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에서 '뇌'가 없는 제품을 받아본 적 있나요?   

2024. 3.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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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대부분의 스마트폰에는 유선 이어폰을 꽂을 단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된 지 꽤 오래 됐죠. 아이폰이 스타트를 끊더니 갤럭시가 덩달아 동참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려면 별도의 장비를 구비하거나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을 사용해야 합니다. 애플이 에어팟을 판매하려고 이어폰 단자를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죠(방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은 뻥에 가깝습니다).

 

허나 블루투스 이어폰의 가격이 좀 비쌉니까? 괜찮은 음질을 즐기려면 적어도 10만원 가량은 투자해야 합니다. 음질이 동 가격의 유선 이어폰에 비하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게다가 1년 넘게 사용하면 내장 배터리가 다 되어 무용지물이 되거나, 걷다가 떨어뜨려 하수구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내구성도 약하고요. 오죽하면 당근마켓 등에 ‘한 쪽만 팝니다’ 혹은 ‘한 쪽만 삽니다’란 글이 자주 올라오겠습니까?

 

이런 단점 때문에 유선 이어폰을 찾거나 유선 이어폰을 착용하면 ‘힙’해 보인다고 느끼는 사용자가 많기에 예전처럼 스마트폰에 유선 이어폰을 연결하려는 니즈가 존재합니다. 그것도 제법 상당수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니즈를 파고들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지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스마트폰과 유선 이어폰을 연결해주는 ‘어댑터’를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구매했는데, 꽂아서 연결해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사용할 수 없는 기기가 연결되었습니다’란 경고문만 나온다고 말이에요. “얼마짜리인데요?”라고 물으니 3개에 2천원을 주고 샀다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1개에 700원도 안 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소리가 안 나는 게 맞아요. 날 리가 없죠.”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의아해 하더군요. USB-C단자쪽을 스마트폰에 꽂고, 3.5밀리 단자에 유선 이어폰을 꽂으면 소리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표정이었습니다.

 

혹시나 여러분 중에 모르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짧게 설명 드립니다.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재생하면 ‘디지털 데이터’가 이어폰 쪽으로 스트리밍되는데, 그 데이터는 0과 1로 된 2진수 값이라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로 전환해줘야 들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인이 구매했다는 어댑터 안에는 ‘디지털 투 아날로그 컨버터’라는 장치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약자로 DAC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DAC만 있으면 되냐고요? 아닙니다. DAC에서 나오는 아날로그 신호는 미약하기 때문에 충분한 크기의 음량으로 증폭시켜야 합니다. ‘앰플리파이어(앰프)’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것 역시 어댑터 내에 장착돼 있어야 하죠. 요약하면, DAC과 앰프가 필히 존재해야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700원 짜리 어댑터에 DAC와 앰프가 들어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량생산으로 DAC와 앰프 가격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적어도 몇 천원은 돼야 이 두 부품을 넣을 수 있고, 제법 괜찮은 음질을 뽑아내려면 만 원은 넘어야 합니다. 

 

 

저는 지인에게 “판매자에게 속으셨네요.”라고 말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제대로 된’ 어댑터(실은 어댑터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동글형 DAC/Amp라고 불러야 하죠.)를 드렸습니다. “이거 제가 가지고 있는 건데, 그냥 이거 가지세요. 잘 사용 안 해서요. 비싼 건 아닙니다. 2만원밖에 안 해요.”라며. 그리고 그가 산 ‘하나의 700원 짜리’ 어댑터를 대신 받았습니다. “이거 제가 한번 뜯어볼게요.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2천원에 2만원 짜리를 득템하는 꼴이니 지인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죠.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음악을 들어보고는 “정말 소리 좋다!”라고 감탄까지 했으니까요.

 

그날 밤에 저는 바로 문제의 어댑터를 분해했습니다. 본드로 떡칠을 해놓기도 했고 비싼 놈도 아니었기에 프라이어(속칭 뺀찌)로 잡아뜯듯 해체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속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조그만 초록색 기판에 USB-C단자와 이어폰 단자만 납땜이 돼 있을 뿐, DAC와 앰프에 해당하는 부품은 찾아볼 수 없었죠. 팔다리만 있고 ‘뇌’는 없는 꼴이었습니다. 이러니 2천원에 3개나 주지! (위의 사진을 보세요.)

 

소리가 날 리 없는 엉터리 제품을 판매한 중국 어디메의 판매자를 욕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걔네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구나!’ 2천원에 3개라는 말에 혹할 구매자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최소 10만 명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매출액은 2억원.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생각해 보자고요. 과연 몇 퍼센트의 구매자가 반품을 할까요? 2만원도 아니고 2천원 밖에 안 하는 제품이니 반품하는 게 귀찮지 않을까요? 어떻게, 어디에다 반품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알더라도 성가셔서 ‘에이, 그냥 2천원 버렸다 생각하지 뭐.’라며 포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구매자가 80퍼센트만 되더라도 엉터리 제품을 판매한 업자는 1.6억원의 매출을 확보합니다. 제조원가, 운송료 등 각종 비용을 제한다 해도 몇 천 만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회사 문을 닫아버리거나 간판을 바꿔 달면 되죠. ‘뇌’ 없는 제품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어서 버는 돈이니 정말 ‘개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이라서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엄청나게 싼 물건은 구매자에게 이익은커녕 오히려 해가 됩니다. 판매자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 있죠. 물건에는 적정가격이 있음을 어느 정도 유념하며 구매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끄적여 봤습니다. 무지하게 싼 제품은 의심하고 볼 일입니다.

 

듣자하니 요즘 ‘테무’가 사람들에게 입방아에 자주 오르던데, 전동공구 세트를 주문한 누군가에게 공구 세트 ‘사진’ 7장이 배송됐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소비자를 우롱한 판매자가 전적으로 잘못한 일이지만, 7천원에 전동공구 세트를 구매할 수 있다고 ‘기뻐했던’ 구매자에게도 2% 가량의 미스테이크는 있지 않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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