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꽃을 보면 사진을 찍고 싶을까?   

2009. 4. 1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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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이틀 무리했더니 어깨가 찌를 듯 아팠다. 몸을 피곤하게 다루기만 하면 당장에 아파오는 걸 보니, 무리하지 말라는 내 몸의 경고처럼 여겨진다. 몸도 달랠 겸 공원을 산책했다. 좀 쌀쌀했지만 피곤한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은 오히려 시원했다. 이제 곧 더워질테니 소슬한 바람이 좋았다.

개나리와 목련이 지고 벚꽃이 지니 이제 철쭉꽃이 핑크색 꽃잎을 여기저기 터뜨린다. 공원에서 자라는 철쭉은 '겹철쭉'이라고 하는 종인데, 수많은 꽃들이 수북하고 탐스럽게 피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눈을 핑크빛으로 흠뻑 물들인다.


공원 모퉁이에서 만난 어떤 아주머니의 포즈가 내 눈에 들어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분은 울타리를 넘어 철쭉꽃 아래에 자리를 잡더니 70년대 영화나 달력에서 봤음직한 자세를 취했다. 두 팔은 땅을 짚고 오른 다리는 접고 왼 다리는 뒤로 쭉 뺀 자세로 앉은 그 아주머니는 젊었을 적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였을 얼굴 표정이었다.

그 과감하고 농염한(?)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앉아서 찍다가 일어서서는 꽃송이 하나를 손에 쥐고는 향기를 맡는 포즈를 취했다. 향기를 맡으랴, 시선을 카메라로 향하랴 약간 애매해진 모양으로 사진을 찍는 그녀는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꽃들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면 사람들은 예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꽃향기에 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또한 꽃들의 일원인 듯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나직한 시선을 던진다. '어때? 꽃하고 같이 있으니까 나도 예쁘지?'라며 그 시선은 말한다. '꽃 옆에 있으면 내 얼굴이 못생겨 보여서 싫어'라며 꽃을 멀리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나 미인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한데...

잘난 얼굴도 못난 얼굴도 꽃 앞에서는 모두 꽃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 모두 잠깐이지만 스스로를 꽃으로 상상하는 착각에 빠진다. 이 즐겁고도 착한 착각은 외양의 미추나 빈부, 혹은 생의 애락을 차별하지 않는다. 꽃 앞에서는 누구나 꽃이다. 꽃이 인간에게 주는 효용이고 지금껏 인간들의 곁에서 수만년을 함께 살 수 있던 이유리라.

개나리와 목련이 지고나면 철쭉을 피우고 철쭉이 지고나면 붉은 장미를 피운다, 그러니 늘 꽃다울 수 있는 이 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고맙다. 이 봄을 자칫 놓쳐도 다음의 봄을 기다릴 수 있도록 계절이 순환하니, 또한 고맙다.

생각해 보니, 생을 뜰 때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도 꽃이 아닌가? 슬플 것 같지만 그래도 외롭지는 않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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