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아픈 반려동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수의사는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며 보호자에게 입원할 것을 권유했다고 해요. 하지만 보호자는 병원에 아이를 두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집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답니다. 통원 치료를 하면 되겠구나 싶었겠죠.
그런데 이렇게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갔던 보호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급히 돌아오더랍니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 상태가 극히 좋지 않아서 (구체적인 증상은 모르겠습니다) 다시 병원에 온 것이죠. 그러면서 수의사를 향해 이런 말을 내뱉더랍니다.
“강력하게 입원하라고 이야기했어야죠!”
처음에 수의사가 입원하라고 말했던 게 ‘입원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줄 알았던 걸까요? 그 말을 들은 수의사는 황당해 하면서 “아이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가 입원시키라고 했잖습니까!”라고 항변했지만, 그 보호자는 “그래도 강하게 주장했어야죠!”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좀 황당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를 떠올렸습니다. ‘자기 선택이나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상태가 바로 어른’이라는.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결정해 놓고 병원으로 돌아와 수의사를 강하게 힐란하다니! 까불다가 지 혼자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 아이가 부모를 향해 “아빠(엄마) 때문이야!”하며 엉엉 우는 경우가 뭐가 다른가 싶더라고요.
물론 정확한 배경을 모르기에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긴 합니다. 수의사가 병원 매출을 늘리려고 안 해도 되는 입원을 권유하는 것 같아서 집에 데리고 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아이가 병원 케이지에 갇혀 있는 게 안쓰러워서 집에서 편안하게 간호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자기 결정이 결과적으로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아이의 ‘보호자’라면서요?
처음에 수의사가 강력하게 입원을 권유했으면 “돈 벌려고 별짓 다한다.”라고 겉으로든 속으로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상황이 잘못 흘러가면 언제든지 ‘너 때문이야’라고 남탓을 하면 되니까, 참 편리하게 사는 삶인 것 같네요.
생물학적으로 어른이 된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내가 공부 안 할 때 나를 때려서라도 공부시키지, 뭐 했냐!”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종종 접하는데, 본인이 어려서 ‘공부 안 하기로 결정’해놓고 이제와 부모를 탓하다니요. 그때 부모가 정말로 때려서라도 공부시켰으면 지금 형편이 나아졌을까요? 늘 남탓을 시전하니 지금 그런 상태에 머무는 것이죠. 나이 먹었다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닙니다.
추신: 오늘 우리집 고양이 ‘연두’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었습니다. 평평한 머리에 물건 올려놓기가 특기였던 연두. 구내염, 췌장염, 당뇨, 디스크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13년을 잘 버텨냈습니다. 살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죠. 고통없는 곳에서 연두가 뛰어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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