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란 '아리까리'한 문제에 접할 때 우리는 보통 어떤 것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지 평가한 다음,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봅니다. 그리고 나서 왜 그것이 옳을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나름의 체계를 구축하죠. 


헌데 여러 선택지 중에 하나가 옳다고 판단되면 다른 선택지들은 이상하게도 무시되고 맙니다. 선택되지 않은 옵션이 실제로는 정답일 가능성이 충분한데도(왜냐하면 '아리까리'한 문제라서), 일단 답으로 선택되면 다른 선택지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고 말죠. 이러한 현상을 '선택지 고정(Option Fixation)'이라고 부릅니다.



출처: http://www.meetup.com/wonderfest/events/96655132/



오하이오 대학의 윈스턴 시크(Winston Sieck)와 동료 연구자들은 선택지 고정이 '과신(Overconfidence)'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가정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시크는 학생들에게 금융과 관련된 30개의 상식 문제를 냈는데, 각 문제는 2개씩의 선택지를 가졌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가 났다면, 어떤 종류의 자동차보험이 당신 차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가?"란 질문이었죠.


시크는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답을 기록한 후에 50퍼센트에서 100퍼센트 사이로 본인의 답을 얼마나 '믿는지' 적도록 했습니다. 만약 자신의 답을 85퍼센트 정도 확신한다고 적었는데 실제로 맞힌 비율이 60퍼센트 밖에 안 된다면 그 퍼센테이지의 차이가 '과신'의 크기라고 시크는 간주했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동일한 문제가 주어졌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을 달리 했습니다. "선택지 (a)가 맞다고 가정한 후에, 왜 (a)가 맞는지 설명해보라"고 하고 다시 "선택지 (b)가 맞다고 가정한 후에, 왜 (b)가 맞는지 설명해보라"고 했죠. 즉, 각 선택지를 독립적으로 평가한 다음에 답을 택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때도 역시 본인이 선택한 답을 얼마나 '믿는지' 적어내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짐작했겠지만, 두 번째 그룹(독립적으로 평가한 그룹)보다 첫 번째 그룹(그냥 답을 고르도록 한 그룹)의 과신 크기가 평균적으로 더 컸습니다. 평균적인 편향도 더 크게 나타났죠. 이는 어느 한 선택지에 고정되면 과신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였습니다. 선택지를 각각을 맞다고 상상하도록 해서 '선택지 고정'을 약화시키면 과신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죠.


여러분이 두 가지 이상의 선택지 중에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고자 한다면, 그 중 한 가지를 바로 고르는 것보다는 각 선택지가 각각 옳다고 간주하고 '그것이 옳은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과신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어떤 선택지에 '필(feel)이 꽂힌다'는 것은 과신의 오류에 빠지고 있다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시크의 실험에서 사용된 간단한 방법을 써서 무언가를 과신하는 여러분 자신을 보호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Sieck, W. R., Merkle, E. C., & Van Zandt, T. (2007). Option fixation: A cognitive contributor to overconfidence.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03(1), 68-83.


Comments

  1. BlogIcon 크산티페 2013.04.15 22:44

    저는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자신이 선택한것을 스스로 반론해보는 습관을 가지는데, 그것도 이런 것과 같은 맥락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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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1일부터 3월 31일까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남긴, 나의 짧은 생각들 그리고 좋은 말씀들



[선택에 대하여]


-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포함되지 않은 선택은 선택이 아니다.


- " '사람은 자기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힘있는 자들에게는 이득이 되지만 힘없는 자들은 대개 상처를 입는다."...from <마음대로 고르세요>


- "인생은 자신의 선택을 모두 합쳐놓은 집합체다"...by 알베르 카뮈


- "당신의 연봉은 당신의 가치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당신 대신 얼마를 받고 일하려 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from <마음대로 고르세요>


- 무엇에 집중하냐보다 무엇에 집중하지 말까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책 읽기에 대하여]


-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 방법 : 하루에 TV를 2시간 본다고 가정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면, 대략 3일 정도면 한 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2시간에 100페이지 읽는 속도). 한 달이면 대략 10권 내외. 어려운 책을 읽더라도 최소 5권을 읽을 수 있죠.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책읽기가 TV보다 후순위이기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것이죠. 비결은 없습니다. ^^ 


- 첫 직장에서 어느 선배가 월급의 10퍼센트는 책 사는 데 쓰라고 조언했었다. 나는 무식하게 그 조언을 따랐다. 나의 지적 자산은 아직 볼품없는 수준이지만 대부분은 사서 읽은 책에서 나왔다.


- 이북으로 책을 읽으면 왠지 내것 같지가 않다. 책 내용도 내것이 되지 않는 듯하다.



[잡설]


- 우연히 부동산 시세 사이트에 가서 이곳저곳 시세를 보게 됐다. 내가 사는 곳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걸까, 사람들이 결정하는 걸까, 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 OOO대학에 들어가려면 자격증을 몇 개나 따야 하는지 누가 묻는다. 웬 자격증?


- 여행을 가야 일몰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초보자가 공 세 개로 저글링하면 공 세 개를 다 놓친다. 하나만 던져 하나만 받아라.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자칭 소셜 미디어 전문가라는 사람이 블로그가 없거나 볼품 없고 SNS 팔로워도 얼마되지 않는다면 의심해 볼 일이다.


- 모 회사는 바닥에 입사지원서들을 쫙 깔아놓고 발을 사용해 양쪽으로 갈라놓는다고 한다. OOO와 OOO가 아닌 것으로.


-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날이 무한히 남아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는가?


- 어떤 사람이 회사를 그만 둘 확률 = 1 / ('회사 때려치겠다'는 말을 한 회수)


- 실패를 안 하는 사람은 일을 시키기만 하는 사람.


- 축구공은 '둥굴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란 말이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죠. 공이 네모나면 결과를 예측하기 더 어렵습니다.


- 경제 성장과 경제적인 성장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물리적인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을, 후자는 경제활동이 비용보다 편익을 더 빨리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경제 성장만 추구하는 정책은 오히려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


- 자칭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 중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들이 제법 있다. 타인을 위한다지만 결국 자기 이득이 제일 먼저인 사람들


-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다. 비결도 없다. 아니, 성공 자체는 존재치 아니한다.


- 예쁘고 매력적인 이성을 보면 욕망이 솟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본능이니까. 허나 그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자신의 존엄성도 내다버렸다는 뜻이다.


-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by 조셉 스티클리츠


- 흔히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달걀도 하나, 바구니도 하나 밖에 없는 걸 어떡해? (있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



[그렇지 않은가?]


- "나만 믿어"란 말은 "네 의견은 듣고 싶지 않아"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지 않은가?


- 한번 해보겠다는 말(노력해 보겠다는 말)은 실패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지 않은가?


-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는 말은 그 일이 우선적인 일이 아니라서 안 했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은가?



[전략에 대하여]


- 경쟁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에서 노는 것


- 제품의 원가를 개선하면 가격을 내리고 싶은(그래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진다. 망하는 길이다. 가격을 내리지 말고 그 돈으로 차별화를 기해야 한다.


- 제품(혹은 서비스) 차별화의 가장 큰 '적'은 최고의사결정자들이다. 제품 개발해본 사람은 어떤 뜻인지 알 것이다.


- 마케팅과 영업의 공통점. 둘 다 '팔기 위한 활동'. 마케팅과 영업의 차이점. 마케팅은 고객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활동. 영업은 고객을 찾아다니는 활동.


- 대부분 회사의 전략을 잘 들어보면 하나같이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귀결된다.


- 회사 실적이 안 좋으면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망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금 늦출 뿐이다. 실적이 안 좋으면 실적이 좋게 만들어야지, 덜 쓴다고 실적이 나아지지 않는다. 당연한 건데 많이 망각한다.



[평가에 대하여]


-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고 싶다면(비록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점수표를 들고 점수를 매기지 말라. 그 대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라.


- '점수로 매기는 평가'는 성과 향상을 위해 직원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 않은 '평가 수치화'는 버려야 할 '신성한 암소'다.


- 일선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혁신적 사고'를 평가하는 기업이 있다. 혁신은 현재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현재를 부정하길 진정 바라는 건가? 이렇게 엉뚱하고 그럴싸한 역량모델이 판친다.


- 정리해고를 실행했던 적이 있거나 계획 중인 기업이 직원들의 로열티를 기대하는 것은 물에 젖은 땔감에 불을 붙이려는 것과 같다.


-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란 큰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 그냥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거나, 상대방이 조언을 원할 때만 조언하는 게 낫다.





[협력에 대하여]


- 협력은 기본적으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다. 하나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협력의 적이다.


- 협력은 평등을 전제로 한다. 평등이 없는 한 협력은 없다. 평등이 전제되지 않는 협력은 탄압과 굴종의 관계일 뿐이다.


- 용서를 비는 사람이 진심이 없다고 느끼면 용서가 안 된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용서도 자유다.



[기업 경영에 대하여]


- 경영자들은 직원들에게 자기 방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로 열려 있는가? 누군가가 게이트 키핑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 직원들에게 회사를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요청하면, 사실 CEO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지엽적이고 자기본위적인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그 아이디어를 채택해야 한다. 더 중대한 아이디어 창출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생산성 향상을 지시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잉여인력이 생기기 마련이라 '노는 인력'이 눈엣가시로 보인다. 결국 인력 조정을 결심한다. 직원들에게 생산성을 높이라는 말,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는가?


- 자신이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임을 깨닫는 경영자는 별로 없다.


- "기업의 회장들이 고객을 생각하는 시간은 투자자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적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낮은 직급의 사원들을 떠올리는 시간은 그보다 더 적을 것이다."...from <사장의회사vs사원의회사>


- 경영진이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 사항을 직원들에게 숨겼다가 터뜨린다면 그것은 직원을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로는 직원들을 파트너라고 이야기한다 해도.


- "많은 기업이 실제 소유권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사원들의 주인의식을 앙양하기 위해 애쓴다. 이는 기만에 가깝다"...from <사장의회사vs사원의회사>


- "주주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개념이다. 주주가치란 결과일 뿐,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당신의 사원과 고객, 그리고 제품이다"...by 잭 웰치 (2009년 3월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 "소유권이 경영자에게 있는 한 '권한 이양(또는 권한 위임)'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언제든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from <사장의회사vs사원의회사>


- 직원은 자원이 아니다. 파트너다.



[일에 대하여]


- "근면은 노예의 덕목이다."...by 강신주


- "노예는 밥은 먹되 일은 안 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까?' 이것이 노예의 모토다"...by 강신주


- "우리는 일하려고 사는 게 아니다. 삶을 향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by 강신주


-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노예이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노예란 별게 아니다"...by 강신주


-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할 거면 왜 일해야 하는가? 변명하지 말라."...by 강신주


- "누군가를 만났을 때 더치페이하자고 말하는 것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신의 등에) 업는 것이다."...by 강신주


- "근면의 가치를 헷갈리지 마라. 근면한다고 그 일을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 일이 좋으면 저절로 근면해진다.(근면은 추구할 가치가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는 뜻)"...by 강신주


- "내세에서 젖과 꿀이 흐르길 기대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by 강신주


- 일은 돈 되는 일과 돈 안 되는 일로 일을 구분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일과 내가 원하지 않는 일로 나뉠 뿐이다.





Comments

  1. Favicon of http://kickthecompany.com BlogIcon 손박사 2013.04.06 11:35

    작년부터인가 이 블로그를 구독하면서 참 많은 자극과 intuition을 받아 갑니다.
    짧은 생각들을 모아서 올리신 것을 읽으면서, 나도 이렇 생각을 했었는데 라는 생각 반,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반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깊은 생각 짧지만 강한 임팩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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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3.04.08 10:49 신고

      반갑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따뜻한 봄날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2. 항상 배워갑니다 2013.06.21 09:51

    어떤 사람이 회사 그만둘 확률 공식은 제가 이제까지 봤던 공식들 중에 최곱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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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간에 발 들여 놓기(Foot-in-the-door)'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작은 요청을 승낙하도록 하면 더 큰 요청도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서 여러 가지 설득 기법 중 하나입니다.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은 1966년에 조나단 프리드만(Jonathan L. Freedman)이 실시한 고전적인 실험에서 이미 입증된 것입니다. 


프리드만은 주부들에게 소비와 관련한 8개의 설문 문항에 답하도록 한 다음, 5~6명의 실사팀이 2시간 동안 집에 머물면서 청소와 요리에 어떤 물건들을 사용하는지 조사해도 되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43퍼센트의 주부들이 흔쾌히 승낙했죠. 반면, 설문에 답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안 조사를 요구하니 겨우 22퍼센트의 주부들만 프리드만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프리드만의 실험 이후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임을 실험으로 여러 차례 규명했죠.


출처: http://www.iwillteachyoutoberich.com/blog/bj-fogg-interview-persuasion-psychology/



그런데 프랑스 브르타뉴 대학의 니콜라스 게겡(Nicholas Guéguen)은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사용할 때 "하지만 당신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함께 사용하면 설득 효과가 더 배가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 효과를 떨어뜨릴 것 같지만 그 반대였던 것이죠.


게겡은 프랑스 반(Vannes)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일대일로 찾아가 쓰레기 분리 배출에 관한 연구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며 "앞으로 한 달 동안 유리, 플라스틱, 종이 등을 분리 배출할 때마다 무게와 개수를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대조군에 해당되는 주민들은 이 말만을 들었지만, 어떤 주민들은 이 요청과 함께 "하지만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선생님의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대조군 주민들은 40퍼센트만 수락했지만, '선택은 당신의 자유'란 말을 들은 주민들은 56퍼센트가 수용했습니다.


게겡이 다른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분리 배출 습관에 관한 4개의 문항에 답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사용한 후에 먼저와 같이 한 달 동안 쓰레기 배출량을 측정해 달라고 요청하니 이때는 60퍼센트의 주민이 동참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을 쓸 때와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찬성률은 아니었죠. 그러나 두 기법을 동시에 사용하니, 다시 말해 먼저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쓴 다음에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니 무려 78퍼센트의 주민들이 동참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 동안 쓰레기 배출량을 기록하겠다고 말한 주민들이 실제로 그 약속을 준수한 비율은 각 조건별로 어땠을까요? 대조군에 속한 주민들은 고작 8.2퍼센트만 약속을 준수했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만 적용된 주민들은 26.5퍼센트,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만 적용된 주민들은 24.5퍼센트의 약속 준수율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기법 모두 적용 받은 주민들은 무려 44.7퍼센트나 약속을 준수했죠.


이 실험은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기면 의외로 까다롭거나 힘든 요청을 수락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라고 말해도 웬만해서는 상대방이 "그럼, 난 안 할래."라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선택권을 행사하여 결정하도록 해야 비교적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약속을 준수하게 한다는 점도 이 실험의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약속 준수는 결국 자발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입장이라면, '시키면 하라'는 압박감을 주기보다는 상대방이 '내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선택은 네가 할 수 있어'라고 제안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하기 싫다고 말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겠지만, 문간에 발을 확실히 들여 놓은 다음에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을 사용한다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물론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밉상'이 있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알겠습니다'라고 해도 약속(혹은 지시)을 끝내 준수하지 않겠죠. 그런 밉상 친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원들(혹은 동료들)에게 이 두 가지 설득 기법은 'Yes'와 '약속 준수(compliance)'을 보장할 겁니다.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일, 작은 업무지시부터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Freedman, J. L., & Fraser, S. C. (1966). Compliance without pressure: The foot-in-the-door technique. Journal ol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2), 195-202.


Guéguen, N., Meineri, S., Martin, A., & Grandjean, I. (2010). The combined effect of the foot-in-the-door technique and the “but you are free” technique: An evaluation on the selective sorting of household wastes. Ecopsychology, 2(4), 231-237.


Comments

  1. Favicon of http://place1.tistory.com/ BlogIcon users 2013.03.28 19:31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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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 지원자를 차례로 면접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객관적으로 세 명의 지원자는 실력도 비슷하고 소위 '스펙'도 얼추 비슷합니다. 서로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로 세 명을 인터뷰한다면 여러분은 그 중 누구에게 높은 점수를 줄 것 같습니까? 처음에 인터뷰한 사람인가요, 마지막에 인터뷰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중간에 인터뷰한 사람? 아마도 여러분은 세 명의 지원자 중 가장 적절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인터뷰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하겠죠.


그러나 실제로는 맨 마지막에 인터뷰한 지원자를 선호할 것입니다. 이는 시카고 대학교의 예 리(Ye Li)의 실험 결과로부터 유추할 수 있습니다. 리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좋은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는 마지막에 제시된 대안을 선호하고, 나쁜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택할 때는 맨 처음에 나온 대안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리는 미리 여러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인정 받은 좋은 그림 세 개를 무작위 순서로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각 8초 간 보여준 후에 어떤 그림을 가장 선호하는지 물었습니다. 시간 간격을 두기 위해 중간에 애너그램 게임을 하도록 했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사전에 많은 사람들이 나쁜 그림이라고 평가한 그림 세 개를 역시 차례로 보여주고 가장 선호하는 그림을 고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좋은 그림들을 본 참가자들은 가장 마지막에 본 그림을 선호했고, 나쁜 그림들을 본 참가자들은 가장 처음에 본 그림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리는 20초씩 편집된 '좋은 노래' 3곡과 '나쁜 노래' 3곡을 들려주고, 또한 '맛이 요상한' 젤리빈 3가지와 '맛 좋은' 젤리빈 3가지를 시식하도록 한 후에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역시나 참가자들은 좋은 노래들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들은 노래를 선호했고 나쁜 노래들 중에서는 가장 처음에 들은 노래를 선호했습니다. 젤리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죠. 이 결과들은 지원자들을 인터뷰할 때 가장 마지막에 만난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줄 가능성이 높음을 일러 줍니다(대개의 채용 인터뷰는 '좋은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리는 참가자들에게 2005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한 미인들의 얼굴을 사전에 보여준 후에 보통 정도의 매력도를 가진 여성의 사진 3장을 차례로 제시했습니다. 미(美)에 대한 높은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참가자들은 맨 처음에 제시된 여성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유전적인 이유로 안면이 손상된 여성의 사진을 먼저 보여준 후에 역시 보통의 매력을 지닌 여성 사진 3장을 제시했더니 참가자들은 맨 나중에 본 여성을 선호했죠. 이 결과는 면접관이 지원자들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가장 처음에 인터뷰한 지원자에게, 반대로 지원자들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장 마지막에 만난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대안들 자체의 특성보다는 각 대안이 제시된 순서가 선호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리의 실험 결과는 우리가 선택한 대안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사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런 '최신 효과(Recency Effect)'를 알고 있습니다. 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에 선정된 25편의 영화 중 21편이 하반기에 출시된 것이고, 무려 12편이 연말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심사위원들이 최근에 개봉된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죠. 혹은 경험적으로 '최신 효과'를 알고 있는 영화 제작자들이 일부러 연말에 영화를 개봉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대안들 중에서 하나를 고를 때 마지막까지 선택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는 전략이 그리 좋은 전략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본 것이 대개 좋아 보일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무언가를 평가하거나 선택할 때 '최신 효과' 혹은 '초두 효과'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볼 일입니다. 



(*참고논문)

Ye Li, Nicholas Epley(2009), When the Best Appears to Be Saved for Last: Serial Position Effects on Choice, Journal of Behavioral Decision Making, Vol. 22: 37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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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든 가정용 제품이든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면 우리는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집니다. 내가 찍은 후보가 찍지 않은 후보보다 훨씬 나아보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선택된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선택되지 않은 것의 가치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선택 편향'이라고 불릴 만한 이런 현상은 선택된 대안을 재평가하면서 그것이 선택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양과 성능이 비슷한 두 개의 스마트폰 중에서 하나를 골라 구매하고 나면 '왜 내가 이걸 살 수밖에 없는지'를 사후적으로 가져다 붙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 편향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걸까요? 선택된 것을 선택되지 않는 것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지되는 걸까요, 아니면 약화되거나 역전되는 걸까요? 탈리 샤롯(Tali Sharot)과 동료 연구자들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3년에 걸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샤롯은 참가자들을 컴퓨터 앞에 앉힌 후에 모니터를 통해 휴가를 보내기 좋은 80개의 여행지 이름을 하나씩 보여주며 '다음 방학 때 여기를 간다고 하면 얼마나 행복할지'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여행지를 두 개씩 보여주면서 방학 때 가고 싶은 여행지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 때 모니터 상에 떠오르는 두 개의 여행지 중 70퍼센트는 앞서 참가자가 동일한 선호도를 보인 것들로 구성하고 나머지 30퍼센트는 선호도 차이가 있는 것들로 짝을 맺었습니다. 즉,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든 쌍을 70퍼센트로('어려운 선택'), 선택하기 쉽게 만든 쌍을 30퍼센트로('쉬운 선택') 구성한 것이죠. 


참가자 중 절반은 이렇게 자신이 여행지를 선택했고, 나머지 절반은 컴퓨터가 정해주는 여행지를 선택 받았습니다. 선택 과정이 끝나자마자 참가자 전원은 다시 80개 여행지의 선호도를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2.5~3년 후에 다시 실험실로 찾아와 동일한 선호도 평가에 임했습니다. '어려운 선택'을 한 경우와 '쉬운 선택'을 한 경우, 각각 선호도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지를 보기 위함이었죠.


어려운 선택을 한 참가자들의 경우, 선택 이후의 선호도가 선택 이전의 선호도보다 높았습니다.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더 좋아하는 '선택 편향'이 나타났다는 의미였죠. 그리고 이런 경향은 3년이 지나고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컴퓨터가 여행지를 선택해 준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쉬운 선택을 한 참가자들의 경우, 선택 이후의 선호도와 선택 이전의 선호도 사이에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고 나서 선호도를 평가해 보니 특이하게도 선택한 여행지의 선호도는 하락하고 선택하지 않은 여행지의 선호도는 높아졌습니다. 선호도 차이가 확연해서 두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쉬우면, 시간이 흘러갈수록 오히려 당초에 선택하지 않은 대안의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샤롯의 실험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선택 과정이 어려우면 선택된 대안의 선호도는 높아지고 시간이 지나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지만(즉 '선택 편향'이 오래 계속되지만), 선택 과정이 쉬우면 그렇지 않습니다. '두 브랜드의 스마트폰 중에 무엇을 살지' 고민이 크면 클수록 구매 이후에 '내가 이걸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서 선택의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또 그 정당성을 오랫동안 간직한다는 의미입니다. '둘 중 뭘 선택할지' 고민한다는 것은 두 대안의 선호도가 비슷하기 때문일 텐데 선택했다는 이유로 선택되지 않은 대안의 선호도가 즉시 떨어지고 선호도 하락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것은 사실 불합리합니다. 선택 여부를 떠나 선호도는 변하지 않는 게 맞죠. 


조직의 전략이든 개인의 선택이든, 단지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된 대안의 가치를 평가절상하고 선택되지 않은 대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선택 편향'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없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어려웠다는 것 자체가 선택되지 않은 대안의 가치가 선택된 대안의 가치와 비슷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사결정 당시의 상황과 환경이 다르게 변하여 선택되지 않은 대안으로 분명히 갈아타야 마땅한데도 단지 선택된 대안이라 해서 그걸 붙들고 있다가 위험을 온전히 감수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선택한 전략은 어떠합니까?


(*추신)

문재인과 안철수, 선택하기 어려운 두 대안입니다. 선택이 어려울수록 일단 선택이 끝나면 여러분이 선택한 후보가 선택하지 않은 후보보다 훨씬 나아보일 겁니다. 그리고 이런 선호도는 제법 오래 유지되겠죠.



(*참고논문)

Tali Sharot, Stephen M. Fleming, Xiaoyu Yu, Raphael Koster, Raymond J. Dolan(2012), Is Choice-Induced Preference Change Long Lasting?, Psychological Science, Vol. 23(10)


Comments

  1. BlogIcon 마이클 2012.11.22 13:53

    재밌네요 ~

    perm. |  mod/del. |  reply.

전략은 '버림의 예술'이다   

2012. 2. 21. 10:47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 독일의 참모총장을 지낸 알프레드 폰 슐리펜(Alfred von Schlieffen)은 일명 '슐리펜 계획'을 전쟁 승리의 전략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와 대치 중이었는데, 슐리펜은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하고 병력 소집이 더디던 러시아보다는 강대국인 프랑스를 신속하게 제압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와 면한 서부 전선에는 79개 사단을 배치하고 러시아 쪽의 동부 전선에는 10개 사단만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거의 8대 1의 차이로 서부 전선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러시아로부터 반격을 당해 독일의 동쪽 지방(동프로이센)을 잃는다 해도 좋다는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또한 슐리펜은 프랑스와 대치하기 위해 서부 전선에 투입한 79개 사단 중 68개를 전선의 북쪽에 두었고 나머지 11개 사단을 전선의 남쪽인 알자스, 로렌 지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7대 1의 병력 집중도 차이는 슐리펜이 전쟁이 승리하기 위한 관건이 서부 전선의 북쪽(독일 입장에서 봤을 때 우익)인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알자스, 로렌 지역이 산악지역이라 지형적 이점을 최대로 살리면 그만큼 병력을 적게 운용해도 된다고 판단했죠. 슐리펜은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인 1913년에 사망할 때 자신의 계획을 유언으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프랑스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독일이 승리하려면 병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집중 배치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슐리펜이 1906년에 퇴임하고 후임자로 임명된 헬무트 폰 몰트케는 슐리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많은 병력들이 프랑스와 면한 서부 전선의 북쪽으로 쏠려 있으면 러시아와 대치 중인 동부 전선이 약해질까 두려웠습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상대하는 동안 러시아가 급습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몰트케는 슐리펜이 중요도를 낮게 여겼던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의 남쪽 지역에 병력을 크게 보강하여 7대 1이었던 병력 집중도를 3대 1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하고 말았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서부 전선의 북쪽으로 프랑스를 공략하기로 했던 슐리펜의 계획이 옳았던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서부 전선의 북쪽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반격을 뚫지 못한 채 마른(Marne) 전투에서 패해했고 독일군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참호전을 벌이며 서로 대치하는 국면이 형성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물론 학자들 사이에서 슐리펜 계획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합니다).

연합군의 입장에서 슐리펜 계획을 무산시킨 몰트케에게 감사할 일이지만, 병력을 분산시켜 모든 전선을 지키려 한 몰트케의 실패는 기업들의 전략 수립과 실행에 있어 '집중'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웁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입장처럼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전략의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들의 강점에 자원을 최대한 집중하고 약점이 되는 부분은 무시하려는 배짱이 필요하죠. 시장 전체를 상대하려고 하기보다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세그먼트를 선택하고 나머지 세그먼트는 미련 없이 희생시켜야 승리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적은 병력을 모든 전선에 고루 배치하면 방어력이 높아지키는커녕 경쟁자에게 취약한 부분을 더 많이 노출시키고 맙니다.

위험에 처하면 과감하게 버리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전략가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순한 전략을 결행합니다. 2000년에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P&G의 구원투수로 임명된 앨런 래플리가 핵심 성장 동력을 4개 부문으로 설정하고 식품업을 과감하게 포기함으로써 P&G를 두 자리 수 이상의 성장으로 이끌었고 위기로부터 구한 사례는 집중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래플리는 “CEO가 어느 분야를 포기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M&A만큼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말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힘든 과정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라고 조언합니다.

1997년 9월에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애플에 쫓겨났던 창립자 스티브 잡스를 임시 CEO로 복귀했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사업의 규모와 범위를 축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손을 잡고 첨단제품 개발에 나설 거라던 언론의 예상이 빗나가 버린 것이죠. 잡스는 경영전략가인 리처드 루멜트(Richard P. Rumelt)와 나눈 대화에서 "제품군이 너무 복잡했고 회사는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가족의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저에게 물어볼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수많은 제품의 차이를 알 수가 없었던 거죠. 저도 명확하게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잡스는 여러 종의 데스크탑 PC를 하나로 줄이고 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 부문을 없애버렸습니다. 또한 거래하던 여섯 개의 유통업체를 하나로 줄임으로써 까다로운 요구로 인해 제품 모델이 다양해지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버리기 전략'으로 잡스는 쓰러져 가던 애플을 회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고집하는 경영자들은 “전략의 본질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올바로 선택하는 데 있다. 전략은 곧 버림의 예술이다”라고 말한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충고를 유념해야 합니다. 어떤 고객, 상품, 시장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일이 어떤 고객, 상품, 시장을 선택할 것인가란 문제보다 선결되어야 할 의사결정 사안입니다.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다가 과감하게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주력사업으로 전환시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인텔(Intel), 빅(Bic)과의 소모적인 경쟁을 피하기 위해 라이터 시장을 철수하고 면도기에 집중한 질레트, IBM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슈퍼컴퓨터에 총력을 기울이 CDC, 휠체어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모션디자인스, 검은 양말만 판매하는 블랙삭스닷컴 등은 전략의 집중이 거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의 성공 포인트임을 일깨웁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려면 필연적으로 선택의 과정을 거쳐야 해야 합니다. 선택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select는 라틴어인 selectus에서 유래했는데, ‘어딘가로부터(from) 무언가를 분리해서(apart) 취한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선택이란 무언가를 취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집중이란 취해진 무언가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는 의미겠죠.

중국 속담에 "크게 버려야 크게 얻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규모가 작거나, 열세에 있거나,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에게 술리펜 계획 같은 '창조적 파괴'의 실행을 주문합니다. 창조적 파괴는 무엇을 얻을까란 질문보다 무엇을 버릴까란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어려운 선택을 피하려는 리더는 전략은 버림의 예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고도서 : '손자, 이기는 경영을 말하다')
(*참고도서 :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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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택을 위한 기술   

2010. 11. 30. 09:00


선택지가 많고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을 때 선택을 쉽게 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37%법칙과 속성별 제거법인데요, 어떤 것인지 함께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애플 아이튠즈에서 보기 (이 방법을 가장 추천합니다)
http://itunes.apple.com/kr/podcast/id394088827 

YouTube(유튜브)에서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MVBjo63Ws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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