프로젝트)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한번 시켜봐야겠어."라고 말이다. 각 직원의 잠재력을 겉으로 드러내고 역량을 향상시킬 방법은 실제적인 업무 수행이 유일하다. 이런 시도는 팀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가장 레버리지가 큰 방법이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해결책을 강구한다 해도 모든 직원들에게 기계적으로 똑같은 업무량을 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업무량 과중에 대한 불만을 완전히 불식시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런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욕심은 버려라. 팀장 자신이 직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는 잘못된 습관과 관행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달성해야 할 진짜 목표는 모든 직원의 동기를 저하시키지 않고 번아웃을 막으며 업무역량과 스킬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오후에 시간을 내어 업무 배분의 As-Is를 냉정하게 평가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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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주방 천장에 레일등을 설치하는 공사를 했다. LED로 된 주방 조명은 너무나 밝아서 한번 켜면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방에 우리집의 존재를 다 알렸다. 게다가 내 취향에는 안 맞는 주광색(흰색)이라서 전구색(노란색)의 은은한 펜던트 조명을 따로 설치해 필요에 따라 조명의 밝기와 분위기를 다르게 하고 싶었다. 요즘에는 DIY로도 누구나 쉽게 조명용 레일을 부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래된 집이라 전기 배선을 파악하기가 어렵고 손수 작업을 하다 자칫 감전될 위험도 있기에 동네에 있는 '전기 아저씨'를 불러 작업을 부탁했다. 내가 직접 하면 하루종일 해도 시간이 부족할 일이지만 전문가가 손을 대면 한 시간 안에 끝날 거라는 기대도 아저씨를 부른 이유였다. 빨리 끝나면 그만큼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니 출장비가 아깝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작업은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천장 속의 배선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시멘트로 된 장애물이 많아 전기선을 새로 넣고 빼기가 물리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간단한 공사라고 호언하며 작업을 시작하던 아저씨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지고 뭔가에 화가 난 듯 보였다. 천장에 구멍을 내고 선을 넣고 빼는 과정에서 눈으로 떨어진 나무 가루와 먼지 때문일까? 점심도 못 먹고 작업을 해야 해서 짜증이 난 것일까? 그런 와중에 작업을 할라치면 고객들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어서였을까? "석유난로가 고장 났어. 빨리 와서 고쳐 줘!"라며 전기 기술자에게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일을 요청하는 할머니 고객 때문이었을까?

연장을 건네주거나 의자를 잡아줄 셈으로 옆에 같이 있던 나 역시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저렇게 해 주시겠어요?"라는 부탁을 하기가 미안해졌고, 기껏 용기(?)를 내어 부탁을 하면 아저씨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조바심이 났다. 선을 배선하기가 곤란하게 되어 있는 천장 구조물이 나의 잘못이라고 탓하는 것만 같았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천장에 레일을 붙일 때 내가 실수로 잡고 있던 레일을 놓쳤는데 그때 아저씨는 "에이..."라고 말하며 나를 살짝 흘겨 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아저씨에게 미안했던 감정이 시간이 갈수록 짜증으로 변했다. 그냥 공짜로 일을 부탁한 것도 아니고 출장비를 주며 일을 시키는데 내가 왜 아저씨에게 쩔쩔매야 하지? 왜 아저씨 눈치를 봐야 하지? 작업이 어려워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그에 맞춰 출장비를 더 주면 될 것 아닌가? 돈 주는 내가 왜 눈치를 봐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 오늘 그냥 내 일이나 할 걸, 왜 불렀을까, 라며 화가 났다. 

겉으로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레일이 다 완성되면 매달려고 했던 펜턴트등의 코드가 말끔(?)하게 잘려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뚜껑'이 열려 버렸다. 공사 끝나면 바로 달려고 사전에 내가 펜턴드등 코드에 레일용 플러그(어댑터)를 힘들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걸 똑 끊어낸 것이었다. 해외 사이트에서 어렵게 구한, 특이한 재질 코드였고 공사 시작 직전에 도착한 물건인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저씨에게 이유를 물으니 펜텐트등을 레일에 달려고 한 것 아니냐, 그래서 잘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드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달죠?"라고 내가 짜증을 섞어 물으니 아저씨는 대답을 우물거렸다. 딱히 복안이 있어서 코드를 냉큼 자른 것 같지는 않았다. 본인도 정신이 없었는지 무심코 그랬던 것이었다. 레일만 설치하는 것이 아저씨의 임무였는데, 본인 딴에는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였을 거라고 생각하며 애써 화를 눌러야 했다. '끊어진 코드는 다시 연결하면 되지, 뭐.'

격정(?)의 4시간이 흘러 공사가 드디어 끝났고, 아저씨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많은 듯한) 출장비를 받고 돌아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나무 가루, 전선 부스러기, 비닐 조각 등을 치우며 청소를 했다. 아저씨와 함께 있을 때보다 청소할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아저씨가 끊어먹은 코드를 연결해 레일에 다니 은은한 노란빛이 주방을 감쌌다. 그때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 돈을 주건 그렇지 않건 누군가에게 일을 시킨다는 건 엄청난 감정노동이구나!' 실제로 일을 한 사람은 아저씨였지만, 나는 그 시간 이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진맥진해졌다. 격한(?) 감정노동 때문에. 

 



상당수의 리더들이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유는 일을 시키는 것이 상당한 감정 소모를 유발하는 감정노동이기 때문이다. 일을 지시 받는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리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리더의 위치는 절대 마음 편한 자리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시키면서 직원의 눈치와 표정 변화를 살펴야 하고, 직원이 지쳐하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면 10번 피드백하고 싶어도 한 두 번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 '일하는 대가로 돈(연봉)을 받는데도 일을 시키면 왜 그리 싫은 표정부터 짓는지 모르겠어!', '돈을 받았으니 시킨 일을 해야 하는 게 직원의 임무 아니야?' 지시한 대로 정확하게 직원이 이행할까 조바심이 나고, 위(경영진)에서는 빨리 달라고 독촉하는데 직원이 과연 기한 내에 끝낼 것인지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렇다고 직원에게 뭐라 싫은 소리를 하면 '나를 미워하지 않을지, 나 때문에 직장생활 못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또한, 전기 아저씨가 그랬듯이 잠시 신경을 쓰지 못한 동안에 자기 멋대로 해버리는 직원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경우도 잦다. 직원이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그랬다며 항변하면 야단치는 '내'가 좀스러워 보인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리더와 직원 사이에 벌어지는 이런저런 상호작용 속에서 엄청난 양의 감정이 연료로 소모된다. 리더와 직원 사이에 희노애락의 감정이 늘 불타오른다!

리더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일을 시키는 것은 감정노동이다. 고로, 리더는 감정노동자다. 그러니 리더의 '일 시키기'를 감정노동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물론 이런 관점을 취한다고 해서 리더의 감정 소모가 크게 줄지는 않겠지만,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북돋우며 성과 창출을 독려해야 하는 리더의 일이 사실은 엄청난 감정노동임을 리더 자신, 직원들, 조직 전체가 이해해야만 조금이나마 실질적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리더의 일은 감정노동임을 수용한다면, 리더는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본인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화시켜 바라봄으로써 감정의 과도한 소모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리더 역시 실무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음을 직원들이 이해한다면, 리더가 자신에게 행하는 업무지시와 피드백을 개인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이 아니라 성과를 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받아들이고 리더와의 불필요한 감정 대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직은 리더의 리더십 발휘가 방법론이나 도구 사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 비폭력 대화법, 표정 관리, 명상 등과 같은 보다 소프트하면서 감정을 다루는 주제로 리더에 대한 교육 혹은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직업은 감정노동이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인 까닭이다. 그러니 직원들은 '리더는 나보다 편히 일한다'는 생각을 조금은 접어두자. 리더는 '나는 감정노동자니 리더십 스킬에 앞서 내 감정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고 다짐해 보자. 이런 마음가짐이 '일 시키는 기술'에 앞서 전제돼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말)
처음에 전기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공사일정을 정한 사람은 H군이었다. H군은 왜 자기가 전화를 걸어야 하냐며 투덜거렸다. 왜 그런 일은 본인이 전담해야 하냐며. 이해한다.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고 협의를 하는 것 역시 감정노동이니까. 허나 나의 감정노동에 비할까?
H군은 그날 집에 없었다. 4시간의 감정노동은 나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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