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비열하고, 개미들은 멍청하다   

2008. 4. 1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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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북모닝CEO에 실린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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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PER(price per earing ratio)가 얼마지?”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자랑하는 저자에게 친구인 매트가 던진 질문이다. 이 말에 저자는 그 회사의 PER조차 알지 못하고 투자를 하고 있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또, 저자가 애플 컴퓨터의 주식을 가진 교수에게 애플의 주가 대신 현재의 주식 수가 얼마인지 물어 보았더니 몇 백만 주 정도 되지 않을까라며 모호하게 답을 했다고 한다. PER와 주식 수는 투자를 할 때 기본이 되는 정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저자와 교수가 그러했듯이 이런 기본 정보조차 모른 채 자신의 ‘감’에 따라 투자를 결행하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인들은 결국 실패를 맛본다. 바로 ‘도마뱀의 뇌’가 내린 지시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도마뱀의 뇌란 무엇일까? 인간의 두뇌에서 합리적인 계산과 분석을 담당하는 영역은 전두엽이라는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당히 큰 전두엽을 가지고 있어서 우월한 논리력과 분석력을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어쩔 때는 논리보다는 직관에 따라, 분석보다는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려는 성향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파충류와 진화적인 연결고리에 위치한 인간의 두뇌에는 도마뱀으로 대표되는 파충류의 뇌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마뱀의 뇌에서 지시하는 대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간혹 운이 좋아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고 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투자를 해서 이익을 실현하려면 우선 도마뱀의 뇌가 어떤 식으로 우리를 호도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도마뱀의 뇌는 분석과 논리를 제치고 감정적으로 투자하도록 만들며, 손실이 나면 어떻게든 그 손실을 만회해 보려고 발버둥치게 한다. 또한, 쓰레기 정보에 귀가 솔깃하게 만들고, 포트폴리오 전체적으로는 이익인데도 손실이 난 종목에 신경 쓰도록 한다. 도마뱀의 뇌는 본능적이며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인간이 먼 옛날 정글 속에서 온갖 천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는 데에 도움을 줬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투자에 관한 명철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는 우리의 눈을 흐리게 만들 뿐이다.

책에 소개된 최후 통첩 게임을 해보면 도마뱀의 뇌가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제안자’에게 100달러를 준 다음 그 돈을 ‘응답자’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한다. ‘응답자’는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응답자가 제안을 거절하면 돈을 한푼도 받을 수 없다. 만일 제안자가 99달러는 자기가 갖고 1달러만 응답자에게 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응답자가 제안을 거절해서 돈을 한푼도 못받는 것보다 1달러라도 받는 게 이익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느라 그 제안을 거절한다고 한다. 바로 도마뱀의 뇌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열한 시장이란 무엇일까? 비열한 시장이란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기회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시장이다. 즉 도마뱀의 뇌에 지배를 당한 우리로 하여금 폭락 직전에 주식을 매수하게 하고, 상승장 직전에 공포에 떨며 매도하게 만드는 매우 비합리적인 시장을 말한다. 오랜 기간 동안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왔던 ‘효율 시장 가설’은 교과서에나 나올 비현실적인 이론이다. 효율 시장 가설은 공원에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다고 말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누군가가 순식간에 집어갔을 것이므로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을 리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론적 멍에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비효율적이고 비열하기까지 한 시장을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종래의 행동경제학 관련 서적과는 달리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한 투자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게 이 책의 미덕이다. 미국인인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데이터와 투자상품들이 미국의 것이라서 언뜻 우리와는 먼 이야기라 생각하기 쉽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달러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등 세계 경제가 이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매우 공조화된 현실 하에서 그가 제시하는 조언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조언 중 하나가 변동금리 대출 상품을 고정금리 상품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금처럼 이자율이 낮은 상태에 있던 적은 없었는데, 이자율의 최저 한계는 0이므로 앞으로는 이자율이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도마뱀의 뇌는 지금까지 이자율이 낮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며 우리를 속이지만, 여러 정황상 이자율은 상승할 것이므로 지금 당장은 부담이 되더라고 변동금리보다는 고정금리 대출이 낫다는 것이다. 은행에서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내집마련을 한 개인들이 눈여겨 봐둬야 할 대목이다.

전반적으로 저자는 보수적인 투자를 권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누려왔던 주식 투자의 호황은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앞으로도 이어질지 미지수란 의견이다. 또한, 주식 호황 시기에 득세했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투자전략은 이제 유효기간이 만료됐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공격적인 ‘투자의 대박 비법’을 기대했다면 꽤나 실망스러울 것이다. 어쩌면 대박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도 우리가 얼마나 도마뱀의 뇌에 철저하게 지배 받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대신에 당장은 신통치 않을지 모르지만 보수적이고 저위험의 투자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록하는 길이라고 충고한다.

필자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다. 주식 투자할 시간에 자신을 위해 투자하거나 본업인 컨설팅에 주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문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회사의 주식을 사서 며칠 만에 20%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신문지상에 전도 유망한 기업의 기사를 볼 때면 ‘나도 이제 주식이나 한번 해볼까’하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투자 성적이 신통치 않았는가? 혹 한번의 배팅으로 대박을 터뜨릴 기회를 노리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도마뱀의 뇌의 유혹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을 오랫동안 속박하고 있는 도마뱀의 뇌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바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마뱀의 뇌를 잘 감시하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방법을 깨닫기를 바란다.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교보문고 북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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