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1월 28일에 발사된 챌린저호는 발사 후 73초만에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로켓 부스터 내에서 누출을 막아주는 고무 오링이 추운 날씨 때문에 갈라져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이런 ‘실패’는 2003년 2월 1일에 지구로 귀환하던 콜롬비아호의 폭발로 다시 재현되고 말았습니다. 초기에는 테러로 추정되었으나 왼쪽 날개 부분의 노후가 폭발의 원인으로 떠올랐죠. 챌린저호 폭발 후에 우주왕복선의 안전에 만전을 기했던 NASA가 17년만에 왜 비슷한 실패를 반복했을까요? 분명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터인데 그것을 ‘잊은 듯이’ 왜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걸까요?
텍사스 주립대의 파멜라 하운쉴드(Pamela R. Haunschild)는 같은 대학 프란시스코 폴리도로 주니어(Francisco Polidoro Jr.)와 콜로라도 주립대의 데이비드 챈들러(David Chandler)와 함께 ‘심각한 실패’가 조직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직이 혁신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을 약화시키는, 이중적인 효과를 일으킨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혁신을 억눌렀던 과거의 기억은 옅어지고, 안전보다는 혁신과 시장 지배력 확대 쪽으로 초점이 이동하다보니 또 다시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하운쉴드 등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승인을 의뢰한 모든 제약회사들(146개사)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약품이 FDA의 승인을 거쳐 시장에 출시됐는데 심각한 부작용이 나중에 발견되는 바람에 모든 제품을 폐기하고 엄청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일들이 제약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일례로 바이엘(Bayer)은 혈압 강하제 바이콜(Baycol)를 1997년에 FDA 승인 후에 출시했지만 근육세포를 파괴하고 신장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부작용으로 인해 2001년에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문에 하운쉴드 등은 FDA에 수집된 데이터가 ‘안전 지향’과 ‘혁신 지향’ 사이를 왔다 갔다 반복하는 패턴을 검증하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했죠. 제약회사가 ‘안전 지향’에 쏠려 있는지는 FDA에 신약 승인을 요청하기 전에 얼마나 임상 실험을 많이 했는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학자들이 해당 약품에 대해 얼마나 많이 논문을 출판했냐로도 기업의 안전 지향 여부를 엿볼 수 있겠죠. 과학자들은 아직 해당 약품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기업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고 지원하고 비용과 시간을 지출할 수밖에 없겠죠. 경쟁사에게 정보가 누출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업이 학자들의 논문 출간을 지원한다는 것은 약품의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반면, 제약회사가 얼마나 혁신(즉 안전과 관련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는 특허 출원의 개수로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source: 아래에 명기된 논문
이렇게 변수를 설정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연구 전에 설정했던 가설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약품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면 임상 실험과 관련 논문의 출판이 증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긍정적 효과는 약화되어 또 다른 ‘약품 실패’에 이르렀던 겁니다. 그리고 약품의 실패 후에는 특허의 수가 줄어들어서 조직의 혁신 의지가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부정적 효과는 또 다른 약품 실패 때까지 약화되었습니다. 그들이 논문에 게재했듯이(위 그림) 안전 지향과 혁신 지향이 파동처럼 반복되었던 겁니다.
이 연구는 조직이 심각한 실패를 경험한 후에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초기에는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때의 기억을 망각하고 혁신에 집중하느라 다시 실패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는 바를 정량적으로 증명한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결국 망각이 문제인 것이죠. 안전 지향과 혁신 지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패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실패의 회수와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점이 실패로부터 진짜로 배워야 하는 것일 겁니다.
(*참고논문)
Haunschild, P. R., Polidoro Jr, F., & Chandler, D. (2015). Organizational Oscillation Between Learning and Forgetting: The Dual Role of Serious Errors. Organizatio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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