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을 하면서 고객사 직원들이 써온 '직무기술서'나 '업무분장표' 등을 볼 기회가 많은데요, 그걸 읽는 동안 제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제법 있습니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생각하다'란 단어가 대표적인데, 이 말 다음으로 읽기를 방해하는 단어가 바로 '노력하다'란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입니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니즈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이 문장은 제품개발 직무를 맡은 연구소의 모 직원이 써온, 본인 직무의 '미션(mission)'이었습니다. 여기에 쓰인 '노력한다'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고객 니즈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려고 밤이나 낮이나 '무진장' 애를 쓰겠다는 걸 강조하려고 사용된 듯한데, 제품개발 업무를 하는 직원이라면 그런 노력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은 '고객 니즈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지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실 '노력한다'라는 말은 좀 비겁한 표현입니다. '노력은 해보겠는데, 안 되면 어쩔 수 없어. 내 책임은 아니야.'란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다가 잘 안 되면 타인이나 외부 환경을 탓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습니다. 설령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구나!'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죠.
또한 본인의 성과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노력한다'란 표현에서 드러납니다. 고객 니즈에 맞는 제품을 개발했냐 그렇지 못했냐로 본인의 성과를 평가 받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노력을 했냐 안 했냐가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렇게 잘못된 성과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난 노력한 것만으로도 응당 대접을 받아야 해. 나처럼 노력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데 왜 내 연봉은 이것밖에 안 돼?'라고 불만을 가지고 말겠죠.
'노력한다'에 이 2가지의 잘못된 의도가 없는 경우는 진짜로 노력을 해야 하는 일에 국한됩니다. 어떤 육상 선수가 50년간 깨지지 않은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보세요.
"저는 앞으로 1년 후에 열릴 경기에서 꼭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매일 노력하겠습니다."
이 문장에 쓰인 '노력하겠다'는 그 자체로 값어치있는 행위입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실패한 일을 본인이 기어코 달성하겠다는 '아름다운' 결심이니까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나 '그 역할에 주어진 일'에 '노력한다'란 말을 쓰지 마세요. 그리고 별다른 노력이 필요치 않은, 아니 누구나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일에도 '노력한다'란 말을 사용하지 마세요. '난 노력했으니까 괜찮다'면서 노력이란 말 뒤에 숨지 마세요.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노력을 위한 노력은 '배우는 자'나 '어린 존재'일 때만 유효합니다.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야 하는 어른의 단어는 아닌 것 같아요.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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