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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던 엄마는 착륙할 시간이 되자 딸의 옆자리, 그러니까 창가에 앉아 있던 어느 남자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저희 딸과 자리를 바꿔 주실 수 있나요?"

남자가 고개를 자기쪽으로 돌리자 엄마는 말을 잇습니다.

"딸이 비행기가 착륙할 때 창밖을 내다보는 걸 좋아해서요. 그게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네요."

그러자 과자를 먹고 있던 남자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제가 자리를 바꿔 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살다보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따님이 이번 기회에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엄마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남자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계속 과자를 씹어댔습니다. 자리를 바꿔 줄 의향이 전혀 없다는 듯이. 그리고 자신도 육지를 내려다 보는 지금 이 순간을 정말 좋아한다는 듯이.

 

해당 인스타그램 쇼츠에서 캡처



인스타그램의 쇼츠로 나온 짧은 에피소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엄마의 입장이라면 남자의 대꾸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여러분이 남자의 입장에 서 있다면 순순히 여자아이와 자리를 바꿔 줄 용의가 있나요? 

질문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네요. 자리를 바꿔달라는 엄마의 요구는 '충분히 그럴 만' 한가요? 반대로, 자리 바꿈을 거절하면서 남자가 말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 한가요?

남자의 아량이 부족하다, 쫌생이 같다, 자리 바꾸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지 왜 이상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가 등의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을 테죠. 반대로,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들어주는 게 맞냐, 창가에 앉는 걸 남자도 좋아할 수 있음을 왜 고려하지 않냐, 남자가 돈을 치르고 창가 자리를 구매했으니 자리바꿈을 거절한 것은 정당하다 등의 의견을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누가 옳을까요? 아니, 무엇이 옳을까요? 언뜻 쉬워 보이지만 꽤 어려운 질문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엄마의 입장일 때와 남자의 입장일 때의 의견이 완전히 반대일 수 있으니까요.

어느 휴일날, 북한산 바로 아래에 새로 생긴 까페에 아침 일찍 간 적이 있습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대형 프랜차이즈 까페라서 그런지 그 시간에도 손님들로 북적였죠.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우리 앞 테이블에 어느 4인 가족이 앉아 있더군요. 부모는 40대 중반 정도로, 그들의 아들과 딸은 중고등학생쯤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들 중 아빠가 보이는 행동이 흥미로워서 곁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음료를 먹다가 조금 흘렸는지 휴지를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빠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 빠르게 흔들더니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앉아 있어. 아빠가 갖다 줄게."

한두 번이면 '그럴 수 있겠지' 싶었지만,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이 말을 적어도 스무 번 이상은 들었던 것 같습니다. 더 좋은 자리가 생겼는지 음료를 들고 이동하는 장면에서 아빠는 "그냥 가서 앉아. 이건 아빠가 주스 들고 갈게."라고 말했고,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의자에 걸어뒀던 자기 점퍼를 집어 들려는 시늉을 할 때도 아빠는 "아빠가 갖고 갈게. 먼저 가."라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느라'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차를 즐길 시간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니, 아이들이 해야 하는 것이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 자기 의무 내지는 자녀 사랑이라고 여기는 듯 보였습니다. 한시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꼴'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뭐든 대신 해주는 아빠가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휴대폰에 코를 박고 게임에 열중하더군요.

여러분이 저처럼 그 아빠의 언행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바라봤다면 '원하는 것' 혹은 '원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을 대신해주는 아빠의 사랑에 감복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워주기는커녕 잘라내 버리는 일종의 '억압'이라고 느낄까요?

저는 그 아빠를 보면서 비행기 창가에 앉은 남자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한 엄마를 연상했습니다. 까페에서 만난 가족들이 비행기를 탄 상황이라면, 그 아빠는 "우리 아이들이 창가에 앉고 싶어하는데 자리를 바꿔주시겠습니까?"라고 그 남자에게 요구했을까요? 그리고 그 아빠는 남자의 거절 이유를 듣고 속으로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오늘은 질문이 많군요. 각자의 입장이 있고 케이스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각자의 육아 철학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범용적' 혹은 '모범적'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안물안궁'이겠으나 그런 질문만 골라서 던진 저는 이 두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의 입장에 공감할까요? 끝까지 질문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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