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모 컨설팅 회사와 입사 인터뷰를 하던 저는 면접관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받았습니다(하도 오래 전이라 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
“이 회사에 이런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뭐라고 보시나요? 3가지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회사에 지원하고자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3가지 정도 말씀해 주세요.”
“귀하가 보실 때 우리 조직이 앞으로 취해야 할 전략 3가지가 있다면 조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 질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3가지’라는 문구가 동일하게 들어있죠. 면접관은 이 질문 외에도 여러 질문들을 던지며 당시의 저를 괴롭혔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우리가 제시한 솔루션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그런 상황을 탈출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 3가지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앞으로 우리 조직에서 일하게 된다면, 귀하가 실천하고픈 3가지 계획이 있으신가요?” 등 면접관은 강박적이다싶을 정도로 ‘3가지’에 집착했습니다. 질문 형식이 매번 똑같고 작위적이기까지 해서 피식 웃음이 날 정도였죠.
‘3가지’를 강조하던 사람은 그 면접관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교 일반물리 수업에서 모 교수는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고는 한 개씩 접어가며 이론의 3가지 특징을 설명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자동차 회사를 다닐 때 제 직속상사는 자동차 컨셉을 제시할 때면 반드시 3가지 이상을 포함시키라고 강조했었으며(성능, 디자인,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 등), 모 은행의 인수합병 프로젝트에 ‘쪼래비' 컨설턴트로 참여할 때 피인수은행을 대리하던 컨설팅 업체의 보고서에는 큰 주제든 사소한 항목이든 죄다 3개씩 분류돼 있어서 ‘참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왜 3가지로 분류하고 구분해야 할까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요, 저는 다음과 같이 3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도 3가지입니다.)
첫째, 사고의 폭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면접관이 저에게 줄기차게 3가지로 답하라고 압박을 가했던 이유는 제 사고의 반경이 얼마나 큰가를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현상, 원인, 해결책을 제시할 때 2가지까지는 직관적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과 지옥, 남자와 여자 등 ‘이분법적 사고’는 누구에게나 쉽죠. 반면 3가지로 고안하여 애쓰면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에서 탈피할 수 있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외에 제3의 저승 세계는 어디일까요?
둘째, 패턴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점 하나는 차원이 없어서 점 두 개를 연결해야 1차원이 됩니다. 여러분이 페인트공이라고 한다면 그 선에는 페인트를 칠하지 못합니다. 선 바깥에 하나의 점을 더 찍어 삼각형을 만들어야 비로소 색을 칠할 수 있는 ‘면’을 갖습니다. 즉 '패턴'이 드러나죠. 예를 들어 “200, 300”이라고 말하면 증가하는 패턴이라고 느끼긴 어렵지만 “200, 300, 500”이라고 3가지 정보를 준다면 증가 패턴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동시에 기억해 내는 개수의 최적치가 3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조지 밀러(George A. Miller) 교수가 1956년에 ‘매직넘버 7’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최대 9개까지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어디까지나 ‘단기 기억’일 때입니다. 두뇌라는 CPU가 동시에 띄워 놓고 조작할 수 있는 아이템 개수는 3개 정도가 최적치입니다. 중요한 사항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점에서 '3의 법칙'은 유의미합니다.
서론과 본론만으로는 글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짧은글이라 해도 맺음말(결론)이 더해져야 제대로 된 구성이죠. 서론과 본론을 쉼없이 내달리다가 결론을 삭제하거나 흐지부지한다면 그런 글은 봉합을 제대로 하지 않은 수술과 다를바없습니다. '3의 법칙'이 매우 중요하기에 여러분이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이 글의 결론을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어떤 느낌이 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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