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세간의 이목을 끌며 펼쳐졌던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4대 1로 알파고가 우승했다. 알파고가 1국부터 3국까지 연달아 이기고 마지막 5국까지 승리로 장식하자 많은 사람들은 머지 않아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고 정복하지 않을까란 불안감에 느끼면서도 인공지능의 현실과 미래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IBM의 딥블루가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인 게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던 1997년보다 이번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더 큰 이유는 아마도 경우의 수가 10의 170제곱으로 바둑이 훨씬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빅 매치로 인해 인공지능이 부각되고 정부도 언제나 그랬듯 관련 정책을 내놓는 모양지만, 사실 몇몇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상태다. 2011년 2월 TV 퀴즈쇼 <저퍼디Jeopardy>에서 우승한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은 암 진단 분야에서 의사들을 앞지르고 있다. 암 전문의의 초기 오진율은 20~44%에 달하는데, 왓슨의 오진율은 2~9% 밖에 안 된다.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은 인공지능을 통해 투자 의사결정을 돕는 보고서를 내고 있는데, 애널리스트보다 3배 더 많은 양을 써내면서도 보고서 질과 일관성이 높다고 한다. 구글에서 인공지능 개발 책임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을 앞선다고 공언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과 생존을 위협한다고 두려워 해야 할까? 페이스북에서 “뭐가 대수인가? 전기밥솥은 오래 전부터 나보다 밥을 더 잘 지어왔다.”이란 우스개가 돌았다. 철학자 도올 선생도 “인간이 언제 기계를 이긴 적이 있나? 계산에서는 손바닥만한 계산기에도 지잖아.”라고 일갈한다. 자동차가 빨리 달리기 위해서 만들어졌듯이 알파고도 바둑을 이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일 뿐이니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겼다고 해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터미네이터의 세상이 곧 도래하리라 호들갑 떨지 말란 소리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의 말마따나 인공지능은 아직까지 ‘형태 인식’과 ‘상식’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물체가 흰 컵인지 아니면 하얀 비누인지 인식할 수 있지만, 기계가 그런 수준이 되려면 세상의 모든 물건들에 대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고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물건이 놓인 주변환경의 변화들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식을 갖게 만드는 것도 역시 어렵다. ’엄마는 딸보다 나이가 많다’와 같이 4살짜리 아이의 상식을 컴퓨터로 구현하려면 수천만 줄의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그렇게 해도 4살짜리 아이의 사고능력과 감정에는 미치지 못한다.
컴퓨터칩의 물리적인 한계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 역할을 한다. 칩을 아주 정밀하게 설계한다 해도 원자 크기의 다섯 배보다 작게 만들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빠지고 만다. 엄청난 열 발생으로 인해 회로가 모두 망가지기 때문에 실리콘을 기본으로 하는 마이크로칩으로는 능수능란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뭐든지 척척 처리해 주고 <그녀>에서 남자 주인공의 사이버 여자친구 ‘사만다’처럼 매혹적인 목소리로 쓸쓸한 삶을 위로해 주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려면’ 아마도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어야 가능하지 싶다.
알파고 만들 시간이 있으면 ‘구글 번역기’의 성능이라 올리라는 비판이 SNS에 떠돌았다. 한 번 해보라. 구글 번역기에 ‘나는 백조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를 넣으면 ‘I would like to raise a 100,000,000,000,001’이란 말이 버젓이 나온다. 인간에게 바둑 하나 이겼다고 인공지능의 승리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구글의 마케팅에 걸려 들었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시대가 오겠지만 기계의 위협을 대비하고 막아낼 시간은 충분하다. 인간을 보호하는 게 로봇의 최상위 임무라는 걸 잊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 이 글은 월간 샘터 5월호 '과학에게 묻다' 코너에 실린 저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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