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티모시 윌슨(Timothy D. Wilson_은 학생들에게 실험에 임하기 3시간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하고는 ‘잼 시식 테스트’에 참가시켰습니다. 시식해야 할 잼은 ‘컨슈머 리포트’라는 잡지가 잼 전문가 7명에게 의뢰해 45개의 잼 중에서 각각 1등, 11등, 24등, 32등, 44등으로 선정한 5개의 잼이었는데요, 윌슨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맛을 보고 바로 1~9점의 척도로 평가하라고 하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각각의 잼을 시식하고서 왜 그 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종이에 적은 다음에 1~9점으로 평가하도록 해서 자신의 미각을 '분석'하게 했습니다.
어느 그룹의 평가가 전문가들의 맛 평가와 유사했을까요? 자신의 미각을 분석하고 심사숙고했던 두 번째 그룹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맛에 대해 분석할 시간 없이 바로 평가해야 했던 첫 번째 그룹이 전문가들과 비슷하게 평가 내렸으니까요.
왜 맛에 대한 분석과 심사숙고가 평가의 질을 떨어뜨린 걸까요? 그 이유는 맛 감별 분야에 문외한인 학생들이 고민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맛에 관한 정보가 더 생성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맛을 분석하려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상한 정보가 끼어 들어가 맛을 오판하기 쉬울 뿐이죠. 게다가 미각은 감각이라서 논리적인 분석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컨슈머 리포트의 잼 전문가들이 16가지 항목으로 미각을 분석해서 평가했다지만 그것은 그들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충분히 훈련했기 때문이겠죠.
이 실험의 시사점은 분석할 때와 그럴 필요가 없는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민한다고 해서 더 이상의 정보가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심사숙고에 의해서 오히려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숙련된 잼 전문가처럼 맛의 여러 가지 특성을 구분하여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심사숙고가 좋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직면한 상황 이외의 정보를 없을 수 없다면 고민스러운 분석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합니다.
윌슨의 연구는 분석보다 직관이 더 우수하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좋은 의사결정에 직관이 유리하냐, 분석이 유리하냐’라는 질문은 간단하게 답할 문제가 아니죠. 하지만 유능한 의사결정자가 되려면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할 때와, 분석을 통해 좀더 많은 정보에 접근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만은 알아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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