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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업무차 우리나라에 처음 오게 된 어떤 미국인이 한국측 파트너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삼성이 정말 대단한 회사인가 봐요? 회사 이름을 딴 지역이 있으니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고 상대방이 물으니까, “저는 지금 삼성동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거든요. 회사 이름을 지명으로 쓸 정도라면 그곳에 삼성이 투자를 정말 많이 한 모양입니다.” 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단다. 우리나라 물정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이 삼성(三星)과 삼성(三成)동을 같은 것으로 오해했다는 우스갯소리다.
나도 어린 시절 삼성동에 삼성 본사가 있는 줄 철썩 같이 믿고 지냈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닌 듯싶다. 인터넷에서 삼성동을 검색해 보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동에 사는 것 아니냐?’는 딴에는 꽤 진지한 질문이 올라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삼성동이란 지명은 1914년 경기도 구획 확정 때 저자도리(楮子島里), 봉은사(奉恩寺), 무동도(舞童島)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성리(三成里)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풀이하면 ‘세[三] 마을로 이루어진[成] 동네’ 라는 뜻이다. 회사 이름인 삼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강남에 살지 않는다. 어쩌다가 같은 강남권으로 끼어주는 송파구의 끄트머리에 산다. 하지만 일하는 곳은 강남이다. 그리고 그 중 비교적 최근에 빠르게 도시화가 이루어진 삼성동의 가장 높은 빌딩에 세 들어 일한다. 촌놈인지라 강남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삼성동이 어느덧 사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고 싫은 점보다 좋은 점이 눈에 더 잘 띈다. 정이 든 모양이다.
삼성동에는 삼성사(社)가 있는 줄 알고 지내던 시절, 지금의 내가 이곳 삼성동에서 일하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88년의 가을, 학교에서 단체로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러 갔을 때, 나의 기억으로 삼성동은 도시의 일부라기보다 여느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처럼 농작물이 군데군데 익어가는 너른 들녘이었다. 그랬던 곳이 이제는 강남에서도 차들이 유난히 붐비고 유동인구가 웬만한 도시 인구를 능가하며 빽빽하게 고층빌딩들이 줄지어 선 신흥 다운타운으로 변모하였으니, 세월이 빠른 것인지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이 재빨리 탈바꿈을 하는 건지 분간이 어렵다.
삼성역을 내려 사무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엑스몰로 향해야 한다. 삼성역 출구부터 코엑스몰까지 이어진 작은 광장은 첨단의 각축장이다. 바늘 꽂을 공간만 있으면 어김없이 최신의 상품들이 광고된다. 게다가 일주일이 멀다하고 광장은 또 다른 신상품들의 차지가 된다.
그곳만 보고 있으면 기술의 첨단이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금세 벗겨지고 다시 입혀지는 광고물들을 보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세상의 역동(力動)과 창의를 본다. 단거리 육상선수의 다리 근육과도 같은 힘을 느낀다. 과거가 그립다는 명목으로 나태를 합리화하는 나에게 새 힘으로 충전하고 새로운 것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라는 세상의 뼈아픈 충고를 듣는다.
이 조그만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내게 있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은 느껴지는 성질이 다르다. 길에서의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기에 바쁘다. 분명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들의 표정은 오직 앞으로만 걸어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대표되어 있다. 몰가치한 표정이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는 개성이 숨을 쉰다. 초조하거나 무료하거나 기쁘거나 화난 표정들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연인이나 친구와 가벼운 농담으로 깔깔대는 사람, 무슨 주제인진 몰라도 토론에 몰입된 사람, 아니면 하릴없는 얼굴로 담배연기를 날리는 사람. 각기 다른 인생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내게 들려주고 간다. 나는 그래서 딱히 광장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작은 이 공간을 어느 순간 좋아하기 시작했다.
광장을 지나 코엑스몰로 들어선다. 내게 코엑스몰은 두려운 곳이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먼 길을 돌아가거나 한 곳에서만 뱅뱅 돌다가 길을 잃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익숙해져 안방처럼 누비고 다닌다. 이곳에 처음 들어선 사람은 엄청난 넓이로 구축된 지하세계에 놀란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페이스 팝콘은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머물면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을 ‘코쿤족(Cocoon)'이라 말한다.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바쁜 현대인들은 많건 적건 코쿤족의 피를 지니고 있다. 코엑스몰은 그들에게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커다란 고치[cocoon]집이다. 밖이 덥거나 춥거나 항상 일정한 날씨를 유지하며 먹을 것, 입을 것, 놀 것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온실 같은 곳이다. 궂은 날씨에 힘들여 밖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연인과 사랑하는 만큼의 속삭임에 오로지 집중케 하는 곳이다. 아침에 놀러와 밤늦게까지 짭짤하게 당일치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곳이다. 이것이 코엑스몰의 미덕이며, 내가 이곳에 일터를 잡은 이유이다.
일본 여행 때 도쿄의 시오도메에 간 적이 있다. 고층빌딩, 상점, 레스토랑, 박물관, 극장, 그리고 오다이바로 가는 무인전철인 유리카모메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공간인 그곳은 ‘시오사이트’라고 불리는데, 마치 미래 도시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물들이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했다. 도쿄에 시오도메가 있다면 서울에는 삼성동이 있다.
머지않아 모노레일이 건설되는 등 더 많은 변화와 발전이 이곳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미래를 맨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곳, 한국의 미래를 가장 앞서 제시하는 대표지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면, 삼성동에 일터를 가진 자의 팔불출 같은 지역사랑이라 놀려댈지도 모르겠다. 삼성동의 어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삼성동의 내일은 잘 알 것만 같다. 삼성동의 미래를 꿈꿔 본다.
나도 어린 시절 삼성동에 삼성 본사가 있는 줄 철썩 같이 믿고 지냈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닌 듯싶다. 인터넷에서 삼성동을 검색해 보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동에 사는 것 아니냐?’는 딴에는 꽤 진지한 질문이 올라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삼성동이란 지명은 1914년 경기도 구획 확정 때 저자도리(楮子島里), 봉은사(奉恩寺), 무동도(舞童島)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성리(三成里)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풀이하면 ‘세[三] 마을로 이루어진[成] 동네’ 라는 뜻이다. 회사 이름인 삼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강남에 살지 않는다. 어쩌다가 같은 강남권으로 끼어주는 송파구의 끄트머리에 산다. 하지만 일하는 곳은 강남이다. 그리고 그 중 비교적 최근에 빠르게 도시화가 이루어진 삼성동의 가장 높은 빌딩에 세 들어 일한다. 촌놈인지라 강남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삼성동이 어느덧 사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고 싫은 점보다 좋은 점이 눈에 더 잘 띈다. 정이 든 모양이다.
삼성동에는 삼성사(社)가 있는 줄 알고 지내던 시절, 지금의 내가 이곳 삼성동에서 일하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88년의 가을, 학교에서 단체로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러 갔을 때, 나의 기억으로 삼성동은 도시의 일부라기보다 여느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처럼 농작물이 군데군데 익어가는 너른 들녘이었다. 그랬던 곳이 이제는 강남에서도 차들이 유난히 붐비고 유동인구가 웬만한 도시 인구를 능가하며 빽빽하게 고층빌딩들이 줄지어 선 신흥 다운타운으로 변모하였으니, 세월이 빠른 것인지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이 재빨리 탈바꿈을 하는 건지 분간이 어렵다.
삼성역을 내려 사무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엑스몰로 향해야 한다. 삼성역 출구부터 코엑스몰까지 이어진 작은 광장은 첨단의 각축장이다. 바늘 꽂을 공간만 있으면 어김없이 최신의 상품들이 광고된다. 게다가 일주일이 멀다하고 광장은 또 다른 신상품들의 차지가 된다.
그곳만 보고 있으면 기술의 첨단이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금세 벗겨지고 다시 입혀지는 광고물들을 보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세상의 역동(力動)과 창의를 본다. 단거리 육상선수의 다리 근육과도 같은 힘을 느낀다. 과거가 그립다는 명목으로 나태를 합리화하는 나에게 새 힘으로 충전하고 새로운 것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라는 세상의 뼈아픈 충고를 듣는다.
이 조그만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내게 있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은 느껴지는 성질이 다르다. 길에서의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기에 바쁘다. 분명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들의 표정은 오직 앞으로만 걸어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대표되어 있다. 몰가치한 표정이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는 개성이 숨을 쉰다. 초조하거나 무료하거나 기쁘거나 화난 표정들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연인이나 친구와 가벼운 농담으로 깔깔대는 사람, 무슨 주제인진 몰라도 토론에 몰입된 사람, 아니면 하릴없는 얼굴로 담배연기를 날리는 사람. 각기 다른 인생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내게 들려주고 간다. 나는 그래서 딱히 광장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작은 이 공간을 어느 순간 좋아하기 시작했다.
광장을 지나 코엑스몰로 들어선다. 내게 코엑스몰은 두려운 곳이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먼 길을 돌아가거나 한 곳에서만 뱅뱅 돌다가 길을 잃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익숙해져 안방처럼 누비고 다닌다. 이곳에 처음 들어선 사람은 엄청난 넓이로 구축된 지하세계에 놀란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페이스 팝콘은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머물면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을 ‘코쿤족(Cocoon)'이라 말한다.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바쁜 현대인들은 많건 적건 코쿤족의 피를 지니고 있다. 코엑스몰은 그들에게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커다란 고치[cocoon]집이다. 밖이 덥거나 춥거나 항상 일정한 날씨를 유지하며 먹을 것, 입을 것, 놀 것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온실 같은 곳이다. 궂은 날씨에 힘들여 밖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연인과 사랑하는 만큼의 속삭임에 오로지 집중케 하는 곳이다. 아침에 놀러와 밤늦게까지 짭짤하게 당일치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곳이다. 이것이 코엑스몰의 미덕이며, 내가 이곳에 일터를 잡은 이유이다.
일본 여행 때 도쿄의 시오도메에 간 적이 있다. 고층빌딩, 상점, 레스토랑, 박물관, 극장, 그리고 오다이바로 가는 무인전철인 유리카모메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공간인 그곳은 ‘시오사이트’라고 불리는데, 마치 미래 도시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물들이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했다. 도쿄에 시오도메가 있다면 서울에는 삼성동이 있다.
머지않아 모노레일이 건설되는 등 더 많은 변화와 발전이 이곳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미래를 맨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곳, 한국의 미래를 가장 앞서 제시하는 대표지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면, 삼성동에 일터를 가진 자의 팔불출 같은 지역사랑이라 놀려댈지도 모르겠다. 삼성동의 어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삼성동의 내일은 잘 알 것만 같다. 삼성동의 미래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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