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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갑자기 이병기님의 '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까까머리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합창단 단원이었다. 도내 합창단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방과 후와 휴일에 모여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우리가 정한 곡목이 바로 이 노래, '별'이었다.
남자로만 구성된 합창단은 우리 팀이 유일했다. 무대에 올랐을 때 여학생들이 "남자들이 무슨 노래를...야, 쟤네들은 상대가 안 되겠네" 하면서 약간 비아냥거렸던 것 같다. 그게 좀 고까와서 더 열심히 불렀는지도 모른다. 실력 때문인지, 오기(?) 때문인지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우리 팀이 1등을 했다. 우리를 비웃던 여학생들에게 좀 뻐기고 싶었다.
그 때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음악선생님과 피아노 반주를 맡아 주셨던 도덕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그때 그 분들이 20대 중반 정도였으니까, 지금쯤은 아마 연세가 50세가 넘으셨을 게다. 음악선생님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던 체육선생님과 결혼을 했더랬다. 꽤나 애석해 했던 친구 녀석들이 좀 있었다.
그 시절의 학동들이 다 그랬겠지만, 나 역시 피아노 잘 치시고 손가락이 예쁜 도덕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박은혜 선생님, 그 분은 읍내에 자취를 하고 계셨는데, 친구들과 같이 선생님을 위해 연탄을 나르던 기억이 난다.
친구 녀석 중에 조심성 모르는 한 놈이 노크도 없이 "선생님, 저희 왔어요" 하며 방문을 열었을 때, 선생님은 옷을 갈아 입으려고 치맛단을 막 내리려는 참이었다. 일순간 선생님과 우리는 얼어 붙었다. 어색함을 깨려는 듯 선생님은 "너희들 왔구나?"라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우리는 그 조심성 없는 놈에게 알밤을 먹이고 있었다.
도와 드린다고 했지만, 그 당시 귀했던 연탄을 여러 장 깨먹어 버리는 센스(?)를 발휘한 우리에게 선생님은 짜장면을 사주시며 소녀처럼 고마워 하셨다. 안경 뒤로 반짝거리는 눈이 별처럼 예쁜 분이셨다. 그 모습이 아주 그립다.
요즘 좀 바쁘다. 바쁘니까 시간이 빨리 간다. 동시에 옛날로부터 빨리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자서전으로 남기고 싶다. 내 삶이 아주 지루하지 않다면 말이다.
* 작년에 올린 글을 재발행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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