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김호중이라는 트로트 가수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으로 연일 시끄러웠습니다. 사실 연예인의 음주운전이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발생하는 일이라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사건이 이토록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까닭은 제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겁니다. 순순히 음주운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될 일이었는데(그렇다고 용서하자는 말은 아님) "술잔에 입을 댔지만 술은 먹지 않았다"란 말처럼 온통 거짓으로 응대하는 그에게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분노했을 테죠.
저는 이 사건의 발생과 그 후에 돌아가는 양상을 듣고 보면서 3가지를 느꼈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합니다.
첫째, '뱅뱅 이론'을 실감했다는 것입니다. 뱅뱅 이론이란 '자신이 아는 세계보다 더 큰 세계가 존재함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알다시피 '뱅뱅'은 옛날에 한창 유행했던 청바지 브랜드인데요, 당시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광고 모델을 할 만큼 고급 브랜드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뱅뱅 청바지에 관심을 두지 않죠. 하지만 뱅뱅의 판매량이 상당하다는 점을 아시나요?
뱅뱅 이론이란 말이 나온 게 10년 전이니 아직도 뱅뱅이 매출 1위의 브랜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세상 바깥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을 뱅뱅이란 브랜드가 대표한다는 점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김호중이 누구지? 누군데 이 난리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포털에 뜬 뉴스를 보며 처음으로 떠올렸던 의문이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생소했고 그의 노래를 들은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알고보니 그는 트로트 음악계의 아이돌로 통하는 인물이고 엄청난 팬과 티켓 파워를 보유한 가수더군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뱅뱅 청바지를 입듯이 엄청난 규모의 팬들이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조금은 충격적이더군요. 뱅뱅 이론에 제대로 한 대 맞은 셈이죠. Bang!
둘째, 거짓말을 숨기려면 더 많은 거짓말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굳이 그의 거짓말 혹은 잡아떼기 퍼레이드를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는 상황을 모면하려고 앞에서 한 거짓말을 또다른 거짓말로 덮으려는 시도를 했고 이것이 공분을 사고 말았죠.
연쇄적인 거짓말은 언젠가 자기모순의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지만, 그때는 이미 용서를 빌 타이밍이 한참이나 지난 후입니다. 그가 매니저가 운전했다고 둘러댄 것은 놀란 마음이었으니 그럴 수 있었다고 쳐도 그게 발각된 후에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정도의 사태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숙의 시간을 거쳐 재기할 가능성이 지금보다는 훨씬 높았을 겁니다. 거짓말을 새로운 거짓말로 덮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을 때 잠시 멈추고 그후에 벌어질 일들을 예상했었으면 어땠을까요? 자기성찰의 힘은 이럴 때 발휘되는 게 아닐까요?
셋째, 과연 김호중이 언론을 뒤덮을 만한 사건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비록 저는 그의 존재를 사전에 알지 못했으나 인기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명인의 음주운전과 그 후의 기만발언은 수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죠.
하지만 그와 관련된 뉴스가 '속보' 혹은 '단독'이란 타이틀로 온갖 매체에서 떠들어댈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 우리에게 산적한 여러가지 문제들 말고 거짓말로 점철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렇게 상세히 알아야 할까요? 지면 낭비, 전파 낭비란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초적이고 영양가 없는 뉴스로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을 덮으려는 의도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다양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는 행위는 언젠가 자기파괴적인 모순에 빠진다는 것, 언론이 말그대로 저질이 됐다는 것, 이 3가지가 이번 김호중 사건으로 새삼스레 느낀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습니다.
김호중 노래나 한번 들어볼까, 하다가 5초만에 접었습니다. '뭐, 굳이 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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