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흔히 말하듯 이윤 추구를 위한 집단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특정 목표를 중심으로 모인 사회입니다. 고도의 정보 시스템이 의사결정의 많은 부분을 기여하고 있어도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내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심리가 경영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죠.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한계가 조직 운영의 양상을 좌우하고 사람 관리의 성패를 가르며 경영전략을 재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영자는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인간의 심리를 얼마나 알고 그것을 조직과, 사람과, 전략 경영에 얼마나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을까요?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실적 악화로 인해 여러분의 회사가 인력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할 거라는 소문이 들려온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회사 바깥의 어느 호텔 방에 태스크 포스 팀이 설치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느 부서에서 몇 명이 정리해고 대상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삽시간에 전사로 퍼집니다. 정리해고되는 직원에게 과연 얼마의 위로금이 지급될 것인지, 정해진 퇴직금 외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을 것인지 직원들 사이에서 온갖 추측과 비방이 난무합니다. 정리해고될 것을 대비해 다음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지 아니면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지 직원들은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죠.
그러나 회사 측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에 관해 일절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태스크 포스 팀의 존재를 확인해 주지도 않고 계획의 얼개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중간에 구조조정 계획이 태스크 포스 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직원들의 반발과 동요가 커질 것이라 염려하여 최종안이 공표될 때까지는 계획을 일절 공개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진 모양입니다. 구조조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하려면 직원들이 중간에 제동 걸 소지를 절대로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만일 이런 양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면 인간의 심리에 대한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입니다. 밀실에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인력 감축 계획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직원들의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생산성과 품질의 저하를 야기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해고되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직원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줍니다.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씨티뱅크의 사례가 심리에 대한 무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죠.
1997년 후반에 씨티뱅크는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9만 명의 직원 중 9천 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알리면서도 누가 대상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직원들은 이런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실직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죠. 차라리 대상자로 지목되면 구직 활동에 나설 텐데, 확실히 그런 것도 아니니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때, 즉 통제감을 상실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심리를 몰랐던(혹은 무시했던) 씨티뱅크는 '사람'이 아니라 '직무'를 감축한다는 말만을 늘어놓으며 인력 감축 계획을 마치 건물이나 설비를 내다파는 관점으로 몰아 붙였습니다. 씨티뱅크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직원들의 'Me Issue'를 이해하지 않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지도 않았으며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도 주지 않았죠.
씨티뱅크와 같은 해에 인력 구조조정을 실행에 옮겼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예측 가능성과 통제감을 보장함으로써 큰 무리없이 인력 감축을 완료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1997년 11월에 리바이스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11개 공장을 폐쇄하고 총 6천 395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씨티뱅크와 달랐던 점은 계획을 발표하는 날에 CEO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딱딱한 경영학 용어를 배제하고 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지 설명함으로써 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이고 누가 해고 대상이고 얼마의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인지 등을 상세히 알림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직원들의 심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반영한 세심한 조치들, 이것이 정리해고 규모가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직원들의 동요와 생산성 저하를 최소화하면서 계획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기업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때 직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서로 합병되는 두 제조공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데이비드 슈바이거(David M. Schweiger)의 현장 조사에서도 곧바로 드러납니다. 직원들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두 공장이 합병되면 중복되는 부문에서 인력 감축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염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공장의 관리자들이 보인 행동의 차이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쪽 공장의 관리자들은 합병이 진행되던 3개월의 시간 동안 매주 모든 부서의 직원들과 면담하고 주간 뉴스레터를 발행함으로써 직원들의 이해와 공감을 구했습니다. 반면 다른 공장의 직원들은 관리자들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하고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슈바이거의 조사 결과, 전자의 직원들이 후자의 직원들에 비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업무에 더 몰입했고 성과도 훨씬 좋았습니다.
씨티뱅크가 인간의 심리를 경영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적용하는 평가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이 속한 팀이 평가 받는 지표가 과연 몇 개나 됩니까? 5개, 아니면 10개 이상? 예상컨대 평가지표가 10개 이상이 된다면 여러분의 회사는 BSC(균형성과표)를 운영 중일 가능성이 큽니다. 알다시피 BSC는 매출이나 이익과 같은 재무적 지표에 편중된 평가 관행을 비재무적인 요소로 확대하여 회사의 성과와 미래 가치를 균형적으로 관리하자는 차원에서 제안된 방식이죠. 하지만 BSC의 결정적 결점 중 하나는 여러 관점으로 성과의 원인을 추정하고 측정하다 보니 평가지표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씨티뱅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은행은 모두 6가지 카테고리에서 20개나 되는 평가지표로 성과를 측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평가지표를 관리한다고 해서 구성원들이 그것들을 모두 염두에 두면서 평가지표 달성을 위해 몰입할 수 있을까요? 씨티뱅크를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이 도입한 BSC가 실패로 끝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심리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매직 넘버 7', 즉 인간이 한 번에 집중하여 기억해낼 수 있는 가짓수가 약 일곱 개에 불과하다는 조지 밀러(George A. Miller)의 연구를 무시했다는 것이죠. 밀러가 매직 넘버 7을 주제로 논문을 쓴 때는 1956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이 꽤 흘렀고 매직 넘버 7이란 개념도 일종의 법칙으로 자리잡았 건만 여전히 기업 경영에서는 많은 지표를 측정할수록 조직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이 경영자라면 직원들의 심리를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들의 심리를 경영의 의사결정에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직원들의 심리를 잘 알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쉽습니다. 직원들의 입장이 되어보면 되니까요.
(*참고문헌)
- 제프리 페퍼, 로버트 I. 서튼,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안시열 역, 지식노마드, 2010
- David M. Schweiger, Angelo S. DeNisi(1991), Communication with Employees following a Merger: A Longitudinal Field Experiment, The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Vol. 34(1)
- George A. Miller(1956), The Magical Number Seven, Plus or Minus Two: Some Limits on our Capacity for Processing Information, Psychological Review, Vol.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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