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한 어느 후보자의 뒷모습   

2008. 4. 13. 00:18
반응형
우리집 앞에 있는 작은 빌딩에는 선거철마다 후보자들의 사무실이 들어서곤 한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의 대형 사진이 걸리더니, 이번 총선에서는 다른 당의 후보 얼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건물 임대료도 싸고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 선거 운동하기 딱 좋기 때문인 것 같다.

헌데 그 건물을 선거운동 사무실로 쓴 후보들은 무슨 징크스인지 모르겠지만 줄곧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회창 후보도 그랬고,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그'도 그랬다.

사실 '그'는 매우 생소한 사람이었다. 벽보의 붙은 그의 얼굴은 OO당의 후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정치할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프로필을 들여다 보니 정치 신인 중의 신인이었다. 솔직히 당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였다.

내 예상대로 그는 큰 표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우리 지역구에서는 겨우 3명의 후보가 나왔는데(왜 그렇게 적게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 중 2위를 한 것이다. 그렇게 될 줄 뻔히 알고 있었기에, 내 머리 속에서 총선도 '그'도 금방 잊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어제였다.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니 아직도 낙선한 그사람의 얼굴이 건물 벽에 크게 붙어 있었다. '총선이 지났으면 빨리 떼어 버리지 왜 아직 그대로야?' 속으로 혀를 차는데 건물 옆 공터에서 인부들이 트럭에 설치된 장치를 제거하는 모습이 보였다. 선거 유세용 차량의 장치를 해체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가 거기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날씨에 맞지 않게 두꺼운 점퍼를 입고서 인부들과 함께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손이 익숙치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엉거주춤하는 모습과 오히려 인부들의 작업 지시를 어정쩡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야 그의 실제 얼굴을 보게 됐는데, 낙선한 자의 얼굴에서는 지난 선거운동 기간에 쌓인 무거운 피로감이 느껴졌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갈라진 입술, 구부정한 허리에 낡은 구두... 나는 짐짓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하며 여전히 어정쩡한 그의 작업 광경을 몰래 바라보았다.

저녁 해가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리자 그의 지친 얼굴도 한겹씩 어두어지고 있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