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일못하는 직원이 동일한 연봉을 받는다면?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세요. 이번에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번 회사가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특별 보너스를 지급했습니다. 일괄로 지급하지 않고 직원 각자의 기여도를 평가해 지급했죠.
하지만 평가라는 게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 아닙니까? 일을 못해서 보너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보너스가 지급된 경우가 있었고, 보너스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어쩐 일인지 보너스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 보너스 받을 자격이 없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했음
(2) 보너스 받을 자격이 있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았음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잘못된 결과'를 발견한 관리자나 경영자라면, 각각의 경우에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대응은 2가지가 있을 거에요. 하나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된 결과를 바로 '시정'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예방'보다는 '시정'이 더 적극적인 조치겠죠.
자, 곰곰이 따져보고 결정하세요.
아마 여러분은 십중팔구 이렇게 결정했을 겁니다.
(1) 보너스 받을 '자격이 없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했음
--> 예방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2) 보너스 받을 '자격이 있는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았음
--> 시정해야 한다. 이 직원에게 바로 보너스를 지급해야 한다.
(1)번의 경우를 시정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줬다가 뺏어야 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어쩔수없이 다음에 동일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예방하는 수밖에 없죠. 반대로 (2)번의 경우를 예방하기로 한다면 어떨까요?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도 못받은 직원은 아마도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거나 일을 게을리할 가능성이 크겠죠. 그러니 이들에게는 없는 돈이라도 끌어와서 보너스를 당장 지급해야 할 겁니다.
지금껏 설명한 상황은 그저 '사고 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된 연구 결과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했습니다. "(1) 나보다 일 못하는 직원이 나와 같은 연봉을 받을 때와 (2)나와 능력이 동일한 직원이 나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때, 둘 중 어떨 때가 더 기분이 나쁩니까?" 둘다 기분이 나쁜 일이겠지만, (1)번이 더 기분나쁜 경우라는 대답이 많더군요. (1)번일 때 직원들의 불만이 더 클 거라 짐작할 수 있죠.
그래서일까요? 이렇게 '직원 개개인의 입장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의 강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몇몇 조직은 (1)번엔 즉각 시정을, (2)번은 예방하고자 하더군요. 조치를 거꾸로 취하는 바람에 일 못하는 직원과 일 잘하는 직원 모두에게 불만을 사고 맙니다. 이런 조직이 가끔 눈에 띠긴 하지만 다수는 아닙니다. 대다수 조직은 어떤 경우에든 예방에만 초점을 맞추더군요.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시정을 해주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옹색한 변명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보상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수정하려면 직원 개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조망하는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직원 불만에 휘둘려서는 안 되죠. 비록 (1)번일 때 직원 불만이 상당히 크더라도 그 일을 즉각 시정하기보다는 예방을 해야 합니다(평가보상을 공정하게). (2)번일 때의 직원 불만이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예방하기보다는 바로 시정 조치해야 합니다('내 연봉'을 인상). 두 경우 모두 즉각 시정하거나, 모두 예방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예전에 컨설팅펌을 다닐 때 저보다 일 못하는 후임 컨설턴트가 저와 비슷한 연봉을 받는 걸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열받을 일이었죠. 저는 상사에게 "내가 기여하는 만큼으로 연봉을 맞춰달라"며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내딴엔 '예방'을 요청했지만 상사는 즉각 시정은커녕 예방도 약속하지 않았죠. 어찌했겠습니까? 퇴사했을 수밖에요.
*참고논문
Rude, E. D., & Shaddy, F. (2024). People Endorse Harsher Policies in Principle Than in Practice: Asymmetric Beliefs About Which Errors to Prevent Versus Fix. Psychological Science, 35(5), 529-542.
유정식의 경영일기 구독하기 : https://infuture.stibee.com/
'[연재] 시리즈 > 유정식의 경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입니다 (1) | 2024.07.25 |
---|---|
협업을 제안하려면 본인 덩치부터 키우세요 (0) | 2024.07.24 |
모든 것을 3가지로 표현해야 하는 까닭 (0) | 2024.07.19 |
내가 '경영일기'를 꼭 발행하는 이유 (0) | 2024.07.18 |
꼰대의 원치 않는 충고를 막아내는 방법 (0) | 2024.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