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에 일본 해군은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던 중에(‘청일전쟁’) 중국 산둥반도 웨이하이 해전에서 청나라 북양함대를 크게 궤멸시키면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승리의 규모가 엄청났는지 일본은 당시 중국의 실권자인 이홍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서 청나라와 조약을 맺었어요. ‘시모노세키 조약’은 전쟁 패배국이었기에 청나라로서는 아주 굴욕적인 조약이었죠. 청나라 1년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전쟁 배상금을 내야 했고 중국 영토인 랴오둥 반도, 타이완, 펑후섬을 일본에게 내줘야 했으니까요.
사실 대승리의 원인은 청의 북양함대가 일본 해군에 비해 턱없이 약했다는 데 있었어요. 청나라는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의 후유증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만약 해군력이 막강한 영국와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승리에 도취된 일본 해군은 자기네 전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청나라를 압도할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일본은 역시 강해!”라는 자신감이 하늘을 뚫었죠.
10년 후에 벌어진 러일전쟁에서도 이런 일본의 신념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일본이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발트 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둠으로써 러일전쟁의 승리국이 되었으니까요. 청나라에 이어 유럽의 강국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를 꺾었으니 자기네 해군력의 수준이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이제는 어느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더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고양됐겠죠.
그러나 러시아를 이긴 이유 역시 행운이었습니다. 바로 러시아 전함들은 발트해(지도에서 찾아보세요.)에서 멀고 먼 바닷길을 헤치고 쓰시마 유역까지 도달했어야 했습니다. 군인들이 얼마나 지쳐겠습니까? 전쟁에서 피로로 인해 먼저 무너져 있던 군대를 상대로 싸우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있을까요? 대승의 원인은 막강한 해군력이 아니었고 지친 군대를 맞이해서 싸운 행운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본 해군은 자기네가 최강이라는 자만심을 축적해 갔는데요, 자만심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유용하게 써먹은 ‘거함 및 거포’ 위주의 전략을 계속 고수했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성공전략이 미래에도 성공하리라 굳게 믿은 거죠. 미래에는 전쟁 환경이 바뀔 것이고 그에 따라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겁니다.
나중에 일본이 미국과 일전을 벌이게 되는 태평양 전쟁 무렵에는 거대한 전함에 거대한 함포를 탑재해서 공격하는 전략보다는 항공기의 중요성이 훨씬 커졌습니다. 잠수함을 잡는 데 항공기가 무엇보다 효과적이었고, 적 함대를 공격하거나 육군의 상륙작전을 지원하는 입체적 전략에도 항공기 운용은 필수적이었죠). ‘거함 거포 주의’는 이미 한물간 전략 전술이었습니다. 일본 해군은 가면 갈수록 미국에 밀렸고 결국 패망했죠.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원인은 ‘완전한 행운’에 가깝고, 좋게 봐줘서 ‘경쟁자 약화’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자기네 해군력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은 망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일본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과거의 성공 전략을 계속 고수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경향인 거 같아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대부분 그럴 겁니다.
미래의 성공을 기대한다면 일부러 화려했던 과거와 결별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자칫 소 뒷걸음 치다가 쥐잡은 행운을 실력이라고 착각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과거 성공의 진짜 원인이 행운이었다면 그때 썼던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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