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ㅍㅍㅅㅅ'라는 명랑하고 발랄한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여기에 다시 올려 봅니다.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 '야근'과 관련한 글들을 종합하고 요약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녁이 없는 삶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는 당내 경선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복지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비록 그가 경선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생존 경쟁(Rat Race)이라는, 빠져 나오기 힘든 쳇바퀴에 갇혔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경쟁자인 문재인 후보가 자존심을 꺾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자기에게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는 것 역시 저녁이 ‘없는’ 삶 때문에 직장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 받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반영한다.


저녁 6시는 더 이상 퇴근 시간이 아니다. 야근을 준비하기 위해 뱃속에 먹을 것을 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된 지 꽤 오래된 듯하다. 과도한 업무량을 처리하고 빡빡하게 짜인 일정을 맞춰야 하기에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밤 10시가 넘도록 책상을 지켜야 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일주일에 평균 2.8일을 야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야근한다는 대답도 23퍼센트나 나왔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매일 야근을 지속하는 직원들은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11년에 모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권장 수면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이유가 과도한 업무로 퇴근을 늦게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42.9퍼센트로 가장 많았다.67 또한 2011년에 실시된 OECD조사는 2010년에 우리나라 전체 고용인구의 연간 노동시간이 2,193시간으로서 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444시간이나 길다고 말한다.



출처 : ppss.kr




야근하면 생산성이 올라갈까?


그래도 야근을 하면 그만큼 오래 일하니까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과도 향상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는 야근과 생산성 사이에 긍정적이기는커녕 강한 부정적 연관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비드 와그너(David T. Wagner)와 동료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을 소재로 한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처럼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읽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와그너는 96명의 학생에게 실험 전 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팔찌를 잔 채 잠을 자도록 했다. 와그너는 다음 날 아침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대학 교수직에 지원한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컴퓨터 상에서 그 사람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에 사용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에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며 언제든지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다. 전날 밤에 잠을 많이 못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강의 동영상을 보지 않은 채 인터넷을 하며 딴짓을 많이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와그너의 연구는 야근으로 인해 수면의 질과 양이 떨어지면 다음날 낮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잦은 야근이 비록 피곤할지언정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다’란 세간의 통념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잦은 야근은 생산성을 갉아먹는 벌레인 셈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짜이슬러Charles A. Czeisler는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라고 말하며 수면 부족의 위험을 경고한다. 0.1퍼센트면 법적으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근하면 나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야근을 줄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야근이 생산성 저하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동을 유발하고 강화하는 강력한 인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와 동료들은 수면이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짐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반스의 실험에서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들은 상사와 동료로부터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런 직원들은 동료가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고마워 하지 않거나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할 때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이 정직하게 게임에 임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약화시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렇다면 적정 수면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몸 상태가 조직의 윤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반스의 실험은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함으로써 얻는 생산성의 일시적인 증가가 장기적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나쁜 성과’에 의해 상쇄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마이클 크리스천(Michael Christian)와 동료들이 수행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수면 부족이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크리스천은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교대 순번이 바뀌어(예컨대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간호사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주 드러내는 모습을 관찰했다.

 


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될까?


관리자들에게 어떤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지 물으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업무의 질이 훌륭한 직원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경영학자인 킴벌리 엘스바흐(Kimberly D. Elsbach)와 동료 연구자들은 간단한 연구를 통해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이느냐가 평가와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시간 외의 ‘얼굴 보이는 시간’이 평가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르네 랜더스(Renée M. Landers)의 연구로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변호사들의 야근이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다. 랜더스는 업무 환경이 비슷한 경우, 평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우, 업무가 복잡하여 질적 요소를 올바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경우, 구성원 간의 능력 차가 크지 않은 경우,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랜더스는 이러한 심리가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경쟁이 극심할수록 작은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야근은 다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잦은 야근은 직원 개인의 건강 차원, 조직의 생산성 차원, 윤리적인 조직문화 차원 등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승진할 자리가 부족하고 차등 보상이 존재하는 경쟁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러한 ‘역선택’은 더욱 강화되어 나타난다.


당신의 조직에서는 야근의 회수와 시간이 승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만일 그 영향이 크다는다면, 당신은 ‘쥐들의 달리기 경주’에 이미 참가 중이고 그 때문에 직원들은 차차 소진(burn-out)되어 갈지 모른다.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사회악이다


한국은행의 김중수 총재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었을 때 일을 안 하면 아주 나쁜 습관이 들어서 그 다음에 일을 하나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야근은 축복인 것이다.”라고 말하여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분을 산 적 있다. 그의 생각은 야근을 개인의 경쟁력과 동일시하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대표하고 있다. 야근이 조직의 지속가능한 역량과 성과를 갉아먹는 진짜 주범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짜이슬러는 음주, 흡연, 성희롱 등에 관한 기준만 마련할 것이 아니라 수면에 관한 행동기준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도록 하고 절대로 16시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루에 11시간 이상은 필히 휴식을 취해야 하며 일주일에 60시간 근무도 지양해야 한다.


요즘 스마트smart라는 말이 유행하다보니 직원들에게도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주문하는 모양이다. 첨단기기와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스마트 워커(smart worker)가 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누구나 가진 두뇌를 스마트하게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어 ‘충분한 수면 보장하기’만큼 스마트한 전략도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원들에게 ‘야근은 축복’이라고 말하는,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발상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다. 이제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나 성희롱 같은 사회악이라고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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