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이메일이 의사소통의 도구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2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첫 입사하던 해에 직원들이 이메일 사용법을 몰라 해맸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도구로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1)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업무의 대부분을 수행하는 직원들도 상당히 많죠. 그래서인지 상대방을 찾아가서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면 빠르게 처리될 것 같은데도 이메일로 업무를 요청하고 자료를 주고 받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곤 합니다. 


대면으로 요청하거나 논의하면 금방 끝날 것 같은 일을 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진행하느냐, 이메일을 보내고 답신을 받느라 시간을 지체시키는 건 아니냐라고 물으면, 여러 답변이 나오지만 대략 두 가지로 정리가 되더군요. 하나는 '이메일로 증거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메일로 요청하는 게 얼굴 보며 부탁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서로 업무의 책임 소재를 다투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 타당한 주장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 두 번째 이유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메일이 마음도 편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효과도 대면 요청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메일로 기록이 남기 때문에 요청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추가적인 근거를 댑니다. 




하지만 그런 근거는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걸까요? 워털루 대학교의 M. 마디 로가니자드(M. Mahdi Roghanizad)와 코넬 대학교의 바네사 본스(Vanessa K. Bohns)는 이메일 요청이 대면 요청보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효과, 즉 상대방으로부터 '예스(yes)'를 이끌어내는 효과가 높을지를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두 연구자들은 495명의 참가자들을 45명의 요청자(requester)와 450명의 대상자(target)으로 나누었고, 요청자들을 다시 '대면요청 그룹'과 '이메일 요청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10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하도록 지시했죠. 


로가니자드와 본스는 요청자들이 설문지 작성 요청을 하기 전에 대상자들이 얼마나 요청에 응할지 예상해보라고 함으로써 실제 결과와 비교해 보고자 했습니다. 실험 후에 분석해 보니 이메일 요청 그룹의 참가자들이 이메일의 설득 효과를 과신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대면 요청은 예상보다 설득 효과가 좋은 반면, 이메일은 그 효과가 형편 없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근소하긴 하지만, 이메일 요청 그룹이 대면 요청 그룹보다 '예스'라는 답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을 볼 수 있죠.


(출처(source); 아래에 명기한 논문)



480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실험에서는 실험조건을 약간 달리했습니다. 요청자들은 대상자들에게 설문지를 완성하면 1달러의 보상을 주겠다고 말한 다음 설문지를 완성하고 나서 1페이지 짜리 글의 문법이 맞는지를 '공짜로' 점검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추가적으로 부탁하는 '공짜' 작업을 덧붙임으로써 결과가 어떻게 바뀔지 보려 한 것이죠. 각각 대면 요청 조건과 이메일 요청 조건으로 실험한 진행한 결과,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대면 요청 그룹은 대면 설득 효과를 과소평가하고, 이메일 요청 그룹은 이메일의 설득 효과를 과신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대상자들은 이메일 요청자들보다 대면 요청자들을 더 신뢰하고 더 '공감(empathy)'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간단한 실험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정보 전달 도구로서가 아니라 요청 혹은 설득의 도구로서 이메일은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메일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비대면 도구인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편리하고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준다 해도 상대방이 요청에 응하리라는 기대까지 높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메일 뿐만 아니라 메신저, 사내 SNS 등 컴퓨터 및 네트워크 기반의 의사소통 도구가 일상화되면서 비대면이 주는 안락함에 기대는 게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일이 되게 하고' 상대방에게 신뢰와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대면 소통이 기본이 되어야 하고 이메일은 정보 공유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이 실험이 주는 시사점입니다. 미래에는 대면 소통을 완전히 대체할 만한 도구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예상하건대 그런 도구는 궁극적으로 대면 소통 방식을 완전히 '모사'하는 쪽으로 발전하리라 봅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공간에 있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영화 '킹스맨'의 홀로그램을 통한 원격화상 회의처럼 말입니다).


(출처: 영화 <킹스맨>)



오늘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일을 요청한다면 이메일보다는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길 바랍니다. 그게 어렵다면 전화가 차선책입니다. 이메일에 적힌 차가운 문장이 아니라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소통 방식이 우선입니다. 인간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주1) 이메일은 1978년에 시바 아야두라이(Shiva Ayyadurai)가 개발하고 저작권을 등록했다. 일상적으로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한 건 그 후 20년 정도가 흐른 후였다. 


*참고논문

Roghanizad, M. M., & Bohns, V. K. (2017). Ask in person: You're less persuasive than you think over email.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69, 223-226.




Comments




사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때나 강사로부터 교육을 받을 때 몇몇 강사들은 강연을 진행하다가 본인이 강조하고 싶거나 일깨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청중에게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야 청중(교육생)들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쉽고 좀더 빠르게 이해할 거라고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기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도 중요한 말이나 알아두길 원하는 말이 있으면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여 다가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이죠.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행동이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K. Hsee)와 동료 연구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어떤 자극이 멀어지는 경우보다 다가오는 경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위 ‘접근 회피 효과(Approching Aversion Effect)’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강사나 프레젠터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청중에게 다가갈 경우, 오히려 청중은 그런 자극(자신에게 다가오는 강사나 프레젠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것임을 추측케 하는 결과죠.


출처: 이혜진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0445627797



시와 동료들이 어떤 실험으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살펴볼까요? 먼저 시는 사전에 ‘중립적’이라고 평가된 영어 알파벳 문자들을 모니터에 띠우고 그 글자가 모니터에서 커지는 동영상과 작아지는 동영상, 그리고 크기가 변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동영상을 참가자들에게 각각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글씨가 커지는(화면의 10%를 차지하다가 90%까지 차지하는) 글자를 볼 경우에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적으로 높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글씨인데도 말입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눈과 입’으로만 구성된 이모티콘을 가지고 작아지거나 커지거나 크기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이때 이모티콘의 입 모양을 세 가지로 다양화했는데요, 입꼬리가 올라간 ‘웃는 이모티콘’, 반대로 입꼬리가 내려간 ‘우울한 이모티콘’, 입꼬리가 수평을 이루는 ‘중립적인 이모티콘’이었습니다. 역시나 이모티콘의 크기를 화면의 10% 크기에서 화면의 80%까지 키운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이 이모티콘의 표정과 상관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더 높게 느꼈습니다.


자극의 원천이 알파벳이나 이모티콘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시와 동료들은 어떤 남자가 등장하여 뭔가를 말하는 동영상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는데, 그 남자가 카메라로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 카메라에서 멀어지는 모습, 카메라 가까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 카메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지하는 모습으로 다양화했습니다. 또한 그 남자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 즐거운 표정, 중립적인 표정을 연기했죠. 참가자들은 이 남자가 어떤 감정 상태이든 간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카메라로 가까이 오는) 동영상을 볼 경우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강사가 웃으면서 청중에게 다가가더라도 청중에게서 뒤로 물러날 때보다 부정적이라고 느꼈던 겁니다. 나중에 강의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중요한 말을 전달하고자 할 때는 청중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뒤로 물러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은 ‘공간적으로 움직이는 자극’에 따라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를 살펴본 것이었는데, 시와 동료들은 ‘시간상으로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자극’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동일하게 ‘접근 회피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시는 먼 도시에 사는 사촌이 참가자들이 사는 집에 방문하여 1주일 간 머무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사촌의 방문을 환영하는 상황, 꺼려지는 상황, 아무래도 괜찮은 상황을 그려보도록 했죠.


시는 사촌이 언제 방문할지는 비행기 예약 가능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참가자들에게 알렸는데(비행기표가 충분한 상황이 아님을 전제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비행기 확보에 따라 사촌이 ‘12일 이내’에 방문할 수 있는 경우에서 차츰 ‘3일 이내’로 바뀌는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습니다(그 반대의 경우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이때도 사촌의 방문을 얼마나 환영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사촌의 방문가능일이 점점 다가오는 상황(방문가능일이 멀어지는 상황 혹은 처음부터 멀거나 가까운 상황보다)을 가장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극이 공간상으로 다가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상으로 가까워질 때 불편한 감정을 유발시켰던 겁니다. 시는 추가적으로 사촌의 방문가능일을 ‘방문할 가능성’으로 바꿔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역시나 참가자들은 방문할 가능성이 ‘작았다가 커지는 상황’을 가장 불편해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자극이든 부정적인 자극이든 가까이 다가올 때보다는 멀리 물러날 때(그리고 그냥 가만히 머물 때)가 상대방에게 ‘더 좋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향후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는 본인의 동선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도 유념해야 할 사항입니다(저도 유념해야겠습니다). 강조하고 싶을 때는 차라리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서서 말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실험은 자극의 접근이 설득의 효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기에 이런 조언이 조심스럽긴 합니다(청중이 설령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더라도 설득 당하기는 더 쉬울지 모르니까요). 시의 연구는 긍정적 자극이든 부정적 자극이든 그것이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확률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수록 상대방이 방어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으로 일단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청중 앞에 설 일이 있다면, 이 점을 기억해 두고 실천하면 어떨까요?



(*참고논문)

Hsee, C. K., Tu, Y., Lu, Z. Y., & Ruan, B. (2014). Approach aversion: Negative hedonic reactions toward approaching stimuli.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6(5), 699.




Comments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득할 때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조언합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의 눈의 피하는 것 같으면 '나를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기도 하죠. 우리가 시선 일치를 의견 일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방법일까요?


프란세스 첸(Frances S. Chen)과 줄리아 민슨(Julia A. Minson)은 시선 일치가 설득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미신'임을 밝히는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첸과 민슨은 프라이브루크 대학에 다니는 20명의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 문제, 여성에 대한 일자리 쿼터 설정 문제 등 논란이 많은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각 이슈에 대해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했죠. 7개의 동영상 중 3개는 화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고 나머지 4개는 화자가 카메라 정면에서 약간 비껴 서서 말하는 동영상이었습니다. 첸과 민슨은 실험 참가자들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여 동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화자의 어느 부분을 주로 바라보는지를 측정했습니다. 하나의 동영상 시청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은 각 이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다시 써내야 했는데, 시청 전과 시청 후의 의견 변화를 살피기 위함이었죠.


참가자들은 화자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일치할수록 화자의 눈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이 결과만 보면 눈을 응시하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해 화자의 의견과 얼마나 동의하는지의 정도를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해 보니, 화자의 눈을 많이 바라본 참가자일수록 화자의 의견에 덜 동조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화자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한 동영상에서 더 크게 나타났죠. 따라서, 시선 응시가 설득의 방법으로(특히 반대되는 의견을 설득시키려 할 때) 적합하지 않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죠.


동일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실시한 후속 실험에서 첸과 민슨은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동영상에 나오는 화자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들으라고 지시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화자의 입에 초점을 맞추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화자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설득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눈 조건'의 참가자들이 '입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화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덜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화자의 눈을 바라볼수록 자기 의견을 더 공고히 하기 때문에 설득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실험에 의해서 상대방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설득의 방법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미신이었다는 것이죠. 상대방이 이미 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할 때는 시선 일치가 의견 일치를 공고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만, 의견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을 일으키도록 자극합니다. 상대방에게 맞서거나 그 상황에서 도피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설득은 물건너간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앞으로 설득할 때는 상대방에게 정면으로 서거나 앉기보다는 약간 비켜 서거나 앉아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보다는 시선을 적절하게 분산시켰다가(입, 귀, 머리카락 등으로) 가끔 눈을 맞추는 것이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은 채 부드럽게 나의 의견을 '침투'시키는 방법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Chen, F. S., Minson, J. A., Schöne, M., & Heinrichs, M. (2013). In the Eye of the Beholder Eye Contact Increases Resistance to Persuasion. Psychological science, 0956797613491968.



Comments

  1. Favicon of http://http://blog.naver.com/phoats2005 BlogIcon 가온마루 2013.10.14 18:27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립한 상태에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건 도발(건방짐)의 제스쳐가 되는 것 같더군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한다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상황에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실용적인 글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2013년 7월 16일(화)


1. 인퓨처컨설팅의 유정식 대표와 연결돼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요?


나의 직업을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컨설턴트다. 컨설팅을 하는 게 나의 일인데, 컨설팅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인지 아는가? 컨설팅의 앞 부분인 con(콘)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속이다’라는 뜻이 있다. 부정적인 말이라서 나는 컨설턴트라는 말 대신에 카운셀러라고 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는데, ‘속이다’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남에게 나의 의견을 설득하다’란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잘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서두가 좀 장황했는데, 오늘은 좋은 컨설턴트처럼 상대방에게 나의 의견을 잘 설득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 설득을 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소개해 달라.


‘문간에 발 들여놓기’라는 기법이 있다. 이 말은 작은 요청을 승낙하도록 하면 더 큰 요청도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조나단 프리드만이 실시한 실험에서 이미 입증된 것이다. 프리드만은 주부들에게 소비와 관련한 8개의 설문 문항에 답하도록 한 다음에, 조사팀이 2시간 동안 집에 머물면서 청소와 요리에 관해 조사해도 되겠느냐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43퍼센트의 주부들이 흔쾌히 승낙했다. 반대로, 설문에 답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안 조사를 요구해 봤는데, 그때는 겨우 22퍼센트의 주부들만 요청을 받아들였다.


작은 것을 요청하면 ‘해줄까 말까’하는 마음의 장벽이 높지 않아서 바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큰 것을 요청하면, ‘이미 한번 들어줬으니까, 또 해줘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무턱대로 큰 것부터 처음에 요청하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작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3.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그게 무엇인가?


선택의 자유를 상대방에게 넘기는 것이 그 방법인데, “제가 이렇게 요청을 드리지만, 당신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설득의 효과가 배가된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면 설득 효과가 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게겡이란 학자가 주민들에게 "앞으로 한 달 동안 유리, 플라스틱, 종이 등을 분리 배출할 때마다 무게와 개수를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는데, 그 말과 함께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선택이 당신 자유’라는 말을 듣지 않은 주민들은 40퍼센트만 수락했지만, '선택은 당신의 자유'란 말을 들은 주민들은 56퍼센트가 수용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라고 말해도 웬만해서는 상대방이 "그럼, 난 안 할래."라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잘 설득하려면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설득을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있다면?


2001년 9월 11일에 어떤 일이 있었나? 많은 사람이 9.11사태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예견됐고 경고가 됐던 일이었다. 피터 슈워츠란 사람은 사태가 발발하기 7개월 전인 2001년 2월에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부시는 대충 훑어보다가 딕 체니 부통령에게 '당신이 대신 읽으시오'라고 했다. 체니도 머리가 아팠는지 그 보고서를 읽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보고서가 너무 두껍다’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피터 슈워츠의 보고서를 읽어봤다면 9.11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거나, 사고가 터진 후에 신속히 대처했을지 모른다. 피터 슈워츠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 사실을 인터뷰 때 밝혔는데, 사실 그에게도 문제가 있다. 두툼한 보고서를 주는 바람에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설득하려면 일단 보고서를 얇게 쓰라는 것이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5. 설득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그건 너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면서 너무 의무를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의무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것이 설득에 매우 효과적이다. 텍사스 주는 고속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골치였는데,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시민의 의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캠페인에 막대한 돈을 들였다. 하지만 쓰레기 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진정한 텍사스인이라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1년 후 쓰레기 투기율은 29퍼센트나 감소했고, 5년 후에는 도로변의 쓰레기가 72퍼센트 감소했다. 다른 주와 비교해도 도로변의 쓰레기 양은 절반에 불과했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의무를 강조하면 설득되기보다는 반발심만 생기게 만든다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6. 아무리 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이 코너 <색다른 자기경영>에서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데, 근거를 제시해서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여러분도 누군가 설득하기 어렵다면, 실험을 해본 다음에 ‘이것 봐라. 실험해보니까 진짜 그렇게 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으면 아주 좋다. 회사에 계신 분들은 ‘우리 회사가 잘 되려면 이런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경영자들을 설득하려고 할 텐데, 아무리 해도 설득이 안 되면 우선 조그만 부분이라도 실험해보자고 설득하면 된다. 


제가 컨설팅한 어떤 회사에서 평가제도가 문제가 많아서 그걸 없애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렇게 하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겠느냐며 경영자가 반대를 했다. 그때 회사 내에 독립적으로 일하는 작은 부서에게만 그렇게 조치를 취해보자라고 아이디어가 나왔다. 실험적으로 해보니까, 평가가 없어진 부서 직원들이 훨씬 더 열심히 일하고 성과도 잘 나왔다. 이 모습을 보고 경영자는 문제 많은 평가제도를 없애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설득하기 어렵다면, 작은 부분이라도 실험해보자, 그렇게 제안해보기 바란다.



7. 혹시 설득의 기술을 생각해 내고 적용하기 어려운, 급박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만약 급히 보고서를 복사하여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데, 사무실에 한 대 밖에 없는 복사기에 복사를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주 초조하고 다급해질 것이다. 앞의 사람에게 "제가 복사를 먼저 할 수 있을까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싶지만, 그 사람이 거절하거나 기분 나빠 할 것을 염려해서 선뜻 말을 꺼내기 어렵다.


엘렌 랭어라는 학자는 이럴 때 '왜냐하면'이란 말을 뒤에 붙이면, 앞의 사람이 "먼저 복사하세요."라고 말할 확률이 극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랭어는 학생들을 시켜서 복사기 앞에 줄을 선 사람에게 "제가 먼저 복사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도록 했다고 한다. 약 60퍼센트의 사람들이 양보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제가 먼저 복사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제가 좀 바쁩니다.”라고 말하게 했다. 얼마나 양보했을까? 사실 별로 이유가 특별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93퍼센트의 사람들이 양보했다고 한다. 급하게 설득할 때에도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붙여서 이유를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끝으로, 남을 설득할 때 쓸 수 있는 간단한 팁이 있다면 알려 달라.


아까 보고서를 얇게 쓰라고 언급했는데, 보고서 내용을 설득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보고서에 간단한 수학공식을 하나 집어 넣으면 신뢰도가 높아지고 설득도 잘 된다고 한다. 보고서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도 수학 공식을 집어넣으면, 우수한 보고서라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킴모 에릭손이라는 학자가 실험으로 밝혔다. 보고서를 읽는 상대방이 수학에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설득의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도 알아냈다. 


아마 수학을 잘 모르는 사람은 수학 공식이 들어가면, ‘뭔가 있겠거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오늘 결재를 맡거나 발표해야 할 보고서가 있다면, 수학 공식을 집어넣을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밑져야 본전이다. 



(끝)



Comments


2013년 6월 7일부터 2013년 6월 20일까지 페이스북 등 SNS에 남겼던 짧은 생각들을 모아 봤습니다. 이런 짧은 생각들이 차차 쌓여 책을 쓸 수 있는 기반이 되죠.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통해 붙잡아 보렵니다. ^^ 엉뚱한 생각이거나 말이 안 되는 생각일지라도...


[마음 약한 프로젝트 매니저에 대하여]


마음 약한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다가 자괴감을 느끼고 팀원들에게도 욕을 먹는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팀원의 입장과 상황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면, 거절하기 쉬워진다.


일을 몰아 붙이는 프로젝트 매너지보다 마음 약한 프로젝트 매니저와 같이 일할 때 멤버들이 더 괴롭고 힘든 것인지 모른다.


좋은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젝트 범위 내의 것을 충실하게 완료한 후에 여력이 있을 때 범위 외의 것을 (부가적으로) 해주려 한다. 마음 약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로젝트 범위 외의 것을 많이 해주려고 하다가 프로젝트의 핵심을 놓쳐서 클라이언트로부터 클레임을 당한다. 멤버들로부터도 신뢰를 잃는다.


마음 약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출근 일찍하기나 야근하는 모습처럼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들려고 한다. 좋은 프로젝트 매니저는 어떻게 해야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끝낼지 고민하지만, 마음 약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어떻게 해야 클라이언트의 심사를 건드리지 않을까에 골몰한다.


"기한이 빠듯한 프로젝트를 제때 끝내려면 팀원들끼리 언제든지 서로 돕도록 권장해야 할까? 대답은 '아니오'다. 팀원들이 집중해서 혼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한후 나머지 1~2시간을 돕는 시간으로 설정해야 한다"...from <기브앤테이크>





[설득에 대하여]


어떤 일의 고귀한 목적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을 동참을 설득하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별로 없다. "다른 사람들도 동참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가장 많이 설득 당한다.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지만.


"단호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단순하게 말하는 건 상대방 설득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머뭇거리거나 힘을 뺀 말이 설득에 훨씬 효과적이다"....from <기브앤테이크>


전문가가 전문가처럼 굴면 사람들이 그를 싫어한다. 전문가가 실수도 좀 하고 그 실수를 금세 인정하면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 빈틈은 전문가를 전문가로 빛나게 한다.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려고 서약서를 쓰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약서를 쓰면 바람직한 행동을 오히려 덜 나타낸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서약서를 썼다는 것으로 '나는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성과 달성을 위해 '성과 서약서'를 쓰게 하는 회사가 제법 있다. 효과가 있을까?



[직원 관리에 대하여]


직원들이 업무를 하다 탈진하는 이유는 업무시간이 길거나 업무량이 극도로 많아서라기보다, 그 업무를 '왜 하는지' 모르거나, 상사가 설정한 업무 목적에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의 잠재력은 그가 이미 만들어 놓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주변인들에 의해(특히 상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팀장이 어떤 직원의 잠재력을 키워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을 해야 할까, 코칭을 잘 해줘야 할까? 그 직원이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분위기가 좋은 부서일수록 실수가 잦다. 이것은 그런 부서가 실제로 실수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실수가 더 많이 보고된다는 뜻이다. 분위기가 나쁜 부서는 실수를 감춘다.


"동료들에게 정보를 감추는(공유하지 않는) 직원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  동료들이 그에게 정보를 공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from <기브앤테이크>



[컨설턴트에 대하여]


사람들이 컨설턴트를 바라볼 때 어떤 이미지를 가지느냐에 대해 나름대로 '풍자'해 봤습니다. 그냥 웃고 넘어가 주시기를... ^^






[심리에 대하여]


동업'이 곧잘 깨지는 이유는 '내가 상대방에게 기여한 바'를 '상대방이 나에게 기여한 바'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심리에서 기여한다. 실제로 서로 얼마를 기여했는지 상관없이.


창의적인 사람일수록 남에게 안하무인적이고 비판에 공격적으로 나서며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업적을 얕잡아 보는 경향도 있다. 여러 번 확인된 연구 결과.


어떤 CEO가 이기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 연차보고서(annual report)에 그 사람 사진이 얼마나 크게 나오는지 보면 된다는, 연구 결과. 크게 나올수록 이기적이고 야심이 크다는.


어떤 사람이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해서 그가 이타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기주의자들은 의외로 친절하고 상냥하다.



[혁신에 대하여]


창의적인 혁신의 거의 대부분은 공동작업의 결과다. 그러나 우리는 한 명의 영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그를 추앙한다. 애플의 영광을 스티브 잡스만이 독식할 수는 없다.


미국의 거대IT기업은 수억 달러(때론 수십억 달러)를 주고 벤처기업을 인수한다. 한국의 거대IT기업은 몇 명에게 벤처기업 제품을 베끼라고 한다.


점진적 개선은 혁신의 가장 큰 적이다.


아직은 미국의 역량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 (1) 개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 (2) 벤처투자액 연간 450억달러로 세계최고 (3) 기초 및 응용 연구분야의 질적 수준 세계 최고 (4) 학술적 연구 결과의 비즈니스 모델화 활발


혁신은 본질적으로 하향식 정책으로 이뤄질 수 없다. 미국 기업들의 혁신은 정부가 주도한 게 아니다.



Comments

  1. BlogIcon fway 2013.06.21 11:27

    마음 약한 매니저는 결국 자신감없는 매니저군요.
    그런 사람과 일한 적이 있는데, 자신감 결여로 눈치보고 비위맞추기로 일관하는 사람과는 일하기 참 어렵더군요.
    그저 일의 핵심에 충실하는 게 나을텐데하는 생각도 들고요.
    일의 핵심에 충실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걸까요?

    perm. |  mod/del. |  reply.
  2. Favicon of http://blog.daum.net/lee2062x BlogIcon 몽돌 2013.06.21 19:43

    직장인들이 곱씹어 볼 말씀들이군요.
    좋은 글, 흥미롭게 봤습니다~ㅎ

    perm. |  mod/del. |  reply.


'문간에 발 들여 놓기(Foot-in-the-door)'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작은 요청을 승낙하도록 하면 더 큰 요청도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서 여러 가지 설득 기법 중 하나입니다.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은 1966년에 조나단 프리드만(Jonathan L. Freedman)이 실시한 고전적인 실험에서 이미 입증된 것입니다. 


프리드만은 주부들에게 소비와 관련한 8개의 설문 문항에 답하도록 한 다음, 5~6명의 실사팀이 2시간 동안 집에 머물면서 청소와 요리에 어떤 물건들을 사용하는지 조사해도 되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43퍼센트의 주부들이 흔쾌히 승낙했죠. 반면, 설문에 답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안 조사를 요구하니 겨우 22퍼센트의 주부들만 프리드만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프리드만의 실험 이후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임을 실험으로 여러 차례 규명했죠.


출처: http://www.iwillteachyoutoberich.com/blog/bj-fogg-interview-persuasion-psychology/



그런데 프랑스 브르타뉴 대학의 니콜라스 게겡(Nicholas Guéguen)은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사용할 때 "하지만 당신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함께 사용하면 설득 효과가 더 배가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 효과를 떨어뜨릴 것 같지만 그 반대였던 것이죠.


게겡은 프랑스 반(Vannes)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일대일로 찾아가 쓰레기 분리 배출에 관한 연구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며 "앞으로 한 달 동안 유리, 플라스틱, 종이 등을 분리 배출할 때마다 무게와 개수를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대조군에 해당되는 주민들은 이 말만을 들었지만, 어떤 주민들은 이 요청과 함께 "하지만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선생님의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대조군 주민들은 40퍼센트만 수락했지만, '선택은 당신의 자유'란 말을 들은 주민들은 56퍼센트가 수용했습니다.


게겡이 다른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분리 배출 습관에 관한 4개의 문항에 답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사용한 후에 먼저와 같이 한 달 동안 쓰레기 배출량을 측정해 달라고 요청하니 이때는 60퍼센트의 주민이 동참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을 쓸 때와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찬성률은 아니었죠. 그러나 두 기법을 동시에 사용하니, 다시 말해 먼저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쓴 다음에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니 무려 78퍼센트의 주민들이 동참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 동안 쓰레기 배출량을 기록하겠다고 말한 주민들이 실제로 그 약속을 준수한 비율은 각 조건별로 어땠을까요? 대조군에 속한 주민들은 고작 8.2퍼센트만 약속을 준수했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만 적용된 주민들은 26.5퍼센트,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만 적용된 주민들은 24.5퍼센트의 약속 준수율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기법 모두 적용 받은 주민들은 무려 44.7퍼센트나 약속을 준수했죠.


이 실험은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기면 의외로 까다롭거나 힘든 요청을 수락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라고 말해도 웬만해서는 상대방이 "그럼, 난 안 할래."라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선택권을 행사하여 결정하도록 해야 비교적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약속을 준수하게 한다는 점도 이 실험의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약속 준수는 결국 자발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입장이라면, '시키면 하라'는 압박감을 주기보다는 상대방이 '내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선택은 네가 할 수 있어'라고 제안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하기 싫다고 말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겠지만, 문간에 발을 확실히 들여 놓은 다음에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을 사용한다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물론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밉상'이 있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알겠습니다'라고 해도 약속(혹은 지시)을 끝내 준수하지 않겠죠. 그런 밉상 친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원들(혹은 동료들)에게 이 두 가지 설득 기법은 'Yes'와 '약속 준수(compliance)'을 보장할 겁니다.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일, 작은 업무지시부터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Freedman, J. L., & Fraser, S. C. (1966). Compliance without pressure: The foot-in-the-door technique. Journal ol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2), 195-202.


Guéguen, N., Meineri, S., Martin, A., & Grandjean, I. (2010). The combined effect of the foot-in-the-door technique and the “but you are free” technique: An evaluation on the selective sorting of household wastes. Ecopsychology, 2(4), 231-237.


Comments

  1. Favicon of http://place1.tistory.com/ BlogIcon users 2013.03.28 19:31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perm. |  mod/del. |  reply.


여러분이 작성한 보고서에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수학 공식 하나를 집어 넣으면 그 보고서를 읽는 독자에게 어떤 인상을 줄 수 있을까요? 꼭 수학 공식이 아니어도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여 사칙연산이 포함된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한다면 보고서의 신뢰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예를 들어, 제품의 매력은 제품 자체의 기능성과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감성으로 결정된다고 말로 표현하면 될 것을 '매력 = 기능성 X 감성적 어필'이라는 방정식으로 나타낸다면 독자가 어떻게 느낄 것 같습니까?





순수수학과 사회과학의 학제간 연구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스웨덴 멜라르라덴 대학의 킴모 에릭손(Kimmo Eriksson)은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수학 공식이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그는 수학 공식이 들어갈 법 하지 않은 인문학이나 교육학 등의 논문에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수학 공식이 집어 넣을 경우에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에릭손은 다양한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200명의 참가자를 모집하여 권위 있는 학술지에서 뽑은 2개의 논문 초록을 읽게 한 다음에 논문의 질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의 논문 초록은 수렵 채집 부족 내에서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고, 두 번째 논문 초록은 교도소 수감이 백인 구직자와 흑인 구직자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두 논문 모두 수학과는 거리가 멀었죠. 참가자 중 절반은 마지막 부분에 'TPP=T0fT0df2fTPdf' 라는 수학 공식이 포함된 초록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수학 공식이 없는 (원래의) 초록을 읽었습니다. 사실 이 공식은 논문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은 아무 의미 없는 수학공식이 포함된 논문을 더 우수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수학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인문학 분야의 전공자들의 편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수학 공식이 있는 논문을 수학 공식이 없는 논문보다 70퍼센트 이상 높게 평가했죠(수학 관련 전공자들고 45퍼센트 이상 높게 평가함). 이는 수학에 관한 스킬이 부족할수록 의미 없는 수학 공식이 추가된 논문의 질을 올바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소위 '수학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게 수학 공식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일종의 경외감을 선사하는 모양입니다.


에릭손의 실험은 여러분의 보고서가 독자(보통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트릭 한 가지를 알려 줍니다. 물론 보고서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수식을 가미하면 안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보고서의 내용을 수학 공식으로 요약하는 것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일러주죠. 오늘 결재를 맡거나 발표해야 할 여러분의 보고서를 한번 들여다 보고 수학 공식이 가미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 아닐까요? ^^



(*참고논문)

Kimmo Eriksson(2012), The nonsense math effect,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Vol. 7(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