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때나 강사로부터 교육을 받을 때 몇몇 강사들은 강연을 진행하다가 본인이 강조하고 싶거나 일깨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청중에게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야 청중(교육생)들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쉽고 좀더 빠르게 이해할 거라고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여기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도 중요한 말이나 알아두길 원하는 말이 있으면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여 다가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이죠.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행동이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교의 크리스토퍼 시(Christopher K. Hsee)와 동료 연구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어떤 자극이 멀어지는 경우보다 다가오는 경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위 ‘접근 회피 효과(Approching Aversion Effect)’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강사나 프레젠터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청중에게 다가갈 경우, 오히려 청중은 그런 자극(자신에게 다가오는 강사나 프레젠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것임을 추측케 하는 결과죠.
출처: 이혜진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0445627797
시와 동료들이 어떤 실험으로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살펴볼까요? 먼저 시는 사전에 ‘중립적’이라고 평가된 영어 알파벳 문자들을 모니터에 띠우고 그 글자가 모니터에서 커지는 동영상과 작아지는 동영상, 그리고 크기가 변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동영상을 참가자들에게 각각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글씨가 커지는(화면의 10%를 차지하다가 90%까지 차지하는) 글자를 볼 경우에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적으로 높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글씨인데도 말입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눈과 입’으로만 구성된 이모티콘을 가지고 작아지거나 커지거나 크기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이때 이모티콘의 입 모양을 세 가지로 다양화했는데요, 입꼬리가 올라간 ‘웃는 이모티콘’, 반대로 입꼬리가 내려간 ‘우울한 이모티콘’, 입꼬리가 수평을 이루는 ‘중립적인 이모티콘’이었습니다. 역시나 이모티콘의 크기를 화면의 10% 크기에서 화면의 80%까지 키운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이 이모티콘의 표정과 상관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더 높게 느꼈습니다.
자극의 원천이 알파벳이나 이모티콘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시와 동료들은 어떤 남자가 등장하여 뭔가를 말하는 동영상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는데, 그 남자가 카메라로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 카메라에서 멀어지는 모습, 카메라 가까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 카메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지하는 모습으로 다양화했습니다. 또한 그 남자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 즐거운 표정, 중립적인 표정을 연기했죠. 참가자들은 이 남자가 어떤 감정 상태이든 간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듯한(카메라로 가까이 오는) 동영상을 볼 경우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강사가 웃으면서 청중에게 다가가더라도 청중에게서 뒤로 물러날 때보다 부정적이라고 느꼈던 겁니다. 나중에 강의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중요한 말을 전달하고자 할 때는 청중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뒤로 물러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은 ‘공간적으로 움직이는 자극’에 따라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를 살펴본 것이었는데, 시와 동료들은 ‘시간상으로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자극’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동일하게 ‘접근 회피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시는 먼 도시에 사는 사촌이 참가자들이 사는 집에 방문하여 1주일 간 머무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사촌의 방문을 환영하는 상황, 꺼려지는 상황, 아무래도 괜찮은 상황을 그려보도록 했죠.
시는 사촌이 언제 방문할지는 비행기 예약 가능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참가자들에게 알렸는데(비행기표가 충분한 상황이 아님을 전제로), 약간의 조작을 통해 비행기 확보에 따라 사촌이 ‘12일 이내’에 방문할 수 있는 경우에서 차츰 ‘3일 이내’로 바뀌는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습니다(그 반대의 경우도 참가자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이때도 사촌의 방문을 얼마나 환영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사촌의 방문가능일이 점점 다가오는 상황(방문가능일이 멀어지는 상황 혹은 처음부터 멀거나 가까운 상황보다)을 가장 부정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극이 공간상으로 다가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상으로 가까워질 때 불편한 감정을 유발시켰던 겁니다. 시는 추가적으로 사촌의 방문가능일을 ‘방문할 가능성’으로 바꿔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역시나 참가자들은 방문할 가능성이 ‘작았다가 커지는 상황’을 가장 불편해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자극이든 부정적인 자극이든 가까이 다가올 때보다는 멀리 물러날 때(그리고 그냥 가만히 머물 때)가 상대방에게 ‘더 좋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향후에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강의를 할 때는 본인의 동선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도 유념해야 할 사항입니다(저도 유념해야겠습니다). 강조하고 싶을 때는 차라리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서서 말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실험은 자극의 접근이 설득의 효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기에 이런 조언이 조심스럽긴 합니다(청중이 설령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더라도 설득 당하기는 더 쉬울지 모르니까요). 시의 연구는 긍정적 자극이든 부정적 자극이든 그것이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확률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들수록 상대방이 방어적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으로 일단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청중 앞에 설 일이 있다면, 이 점을 기억해 두고 실천하면 어떨까요?
(*참고논문)
Hsee, C. K., Tu, Y., Lu, Z. Y., & Ruan, B. (2014). Approach aversion: Negative hedonic reactions toward approaching stimuli.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6(5),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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