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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엔 일산의 롯데백화점과 그 옆에 있는 마그넷에서 쇼핑을 했다. 일정에 있던 쇼핑은 아니었다. 하릴없이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무작정 일산으로 차를 몰았다. 거대한 베드타운의 공터에크고 넓게 세워진 각각의 쇼핑센터들이 눈에 환히 들어왔다.
평일 낮의 쇼핑센터 내부는 한산했다. 게다가 나처럼 혼자 온 남자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사려고 했던 갖가지 소품을 고르고, 값을 비교하고 한가로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2시간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이건 어때? 너무 비싸지? 나는 내자신에게 질문하고 내자신에게 답하였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또한 쇼핑의 즐거움일 게다. 그리 많은 물건을 산 것은 아니지만, 뿌듯한 만족감이 가슴 안에 괴었다.
그리고 나는 호수공원을 찾았다. 역시 평일 늦은 오후의 공원은 쓸쓸함이 감돌 만큼 사람이 적었다. 호수면은 붉게 지는 햇살로 어른거렸고, 호수 너머 벌판에서 부는 바람이 내 얼굴에 닿았다가 어깨 너머로 불어갔다. 인공의 호수에서 느껴지는 인공의 자연 속에서 혼자이기에 느껴지는 별 수 없는 외로움. 뭐, 그런 것들도 함께 바람을 따라 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3000원을 내고 자전거를 빌렸다. 호수 둘레를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꽤 오랫만에 타 보는 자전거다. 처음엔 익숙해지지 않아 잠깐 흔들렸지만, 이내 소매를 펄럭이며 나는 달리고 있었다. 배운지 오래라 잊힐만도 한데 자전거 타는 법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가끔 2인용 자전거를 탄 연인들이 내 곁을 지나쳤다. '하나둘셋넷'을 외치며 발을 구르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뒷편에 앉은 여자의 흩날리는 긴 머리 위에 차츰 붉어지는 서녘 햇살이 부서졌다. 공원 한 켠에서 그네를 뛰는 여자들의 환호와 즐거운 비명이 흐릿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이 있으니....
이 노래를 작게 부르며, 나는 나의 행복을 생각하며 달렸다. 누군가 내게 말했듯,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때 이미 거기 있는 것이라고, 나는 내자신을 향해 주문을 걸듯, 계속해서 그 노래를 부르며 달렸다.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자가 이런 나를 흘끔 바라보며 실날같은 웃음을 보였다. 차밍한 웃음 한 조각같은 아련한 기억 너머로 자전거 바퀴가 향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쇼핑센터에서 산 물건을 꺼내 제자리에 놓았다. 그것들이 이제 내 식구가 되어 내 집 한켠한켠을 차지하게 됐다. 살가운 눈빛과 손길로 그것들을 만져주니, 답례하듯 달그락 거린다.
오랫만에 나를 위한 성찬을 준비하였다. 양파, 호박, 두부, 감자, 멸치, 그리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만들고, 햄을 얇게 썰어 계란옷을 입혀 부쳤다. 깻잎을 씻고, 쌈장을 만들고, 김을 9등분하여 잘랐다. 그동안 밥은 냄비안에서 뜸이 들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 완성. 그런대로 푸짐한 저녁밥상이 가는 김을 모락모락 내며 내앞에 놓였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밥을 먹었다. 그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그가 턱을 고이고 내가 밥을 먹는 걸 지켜보던 때처럼, 우리가 함께 하고,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회상하며 오랫동안 밥을 먹었다.
지금은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 마신다.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곡, 'Sky Walk'를 repeat 모드로 듣는다. 어느덧 지나간 하루가 어둠에 가려져 있다. 자전거 바퀴 따라 굴러가 버린 오늘 하루가 피아노 건반 위에서 흩어져 방안을 가득히 떠다닌다.
항상 나의 자폐 속에서 많은 것을 만난다. 우물 속으로 들어가 몇날 며칠밤을 지낸 하루키처럼, 어둠 속에서 많은 것과 만난다. 그 날 그가 던진 말의 의미, 파도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뒷모습에 써 있던 그 의미가 어둠 저편에서 들려온다.
과거를 잊어야 앞날을 살 수 있다. 자폐는, 현실과 '잊음'을 병행할 수 없는 나의 가난한 방법이다.
무작정 생각을 않는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기에 옛일을 갈무리하고, 빗질하고, 깨끗한 찬장에 고이 간수하듯, 자폐는 내게 그런 것이다. 늦은 오후의 자전거 타기처럼 희망의 오락인 셈이다. 혼자만의 성찬처럼, 내일로 내딛는데 필요한 영양분인 셈이다. 허나 나의 이런 자폐에 누구누구는 상처를 입었다. 미안한 마음이다.
살며 이렇게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사는 날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 내게 말했듯,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살아내는 그 순간순간이 행복이라고, 행복은 가슴 벅찬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작은 것이라고... 나는 어느새 취하고 있다.
(아마도 10여년 전에 쓰다)
평일 낮의 쇼핑센터 내부는 한산했다. 게다가 나처럼 혼자 온 남자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사려고 했던 갖가지 소품을 고르고, 값을 비교하고 한가로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2시간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이건 어때? 너무 비싸지? 나는 내자신에게 질문하고 내자신에게 답하였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또한 쇼핑의 즐거움일 게다. 그리 많은 물건을 산 것은 아니지만, 뿌듯한 만족감이 가슴 안에 괴었다.
그리고 나는 호수공원을 찾았다. 역시 평일 늦은 오후의 공원은 쓸쓸함이 감돌 만큼 사람이 적었다. 호수면은 붉게 지는 햇살로 어른거렸고, 호수 너머 벌판에서 부는 바람이 내 얼굴에 닿았다가 어깨 너머로 불어갔다. 인공의 호수에서 느껴지는 인공의 자연 속에서 혼자이기에 느껴지는 별 수 없는 외로움. 뭐, 그런 것들도 함께 바람을 따라 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3000원을 내고 자전거를 빌렸다. 호수 둘레를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꽤 오랫만에 타 보는 자전거다. 처음엔 익숙해지지 않아 잠깐 흔들렸지만, 이내 소매를 펄럭이며 나는 달리고 있었다. 배운지 오래라 잊힐만도 한데 자전거 타는 법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가끔 2인용 자전거를 탄 연인들이 내 곁을 지나쳤다. '하나둘셋넷'을 외치며 발을 구르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뒷편에 앉은 여자의 흩날리는 긴 머리 위에 차츰 붉어지는 서녘 햇살이 부서졌다. 공원 한 켠에서 그네를 뛰는 여자들의 환호와 즐거운 비명이 흐릿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이 있으니....
이 노래를 작게 부르며, 나는 나의 행복을 생각하며 달렸다. 누군가 내게 말했듯,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때 이미 거기 있는 것이라고, 나는 내자신을 향해 주문을 걸듯, 계속해서 그 노래를 부르며 달렸다.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자가 이런 나를 흘끔 바라보며 실날같은 웃음을 보였다. 차밍한 웃음 한 조각같은 아련한 기억 너머로 자전거 바퀴가 향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쇼핑센터에서 산 물건을 꺼내 제자리에 놓았다. 그것들이 이제 내 식구가 되어 내 집 한켠한켠을 차지하게 됐다. 살가운 눈빛과 손길로 그것들을 만져주니, 답례하듯 달그락 거린다.
오랫만에 나를 위한 성찬을 준비하였다. 양파, 호박, 두부, 감자, 멸치, 그리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만들고, 햄을 얇게 썰어 계란옷을 입혀 부쳤다. 깻잎을 씻고, 쌈장을 만들고, 김을 9등분하여 잘랐다. 그동안 밥은 냄비안에서 뜸이 들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 완성. 그런대로 푸짐한 저녁밥상이 가는 김을 모락모락 내며 내앞에 놓였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밥을 먹었다. 그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그가 턱을 고이고 내가 밥을 먹는 걸 지켜보던 때처럼, 우리가 함께 하고,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회상하며 오랫동안 밥을 먹었다.
지금은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 마신다.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곡, 'Sky Walk'를 repeat 모드로 듣는다. 어느덧 지나간 하루가 어둠에 가려져 있다. 자전거 바퀴 따라 굴러가 버린 오늘 하루가 피아노 건반 위에서 흩어져 방안을 가득히 떠다닌다.
항상 나의 자폐 속에서 많은 것을 만난다. 우물 속으로 들어가 몇날 며칠밤을 지낸 하루키처럼, 어둠 속에서 많은 것과 만난다. 그 날 그가 던진 말의 의미, 파도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그 뒷모습에 써 있던 그 의미가 어둠 저편에서 들려온다.
과거를 잊어야 앞날을 살 수 있다. 자폐는, 현실과 '잊음'을 병행할 수 없는 나의 가난한 방법이다.
무작정 생각을 않는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기에 옛일을 갈무리하고, 빗질하고, 깨끗한 찬장에 고이 간수하듯, 자폐는 내게 그런 것이다. 늦은 오후의 자전거 타기처럼 희망의 오락인 셈이다. 혼자만의 성찬처럼, 내일로 내딛는데 필요한 영양분인 셈이다. 허나 나의 이런 자폐에 누구누구는 상처를 입었다. 미안한 마음이다.
살며 이렇게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사는 날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 내게 말했듯,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살아내는 그 순간순간이 행복이라고, 행복은 가슴 벅찬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작은 것이라고... 나는 어느새 취하고 있다.
(아마도 10여년 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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