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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에 발사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 후 73초만에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추위에 갈라진 오링(O-ring) 때문이었지만, 그 결함을 알고도 지나칠 수밖에 없는 시스템적인 오류가 사고 발생의 근본원인이라는 다이앤 본(Diane Vaughan)의 주장을 예전 글에서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또한 사고 발생의 원인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의사소통의 단절'이 결국 사고를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왜 이렇게 주장한 걸까요?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로스 앨러모스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오펜하이머라는 걸출한 물리학자가 개발의 총괄 책임자였고 파인만은 그 중 하나의 모듈 담당자였죠. 적이었던 독일보다 먼저 원자폭탄 개발을 완료해야 하는 촉박한 일정 때문에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 일치단결해야 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든 그렇지 않든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원자폭탄 선(先) 개발이라는 공통의 목표 하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문제해결에 전력을 다했죠. 부분의 문제는 전체의 문제였으니 말입니다.
파인만은 나사(NASA) 역시 우주선을 달로 쏘아 보내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협력 분위기가 조정됐으리라고 추론했습니다. 소련이 1957년에 스푸트니크 호을 발사하면서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올려 놓겠다"는 존 F. 케네디의 유명한 연설이 두 국가의 치열했던 경쟁을 대변합니다. 알다시피 결국 미국이 먼저 아폴로 11호의 승무원을 달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무사히 귀환시킴으로써 경쟁의 승리자가 되죠.
파인만은 챌린저 호가 폭발하게 된 문제의 씨앗이 달 착륙 이후에 잉태됐다고 말합니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나사는 어느새 휴스턴, 헌츠빌, 플로리다 등의 기지에 수많은 인력이 근무하는 거대한 조직이 됐죠. 하지만 달 착륙이라는 지상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소련과의 경쟁이 무의미해지자 거대조직을 이끌고 갈 명분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새로운 우주개발계획은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을 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겠죠.
만약에 여러분이 나사를 이끄는 고위 관리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대한 조직을 슬림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직원들을 정리해고하고 이곳저곳 흩어진 기지들을 통폐합하겠습니까? 제3자라면 모를까, 자신이 이해관계자라면 자기 살을 깎아내는 행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회로부터 좀더 많은 예산을 책정 받기 위한 로비에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나사라는 조직이 왜 필요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알려야 했습니다. 기술력보다는 정치력이 나사의 존속에 요구되는 필수역량이 되어 버렸죠. 파인만은 이러한 예산 책정을 둘러싼 로비 과정에서 기술에 대한 과장된 홍보가 남발됐으리라 짐작했습니다.
이를테면 "우주왕복선 한 대로 몇 번이고 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결국 우리는 달 착륙에 성공했듯이 우주왕복선 개발도 이룰 수 있다"는 식으로 나사의 고위관리자들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성공 가능성을 부풀렸으리라고 파인만은 생각했죠. 그래야 돈줄을 쥐고 있는 의회가 거대조직인 나사를 계속 유지할 명분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입장을 바꿔서 여러분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거나 좀더 검증이 필요한 기술을 곧바로 구현하라고 지시 내리는 고위관리자들을 바라보는 기술자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당연히 책임감 있는 엔지니어로서 "안 된다"란 거부 의사를 밝힐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의견은 정치적인 힘에 눌려 묵살되고 프로젝트는 강행되고 맙니다. 또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에 발생되는 여러 결함을 보고해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긍정적인 이야기만 듣고 싶어하는) 윗사람들에게 기각되어 버립니다.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회가 알게 되면 힘들게 얻어 온 예산이 철회될지 모르기 때문이겠죠.
문제가 제시되는 족족 묵살 당하면 여러분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처음엔 윗사람의 생각을 바꿔 보려고 대화를 해보지만 계속해서 무시를 당하게 되면 될대로 돼라는 심정이겠죠. 그래서 입을 닫고 윗사람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게 됩니다. 의사소통이 양방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위에서 아래로만 쏟아지는 최악의 의사소통 구조가 굳어지고 맙니다.
바로 이것이 챌린저 호가 폭발한 이유입니다. 추운 날씨에는 오링(O-ring)이 갈라져 버리는 결함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누출을 막아주지 못할 거란 경고가 챌린저 호 발사 전에 여러 차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부정적 의견을 듣기 싫어하는 관성이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죠.
파인만은 "아랫사람들이 실무적인 내용을 가지고 윗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만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점점 대화가 줄어들고 결국에는 완전히 없어진다. 그러면 윗사람들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게 된다"라고 정리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의사소통 단절 이론'입니다. 간단히 말해, '업적 경쟁' 때문에 의사소통이 마비된다는 이론이죠.
여러분의 회사도 이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고객에게 주주에게 경영자에게 자기부서나 자기사업부의 존재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서 역량이 부족해 수행하기 어렵거나 그다지 긴급하지 않는 과제들을 전시용(혹은 과시용)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몇몇 회사에서 서로 업무분장이 겹치는 부서들이 업적을 돋보이려고 불필요하게 경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심한 조직일수록 연초가 되면 전시용 과제들이 사업계획서에 넘쳐나는 모습을 봅니다.
파인만의 의사소통 단절 이론에 의하면 그런 조직들은 상하간의 의사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일을 위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가 의사소통의 질과 양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는 아닐까요? 의사소통은 참 미묘하고 섬약합니다. 이렇듯 과도한 업적 경쟁에 의해서도 쉽게 영향을 받으니 말입니다. 상하간에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문제는 자주 회의를 한다고 해서, 간담회 같은 이벤트를 벌인다고 해서 해결되지 못합니다. 관리자들의 과도한 경쟁과 불필요한 공명심이 발호하는 한 의사소통 단절 문제의 해결은 요원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 참고도서 : "남이야 뭐라 하건!", 리처드 파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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