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이 넘치는 직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상상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자유로운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재미있고 안락한 업무 환경 속에서 놀듯이 일하는 광경을 떠올릴 겁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격식을 갖추지 않은(casual) 옷차림이 사고의 벽을 유연하게 만들고 ‘상자 밖에서’ 사고하도록 촉진시킨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격식을 차린 공식적(formal)인 옷차림을 하면 사고가 경직되어 새로운 발상이 억제되는 효과가 나오는 걸까요? 오늘은 이러한 의문을 일으키게 만드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겠습니다. 콜럼비아 대학의 마이클 슬렙피언(Michael L. Slepian)과 동료 연구자들은 격식을 갖춘 복장을 입었을 때 창의적 사고의 근간이 되는 추상적 사고, 즉 좀더 포괄적이고, 좀더 전체적이고, 좀더 광범위한 사고를 촉진한다는 것을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주장합니다.
슬렙피언은 60명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먼저 서로의 옷차림의 ‘공식적인 정도’를 평가하도록 한 다음, 어떤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를 고르게 했죠. 예를 들어 ‘투표’라는 단어를 주고 ‘선출에 영향을 끼치는 것’과 ‘용지에 마킹하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앞의 것은 추상적인 표현이고 뒤의 것은 구체적인 표현이죠. 10개의 단어에 대해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자 옷차림의 공식성(formality)가 높은 학생일수록 추상적인 표현을 더 많이 고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실험은 격식을 차린 복장이 추상적 사고와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지만 슬렙피언은 좀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범주 포괄성(category inclusiveness)’을 측정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떤 단어를 얼마나 포괄적인 범위 속에서 인식하느냐를 보기 위한 것이었는데, 예를 들어 ‘낙타’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그것이 ‘교통수단’이라는 범주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지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실험을 해보니 옷차림의 공식성이 높은 학생일수록 일반적으로 연관성이 약한 범주에 대해서 해당 단어들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벽돌을 보고 그것이 ‘건축 자재’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벽돌을 ‘가구’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공식적인 옷을 입은 학생일수록 벽돌이 ‘가구’에 잘 들어맞는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입사 면접’ 때 입을 만한 옷과 ‘학교 수업 시간’에 입을 만한 옷을 가져 오게 한 다음, 각각의 옷을 입은 상태에서 범주 포괄성을 평가하는 질문을 동일하게 던졌습니다. 학생들은 캐쥬얼한 복장일 때보다 공식적인 복장을 입었을 때 연관성이 약한 범주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과거에 이루어진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공식적인 복장을 할 때 사회적 거리감이 늘어나고 다가가기가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거리감이 좀더 높은 곳에서 좀더 넓게 좀더 포괄적으로 좀더 추상적으로 생각하도록 촉진시킨다고 슬렙피언은 후속실험에서 주장합니다. ‘자동차’를 무거운 물건을 재는 데 쓰는 ‘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추상적 사고가 창의적 사고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복장이 창의적 사고를 무조건 해친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격식을 차린 복장이 사고의 폭을 더 넓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슬렙피언의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주로 캐쥬얼한 옷을 입고 다니다가 실험을 위해 격식을 차린 옷을 입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평소와 다른 옷차림을 할 경우에 추상적 사고가 촉진된다고 보는 것이 이 실험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캐쥬얼한 옷차림이 창의력을 촉진한다. 아니다. 공식적인 옷차림이 창의력에 기여한다.”라고 단선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평소와 다른 옷차림을 경험하는 것이 그 자체로 ‘참신한 경험’이기에 창의적 사고를 촉진시킨다고 봐야 합니다. 창의력을 촉진한다고 해서 그저 캐쥬얼한 옷차림을 권장하기보다는 다양한 옷차림을 경험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캐쥬얼한 옷차림을 고집하는 것, 그것 역시 넥타이에 정장을 고집하는 것만큼이나 창의적 사고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참고논문)
Slepian, M. L., Ferber, S. N., Gold, J. M., & Rutchick, A. M. (2015). The cognitive consequences of formal clothing.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1948550615579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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